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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꾼 세우기(1) : 모세와 이드로 (출 18: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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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 세우기(1) : 모세와 이드로 (출 18:13-27)  

교회가 성장 하면서 사역이 늘어 갑니다. 그러면 그 사역을 감당할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의 숫자가 늘어간다는 것은 하나님나라 선포와 확장에 있어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경적 바른 기준과 검증이 무시된 채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교회의 직분자들이나 일꾼들이 양산된다면 자칫하면 하나님 나라에 크고 작은 거침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 집사 등 직분자로 피택되기 위하여 교인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세속단체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행동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면 영성이나 봉사 등 신앙적 경험이 아니라 학력과 재력 등 세속적인 이력이나 개인적인 친분관계 등이 직분자들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까? 교회가 직분에 관한 성경적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유에서 믿음의 공동체로 새 출발하는 출애굽 백성들에게 여러 직분을 주셨습니까? 모세가 인도하고 있는 광야 공동체의 최초의 직분자 임명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을 중심으로  직분에 관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의 시대적인 배경은 시내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입니다. 모세의 리더십 가운데 애굽을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전 애굽에서 살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의 의식주 문제와 관련된 삶의 모습은 오히려 출애굽 전보다 더 열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금만 힘이 들면 과거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하며 불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출애굽 1세대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었던 모세는 리더십의 변화를 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변화는 모세의 장인인 미디안 사람 이드로가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모세의 고충(13-18절)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세에게 왔습니다. 오랜 만에 만나는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구속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 고난 속에 구원을 베푸셨던 그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들은 이드로는 "이제 내가 알았도다"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가 모든 신보다 크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과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습니다. 그 식탁의 자리는 웃음소리와 감격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사위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나갑니다. 모세는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출애굽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이 있다 보니 그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생겼겠습니까? 그들은 단순히 궁금한 것을 물어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소송 문제 해결을 위하여 왔습니다. 각 case의 자초지종을 들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재판을 해야 하는데 모세가 혼자서 하루 종일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나마 일찍 온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 받고 돌아갔겠지만 늦게 온 사람들은 종일 차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백성은 백성들대로, 모세는 모세대로 지쳤습니다. 그렇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오랫동안 줄서서 기다리던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영주권 수속 중이었는데 변호사가 저더러 이민국에 직접 가서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오전 7시에 문을 여니까 일찍 가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새벽 2시쯤 일어나 출발하면 LA downtown에 있는 이민국 빌딩에 4시쯤 도착합니다. 그때부터 3시간 쯤 기다리다가 문을 열면 번호표를 받습니다. 그 번호표를 가지고 기다리면 어느 부서에 배당할 것인지 알려줍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배당된 부서에 가서 다시 기다립니다. 두세 시간을 열심히 기다리다가 어떤 때는 제 순서 바로 앞에서 오늘 업무는 끝났다고 하며 창구가 닫히면 그대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다시 올라갑니다. 어떤 때는 아들이 수업까지 빼먹으면서 함께 갔는데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이러기를 몇 차례 하고 나니 은근히 화도 나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영주권을 받아야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모세 혼자 일을 처리하는 것을 쭈욱 지켜보던 이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가서 모세가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일을 처리한다고 떠벌였습니까? 직접 모세에게 말합니다. “자네는 일을 어찌하여 이렇게 처리하는가?”그의 질문은 하나님의 일을 혼자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별 생각 없이 대답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옵니다.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는데 내가 그 양쪽을 재판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합니다. 모세는 지금 상황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대답을 듣고 이드로는 그에게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라고 합니다. 문자적 의미는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동일합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라고 평가하신 이후에 아담의 돕는 배필로 여자를 주심으로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이과 같이 '좋지 않다'는 이드로의 평가는 이후에 모세의 돕는 자가 주어질 것이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법 제도가 완성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많은 리더들이 모세처럼 자신이 인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몇 명이든 간에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설령 온 이스라엘에서 오직 모세만이 여호와의 율법을 잘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의 행동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사소한 문제까지 모세에게서 해결 받으려고 하니 모두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오래 믿을수록 편견에 갇히기 쉽고 타성에 젖기 쉽습니다. 그동안 해 오던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때로 귀찮아서 이 모습 이대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이드로는 모세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아보려고 며칠 동안 밤잠 안자고 조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루 동안 상식 수준의 관찰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새로운 사람들이 자꾸 들어와야 합니다. 건강한 입력이 있어야 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그 입력을 수용하여 나아갈 때 교회는 건강해지고 활성화 됩니다. 우리는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은 모두 협력하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지도자가 무리의 모든 사안을 해결하는 방식의 리더십을 하나님도 그 리더십 아래에 있는 회중도 원치 않습니다. 

