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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자 (마 7: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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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자 (마 7:24-27) 

  
옛날 황해도 재령군에 위치한 동부교회에 ‘정찬유’라는 장로님이 계셨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장로님이셨다. 본시 그는 학교 앞에서, 작은 문방구점을 경영하면서 어렵게 살았다. 가난하게 살다 보니까,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떼어먹고 드리지 않았지만, 내 형편이 더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래도 배가 고프고, 저래도 배가 고프다면, 차라리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배가 고픈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아예 굶을 각오를 하고서, 십일조생활을 철저하게 했다. 그러는 가운데 차츰차츰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의 복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정도 자금이 모였을 때, 그동안 하던 문방구점을 문을 닫고서, 건축자재 상회를 열었다. 

때마침 건축 붐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서, 자기가 살던 집을 신식으로 고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큰돈을 벌어, 황해도에서 몇째 가는 큰 갑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사는 허름한 집도, 현대식으로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에 건축자재들을 잔뜩 쌓아놓았다. 흐뭇한 심정으로, 건축자재를 바라보던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허름한 채로 내버려두고서, 내 집만 새롭게 고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짓기 전에는, 자기 집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그동안 모아놓았던 모든 돈을, 즉시 교회 건축헌금으로 하나님께 바쳤다. 당시 돈으로 3만 환이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30억이 넘는 돈이었다. 

교회는 그 돈으로, 새로운 교회부지 3만평을 산기슭에 구입했고, 현대식 건물로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었다. 교인들은 그의 귀한 뜻을 기르기 위해, 예배당의 머릿돌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정찬유 장로님의 모습이, 교회에서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교회에 다니지 않고, 멀리 떨어진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러니 목사님과 교인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부랴부랴 목사님과 교인들은,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아니 장로님, 왜 본 교회를 놔두고, 다른 교회에 출석합니까? 무슨 섭섭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지금까지, 동부교회에 출석한 이유는,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교회 주인이 바뀌어, 정찬유 개인의 교회가 되어버렸다. 저는 더 이상, 사람이 주인인 교회에는, 다닐 수 없다. 그러니 그저 조용히 돌아가 주십시오.”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 뜻을 깨닫고, 즉시 예배당 머릿돌에 있는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이라는 글씨를,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예전처럼 본 교회 출석하면서 더욱 충성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자기의 인간적인 의를, 자랑하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인간적인 의를 드러내려고 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들이 영광을 받으려고 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어리석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인간적인 의를 의지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힘 있게 의지하며, 건축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라고 하신다. 

1. 지혜로운 건축자(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목수의 일을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집짓는데 기초가 중요하고, 기초는 반드시 반석 위에 세워져야만, 집이 견고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뉴욕 맨해튼은 섬이다. 그런데 고층빌딩이 많이 서 있다. 수십 층이 넘는 고층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다. 

어떻게 그곳에, 그렇게 높은 고층빌딩들이, 수없이 들어설 수 있었는가? 맨해튼이라는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은, 반석 위에 세워져야지 견고하다. 예수님 당시에는, 건축기술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반석에 구멍을 뚫는 일은, 쉽지 않고 어려웠다. 

어려워도 반석 위에 기초를 두면,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 사실은 언제 결정적으로 나타나는가? 큰비가 내리면 어디에 세워졌는지 드러난다.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이스라엘에는 여름철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겨울철에만 비가 온다. 비는 이른 비가 있고, 늦은 비가 있다. 그리고 가끔 중간에, 큰비가 내릴 때가 있다. 큰비가 내릴 때는, 단시간에 집중적인 비가 쏟아진다.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리다 보니까, 그때는 땅이 그 많은 비를, 흡수할 수 없다. 

또 땅이 석회석이라, 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급류가 되어서(히, ר󰕗󰗺), 반석과 반석 사이를 흘러내린다. 예수님은 그것을 본문에서 “창수가 난다”고 말씀했다. 갑자기 흐르는 강을 말한다. 이러한 창수들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큰비가 내릴 때는, 지중해 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친다. 

그러나 아무리 위에서,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땅에서는 창수가 나고, 옆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할지라도, 끄떡하지 않는 집이 있다.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집이다. 일본 동경의 황궁 앞에는 Imperial호텔, 제국호텔이라고 하는 유명한 호텔이 있다.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의해, 세워진 호텔이다. 이 호텔을 짓는데, 4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절반인 2년을, 기초공사 하는데 소모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비난했다. “왜 기초공사를 하는데 쓸데없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느냐?” 

그러나 그는 묵묵히 기초를 다지고, 또 계속 다졌다. 그렇게 해서 4년 만에, 제국호텔이 완공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지은 제국호텔은, 돈과 시간을 무리하게 들여서 지은, 좋지 않은 건물이라고,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런데 몇 년 뒤에, 동경 대지진이 발생했다. 동경의 2/3정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수십 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심하게 다쳤다. 그런데 유독 제국호텔만큼은 끄떡하지 않았다. 불과 유리창 5개만 깨졌을 뿐이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전했다. 그 이유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운’ 까닭이다. 기초를 그만큼 튼튼하게 다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라이트는 건축가로서, 신화적이며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반석은, 궁극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말씀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반석이다. 예수님은 환란 날에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집은, 심판 속에서도, 환난 속에서도, 어엿이 설 수가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셔서, 우리를 굳세게 붙들어주고, 든든하게 세워주고, 지켜주기 때문이다. 나의 신앙은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세워졌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죽음의 사자가 애굽 땅을 지나갔다. 애굽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어디에나 큰 울음이 있었다. 장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칠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무슨 인간적인 의가 있어서, 무슨 공로가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어엿이 서는 것이 아니다.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든든히 세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언제 서도, 어엿이 설 수가 있다. 반석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든든히 세워주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영광을 돌리기 바란다. 

