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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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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볼로가 개척한 교회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하여간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와서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아니고 일반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제자들의 수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기자인 누가는 그들의 신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인지 유대인인지, 부자인지 가난한 사람인지 전혀 밝히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의 관심사는 오직 그들이 그 때까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한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볼로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언변이 좋았고 성경에도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지만 그도 또한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누가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요한의 세례는 예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세례는 받았지만 정작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누가는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생각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바로 이 사건을 가리켜서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까? 혹시 성령이 이미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령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시도록 맡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두 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성령이 우리의 삶 전부를 주장하실 수 있도록 온전히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아볼로는 예수에 관한 것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열심히 가르쳤지만 그가 만약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지 못했으면 과연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좀 심하게 말해서 그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의도적으로 예수의 세례, 즉 성령 세례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교회의 지도자인 그가 성령에 대해서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릴지라도 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는 나름대로 자신이 가장 잘 가르치는 줄로 알고 있었지만 결코 목표에는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정확한 정보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매사에 안이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베레아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베레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에베소 교회 제자들은 별로 노력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로 족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성령 없이도 만족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바울과의 만남이 없었으면 그들은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간단히 말해서 성령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들에게는 요한의 세례가 전부였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성령이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령이 없는 믿음이 바른 믿음이라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복음의 핵심이 빠져 있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스스로 정한 틀 안에 갇혀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그 틀과 잣대를 기준으로 잘 믿고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옛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성경은 잘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이란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그 어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성령을 알았습니다. 아니 그는 다만 성령을 알았을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한 일꾼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늘 성령이 지시하심에 순종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하는 일도 자신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선교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제자들은 만약 바울이 그들을 방문하지 않았으면 결과적으로 제한적이고 예비적인 신앙 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는 보지 않고 광고나 예고편만 보고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아직도 예수 이름의 세례, 즉 성령 세례가 필요한 곳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말로는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하지만 성령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때문에 누가도 요한의 세례로 대신할 수 없는 예수 이름의 세례, 즉 성령 세례를 특히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을 받았는가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 하면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우리는 보혜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 말하고 있지만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은 이미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 사실을 우리가 깨우쳐 주지 않고 있거나 아니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전에는 교회에서 수건 돌리기 게임을 많이 했습니다. 안쪽을 보고 빙 둘러 앉은 사람들 뒤로 술래가 돌면서 누군가의 뒤에 슬그머니 수건을 놓습니다. 그리고 빨리 돌아와서 술래가 그 사람을 치면 걸리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뒤에 수건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는 것도 그와 비슷합니다. 신실하신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다만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할 뿐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어떤 것입니까?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소극적이고 정체된 믿음은 곤란합니다. 우리가 먼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제는 교회가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참 소망을 안겨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충만함을 받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 그리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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