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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 :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 (창 1:1-5, 막 1:4-11, 행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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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 (창 1:1-5, 막 1:4-11, 행 19:1-7)

<세례, 너무도 중요한 예전>

교회력으로 말해서 오늘은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주현절(主顯節)은 말 그대로 주님이 현현하시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주현절을 뜻하는 영어 Epiphany는 하나님의 ‘나타냄’ 혹은 ‘현현’(顯現)을 의미하는 희랍어 έπιΦανεια에서 온 말입니다. 본래 태양이 떠오르는 것에서 유래한 말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신 것을 기리기 위한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기가 끝난 다음에 찾아오는 주현절은 주로 예수님의 공생애(公生涯)에 초점을 맞춥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수세(受洗)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산상변모까지를 다룹니다. 이와 같이 교회력으로 볼 때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인 오늘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수세주일이기도 합니다. 

성만찬과 더불어 세례는 개신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성례전 중에 하나입니다. 둘 다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너무나 중요한 예전이지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의심할 때마다 자신이 세례받았다는 사실을 되뇌면서 그 의심을 이겨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을 하다가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루터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마르틴, 기억해! 너는 세례받은 사람이잖아!” 루터가 “나는 크리스천이잖아!” 혹은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해서 의심을 극복하지 않고 자신이 세례받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면서 그렇게 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나 중세 교회에서는 세례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죄를 지어서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예수를 믿은 다음에도 오랫동안 세례를 받지 않다가 훨씬 나중에 가서야 세례를 받는 일이 대세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로마의 황제는 누가 보더라도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세례만큼은 임종 직전에 가서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례가 중요하다면 우리는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우리가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재확인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우리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해마다 축하하는 파티를 엽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세례 기념일을 지키는 교인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기야 저 역시 제가 세례받은 날자나 세례를 주신 목사님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세례 기념일을 따로 지키지는 않습니다. 목사가 이러니 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세례 요한의 물세례만 알았던 사람들>

오늘 봉독한 사도행전 19: 1-7절에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방문했을 때 일어난 일이지요. 먼저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몇몇 신자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성령이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깜짝 놀랍니다(2절). 이와 같이 적어도 본문에 나타난 바울 신학을 근거로 해서 말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항상 성령의 역사와 결부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자체가 성령의 역사일 뿐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그 순간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묻자,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합니다(3절). 이들은 에베소 교회를 담임했던 아볼로 목사님으로부터 요한의 물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물세례는 무엇일까요? 

4절에 보면 바울은 요한의 세례를 기가 막히게 설명합니다. 세례 요한이 주는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물세례는 아직 기독교 세례가 아니지요. 구약의 맨 마지막 시대, 그리고 예수님 오시기 바로 직전에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정결례, 즉 회개하고 죄를 씻는 세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찬찬히 설명해주는 말을 듣고서는 에베소 교인들은 다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5절). 이제 진짜 기독교적 세례를 받은 것이지요. 그 날 모두 12명의 에베소 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받은 직후 바울이 안수를 하자 그들 위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임한 표시로 방언과 예언이 터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네 가지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발견합니다.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물세례, 그리고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려면 먼저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참으로 나의 구세주이신 것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아야 하고, 마침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나 믿음이 모두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일 뿐 아니라, 진정한 세례 역시 그냥 형식적으로 물만 머리에 끼얹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출발점으로서의 수세>

이와 같은 세례의 의미는 이제 예수님의 수세 사건에서 더욱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다함께 마가복음 1: 4-11절을 주목해봅시다. 여기 9절의 “그 때에”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도대체 “그 때에” 혹은 “그 무렵”은 언제를 말할까요?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 그 때였지요.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던 세례 요한이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에베소 교인들이 일차적으로 받았던 요한의 물세례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한 말이 중요합니다. 7절에 보니까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신발끈을 풀어주는 것은 노예가 하는 일이니, 예수님에 비하면 세례 요한은 노예만도 못하다는 겸양이지요. 

그 다음에 더욱 더 중요한 말씀이 8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바로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이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면서 자기가 하는 일은 자기 뒤에 오실 훨씬 더 능력 많으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의 역할임을 선언했을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세례를 받다니!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 자격조차 없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그런데 마가복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출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북부 지역 갈릴리 사람조차도 알지 못했고,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사렛 촌동네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 아니라 아예 죽지 않으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훨씬 더 능력이 많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능력 적은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후 하나님으로부터 공적인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비로소 공생애가 시작된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의 현현을 기리는 주현절은 당연히 예수님의 수세 사건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일어난 일들>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11절을 봅시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먼저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하늘과 땅이 소통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속으로 뚫고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갈라져 하나님과 여러분이 소통하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늘이 갈라지면서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첫째로,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께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성령을 비둘기라고 말하지 않고 “비둘기같이”라고 말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비둘기가 내려온 것이 아니라 비둘기같이 생긴, 무엇인가 신비한 영적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 세례와 요한의 물세례의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를 씻어주는데 불과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기독교 세례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즉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되는 관계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됩니다. 

둘째로,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1절).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아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는데 이런 말씀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수세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어떤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이 예수님께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일도 하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지요. 우리가 세례받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실 만한 어떤 인격도 갖추지 못했고, 어떤 선행도 베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사건이기 때문이지요. 

아직 2012년도가 시작된 지 2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새해 기분이 덜 가신 상태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세례받으신 분들은 여러분이 세례받았을 그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온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위하여 아직 어떤 일도 하지 않았건만 세례받는 여러분을 사랑하는 자녀로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은 더 좋은 기회가 남았습니다. 이러한 세례의 의미를 꼭 기억하시고 그냥 죄를 회개하고 씻어내는 요한의 물세례가 아닌,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세례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으며>

오늘 말씀의 결론은 창세기 1: 1-5절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례받았을 그 때에 하나님이 들려주셨던 음성,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시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또 한 번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천지창조 사건 전에 세상은 텅 비었고 어두웠고 형체도 없었습니다. 그랬을 때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제일 먼저 빛부터 창조하셨습니다. 빛은 창조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세례를 받았을 때 역시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왔습니다. 

오늘 주현절 첫 번째 주일 아침 이 시간이 다시 한 번 그 빛 안에 살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례는 다른 시간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서 살다가 빛 안으로 들어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어떤 여자 한 분이 한밤중에 길거리를 걷다가, 아파트 앞쪽에다가 차를 세워놓고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뭔가 열심히 찾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찾느냐고 묻자 남자는 자동차 열쇠를 찾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여자는 도와주기로 했고 함께 열쇠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한 15분 정도 찾았지만 자동차 키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키를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지요.” “아닙니다. 제 차를 주차해놓은 저쪽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왜 그곳에 가서 찾지 않으시고 이곳에서 찾고 난리입니까?” “거기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불빛이 없어서 보이지가 않으니 어떡합니까?” 

주현절은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여러분은 세례받았을 때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왔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 놀라운 사실을 새로이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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