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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벽에 일어나 함께 기도해야 할때입니다 (시 5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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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함께 기도해야 할때입니다 (시 57:6-11)


I. 기도의 향기

사향노루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때 부터인가 코끝에 밀려드는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죠. ‘이 향기는 어디서부터 불어오는 것일까?’ 그 향기 주머니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온 방을 뒤졌습니다. 밖으로 나갔더니 마침 우아한 자태를 하고 사슴 한 마리가 서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저 뿔로부터 향기가 오는 것일게야. 그러나 사슴으로부터 향기 주머니를 찾지 못했습니다. 캥거루 한 마리가 껑충거리며 달려갑니다. 저 주머니 안에 향기가 들어있겠구나. 캥거루의 주머니 속에서도 향기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들을 지나고 산을 넘어 사막을 건너갔습니다. 어디에서도 향기 주머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지구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 섰습니다. 

‘그래 저 언덕 아래 어디엔가 향기 주머니가 있을거야’ 그런데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아뿔사 발이 미끄러져서 그만 구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네 다리를 쭉 뻗고 등을 땅에 대고 하늘을 향하여 벌렁 나자빠져있는데 저 하늘 끝 어디엔가 진향 향기가 솔솔 불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늘 나르는 새 한 마리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새야 새야 하늘 끝 어디엔가 향기 주머니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디에 있는지 내게 좀 가르쳐 주겠니?” 하늘을 날으는 새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향기는 당신의 코 끝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행복이라는 향기가 어디에 있을까? 부지런히 찾아 봅니다. 믿음의 향기는 어디서 불어 오는 것일까 헤매어 봅니다. 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어디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들을 지나고 산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녀 봅니다. 어리석은 한 마리 사향노루처럼 말입니다.

그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 모든 행복의 향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행복도 믿음도 내 코끝에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도 내 코끝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코를 열고 그 향기를 맡아보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전능하신 주님의 전에 달려 나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과 함께 의논해 보십시오. 기도는 만사를 해결합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II. 새벽을 깨달은 사람

오늘 본문 시편 57편 서두에 보면 이런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여기 믹담 시란 “황금 시”라는 뜻입니다. 다윗의 중심사상을 다룬 시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알다스헷이란 “멸망시키지 마소서”란 뜻입니다. 
다윗의 애절한 간구 시에 붙여진 음악이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을 그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속에 숨어서 부른 노래” 라구요.

다윗은 사울의 무서운 창끝을 피하여 아둘람굴과 엔게디 굴속에 숨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사자와 맹수들이 드나들곤 하였습니다. 사울에게 붙잡히는 날도 맹수에게 물리는 날도 인생은 끝장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속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제발 멸망시키지 마십시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불안한 나날을 빨리 끝나게 해 주십시오.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애절하게 몸부림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흔들리던 마음이 안정되고 한숨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눈물이 변하여 기쁨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7-8)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임재가 있는 예배, 불같은 성령의 역사, 뜨거운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 한국교회 새 부흥이 이곳에서 시작되게 하소서” 기도 할때 입니다. 

다윗은 공포와 불안이 엄습하던 어느날 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이대로 아파하고만 있을 수 없다. 고통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새벽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주님 나를 도와 주십시오.” 바로 그 순간 신비한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이미 붙들고 있느니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순간 아침 햇살이 찬란히 굴속으로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아!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의 역사는 새벽에 나타나는구나!’ 하나님의 신비는 언제나 아침에 나타난다는 신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새벽의 신비를 깨달은 신앙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믿음이 새벽에 받은 은혜임을 시편 여러 곳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①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5:3 말씀입니다.

② “...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편 46:5입니다.

③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시편 88:13 말씀입니다.

④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시 119:147-148 말씀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새벽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받은 그 엄청난 은혜들은 새벽에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을 여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차 있을 때에 빛이 있어라 말씀하시며, 이 땅 우주의 새벽을 열어 주신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 (둘째 셋째....)이라(1:5) 
반복적으로 지금은 저녁이지만 아침은 밝아오고야 만다. 
하나님은 새벽을 여시는 새벽의 하나님이시다.

