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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행복의 길과 불행의 길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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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길과 불행의 길 (시 1:1-6)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이란 저서가 있습니다. 하와이 열방대학 총재이신 로렌커닝헴박사님이 쓴 책인데 그 책에 보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비케언이라는 한 작은 섬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부터 2백 2~30년 경에 영국 군함 바운티라는 군함이 항해도중 반란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선원들과 군인들을 죽이고 9명의 반란군들이 배를 탈취합니다. 그리고 배를 끌고 이리저리 해적질을 하면서 자기들이 도망갈 섬을 찾습니다. 

그들은 바다에서 만난 한 상선을 탈취하고 그리고 여인들을 포로로 잡습니다. 아이들과 여인들을 데리고 작은 모인도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비케언섬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도록 배를 불살라 버렸습니다. 거기에 정착을 하고 생활을 합니다. 집을 짓습니다.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상한 약초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술을 만들었습니다. 술을 만들어서 먹고 취하고 도박을 하고 싸우고 서로 죽이고 지옥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몇 번의 살인이 자행되어 집니다. 그때 존 에덤스라는 분과 열명의 여자들이 남았는데 존 에덤스는 어느날 배에서 내린 상자를 정리하다가 한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책이 바로 성경책이였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 읽는 책을 읽으면서 그 책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되겠다 정기적으로 그 책을 읽고 성경공부를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성경말씀을 같이 나누면서부터 이 섬에 놀라운 평화가 도래하게 됩니다. 질서가 생활화 됩니다. 도둑이 없어집니다. 속이는 일이 없어집니다. 술취해 싸우는 일이 없어집니다. 그 섬은 천국과 같은 섬이 되었다하는 것입니다. 

1991년 열방대학 총재이신 로렌커닝헴목사님이 그 섬은 지상에 세워진 천국을 보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에게 변화를 준 성경책을 유리관에 잘 넣어서 그것을 보관해 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이 말씀이 우리섬을 바꿔놓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우리 심령의 변화, 인생의 변화, 이 나라의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 삶의 원리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될 때 우리의 인생은 새로워질 수 있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1편은 가장 위대한 시중에 하나입니다. 

시편 150편중에 가장 위대한 시를 꼽으라면 1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시편에 들어가는 정문 현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50편의 시를 하나의 시로 요약한다면 바로 시편 1편과 같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두 개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길은 행복의 길이고 하나의 길은 불행의 길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선택입니다. 

성경에 보면 길에 대한 이야기가 가끔 나옵니다. 넓은 길이 있는가하면 또 좁은 길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이 있는가 하면 멸망에 이르는 길도 있습니다. 지옥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년벽두 이 아침에 내가 일년을 살아가면서 행복의 길을 선택할 것이냐 불행의 길을 선택할 것이냐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나는 살다가 불행하게 살고싶어 그럼 저쪽으로 가세요. 어떤 분이 교회에서 안내위원으로 안내하면서 교인들이 들어오니까 절로가세요 절로가세요 깜짝 놀랍니다. 절로 왜 가요 교회에 왔는데. 여러분 어느길을 택하시겠습니까. 행복의 길이냐 불행의 길이냐 여러분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이 행복의 길과 불행의 길을 성경은 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들의 길과 악인들의 길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행복의 길에 이르는 길은 누구의 길입니까. 의인들의 길입니다. 그러나 불행에 이르는길은 악인들의 길입니다. 이제 의인들의 길을 아니면 악인들의 길을 갈 것이냐. 복있는 사람은 의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이란 다른말로 하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면 의인의 길을 선택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있는 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든지 불행의 길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이 다 행복을 원하고 잘되길 원하고 기쁨을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복의 길을 가려면 어떤 특징들을 가져야 하는가? 어떤 조건이 필요하냐라는 것입니다. 먼저 행복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죄를 멀리하는 길입니다. 

1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꾈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있는 사람은 이런것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뭐하고 뭐는 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화장실하고 사돈집은 멀리있어야 좋다. 

