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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소금으로, 빛으로 살게 하소서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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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으로, 빛으로 살게 하소서 (마 5:13-16) 

신년 주일을 맞이하여 올 한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고, 가정과 삶에 하나님의 복이 풍성히 임하셔서 기쁨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신년주일의 설교 말씀은 총회에서 올 해 주제를 따라 전국 교회에 보낸 설교원문을 그대로 설교합니다. 매년 마다 교회적으로 주제를 정해 온 성도들이 함께 신앙의 방향을 정해 달려가지만 교회의 상위기관인 총회의 주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올 2012년 한해를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012년 총회주제는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한번 따라 해 보겠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명하신 교회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위기는 벌써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지만 우리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치유불능, 회복불능 상태에 빠져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우리 앞에 소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를 고쳐서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제96회 총회에서는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주제를 정하여 한국교회의 회복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과 한국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 즉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금이나 빛은 자기를 녹이고 태움으로 세상을 밝히고 맛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자기를 비우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녹이고 섬기는 삶을 통해 복음을 비방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일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한국교회가 이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를 소원하며,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자세를 바꾸기만 하면 우리를 고쳐서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비틀거리며 고함을 지릅니다. 그럴 때 보는 사람도 불안감을 가집니다. 우리는 그간 무엇엔가 취하여 그 기분가운데 살아온 느낌입니다. 취한 기분으로 살다보니 사치했고, 무분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한 술에 취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길에 쓰러져 잠을 자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얼어서 아주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잠을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쓰러져 자다가도 몸이 추워  깨어나는 사람은 삽니다. 그리고 술 취한 데서 깨어나면 정상이 됩니다. 

요즘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우리를 깨우고 있습니다. 무엇엔가 취해 쓰러져 비틀거리면서 잠을 자고 있던 우리를 깨웁니다. 지금 우리는 깨어 있어 정상적인 생각, 정상적인 판단,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는 세상에 취하지 맙시다. 다시는 향락에 취하지 맙시다. 다시는 허영과 자만에 취하지 맙시다. 오직 성령,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하여 세상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갑시다. 믿는 우리부터, 정상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신앙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라는 지방에서 불러내실 때 그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내가 네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며 너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는 굉장한 축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네가 복의 근원이 되며 땅에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샘터와 같은 사명이 있으며, 세상 나라 사람들이 그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듯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두 가지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중에 있는 산상수훈입니다. 

먼저 자신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모든 자들이 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로운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될 때, 한결같이 하늘의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숭고하며 수준 높은 가치를 지닌 하늘의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두 가지 실물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소금과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하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까? 당시에 소금은 구하기 힘든 희귀한 것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값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면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라는 이유 때문입니까? 그렇기는 하더라도 얼음이 더 낫지 않습니까? 소금은 맛을 내기 때문입니까? 스스로 녹아서 맛을 내는 희생의 심벌이라서 그럽니까?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본뜻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단순히 이런 윤리적인 교훈의 차원에서 해석하는데 그치면 예수님을 하나의 도덕적인 교사로만 아는데 그치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윤리적인 문제를 전혀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그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서 좀 더 깊은 곳, 즉 종교적인 차원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소금이라 부르신 참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다음의 말씀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이 말씀이 핵심성구입니다. 