2. 어리석은 건축자(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여기서 역시 어리석은 사람도, 집을 지었다. 물론 그도 자기가 사는 집이니, 열심히 집을 잘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았다. 반석을 피해서, 반석과 반석 사이에 있는 땅위에 집을 지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그곳을 가리켜서 ‘모래 위에’라고 하셨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반석 위에 지은 집보다, 외관상으로는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다. 

기초를 닦는데,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외적인 면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그들도 열심히 살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구제했다. 열심히 기도도 했다. 또 열심히 금식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데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적인 의로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폭풍우를 견딜 수 없다. 반석과 반석 사이를 흘러가는, 급류에 다 떠내려가고 만다. 마찬가지다. 인간의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의로는, 하나님의 심판 날에 설 수 없다. 

바벨탑처럼 결국에는, 다 무너지고 만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모래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하면, 인간의 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연 상관없는 삶, 인간의 의만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말한다. 

그러한 삶은, 아무리 멋지고 훌륭하게 보여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감하게 그런 삶의 방식을 떨쳐버리기 바란다. 어떤 젊은이가 속세를 떠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려고 해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문제로 무척 고심하던 청년은 어느 날, 수도원 원장님을 찾아갔다. “원장님, 제가 속세를 떠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런데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저를 붙들고서,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수도원 원장님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를 데리고 수도원 뒤뜰로 갔다. 그곳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었다. 원장님은 그 가운데, 있는 나무 앞으로 가서, 그 나무를 자기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기 몸을 몇 번 뒤척뒤척하더니, 그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이 나무가 갑자기,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네. 나를 좀 도와주게. 이 나무에서 나를 좀, 떼어주기를 바라네.” 젊은이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서있자, 수도원 원장은, 더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 

“아니 젊은이! 무엇하고 있나? 이 나무가 나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다니까, 왜 그냥 그대로 서있나?” 청년은 마지못해서, 수도원 원장을 그 나무에서 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청년이 나무에서, 원장을 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원장은 더 안간힘을 쓰면서, 나무를 놓지 않으려고 꽉 끌어안았다. 

급기야 청년은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그 손을 놓으세요! 나무가 지금 원장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원장님이 나무를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수도원 원장은 손을 풀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 자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제 깨닫겠는가? 이 세상이 자네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자네가 세상을 놓지 않고 있다네, 자네가 붙들고 있는 그 손을, 과감히 떨쳐버리게. 그것이 자네가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네.” 인간의 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붙들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려면 소용없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를 붙들던 손을 놓고, 손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밀자.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이, 손을 굳세게 붙들어주시고,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3. 지혜로운 자의 삶의 결과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매일 매 순간 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 원하신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똑같이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랐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들었다. 순종하지 않았다. 말씀대로 따르지 않았다. 지혜로운 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헛되지 않다. 후회 없이 산다. 예수님이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윌리엄 보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887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큰 목장을 경영하는, 대부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여행을 시켰다. 혼자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둘러보면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때 그는 이러한 결심을 했다. “나는 이 불쌍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내 한평생을 바치리라.” 그런 뒤 성경책 표지안쪽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No Reserve.”(보류 없음) 지체하지도 않고, 다른 마음을 품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그는 자기 결심을, 확고하게 정했다. 그 뒤 미국의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한 그에게, 좋은 일자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뿌리치고, 프린스턴 신학교로 진학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 부모님은 그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이슬람 선교를 위해, 모두 헌금했다. 그리고 검소하게 학교를 다녔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이슬람 선교를 위해 애굽으로 건너갔다. 친지와 친구들은 “왜 하필이면 그곳에 가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며, 그를 말렸다. 그때 그는 성경 표지 안쪽에, 또 한 마디의 말을 더 집어넣었다. 

“No Retreat.”(퇴각 없음) 물러서지 않겠다, 후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홀연히, 이집트로 건너가,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들에게 실천했다. 그런데 그가 이집트에서 사역한지, 4달도 채 되지 않아서, 그만 뇌막염에 걸려버렸고, 발병한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어가면서, 자기 성경표지 안쪽에,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 남겼다. “No Regret.”(후회 없음)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의 친지들과 친구들에게 남긴 유서에서도, 똑같은 말을 썼다. “No Reserve, No Retreat, No Regret.”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에서, 후퇴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정진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짧은 일생을 살았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인가? 카이로에 있는 그의 무덤의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윌리엄 보덴(1887∼19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그는 26세라는 짧은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분명히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예수님의 따뜻한 영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우리는 짧은 생애가 될지, 길게 살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로운 자들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들이다. 

결코 우리의 삶은, 헛되지 않고,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힘차게 의지하자.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기쁨으로 나아가자. 우리에게도 똑같은, 예수님의 칭찬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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