그런데 요즘은 정 반대입니다. 화장실도 집 안방옆에 있고, 사돈도 이제 가까이 삽니다. 왜? 나 혼자만 아기 보면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돈집에 옆이니까 일주일은 그집이 보고 일주일은 내가보고 사돈이 가까우면 얼마나 좋은점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복있는 사람은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이 악인, 죄인, 오만한 자, 같은 말입니다. 다 범죄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길을 따라가면 안된다. 바로 죄를 멀리해야 한다. 죄라는 것은 대개 사람을 통해 들어옵니다. 때로는 도서나 잘못된 사상을 우리가 전달받을 때 죄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또 사람들을 통해서 도박 좋아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보면 나도 도박에 끌려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람피우는 남자 만나면 나도 잘못하면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인보다 바람피우는게 얼마나 신나는줄 모른다고 자꾸 얘기하면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사람 멀리해야 합니다. 죄라는 것은 그런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통해서 죄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니까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따른다는 것은 걷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누구와 함께 걷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누구와 함께 걸어가십니까.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악인들과 함께 걸어가면 죄인들과 걸어가면 나도 거기에 오염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걸어가는 것만은 별거 아닙니다. 가더가 섭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만한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좀 미안한 예입니다만 제가 예전에 보문동쪽에서 부목사 생활을 했습니다. 가끔 청량리역을 갈때가 있습니다. 청량리역앞에 백화점인가 쇼핑상가가 있어서 차를 몰고 가끔 사러갈 때가 있었습니다. 양평에 있을때도 시골에는 별로없어서 사러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청량리에 들어갔다가 차를 몰고 나오면 꼭 이상하게 뒷길을 돌아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뒷길에 홍등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 앞을 지나야 합니다. 호기심이라도 그 홍등가 앞을 지나간다 물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섰다. 이러면 좀 문제가 심각합니다. 섰는데 들어가서 앉았다. 이러면 더 심각한 겁니다. 그래서 오늘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걷지 아니하며 그 길에 서지 아니하며 그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다시 말하면 죄 옆에는 가지도 말라하는 것입니다.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시험하지 말라. 왜? 우리는 연약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금해야 할 것,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는 인간에게 불행을 주고, 고통을 주고, 아픔을 주고 분열을 주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가정도 깨어집니다. 부부도 깨어집니다. 나라도 망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분이 그럽니다. 대한민국이 여야가 늘 싸우고 부패공화국같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면도 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위기위기때마다 불사조처럼 살아나는 것 보면 이유가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뭐냐했더니 애국가를 불러서 그렇다고 합니다.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나님이 보호하는 노래를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실 수 없다. 우스개소리지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는 나라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멀리할 때 더 큰 형통과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로 우리가 행복한 길을 가려면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2절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말씀듣는게 즐거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말씀듣는것이 즐거우면 되는 것입니다. 살찌는 사람은 어떤시간이 제일 즐겁습니까. 밥먹는 시간입니다. 저는 밥먹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습니다. 집사람이 그럽니다. 여보 당신은 세때씩 뭘그리 찾아 먹느냐고 말입니다. 옛날에는 두끼만 먹어도 살았다는데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밥먹는 재미를 없애면 무슨 재미로 살까. 그런 즐거움이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탐식을 하게 되고 살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밥먹는 시간이 제일 싫어. 그런 사람은 살 안찝니다. 가능하면 안먹으려고 안먹고 말라서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 말씀듣는 시간이 즐겁고 예배 시간이 즐겁고 기도 시간이 즐거우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듣는 시간이 즐거우면 교회생활이 즐겁고 삶이 보람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성도님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공부잘하는 아이들은 공부하는게 즐겁답니다. 우리가 볼때는 이해가 안되지만 공부하는게 즐겁다고 합니다. 하기 싫은 걸 그렇게 하겠습니까. 어떤 애는 수능고사 만점을 받아가지고 오늘 아침에 보니까 TV에 나왔습니다. 죽기보다 싫은 걸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공부하는게 즐거운 겁니다. 왜? 잘되니까. 남보다 잘하니까 빨리 깨달으니까. 신나니까 인정받으니까. 공부가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점 받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열심히 나오시는 분들도 새벽기도가 즐거워야 합니다. 죽기보다 싫으면 특별새벽기도 출석표내라니까 일주일은 와도 그 다음 한달은 못옵니다. 

