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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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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복음의 황금어장을 일터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진료실에서 틈틈이 전도를 합니다. 제 전도자 수첩에는 20년 가까이 전도를 해온 분도 계십니다. 20년 가까이 끈질긴 전도에도 요지부동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지요.

현준 엄마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오실 때마다 전도를 했고 틈틈이 전화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타난 현준 엄마의 말씀 "과장님, 교회가 어디예요? 입원했을 때 옆 침대의 어느 권사님이 제게 또 전도를 했어요. 그래서 과장님도 제게 전도를 했다고 했죠. 그랬더니 과장님 교회에 다니라고 하시대요. 저 교회에 가고 싶어요" 이쯤 되면 베비닥의 마음은 짐작하시겠죠? 현준엄마가 나간 뒤 진료실에서 춤을 덩실 덩실 췄습니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도 기쁨에 못 이겨 이렇게 춤을 추시겠지요?

전도를 하다보면 정말 애먹이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쉽게 걸려드는 물고기도 있습니다. 오늘은 너무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언젠가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라는 제목으로 낮은 울타리에 실었던 내용이 다시 생각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눕니다. 읽으신 분들도 또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서요.

26년째 접어든 나의 의사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환자를 묻는다면 얼른 수미의 이름을 부른다. 자주 코피를 흘리며 점점 얼굴이 창백해지고 피멍이 잘 든다고 찾아왔다. 외삼촌이 직원이었고 이모가 독실한 기독신자이었기 때문에 자주 대화를 가진 적 있는 친분 있는 가정의 아이였다. 별것 아니라 말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혈액검사와 골수 검사를 해 본 결과 이름도 들먹이고 되 뇌이고 싶지 않은 백혈병이었다. 백혈병 중에서도 예후가 가장 나쁜 조건들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왜 하필이면... 이란 말만을 되풀이했을 뿐 말문을 잃었다. 모든 환자의 부모가 그럴 때 그렇듯 "선생님! 우리 수미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붙들고 절규하는 엄마의 울부짖음엔 몰래 뒤돌아서 눈물만을 훔쳐야만 했다.

신앙 깊은 이모는 주변의 믿음의 자매들에게 시간마다 당번을 정해 기도 순서를 짜서 기도로 무장하였고 나 역시 낮12시의 기도 당번으로 참여를 했다. 이모네 교회 목사님은 밤새도록 철야를 하신 다음날 또 종일 힘들게 하셔야 하는 대 심방 가시는 길임에도 오셔서 사랑의 헌혈까지 해 주셨다.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 나는 것은 그 교회의 교인이 아닌 교인의 조카에게까지 베푸신 뜨거운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해 가슴 가득히 느껴진 바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육신의 질환으로 죽더라도 영혼만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나가기를 권유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도했다. 수미는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낫기 힘든 병이지만 가장 나쁜 조건의 불치의 병인 백혈병을 들어 치유케 하시는 위대하신 기적을 보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자며 위로하였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이루어 주신다면 살 수 있다 누차 설명하며 권해 보았으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수미의 아버지는 손이 귀한 가문에서 불공을 들여 낳은 독자이기 때문에 도저히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달 동안의 투병 중 독한 항암제 주사로 머리는 다 빠지고 감염에 대한 저항력도 없어져 자주 앓고 피골이 상접해졌다. 그러나 3년에 걸친 항암제 투약요법을 하는 중 함께 같은 병을 앓던 아이들은 모두 싸늘하게 주검이 되어 한줌의 재로 사라져 버렸지만 수미는 한번의 재발도 없이 잘 견디어 나갔다. 계속되는 정성어린 기도와 염려에 수미는 다행히도 건강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감기만 걸려도 사색이 되어 찾아오는 불안한 수미의 엄마에게 귀찮도록 극성스럽게 전도하며 때로는 협박으로, 때로는 달래며 권해 보기도 했으나 그 마음은 점점 더 강퍅해 지기만 했다. 이제 수미가 깨끗이 나은지 18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5학년에 발병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꼭 18년째다. 18년동안이나 살아있다는 기적에 가까운 이 사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수 없었다. 10년이란 긴 시간을 틈틈이 기도하고 전화하며 영혼 구원에 정성을 기울였으나 병을 치유케 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감사의 마음조차 잃어 버렸고 들리는 이야기로는 오진했던 것 아닌가 의심까지 할 정도로 가족의 마음은 돌같이 굳어 있었다. 이젠 어쩌다 만나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까 두려워 슬슬 피하기조차 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전도할 의욕을 잃고 이젠 지쳐 기도하기까지도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어느 목사님께 "이젠 할만큼 기도했노라고 이제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영혼을 포기 하겠노라"고 안타까움에 울먹이며 이야기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목사님은 조용히 들으시더니 "과장님! 돌아오지 않는 친구의 영혼 구원을 위해 40년동안 기도했던 목사님이 계셨어요. 40년이란 세월을 기도해도 차가웠던 그 친구는 비로소 목사님의 장례식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셨어요. 하나님은 과장님의 기도를 결코 잊지 않으실 거예요.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랍니다. 평생을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과장님을 의사 되게 하신 뜻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은 과장님께 그런 차가운 환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전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순간 가슴에 전율을 느꼈다. 속 좁은 나의 옹졸함을 깊이 뉘우쳤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은 바로 복음의 황금어장에서 전도하라는 것이었다. 무던히도 하고 싶었던 음악공부의 길을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하면서까지 막으시고 길고 험한 의사의 길을 걷게 하셔서 진료실을 찾는 많은 환자들의 육체의 질환과 영혼의 아픔을 감당케 하시려고 미리 계획하신 주님의 섭리가 바로 여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을 만나 결혼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기독신자의 분포가 낮은 이 부산에 내려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나의 일터에서 전도하라는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지.
오늘도 그 사명 감당코자 진료실을 찾는 많은 환자들에게 전도하며 전도자 명단을 뒤적이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틈틈이 한집 한집 전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주여!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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