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주님이 쓰시는 교회 (행 4:23-31)

첨부 1


주님이 쓰시는 교회 (행 4:23-31)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 성도님들께 주님께서 올 한해 은혜와 평강으로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 세우는 계획이 주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새해 첫 설교 준비는 목사를 평소보다 더 긴장하게 만듭니다. 메시지의 전달 뿐 아니라 새해의 사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금년에 우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지난날의 허물이나 실수를 통하여 어떤 교훈을 얻으며 앞으로의 사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교회 리더들이 목회자와 한 마음이 되어 사역을 감당해 나아갈 것인가? 교회당 마련이란 과제가 주어졌는데 교우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추진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사역부서나 선교회나 목장이 활발하게 움직일 것인가? 등등 함께 고민하며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영혼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연히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훈련을 받고 교제를 나누는 것도 결국 우리의 눈을 교회 밖으로 돌려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방황하는 자들을 발견하여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다가 낙심하여 신앙생활을 중단하거나 방황하는 분들도 적지 않기에 그분들을 찾아내 위로하고 권면하여 함께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교회가 새 가족으로 새 신자들로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신앙생활의 활기를 떨어지기 쉽습니다. 자칫하면 교회가 구원의 방주요 세상의 빛과 소금을 역할을 감당하기보다 social club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가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하니, 3천 명이 회개를 했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교회의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영혼 구원으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 받은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그 수가 더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핍박받던 성도들이 안디옥에 모여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워서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을 보니까 사도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앉은뱅이 같은 모습, 전혀 능력이 없는 모습을 만났을 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의 사역은 지속적으로 방해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형편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은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그렇게 우호적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무심코 던진 박사들의 이 한 마디로 인하여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 성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헤롯왕은 자기의 왕위를 지키려고 예수와 비슷한 때에 베들레헴과 주변 지역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반면에 성경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아가 났다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감동 없이 무관심한 태도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험악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시고 자라셨습니다. 그가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계속하여 그를 따라 다니며 방해를 하고 죽이려고 모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성령의 능력으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생겨난 초대교회의 상황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소경을 성령의 능력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일어난 표적을 인하여 성전 주변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기회를 놓칠세라 모인 무리들 앞에서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바로 그 메시아요 예수의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 말하며 회개하고 돌이켜서 예수를 믿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의 부활 전함을 싫어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공회에 끌고 와 심문을 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는 질문에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라 대답하면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라고 선포합니다. 

비록 공회원들은 사도들의 사역을 중단시킬 목적으로 그들을 가두고 위협하였지만 사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선포하는 담대한 말씀을 듣고 또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었던 자가 버젓이 일어나 걸어 다니는 표적을 보면서 사도들을 처치할 궁리를 했지만 마땅한 죄목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위협을 하며 놓아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떠합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사역하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악한 세대, 복음에 냉담한 세대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적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랍권 여러 나라에서는 기독교인들을 공격하고 교회당에 불을 지릅니다. 지난 주 나이지리아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폭탄을 터뜨려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현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 하는데 절대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이 예수 외에도 여럿 있다고 주장합니다. 동성연애자들의 결혼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곳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흐려지는 시대, 비정상적이 더 정상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노출되어 살고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약 4:4,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요일 2:15,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바울이나 야고보나 요한이 하신 말씀들은 오늘날에도 도전이 됩니다. 여전히 복음에 대하여 수용적이지 못한 이 세대에서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본질에 충실하고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고자 금년 교회 표어를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교회"로 하였습니다. 교회하면 뾰족탑이 있는 건물을 떠올리지만 교회란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그 뜻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지만, 엄격히 말해서 건물은 교회당이고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골1:18에 의하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하심이요"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모습을 이 땅에 나타내시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거룩함과 사랑, 주님이 하시던 일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은 허물이 많고, 부족하기에 지나치게 의지하면 실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 교회는 성령의 전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120여명의 제자들이 성령의 오심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흘 만에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합니다. 그들이 방언을 하고, 복음을 능력 있게 전파합니다. 이때에 비로소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제자들은 유대의 관원들이 두려워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니까 능력을 받아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약교회의 출발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신약교회는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을 낸다고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교회 프로그램이 좋아서 부흥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이 더욱 충만히 임하시길 기도하고 바랄 때에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먼저 부흥케 하십니다. 

박해를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하여 주님이 기뻐 쓰시는 교회가 되었습니까? 