소금이 소금인 것은 짜기 때문입니다. 짠 것, 이것이 소금의 생명입니다. 입속에 넣으면 혀가 굳어질 만큼 짠 것이 소금입니다. 소금이 이렇게 짜기만 하다면, 다른 것들은 좀 싱거워도 괜찮습니다. 김장 김치가 좀 싱거워도 소금을 치면 됩니다. 두부찌개, 설렁탕, 미역국도 싱거우면 소금을 넣으면 됩니다. 심지어 간장까지도 좀 싱겁다 해도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거기다가 소금을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 만일 그 소금이라는 것이 제 맛을 잃고 싱거워지는 날에는 어떻게 합니까? 소금이 그 맛을 잃었을 땐 무엇을 쳐서 그것들을 다시 짜게 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바다가 마르면 강으로 가면 됩니다. 강이 마르면 냇가로 가면 됩니다. 시냇물마저 마르면 그 샘 근원인 샘터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샘구멍, 샘 근원마저 마르면 어떻게 합니까? 그땐 끝장입니다. 절망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가 썩고 부패했다고 탄식을 합니다. 국민 의식이 형편없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숨을 쉽니다. 사람들의 허영과 사치가 도에 지나치다고 한탄을 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재벌, 예술계, 교육계 할 것 없이 다 병들었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 절망은 아닙니다. 만일 소금만 있고, 그리고 그 소금이 아직 혀가 굳어질 정도로 짠 맛을 가지고 있다면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소망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금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인 우리가 바로 그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만일 소금처럼 짜서, 우리가 닿는 곳에, 썩어 냄새날 만한 것들이 짠맛 때문에 썩을 여지가 없어지고, 상처받아 마비된 피부에 우리가 닿기만 하면 아려서 제정신 들게 할 만큼 짜기만 하다면 이 나라는, 이 사회는 아직도 희망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만일 맛을 잃었을 땐 어떻게 합니까? 복음의 사절들이 짜야 할 맛을 잃고 싱거워진다면 무엇을 쳐서 그것을 다시 짜게 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철학이 합니까, 예술이 합니까, 교육이 합니까, 인터넷이 합니까? 아닙니다.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원천인 복음의 사절들이 맛을 잃었을 때 그것을 다시 짜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정말 끝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소금”이라고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소금이 정말 짜고 짠 소금으로 있을 때, 비로소 싱거운 음식에 짭짤하게 맛을 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짠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도 철학, 문학, 과학, 예술, 경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은 참 행복, 참 평화, 참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모릅니다. 

겉으로 화려하고 윤택하나 참된 환희와 소망이 없습니다. 일시적인 향락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소금이 꼭 필요합니다. 소금이 정말 짠 소금으로 있을 때 비로소 썩을 곳에 들어가 함께 짜게 만들기에 썩을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어떤 민족이나 나라, 혹은 문화가 망하는 것은 외적의 침입이 있기 전에 먼저 내부의 도덕적인 부패 때문에 망합니다. 이 사회에 참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은 생선에 소금을 뿌린 것과 같습니다. 참 소금이면 자연히 썩을 것을 막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은은한 감화력이 그것을 막습니다. 죄로 썩은 사회를 구원하는 데는 소금이 꼭 필요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요일 1:5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빛이십니다. 요 8: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 빛을 받아서 빛을 발산합니다. 빛은 그 생명이 어두움을 몰아내는데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빛의 사명입니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작은 촛불이라도 가면 어두움은 도망갑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사명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참된 신자가 있는 곳에는 어둠의 미신, 어둠의 종교, 어둠의 사상, 어둠의 도덕이 물러갑니다. 세상은 온갖 어두움에 취하여 있습니다. 어두움을 이기는 것은 빛밖에는 없습니다. 

빛은 비추는 것이 그 본성입니다. 어두운 것을 밝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빛을 말 아래 두지 말고 등경 위에 두어야 합니다. 등경 위에 두어야 빛이 빛으로서의 가치를 나타냅니다. 비추는 일을 잘합니다. 효과적으로 어둠을 물리칩니다. 

그렇다면 등경은 어디입니까? 가장 잘 비출 수 있는 위치입니다. 
등경 위는 어디입니까? 빛의 효과가 가장 잘 나는 자리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빛을 비추는 높은 위치에 항상 있어야 어두움을 몰아내는 사명을 합니다. 도덕적 높은 위치, 윤리적 높은 위치에 있어야 빛이 됩니다. 빛의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일을 하는 교회와 성도들이야말로 바로 등경 위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추방되어야 할 어두움의 모습들이 많습니다. 거짓, 게으름, 부정, 죄악, 허영, 거품, 낭비 등은 모두 추방의 대상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어 그 존재 의미를 찾게 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어 빛 자체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닿는 다른 것을 보게 합니다. 빛을 통하여 다른 것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보게 합니다. 

‘소금과 빛’ 얼마나 귀한 이름이며, 꼭 필요한 것들입니까? 오늘 이 시대의 우리 성도와 교회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빛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리고 한국 모든 교회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썩어짐을 방지하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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