모세의 리더십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첫째, 과도한 업무가 모세를 지치게 했습니다. 목회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사역자가 한 순간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장기적인 안목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즉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내일을 설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비록 오늘 해야 할 일이 태산 같다 할지라도 내일을 위해서는 어느 선에서는 절제하고 체력을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자신뿐만 아니라 온 공동체에게 큰 손해를 초래합니다. 

둘째, 모세가 모든 사건을 중재하다보니 백성들은 시기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이 200만명 사이에서 빚어지는 모든 소송을 듣고 재판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긴급한 사안들, 혹은 큰 사건들이 먼저 재판을 받고 사소한 것들은 뒷전으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사소하고 작은 사건일지 몰라도 이러한 소송에 연루된 사람들에게는 하나같이 중요 사안들입니다. 재판을 제 때 받지 못한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당연히 불만도 가중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은사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주변에는 능력이 있고 영성도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들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섬기라고 복으로 내려주신 그들의 은사를 썩히고 있었습니다. 리더가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취하게 되면, 그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사들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드로의 제안(19-23절)

이드로가 모세에게 가르친 새로운 제도에서 모세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고, 백성들의 소송을 하나님께 갖고 와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드로는 공동체를 위하여 모세가 해야 할 일이면서 모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세 가지로 말해줍니다. 

첫째,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율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규례와 율법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들을 뜻합니다. 모세는 초대교회에서 사역했던 사도들이 남을 돕고 교회를 운영하는 일은 집사들에게 전담하게 하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 전념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둘째 모세는 백성들이 가야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모세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배운 백성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자신들의 삶 속에 적용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셋째, 모세는 주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종교적, 사회적 의무가 무엇인가를 손수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이어서 이드로는 모세를 도울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세워 일을 분담하고 효과적으로 사역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나 지도자로 세울 수 없기에 특별한 조건이 제시됩니다. 그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영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자입니다. 그런데 '능력 있는'이란 단어가 여성에게 사용될 때는 잠언 31장에서“현숙한 여인”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믿음 공동체의 리더로 세워질 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헌신된 자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입니다. 특히 이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세상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에 따라 주의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둘째,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실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문구는 소신껏 자신의 일을 감당할 사람을 뜻합니다. 리더가 되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다스리는 자들에게는 덕이 된다는 확신과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재판관으로서 진실하게 모든 증거들을 잘 참조해서 소신껏 판단하고 판결해야 합니다. 한쪽 말만 듣거나 한쪽의 증거만을 참조하여 판결을 하다 보면 정의가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 융통성 있는 마음, 선입견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자여야 합니다. 또한 재판관은 무엇보다도 자신과 하나님 앞에 떳떳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판결은 당연히 부적절한 선고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일에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소신껏 일할 사람들이 직분자들로 세워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특정한 그룹의 이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가르침과 원리대로 치리하여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셋째, 뇌물 등 부정직한 소득을 미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뇌물을 거부할 줄 아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뇌물을 노골적으로 미워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는 것이 뇌물이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행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자입니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일꾼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에 있어 깨끗한 신앙과 양심으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여기서 리더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자격을 보면 그 어디에도 학벌이나 재산 등에 대한 요구가 없습니다. 믿음 공동체의 직분자로 세워질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헌신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공동체에 헌신된 자라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드로는 모세에게 많은 사람들이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도록 리더십을 재조정하고 분배하라고 제안합니다. 굳이 모세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모세는 꼭 해야 할 일만 하게 함으로 그에게 주어진 소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뽑힌 자들로 하여금 일반적인 재판을 진행하게 하고 특별히 어려운 것들만 모세에게 상소하도록 권고합니다. 그 결과 모세는 그가 받은 은사와 소명을 가장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백성들의 정당한 필요들을 채워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보존할 수 있고 재판에 빼앗기는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할 수도 있었고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은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도 신속한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드로의 제안은 모든 사람들이 승리하는 win-win 전략입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는 우리는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재능과 소명에 신실함을 더할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재능과 소명을 발견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모세의 실행(24-26절)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신 34:10)였지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좋게 생각하고 그대로 받아들여 협력자들을 세웁니다. 모세의 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정의 사회가 구현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사법제도가 생기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산에서 주어질 십계명과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역사적인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겸손히 귀 기울여 듣는 자요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도 세움을 받고 영적인 훈련만 받을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할 일에 대하여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훈련도 받아야 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 제도를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방인의 입을 통하여 나오게 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일상적으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 볼 수 없는 것들을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드로가 모세를 떠남(27절)

