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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 (히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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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 (히 13:16) 

학국교회는 세계 선교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가장 짧은 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한국 교회는 90년대를 기점으로 성장이 둔화되더니 최근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이미 교회 현장에서도 피부적으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염려하는 분들은 한국 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국교회의 위기는 단순히 성장이 멈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교회마다 성장이 둔화되고, 심지어는 교회 존립마저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지금의 한국교회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심각한 우려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한국교회가 대 사회적인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사회악의 중심에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서 있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이 다 옳은 것이 아니지만 이들의 주장에서 오늘날 교회가 이 사회에 어떻게 비추어 지고 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가 한국교회의 침체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한국교회들이 꿈꾸고 소망하는 교회는 “가고 싶은 교회, 건강한 교회,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우리 온 성도들이 기도하며 소망하는 교회는 지역에서 좋은 소문나는 교회,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 무엇보다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최근까지 한국교회는 성장지향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성장의 핵심은 교회에 대한 성도들의 충성심을 유발하고, 믿음에 대한 철저한 훈련을 중요시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교회유지를 위한 일이나 개인전도, 해외선교 등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보수적일수록 성장한다는 이론의 틀이 마련되었고, 실제로 지금까지는 이것이 교회성장의 중요한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성장론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그것은 성장한 교회만이 성공한 교회라는 물량주의, 업적주의의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 주었고, 신학적으로 지나치게 보수화된 입장을 견지하여 탈사회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한 한국 교회가 한국사회 안에서 대사회적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교회의 대사회적 공신력이 실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역할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 연동교회 이성희목사님은 미래 교회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제 교회는 스스로만 존재 할 수 없고 지역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제 교회성장이 전통적이 방법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새로운 성장과 부흥을 위해 교회의 보이지 않는 높은 담을 헐고, 지역과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감자탕교회로 잘 알려진 광염교회 조현삼 목사님의 칼럼집인 ‘파이프 행복론’이라는 책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파이프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해 가설한 파이프이다. 파이프 교회의 사명은 흘려보내는 일이다.” 이 말은 교회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전달자,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선택하신 근본적인 목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창 12:2-3절 말씀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이유,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복을 약속하고 계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며 살아갈 것이지만, 이들로 말미암아 세상에 하나님의 복이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이 존재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이유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은 우리가 ‘받은 복을 나누는 자’, ‘그 복의 전달자’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만 복을 간직하고 자신만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이웃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이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 일 뿐 아니라,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그 복을 전달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이웃과 이 지역에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방법은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 교회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라는 영구표어를 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라고 볼 때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일은 오늘 현대교회의 기본적인 사명이요, 교회의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영구표어를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로 정한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성숙한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배려하는 마음도, 베푸는 마음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압니다. 과자를 사다 주면 과자를 모두 주고도 하나를 얻어 먹기가 힘듭니다.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체면도 없고, 울고불고 떼를 쓰면서 기어이 그것을 가져야만 됩니다. 어린아이 때는 미숙한 것이 이해가 되지만, 나이가 들어 성장한 어른이 되어서도 어리아이처럼 미숙하면 그건 큰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5:12절 이하에서 성도들이 신앙연수가 오래 되어 이제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어린아이 같이 미성숙한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영적인 성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신앙연수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도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한다면 아직도 미숙한 신앙생활이거나 병든 신앙생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계속해서 달라고만 하는 신앙도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한 신앙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은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타인중심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의 뜻도 분별할 줄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며 섬김과 나눔을 이해하고 실천할 줄 압니다. 

우리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테레사와 함께 살고 있었던 한 분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안 생깁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테레사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여기에서 우리는 섬김의 지혜를 터득한, 섬김의 자부심을 터득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 참된 행복은 부와 명예를 통한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헌신과 섬김을 통한 행복일 것입니다. 신앙의 나이가 들수록 개인도, 교회도 더욱 질적으로 성숙하고 더 큰 열매, 더 수준 높은 열매를 맺기 위해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오늘에 안주하지 말고 섬김과 나눔을 통해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한마디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공생에 동안 오로지 섬김을 위해 사셨고, 최후에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나누어 주셨습니다. 

마 20:26-28절 말씀은 섬김에 대한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은 섬김을 받는 일에 익숙합니다. 섬김 받는 자가 행복한 줄로 착각을 합니다. 그것이 성공이요, 그것이 높은 자리에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신앙인들에게는 섬김과 나눔의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남을 이해하고 겸손히 섬기는 곳에 행복이 있고, 자신의 것을 나눌 때에 기쁨과 보람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3.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받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을 받기를 원하지만 복을 받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새벽기도를 열심히 참석하고, 헌금도 많이 합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에 충실하고 헌신과 봉사에도 열심을 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좀 다른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시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시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십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이렇게 복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 25:35-36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대답하기를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라고 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기근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섬긴 사르밧여인, 향유를 예수님께 아낌없이 부은 마리아, 백성을 구제하고 섬겼던 백부장 고넬료 등 섬김과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섬김과 나눔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섬김과 나눔을 실천 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섬김과 나눔의 실천은 교회의 사명이며 교회가 성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보편적으로 4가지의 사명이 있습니다. 예배와 교육과 친교, 봉사입니다. 균형 잡힌 교회는 이 4가지의 사명을 골고루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는 이 사명을 균형 있게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봉사의 사명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는 이러한 교회의 사명을 가장 모범적으로 감당한 교회였습니다. 특히 봉사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행 2: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고 했습니다. 

안디옥교회 역시도 봉사하는 일에 힘썼던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안 되는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최초로 했던 일은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교회를 꾸려가기도 힘겨운 교회가 어려운 다른 교회를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행 11:29-30절에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모교회와 고국의 동포들이 큰 흉년으로 어려울 때 안디옥교회는 최선을 다해 헌금하며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봉사에 힘쓴 결과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는 날마다 부흥하고 성장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섬김과 나눔을 실천함으로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교회의 사명을 더 잘 감ㅁ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이 땅에 구원 받은 성도로 보내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이 지역에 세우셨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이 지역과 주민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은 이 지역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올 한 해도 우리 교회는 이웃과 지역을 섬기고, 성도와 교회가 가진 것을 나누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섬김과 나눔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며, 교회성장과 부흥에 중요한 비결임을 기억하시고 올 한해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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