그런데 우리 권사님들 늘 그 자리에 영하 10도에도 늘 그 자리에 와 계신 것 보면 새벽기도가 즐거운 줄 믿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 즐거운 것입니다. 의무적으로 못합니다. 누가 때려서 못합니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나가서 이 새벽을 드리자. 하나님앞에 나가서 기도하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루를 시작해야지. 하나님 말씀듣고 그 말씀따라 하룰를 살아야지 얼마나 즐거운 것입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 이게 뭐냐.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 묵상이라는 것은 깊이 내 마음속에 새기는 것입니다.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말씀을 사랑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의 말씀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말씀에 대한 사모함, 말씀에 대한 즐거움, 말씀에 대한 적용 이게 늘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 3절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의 삶은 어떻습니까. 열매가 있습니다. 열매라는 것은 인격의 열매도 있고 기도 응답도 열매라고 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을 때도 열매라고 표현합니다. 또 그 잎이 마르지 아니한다. 기근에도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늘 싱싱하고 윤기나고 활력있는 기쁨이 충만한 삶, 이게 마르지 아니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모든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이라는 것은 막힘이 없다. 잘 된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 이 새해에는 여러분의 삶에 잘되는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때로는 길이 막혀서 은혜가 될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여러분의 삶이 형통한 삶이 되고 잘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원리로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권세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그럼 제일 행복하겠지요. 가서 물어보십시오. 

요즘 MB대통령이 행복한가 말입니다. 죽을맛이라고 할 겁니다. 오죽했으면 노대통령은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했습니다. 힘든 자리입니다. 행복한 자리입니까. 행복한 자리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고 싶어서 했지만 지금은 죽지못해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일년만 빨리 가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오래 살 것입니다. 욕을 많이 먹기 때문에 말입니다. 얼마나 대통령욕을 많이 하는지 말입니다.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길에 지나가는 초등학생까지 인터넷에다가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그러지를 않나 별 욕을 다합니다. 이런 나라도 없지만 어찌 대통령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먼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죄를 멀리함으로써 오는 영혼의 복이고 범사의 복이고 강건함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니까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원한다. 먼저 우리의 복은 영혼의 복입니다. 내 영혼에 복이 있고 영혼에 감격이 있고 내 영혼에 활력이 있는 것입니다. 또 범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가운데 잘 이루어 지는 것, 이게 범사의 복입니다. 또 건강도 중요한 복입니다. 가족중에 누가 앓아 누우면 가족이 어렵습니다. 가족이 누가 앓아 누우면 병원비 많이 들어가고 간호하느라고 직장, 집안일도 못하고 애는 공부도 못합니다. 시중하느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은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매일 아프다가 죽는다 이게 어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이 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원리로 삼고 죄를 멀리하는 사람에게 올 수 있는 복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장 8절에 보니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 보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속에 풍성히 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한다는 것, 이게 참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건드리면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집에서 강아지를 많이 키웠는데 강아지가 겨울에 추우니까 부엌에 들어가서 밤을 지냅니다. 부뚜막 옆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하룻밤은 어머니가 나가보니 꿀단지가 열려 있습니다. 강아지가 있는데 강아지 배가 똥똥합니다. 강아지를 옮길려고 드니까 배를 누르니까 꿀꺽꿀꺽하고 꿀을 다 토해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내 안에 거하여서 건드리기만 하면 말씀이 튀어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드리기만 하면 욕이 튀어 나옵니다. 욕으로 충만하고 어떤 사람은 건드리기만 하면 화를 냅니다. 화로 충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면 우리 인생이 변화될 줄 믿습니다. 말씀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니까 말입니다. 