새로운 제도가 세워진 후에 모세는 이드로를 보냈고 이드로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모세가 처자를 고향으로 보낸 사건은 출애굽기 4:20에 나옵니다. 모세가 자신의 처자를 보낸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는 구원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준비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세가 이드로를 그의 고향으로 보내는 것은, 모세가 처자를 고향으로 보낸 후에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한 것처럼,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가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이 사건 이후에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율법을 수여받는 위대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도보다 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모세는 일이 너무 많아 자기 아내와 아이들은 장인에게 맡겼습니다. 바쁘게 움직였지만 모세의 사역은 그렇게 효율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모세는 혼자서 지시하는 감독 스타일의 leadership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젊어서부터 바로에게서 보고 배운 것입니다. 상황이 변하면 리더십 스타일도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제도를 도입하여 지도력을 위임하였더니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좀 더 가족들과 더불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무리를 떠나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도력을 위임하고 산에 오른 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신이라 하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시스템을 바꾸면 그 시스템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leadership system을 바꾸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기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바뀌는데 얼마나 많은 시일이 소요되었습니까? 광야 제일세대가 죽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광야 공동체가 처음으로 직분자를 세우게 된 동기는 사역을 구분하고 짐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일꾼들은 일을 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은 협력하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니다. 역할 분담을 하며,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고 사용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목회자 혼자 많은 교인들의 삶을 제대로 돌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장, 제직부서, 선교회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본문이 저희들에게 교훈하는 바가 많고 각자가 느끼는 것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교우들은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저의 동역자들입니다. 누구나 사역을 감당해야 하지만 열심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열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지기 쉽습니다. 목사도 어떻게 하면 빨리 사람을 세워서 어떤 일을 맡기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주님의 인격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는 각오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창립 17주년을 맞이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세울 것인가 좀 더 고민하며 섬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우들을 방관자 내지는 비판자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뒹굴면서 2012년이 지나갈 때 하나님 앞에 귀한 열매들을 보여주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지난해까지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할 뿐 아니라 믿음으로 새해를 달려가기를 결단할 때입니다.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주님께로 옮겨지기 원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주님과의 산책을 통하여 나를 깨닫기 원합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 내가 이제부터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드로와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삶의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여정에서 ‘긴급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긴급한 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입니다. 빨리 해결해야 될 것들입니다. 

반면에‘중요한 것’은 우리를 의미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중요한 것을 하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급하게 여겨지지 않기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발등에 떨어진 불만 처리하며 인생을 보내다가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무런 열매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면목 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급한 것’을 해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반드시 해야 할 일 즉 ‘중요한 것’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time management가 필요합니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가 쓰든 안 쓰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나갑니다. 나중에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주님 앞에 서서 회계하게 됩니다. 세월을 아끼며 때를 잘 활용하는 지혜로운 성도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이 세우신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 원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인치심 가운데 먼저 하나님의 사람,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고, 가정에 충실하고, 주어진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고 살아계신 주님을 보여주는 능력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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