III. 새벽 :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새벽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에 낮에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밤을 지으신 분이시며 그 밤에 우리를 쉬게 하시는 분이시기에 깊은 밤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신앙의 위인들은 언제나 새벽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큰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매일 새벽 빠짐없이 규칙으로 기도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때문에 새벽기도를 율법적으로 적용하여 새벽기도를 할 수 없는 어린신자들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 사회구조가 다양화되어지고 복잡해 졌습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물론 중진들과 믿음 좋은 성도들이 다같이 새벽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기적으로 새벽기도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시 하는 태도도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해진 새벽시간에 기도할 수만 있다고 하면 나는 남다른 은혜를 지금 체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지요. 

온교회가 깨어 기도할 때는 함께 동참할 수만 있으면 커다란 유익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해 본 경험이 없으신 분들이 계십니까? 
이번 100일 새벽부흥회를 통하여 새벽에 한번 용기를 내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결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베이커라는 주경학자는 주님께서 왜 새벽을 기도의 시간으로 잡으셨는가?  묻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새벽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갖는데 가장 좋은 시간이다.  육체는 휴식을 취한 후임으로 새로운 원기를 얻었고 마음은 활기가 넘쳐있으며 세상 욕심은 잠자 있고 모든 분위기는 고요하고 차분하다.  하루에 일과가 시작되기 전 가장 첫 시간 신선한 생각을 하나님께 바치며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기에 새벽이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의사들은 큰 수술을 새벽에 일어나 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임하는 심판의 불 속에 뛰어들어가 조카 롯을 구해달라고 천사의 허리춤을 붙들고 애원했던 때가 바로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창19:27)

출애굽기 14:24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그 뒤를 추격하던 애굽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킨 사건이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시간이 새벽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내린 시간이 새벽이었으며,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난 시간이 새벽이었습니다. (단6:19)

여호수아 6장에 보면 금성철벽 난공불락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시간이 새벽이었습니다. 

옳습니다. 
새벽은 애국자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가족의 구원을 위해 몸부림하는 시간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가족, 내 자식의 문제를 가슴에 부둥켜 안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홍해와 같은 난관이 갈라지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영혼의 만나를 먹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다니엘처럼 저주의 굴에서 벗어나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문제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시간입니다.

그런가 하면 원수가 틈타고 마귀가 역사하는 시간도 새벽입니다.  
욥기24:14을 보면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라고 했습니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는 아들을 아버지가 깨웁니다. 
“얘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단다.” 
“아버지, 그 보세요. 저는 일찍 일어나면 큰일나요. 
 나는 새가 아니라 벌레거든요.”

여러분, 이런 벌레 여기엔 안계시지요. 

북한 공산당이 남침한 시간도 주일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음모를 꾸민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벽은 영적전쟁터입니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가 갈라지는 시간이니다. 기적도 새벽에 일어났고 시험도 음모도 새벽에 벌어졌습니다. 신앙인은 새벽에 기적을 맛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세상에 취한 눈으로 새벽에 음모를 꾸밉니다.

하나님의 새벽의 역사는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것들보다 더 엄청난 사건을 새벽에 이루셨습니다. 천지창조가 새벽에 이루어졌고 출애굽의 역사가 새벽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신 사건이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깨어있던 목자들이 탄생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 무덤 문을 박차고 우리 주님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새벽 일찍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신앙의 신비를 맛보기를 원하십니까? 얽히고 설킨 실타래같은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신비를 깨달아 보기를 원하십니까? 닫혀졌던 인생의 문들이 열려지기를 원하십니까? 기적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새벽을 깨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새벽을 드리겠다! 내가 새벽을 깨우겠다! 놀라운 각오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 발이 세상을 향하여 옮겨지기 전에 나는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옮겨가리라. 내 입이 세상을 향해 열려지기 전에 사랑의 하나님을 부르며 내가 기도하리라. 내 귀가 세상의 잡음을 듣기 전에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리라. 내 눈이 헛된 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영광스러운 주님을 바라보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리라.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 먼저!  기도 먼저!  말씀 먼저!  
나는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고 살겠다. 할렐루야!