미국에서 흑인 노예가 있던 노예해방이 있기 전 시대입니다. 한 독실한 크리스챤이 있었는데 자기집에 하인 조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을 아들처럼 사랑하고 흑인 노예지만 너무너무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또 농장 일꾼이 필요해서 조와 함께 시장에가서 필요한 노예 한명을 사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미국 초창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젊고 싱싱한 노예들은 안 고르고 병들어 늙은 노예 하나를 조가 택하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을 왜 택하나 저런 사람은 일도 잘 못할텐데. 그런데 조가 하자는대로 따라했습니다. 집에 데려왔는데 일도 제대로 못합니다. 병치레만 합니다. 그래서 너 왜 젊은 노예를 안택하고 병들고 나이많은 노예를 택했느냐 했더니 조가 그럽니다. 제가 주인 아저씨로부터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어느날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시장에 갔는데 늙고 병든 노예가 자기를 잡아서 노예로 팔아버린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일부러 그 사람을 자기집에 데리고 와서 잘 돌봐주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네 원수를 사랑하라 였기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삶의 원리를 두고 근거를 둔다면 우리 삶은 달라질 줄 믿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 삶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따로, 생활따로, 이렇게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2절에 보니까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죽은 영혼이 말씀을 통해 살아나는 것입니다. 119편 49절에 보니까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말씀은 소망을 주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이처럼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의 특징은 죄를 멀리합니다.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열매와 형통함을 경험합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이스라엘에는 강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가도 강이 많습니다. 시골살던 평창에 보면 뒤에 사천강이 있고 무슨강이 있고 강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얼마나 강이 많습니까. 한강부터해서 전국에 강이 많습니다. 낙동강, 무슨강, 무슨강해서.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강이 별로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지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다보면 늘 사막인데 어느곳에 나무들이 숲이 우거집니다. 가보면 그 옆에 강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강가에 사람들이 몰려살고 강가에 나무들이 자라고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시골 도랑가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논 아래에 도랑이 있는데 아이들 놀기 좋습니다. 엄마들은 빨래도 하고 아이들은 미꾸라지도 잡고 노는 겁니다. 그런데 도랑가를 보면 오디나무, 뽕나무들이 자라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오디가 까맣게 열립니다. 그러면 주전자들고 가서 따서 먹으면 입이 시퍼렇게 됩니다. 도랑가 물중심으로 나무가 잘 자라는 것입니다. 이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말씀의 시냇가에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릴 때 거기에 충만한 열매가 열릴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에 템즈강근처에 한 재판소가 있는데 그 재판소 담안에 포도나무가 하나 있는데 이 포도나무는 몇백년이 됐는데도 죽지않고 그렇게 잘 자랍니다. 포도송이가 굵고 맛이 있고 윤기가 있습니다. 소문이 나서 식물학자들이 와서 재판소에 있는 나무가 맛이 특이하고 잘 자랄 수 있느냐고 연구를 해봤습니다. 종자가 다른가 특별한 비료를 주는가. 그런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이유가 뭐냐. 템즈강 옆에 있어서 포도나무가 오래되니까 그 뿌리를 템즈강 밑에까지 내렸습니다. 기근이 와도 늘 풍성한 수분을 공급받으니까 이 포도나무는 잘 자라고 늘 열매를 잘 맺고 맛이 좋을 수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시냇가에 우리의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공급받을 때 우리 인생에는 형통함과 열매와 기쁨이 충만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쓰고, 많이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의 밭에 말씀을 많이 심으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열매를 맺고 여러분의 인생과 인격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서울 사이버대학의 교수인 김수지라는 분, 그분이 미국에 가서 몇 년동안 유학을 했다고 합니다. 돌아올 때 자기의 친근한 미국인 교수 부부가 자기를 초청을 해서 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텃밭에 가보자고 해서 텃밭에 가보니까 상추고 고추고 많이 심어 놨습니다. 같이 뽑자고 합니다. 같이 뽑아서 먹자고. 뽑다 보니까 느낀게 있다고 합니다. 상추 심은데는 상추가 나고 고추 심은데는 고추가 나고 토마토를 심은 데는 토마토가 나더랍니다. 그런데 옆에 아무것도 안심은 데가 있더랍니다. 아무것도 안심은데는 잡초만 우거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의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심으면 말씀으로부터 변화의 열매를 맺고 축복의 열매를 맺는데 우리마음밭에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선택이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한 길, 불행한 길이 있는데 행복의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러면 죄를 멀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내 안에 능력이 되면 죄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 자리를 잡으면 죄가 틈탈 수 없습니다. 말씀이 우선이고 능력이 있으니까. 새해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말씀안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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