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 힘을 얻읍시다 (사 40:29-31)

첨부 1


새 힘을 얻읍시다  (사 40:29-31)


지난 주중에 사무실로 팩스기 한 통 들어와 있었습니다. 발신인은 자살방지 카페를 운영하는 운영자라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4살짜리 아들 하나를 데리고 있는 남자가 구리시 한 모텔에서 글을 올렸는데 교도소에 있다가 나와 보니 부인은 노래방에 도우미로 일한다고 나가 버리고 자기는 아들을 데리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노라고 그러니 아들을 좀 부탁한다고.....이 글을 보고는 자신이 아들을 맡아주기로 했는데 자기는 지금 대구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문동에 가장 가까운 교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우리교회가 나오기에 부탁한다면서 팩스를 보내왔습니다. 전화번호까지 적어 두었으니 확인해서 데리고 와서 밥 좀 먹이고 자기가 있는 대구행 차편에 보내주면 경비는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급히 도와 달라는 내용이기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 아들과 함께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이 남자의 반응이 싸늘합니다. 자기가 나중에 전화하겠으니 끊으라는 겁니다. 왠지 더 불안해서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고 해봤지만 얼른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팩스를 보낸 카페 운영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이 보낸 팩스를 받았고, 그 남자의 전화로 전화를 했더니 통화를 거부한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다 해결됐다고 더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겁니다. 내용인즉 돈이 필요하니 을 좀 보내달라고 하더랍니다.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의 동정의 마음을 이용해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일종의 사기라는 것입니다. 요즘 이런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런 카페를 운영하다보니 혹시나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속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참 허탈했습니다. 

팩스를 보고 저도 적잖이 고민을 했습니다. 확인할 방법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 일부러 교회를 찾았고 하필이면 우리교회를 찾아서 부탁을 했는데 모른척하다가 만약에 결과가 나빠지면 교회가 또 욕을 먹게 될 것이고....복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여기도 저기도 해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했었는데 허탈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이런 사람들, 저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열정으로, 그런 지혜로 살아가면 못 살아갈 일 없겠는데 그렇게 악용을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살아갈 힘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장 어려운 상황, 정말 힘든 역경을 견뎌내려고 하는 것을 보고 “죽을힘을 다한다.” 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진리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을힘이 있다는 것인데 이 죽을 힘이 바로 살아 있는 동안의 마지막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마지막 죽을힘만 있다면 그 힘으로 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이 말하기를 인간은 세 가지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육체적인 힘, 경제적인 힘, 정신적인 힘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강하고 마지막까지 필요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신적인 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 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됩니다. 그 힘은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물론 지금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육체적인 힘을 내세우고 경제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곧 무너집니다. 평생 건강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 한 푼도 가지고 가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가야하는 인생임을 안다면 재산 자랑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기에 영적인 힘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영적인 힘은 예상을 초월합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이 바로 영적인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싸움 중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유명합니다. 상식적으로 꼬마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의 무기는 고작 돌팔매였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으며 다윗에게 충고했습니다. “골리앗은 너무 크고 강하다. 그러기에 네가 당해내기에는 턱도 없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골리앗은 몸집이 크기 때문에 돌을 맞을 확률도 많다. 던지면 무조건 한 군데는 맞는다.” 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골리앗의 큰 몸집에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의 큰 체구가 오히려 돌팔매에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실패의 확률을 먼저 보았지만 다윗은 성공의 확률을 먼저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의 차이입니다. 크다는 것은 그만큼 목표가 잘 보인다는 장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생각이 승리한 케이스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생각의 힘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천재나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보다 집념과 용기와 긍정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하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어떠한 힘이라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육체적인 힘이건, 경제적인 힘이건, 정신적인 힘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권력의 힘이란 또 어떻습니까? 

요즘 정치판에서 나오는 흔한 용어가 <권력형 비리> 라는 말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그 힘을 딴 데다 썼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옳은 데에 써야하는데 남용했다는 것입니다. 권력이라는 말 자체가 좀 압력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위키 백과사전에 보면 “물리적 강제력을 가지고 그 사람의 뜻에 반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고 지배하기 위한 힘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압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이것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비단 이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제나 있어 온 이야기입니다. 대통령 친인척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등, 어느 국회의원이 돈을 얼마를 받았다느니, 청와대가 어쨌다느니 하는 말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까?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마는 만약에 애초에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권력을 탐했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사람이란 이상하게도 힘이 없으면 무력하고 무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힘이 넘치고 커져서 그것이 잘못 사용되어도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이 커집니다. 고로 참된 힘이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절제와 통제가 가능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참된 힘이란 그 본질이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나아가 영적인 것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이 말은 힘이란 본래적으로 나의 것이 아니라 절대자, 즉 하나님으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이란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40년, 혹은 60년, 80년, 많게는 90년, 아주 드물게는 100년, 빌려 쓰는 것입니다. 자기의 영원한 소유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언제라도 “이제 그만 쓰고 돌려다오.” 하시면 군소리 없이 다 돌려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8 : 1절에서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늘 새로운 영적 능력을 얻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습니다. 힘으로 말하면 소만도 못합니다. 빠르기로 말하면 말만도 못합니다. 높이뛰기로 말하면 캥거루만도 못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체력, 인간의 경제력, 인간의 정신력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인내력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한계에 부딪치며 살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허탈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주님을 앙망하여 능력을 얻고 새 힘을 얻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는 피곤해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그랬습니다. 그런데 무엇에 피곤해지라는 것입니까? 능력을 얻을 수 있는 피곤함이란 세상 적이고 육체적이고 경제적인 것 때문에 오는 피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데서 오는 피곤입니다. 참 피곤한 세상을 삽니다. 

우선은 먹고 사느라고 피곤하고, 운동하느라고 피곤하고, 수영하느라고 피곤하고, 애 보느라고 피곤한 세상입니다만 이런 피곤 보다 기도하려고 애쓰는 마음에서 오는 피곤, 전도하고자 애태우는 마음으로부터 오는 피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하여 시간마다 가슴 저미는 피곤, 이런 것들이어야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피곤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철저하게 무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무능해져야 합니까? 세상에 대해섭니다. 내 육체적인 자만심에 대해서 무능해져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이 가득 찼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무능을 고백해야 됩니다. 돈이 제일이며, 돈만 가지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세상의 경제적인 힘으로부터 철저하게 무능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 온 부자청년이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절대적인 힘으로 여기는 경제적인 힘으로부터 무능해지라!” 는 말씀을 듣고는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여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노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무능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능해져야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힘 앞에 해야 할 일은 심히 근심할 일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무능해지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생존경쟁, 무한경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란 달음박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당히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산책하듯 사는 것이 아니라 달려가야 할 때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는 힘,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여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