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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휼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 (눅 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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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 (눅 4:16-21)


이스라엘 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샬롬’이라는 말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서 고난과 억압의 역사를 경험해 온 그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샬롬’을 외치고 기도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중에 나치 수용소로 자식들이 끌려갈 때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식들의 귀에다가 ‘샬롬’을 속삭여 주면서 이별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헤어졌던 가족들이 텔아비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그들은 ‘샬롬’을 외치면서 만남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샬롬이라는 단어는 어떤 상황, 어떤 사람, 어떤 장소에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보통 ‘샬롬’을 ‘평화’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샬롬’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평화’라고만 번역할 수 없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샬롬이라는 단어 안에는 평화, 위로, 정의, 조화, 회복 등의 모든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샬롬’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의 금식기도를 마치시고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본문이 이사야서 61장 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함을’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세계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세계가 바로 ‘샬롬’입니다. ‘샬롬’이 이뤄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애를 통해서 선포하신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가장 큰 정신은 ‘정의’입니다. ‘정의’라는 사전적인 뜻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단의 속성인 불의가 지배하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인 의로움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설교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느니라’라고 선포하심 안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회개란 세상의 가치와 정신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정신의 세계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정의로운 상태로 변화될 때 바로 그곳에 하나님 나라기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의로우신 정신이 그대로 실현되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마음과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정신으로 지배되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삶의 자리, 우리의 가정과 직장, 교회와 사회를 하나님의 정신을 중심으로 변화시켜 나가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정의’를 말하고 그 정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를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는 ‘힘’을 가지고 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이 만드는 ‘샬롬’은 힘의 논리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평화입니다. 우리들은 힘으로 만든 세계의 평화를 ‘팍스 로마나’라고 말합니다. ‘팍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평화라는 말입니다. 로마가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면서 만든 평화입니다. 로마가 군대의 힘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막강한 군대를 곳곳에 파송했습니다. 그 군대의 힘으로 식민지의 사람들을 억압했고, 잠잠하게 만들었습니다. 안으로는 억울함과 분함이 있지만 군대의 힘에 어쩔 수 없이 속으로 삭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부글부글 끓습니다. 힘으로 만든 평화입니다. 이것이 세계가 말하는 평화, 즉 팍스 로마나입니다. 

지금도 팍스 로마나적인 평화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20세기는 소련과 미국이 군사적인 힘을 가지고 대치하며 힘의 균형을 가지고 평화를 말했습니다. 이때의 평화를 ‘팍스 루소 아메리카나’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냉전체제의 평화라고 말합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지금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는 미국 지배하에 평화를 말합니다. 이것을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합니다. 어느 시대의 평화이든지 힘에 의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힘으로 만드는 평화는 항상 강자만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약자는 울고 강자만의 웃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샬롬은 약자와 강자가 함께 웃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는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며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방법은 힘이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도,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고,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도, 죽은 아들의 뒤를 울며 따르는 어미에게 아들을 살려 주실 때에도, 많은 군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도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가지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는 기적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고 감동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람을 향한 최고의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약함과 무력함을 보고 조롱하고 배반하고 등을 돌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기들을 중심으로 한 힘의 평화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신 예수님께서 마지마 날에 모든 것을 심판하실 때 그 기준을 사랑의 기준으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시고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며 사랑하였느냐를 기준으로 심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어 의인은 오른편에 악인은 왼편에 서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른편의 의인들을 향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복을 받을 자들아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편에 있었던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인들을 향해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힘을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서 산 사람을 향해서는 악인들은 영벌을, 힘을 가지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산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갈 것을 명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을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두 개의 책이 놓여 있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준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는 생명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영원한 유황불이 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생명책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입니다. 그것을 생명책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원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책입니다. 

그 곁에는 또 하나의 책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이 다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여러분, 요즘 길을 걸어가도 이곳저곳에서 우리의 행동들이 다 기록됩니다. 컴퓨터 키를 하나만 누르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 목록이 다 뜹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어느 은행을 통해 거래를 얼마를 하고 잔고가 얼마 남아 있고 하는 모든 것이 한 눈에 다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만든 기계의 힘만으로도 그 정도를 파악할진대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사람들 앞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을 했는지, 뒤에서는 어떤 일들을 했는지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에게 상급을 주실 때 그들의 행위를 보시고 상급을 주십니다. 12절에 보면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이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이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는 말씀과 마태복음 25장의 마지막 심판의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과 큰 힘을 가지고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다가 왔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무엇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로 본다면 얼마나 큰 교회를 짓고 얼마나 큰 교회를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교회를 세웠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상급의 기준이 됩니다. 대형교회가 성공한 교회가 아니라 작지만 많은 것을 나눈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성공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행복한 교회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성공한 교회의 성도들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낸 헌금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헌금의 사용 내역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는 성도들로 세우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상징마크인 ‘ H ’ 자에 교회의 목회 철학을 담았습니다. ‘ H’자의 기둥 하나는 하나님 사랑의 기둥입니다. 또 하나의 기둥은 이웃 사랑의 기둥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획은 나눔을 통해 그 사랑을 실천하며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 H ’ 자에 담긴 행복한 교회의 목회 철학입니다. 이 뜻이 잘 이뤄지는 교회와 이 선한 뜻을 이루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우리들이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상급을 받는 자리에 이르는 은혜가 모든 성도들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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