IV. 새벽의 사람이 역사를 일으킨다.

새벽에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나라의 주인공이요 애국자입니다.  새벽에 주님 전에 달려나와 누구보다도 이른 시간에 교회의 아픔과 상처, 교회의 축복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이 이 교회의 주인입니다. 이 교회의 축복과 부흥이 여러분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성도가 교회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군인들은 그들의 수고가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모임과 회의와 연구가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기업가들은 그들의 땀과 수고가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 10사람의 간구가 이 나라를 붙들고 있다구요. 내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 하든지 간에 기도의 사람이 이 나라를 지키는 주인공들입니다. 새벽이 잠든 도시는 위험합니다. 새벽이 잠든 교회는 성령이 역사 할 수 없습니다. 새벽이 잠든 나라는 이미 영적인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술을 마시고 춤 추었습니다. 새벽이 잠든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주님을 만나는 사람, 새벽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은 삶 전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 알렌이란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새들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들보다 늦게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요, 영혼이 맑은 사람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새벽 기도가 타락한 영국교회를 새롭게 했습니다. 
루터의 새벽 기도가 타락한 천주교회를 개혁하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아이젠 하워와 죠지 워싱톤의 기도가 미국을 건설했습니다.

아프리카 깊은 산골 한 마을에 작은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 성도들은 마을 뒷산 조용한 숲속에 오두막을 지어 놓고 거기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이 오두막을 드나드는 발걸음들로 인해 숲속엔 오솔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열대지방에서는 식물이 빨리 자라기 때문에 이 길 사용을 조금만 뜸하게 하면 금방 잡초가 무성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 마을 성도들은 이 거룩한 발자취가 선명하게 나 있느냐 아니면 잡초가 우거져 있느냐에 따라 신앙생활의 건강을 측량한답니다.

여러분의 기도 길은 선명하게 나 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잘 닦여 있습니까? 아니면 잡초만 우거져 있습니까? 건강이 좋지 않을 땐 빨리 고침을 받아야지 오래가면 갈수록 합병증이 발병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쌓이는 잡초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천국 가는 길은 힘을 써야 하지만 지옥의 잡초 길은 가만히만 있으면 됩니다. 
지옥은 누가 갑니까? 가만히 있는 사람이 갑니다. 죄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죄를 지은 사람도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라지는 농부가 심지 않아도 절로 돋아난다고 했습니다. 가꾸지 않아도 자라납니다. 거름 주지 않아도 열매를 맺습니다. 노력도 투자도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는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불행은 투자하지 않아도 잘 찾아옵니다. 그러나 알곡은 씨를 뿌리고 거름주고 가꾸고 힘쓰고 애를 써야 열매를 맺습니다. 더구나 산적되어 있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잠든 영혼, 잠든 역사를 깨우기 위해서는 비상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V. 함께 새벽을 깨우라!

2012년 세계정치가 흔들거리며 오랜 독재자들이 사라지고 한반도 주변 대부분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바뀌어 집니다. 우리나라도 4월엔 총선이 12월엔 대선이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전에 없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가장 선방한 나라인데 그 선방이 양극화를 불러 왔다고들 합니다. 경제발전이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온 겁니다. 무엇보다 학교와 다음세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130년 역사상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목마름, 절대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때 지난 주간 신년강복대성회 박순애 강사가 우리교회가 10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민족과 도시 그리고 한국교회와 다음 세대를 살리라는 미션을 주셨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교회가 일어나겠습니다. 
우리교회 모든 제직들과 성도들이 깨어나겠습니다. 
우리가 새로워 지겠습니다. 거듭나겠습니다. 

