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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민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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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민 11:1-6)
  
김진홍 목사님이 전도를 하다가 한 남자를 만났는데 앉자 마자 자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세 시간을 이야기하는데 6.25전쟁이 나오고 다섯 시간이 지나자 8.15광복절이 나오는데 언제 끝이 날까 싶더랍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듣자니 배도 고프고 지겹기도 해서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그야말로 순교하는 심정으로 들었는데 남자는 열 시간이 지나서야 이야기를 마치며 대뜸 이렇게 말했답니다. "목사님 다음 주일에 나 교회 나갈라요. 이제까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준사람은 목사님 뿐이오."  예수믿으라고 한 마디도 안했어도 듣기만 잘해도 전도가 됩니다.
  
인간 관계를 잘하는 비결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경청(敬聽)이라는 한자는 기울일 '경(敬)' 자에 들을 '청(聽)'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청(聽)'자를 보면 귀와 눈과 마음이 들어 있다. 즉 듣는 것은 귀를 기울이며 눈을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니까? 귀를 기울이며 눈을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들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좋은 복으로 만족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계심을 아십니까?  
오늘 말씀 1절에 보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진노하시고 그들의 진영에 불을 붙여 큰 재앙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만 들으시리라 기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다 들으십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으시고 그 말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시기도 하시고 복주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삽니다.  그래서 악한 말도 함부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실 만한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원망하는 말, 악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원망스러운 일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하며 악한 말을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악한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합시다.  
  
자, 그러면 도대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게 될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앞에서 악한 말로 원망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원망의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노예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자자손손 태어나자 마자 노예가 되어 자유도 없고 인권도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소망 없는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광야에 들어와서는 하나님께서 첫날부터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을 갈라 물을 주셨습니다. 걷는 걸음마다 지켜주셔서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입은 옷이 헤어지지 않도록 돌봐 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살벌한 광야에서 먹을 것을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를 해도 모자랄 판국입니다.  물을 마시면서도 "주여,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로 이렇게 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송해도 모자랄 판국입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의 말을 쏟아 놓습니다. 왜 원망했습니까? 고기를 못먹는다고!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에서 볼 때 만나에 불만을 품고 고기 타령 하는 것은 탐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탐욕에 가득차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면 탐욕이 생깁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바로 이 원망과 불평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는 감사를 마비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원망 하는 사람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불평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두 발 가진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을 불신하면 원망의 말이 나옵니다.(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끌어들이실 때에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셨습니다. 거기에 양식이 없다는 것, 물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인도하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일 준비도 하시고, 목 마르면 마시게 할 준비도 하시고, 행여 만나가 질리면 고기도 주실 준비까지 다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도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하고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정말 고기가 먹고 싶으면 '하나님, 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고기를 먹게 해 주십시오.'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시편 78편 22절을 보면,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영적으로 잘 해석해 놓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은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주셨다.'는 믿습니다. 그리고 자기 손에 없는 것은  언젠가 필요하면 '하나님이 내게 없는 것을 주실 것이다.'는 믿고 기다립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곤경에서도 원망의 악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내뜻대로 잘 안되니까 뭔가 다른 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내뜻대로 잘 안되니까 함부로 원망의 악한 말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중에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정작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야 할 순간에 불신앙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돌려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원망과 불평을 함으로 불신앙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진짜 하나님만 믿습니까?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권자요, 내 삶의 유일한 통치자임을 믿는다면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힘들 때도, 가난할 때도,  위기를 만날 때도 함부로 불평하며 원망하면 안됩니다.  시험이 오고 고통스러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나아와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맘이 상한다고 함부로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악한 말,  원망의 말, 불평의 말을 내뱉어서는 안됩니다. 무조건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의 말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악한 자의 충동에 속으면 원망의 말이 나옵니다.(4) 
  
하나님의 백성들이 울며'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한 것은 악한 자들의 충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1장 4절을 보면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사람들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다른 민족들이 함께 짐을 싸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인종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다른 인종들이 광야에서 먼저 탐욕을 품고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며 소리내어 울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이 불평이 전염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다른 인종들의 이런 태도에 "이제까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을 원망하는가?" 하고 호통을 쳐서 입을 다물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향을 받아 같이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시험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밤낮없이 그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따라서 잘못하면 내 주변에 있는 세상 사람들의 탐욕에 나도 덩달아 탐욕의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불평에 덩달아 불평의 말을 쏟아 놓기 쉽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의 원망에 끌려 따라서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극을 받아야 되고, 거룩한 백성들을 통해서 좋은 영향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시민은 이 세상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다워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아름다와야 합니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향을 주는 자입니까?  받는 자입니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사람입니까?  나쁜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사람입니까?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입니까?  나쁜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입니까?  
   
어떤 분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목사님들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를 듣다보니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답니다. 그러다보니 영적으로도 성장하지 않고 유익이 별로 없었습니다. 교회에는 나와도 신앙생활이 별로 즐겁지도 않고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가만히 보니까 아니더랍니다. 들은 만큼, 선입견을 가진만큼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 있음을 발견하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답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목회에 협력자가 되려고 노력하기 시작하자 은혜를 받게 되고 자신에게 축복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말을 들어도 속지마시기 바랍니다. 끌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따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살면 원망의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원망의 말이 나옵니다.  악한 사람들의 말에 영향 받으면 원망이 나옵니다.  원망의 악한 말을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불이 나와 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살라 버립니다. (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거룩한 백성답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심판의 불이 꺼지게 하기 위하여 중보기도를 힘써야 합니다.  2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원망의 말만 들으시지 않고 기도하는 모세의 말도 귀기울여 들으십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노의 불을 끄십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메추라기를 몰아다가 진영위에 떨어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육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달동안 질리도록 먹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징계를 멈추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해 지는 넓은 들녘 초라한 부부가 마주보면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의 피곤한 발끝에 조그마한 아기의 관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림의 내용인즉 불쌍한 젊은 부부가 아기 관을 묻기 전 기도하는 비통한 모습입니다. 밀레가 그 그림을 선배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선배가 충고기를 '애틋한 사연, 아름다운 전원과 황혼,그리고 기도…. 다 좋은데 가운데 관이 맘에 걸린다. 관 대신 바구니를 그려 넣으면 어떤가?' 그래서 아기 관을 바구니로 고쳐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미가 만 배로 살아났습니다. 전체 그림은 그대로인데 하단에 바구니 하나 고쳐 그리니 비통한 장례식이 황혼의 감사로 승화되면서 불멸의 명화가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만 바꿔도 아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감사와 기도의 언어로 바꾸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심판을 거두시고 온갖 복으로 상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아름다운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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