1)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교회의 별명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기도 소리가 그치지 않고 기도로 가득 차게 만들어야만 교회다워집니다.  교회가 기도를 시작하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더 이상 전도하지 말도록 위협합니다. 박해가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세상적으로 볼 때 약자였던 교회가 택한 것은 열심당처럼 칼을 품고 다니며 대항하거나 사두개인들처럼 로마 정부와 적당히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이시여 하며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살펴 주시옵소서.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주한 일정 가운데서도 아침 일찍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가 주시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에도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실 능력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때로 약한 것 같고 어리석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때로 기도해도 응답이 빨리빨리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도 문제가 생기면 나름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안 되면 마지막으로 기도나 해보자고 합니다. 기도는 최후의 방법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도움을 얻는 수단이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초대교인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2:1,2절을 인용하며 다윗의 입을 빌어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세상의 군왕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메시아를 대적한다는 예언이 이제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 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분봉왕인 헤롯, 로마 총독인 빌라도, 이방인들인 로마 군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통속이 되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 즉 메시아가 되시는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였습니다. 대적자들이 비록 사단의 도구가 되어 행동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데 이용되었음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초대교회 주변의 상황은 복음 전파에 점점 불리해집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두려워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들은 어떠한 기도를 드립니까? 자기들을 둘러싼 핍박이 사라지기를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간구합니다. 온갖 조소와 핍박 앞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담대함이란 단어에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람, 소극적인 사람, 현재의 상황을 이유로 핑계만 대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현재의 상황이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자꾸 뒤로 처지지 마세요. 다니엘과 같이 뜻을 세우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인들과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게도 담대함을 주옵소서,’‘내게도 힘을 주시고 기쁨을 회복하게 하소서,’‘주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기도 응답의 결과로 성령 충만해지고 신앙생활에 힘이 있고 사업에 활기가 있고 가정에 웃음이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로 사랑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웃을 또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8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엡 5:25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그의 몸에 채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교회를 향한 사랑은 얼마나 되는지, 교회를 위한 섬김을 얼마나 되는지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나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수고, 희생, 인내는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식들을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퍼주어도 아깝지 않고,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을 해도 인내하고, 사랑이 있기에 기쁨으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이런 사랑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봉사가 쉽고, 섬겨도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의 허물을 내 것으로 끌어안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자녀들의 허물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습니다. 자녀가 잘못한 것을 동네방네 불고 다니는 부모는 없습니다. 내 잘못, 내 부족으로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교회를 대하는 자세도 같습니다. 교회에는 허물이 많습니다. 교회는 아직 미완성의 존재입니다.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직 죄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길은 서로의 희생과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좀 더 주님을 닮은 곳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엡 4:11, 12절을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목사를 세우는 목적이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아직 완전치 못한 성도들이 봉사에 참여함으로 점점 완전케 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리니" 무슨 뜻입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그 길을 향해서 서로가 협력하고 수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완성을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교회의 허물이 보이고, 교회의 부족함이 보일 때에, 그것은 비판이나 가십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내가 끌어안고 기도하고 수고해야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자연적 교회 성장 연구원에서 건강한 교회를 이루는 8가지 원리를 제안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랑의 관계"입니다. 교우들 간에 얼마나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가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가 주관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이런 모임 외에 교인들이 밖에서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식사나 다과를 위해 얼마나 서로를 초대하는가, 칭찬에 얼마나 너그러운가, 성도들의 개인문제를 목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교회 내에 얼마나 웃음이 있는가’등입니다. 이것은 모두 교회의 건강뿐 아니라 성장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 교회 성장에 관한 수많은 원리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거짓 없고 실제적인 사랑은 세상의 어떤 노력보다 강한 매력을 교회에 부여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3) 세상을 향한 사명을 기억합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를 구합니다. 병이 고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 성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복음의 증거를 통하여 안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합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간절하게 기도하니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모인 장소가 진동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무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무리들을 다 성령으로 채워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사도를 포함한 120명의 무리들은 이미 오순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새롭게 예수를 믿게 된 자들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성령의 충만함이 계속적으로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니 그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하는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애굽 왕 바로가 강퍅한 것같이 세상은 점점 더 복음에 대하여 마음이 굳어집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그럴듯한 논리와 궤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전도를 방해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요 공중 권세 잡은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마련할 뿐 아니라 그 집을 하나님의 백성들로 채워야할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은 흘렀어도 초대교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승리의 비결을 제시합니다.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환경을 초월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 성도들이 함께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가 주시는 힘에 의지할 때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영적인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여론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향해서 심한 비판, 욕설을 서슴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지탄을 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변명할까요? 아니면 같이 욕을 할까요? 그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주님의 방법은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벧전 2:23절입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주님의 방법은 같이 욕하는 게 아닙니다. 위협하는 게 아닙니다. 참는 것입니다. 공의로 심판하는 분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벧전 2:9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겠습니까? 

첫째, 주님처럼 낮아짐으로 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들, 즉 가난한자, 소외된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들과 동일시하시면서 섬기셨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예수님이 하신 그 사역을 이어가야합니다. 그 때에 주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주님의 낮아지심을 본받아서 더욱 낮아지고,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기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야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렇게 세상을 섬길 때에 세상은 우리를 통하여 주님을 보게 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높아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지극히 낮아지셨지만, 부활 승천하셔서, 왕으로 계십니다. 지극히 높아지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높아지심을 또한 전해야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만을 너무 강조해서, 교회는 무조건 가난해야하고, 세상보다 앞서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는 자들이 세상에 탁월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 문화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젊은이들이 주님 주신 능력으로 세상을 섬기며 변혁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교회의 성도들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변화와 업그레이드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잃었던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게 될 때 교회는 회복됩니다. 

에스겔서 47장을 보니까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을 다 살렸습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주었고 사막과 같은 곳을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교회가 회복되어 생명을 살리는 생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말씀을 뿌려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복이 성도 여러분들 그리고 자녀들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16년 동안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이 모든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여전히 우리와 하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앞으로도 귀한 것으로 베푸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한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영적인 능력과 더불어 말과 행실을 통한 복음 증거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많이 인도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상급을 하늘과 이 땅에서 크게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