한국교회가 기울어진 타이타닉처럼 기울어졌습니다. 교회들은 저마다 빛을 잃었고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온 국민들의 신음소리가 거리에서 들려 옵니다. 이때야 말로 온 민족이 기도해야 될 때 입니다. 하나님 이 민족 골목 골목에서 의인 열사람의 기도소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오, 하나님이여! 이 민족에게 기도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찍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새벽에 모여 폭포수가 진동하듯이 외쳤던 그 외침을 절규를 몸부림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잠자던 마을이 깨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절망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희망을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젊은이들이 깨어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 57:7-8) 

잠자던 찬송생활도 깨어나고, 잠자던 기도생활도 깨어나고, 잠자던 사업도 깨어날 지어다. 병든자도 일어나고 게으른 자들도 일어나 기도할 지어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영광스러운 이 놀라운 축복이 이 제단에 계속해서 넘쳐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영광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교회에, 이 한국교회에, 이 민족가운데 영광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혼자 결단하고 혼자 나오지 말고 가족이 함께 나오십시요.
목장 공동체가 함께 결단하고 함께 나오십시요. 먼저 이번주 목장안에서 서로의 기도 제목들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특별한 기회로 만들어 보는 겁니다.  서로 새벽에 깨워주고 함께 차를 타고 올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차가 없는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차량운행의 숫자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애국입니다. 이것이 공동체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나 혼자 예수 믿고 나 혼자 신앙생활하고 그래서 공동체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리더쉽 훈련가 로빈 S. 샤르마의 책중에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 줄까?」라는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네가 태어날 때 너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단다. 네가 죽을 때에는 사람들은 울어 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로 이 책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어느날, 문득 내 숨이 멈춰지고 운명을 맞이하는 그 순간 나를 위해서 누가 어떻게 울어 줄까요? 여러분은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십니까? 오늘밤 내 인생이 끝난다면 여러분이 천국까지 가지고 갈 유산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려 보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며 그들에게 영향을 남기며 살아오셨습니까? 당신의 기도로 이웃이 살아난 그 유산이 있습니까?

이번 새벽기도의 시간 - 목장 공동체가 함께 나아와 함께 앉으십시요. 함께 기도하십시요.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나의 기쁨이 너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나는 너를 붙들어 줄 수 있고 너는 나를 붙들어 주게 될 것입니다. 나는 너를 세워줄 수 있고 너는 나를 세워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우리교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사업의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방황하는 자식 때문에 우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깨어져 가는 가정을 가슴에 끌어안고 몸부림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력한 나 때문에 얼마나 안타까워 할 때가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때 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일은 기도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한국교회를 위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파하는 내 이웃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Ⅵ. 말씀을 맺으며

저 자신이 특새 시간을 빼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지 못한지 꽤나 되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기도하지요. 거의 새벽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저런 일로 함께 모여 기도하고 토의하고 세미나를 합니다. 그러나 새벽기도 시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100일 새벽기도회 미션을 받았을때 제일 당황한 사람이 저지요. 제일 불가능한 사람도 저 였습니다. 그러나 그 미션은 강사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와 우리교회에 주는 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말 기도해야 살겠다 싶었습니다. 정말 더 많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선약된 중요한 집회외에 이런 저런 시간들을 취소하면 100일 중 약 80일 정도는 제가 인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 20일은 우리 부교역자들이 인도를 할 것입니다. 

20년전 한소망교회를 개척하고 100일 특별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60일은 새벽에 40일은 한밤의 부흥회로 회집했습니다. 
그때의 은혜와 부흥 그리고 감격은 지금까지도 심령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100일 새벽부흥회가 바로 그 날의 감격, 
1907년 평양대부흥의 능력이 나타나리라 기대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장교를 지낸 S.잭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날 남부군 총사령관 R.리 장군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잭슨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날 밤 마차를 몰아 사령관앞에 대령했습니다. 깜짝 놀란 사령관이 “웬일인가 자네. 이 험한 길을, 시간이 있으면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그때 잭슨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예, 장군께서 저를 만나고 싶어 하셨다면 그건 저에게 지상 명령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어떤 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바로 R.리 장군의 후계자 S.잭슨 장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싶어하는 최고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우리에겐 지상명령입니다. 성도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내게 이보다 더 급한 어떤 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기 전까지는 기도보다 더 급한 어떤 일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면 엄청난 축복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내가 믿음을 깨우리로다! 
내가 찬양을 깨우리로다!
내가 감사를 깨우리로다! 
내가 축복을 깨우리로다! 

내가 가정을 깨우리로다!
내가 교회를 깨우리로다! 
내가 민족을 깨우리로다! 
내가 부흥을 깨우리로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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