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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우리를 고쳐주옵소서 (시 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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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를 고쳐주옵소서 (시 30:1-5)


(유머) 부부의 일곱 고개

일단 결혼한 부부들은 싫든 좋든 다음과 같은 일곱 고개를 넘어야 한답니다.

첫째 고개는 환상의 고개 : 신혼부터 3년쯤 걸려 넘는 고개로 갖가지 어려움을 비몽사몽간에 웃고 울며 넘는 눈물고개.

둘째 고개는 타협의 고개 : 결혼 후 3-7년 동안에 서로에게 드러난 단점들을 타협하는 마음으로 위험한 권태기를 넘는 진땀 고개.

셋째 고개는 투쟁의 고개 : 결혼 후 5-10년을 사는 동안 진짜 상대방을 알고 난 다음 피차가 자신과 투쟁하며 상대를 포용하는 현기증 나는 비몽 고개.

넷째 고개는 결단의 고개 : 결혼 후 10-15년이 지나면서 상대방의 장, 단점을 현실로 인정하고 보조를 맞춰 가는 돌고 도는 헛 바퀴 고개.

다섯째 고개는 따로 고개 : 결혼 후 15-20년 후에 생기는 병으로 함께 살면서 정신적으로는 별거나 이혼한 것처럼 따로따로 자기 삶을 체념하며 넘는 아리랑 고개.

여섯째 고개는 통일 고개 : 있었던 모든 것을 서로 덮고 새로운 헌신과 책임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며 사는 내리막 고개.

일곱째 고개는 자유의 고개 : 결혼 후 20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완숙의 단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눈치로 이해하며 행복을 나누는 천당고개. 아무쪼록 모두 천당고개를 넘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 시간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주여, 우리를 고쳐주옵소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통한 귀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예화) 너무 어려서 아직 말을 못하는 아이가 하루는 마구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기를 달래 주며 과자와 장난감을 주었지만 도무지 그치지를 않고 자꾸만 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침내 화를 내고 아이를 때려 주었습니다. 아이는 더욱 세차게 울어댔습니다. 나중에 어머니의 눈에 보인 것은 아이의 발바닥에 가시가 찔려 있었던 것입니다. 아기는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울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가시를 뽑아주자 잠시 후 웃으며 어머니 품에 꼭 안겨 잠이 들었습니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고통을 당하고 울음으로 호소하는 이 아이의 모습이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없어도 주님은 나를 이해하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주님인 것을 먼저 믿으시기 바랍니다. 

1. 주님께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1절) 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끌어내사" 라는 이 동사는 ①매달리다. ②양동이를 내려놓다. ③건져내다. ④끌어내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이끌림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1) 곤란에서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환란도 많고 곤란한 일도 많고 난처한 일도 많이 생깁니다. 곤란에 대해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4:1)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시 116:1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119:50) 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곤란을 당하였습니다. 요셉이 곤란을 당하였습니다. 삼손이 곤란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곤란을 당하였을 때에는 주께서 피할 길을 주셨고 인도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심판의 자리에서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러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① 노아가 이러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날로 더욱 타락하는 인류를 심판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를 택하시고 노아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방주를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본문에는 노아가 의롭고 경건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하신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에게 먼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노력으로 의로워질 수 없고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야만 합니다. 

② 롯이 바로 이러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소돔성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 앞에 큰 죄인들이었습니다. 의인 열명이 없을 만큼 타락되어있었습니다. 소돔성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은 천사를 소돔성에 보내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롯의 손을 잡아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창19:16)고 하셨습니다. 주께 이끌림을 받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기를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2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기도하므로써 치료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주시는 큰 은혜가 있습니다. 

1) 부르짖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 육체적인 노동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도 부르짖을 수 있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에 응답하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부르짖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부르짖었고, 모세가 광야에서 부르짖었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신비한 능력으로 역사하기도 하셨습니다. 환란을 당하여도, 고난을 당하여도, 실패를 하였어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9) 라는 말씀을 약속하셨습니다. 

2) 나의 진실을 통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① 소경바디매오가 그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막10:47-48)는 말씀을 봅니다. 

이 바디메오의 부르짖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누가 무슨 소리를 하여도 자신은 계속해서 예수를 불렀고 그래도 응답이 없자 더욱 소리질렀다고 하였습니다. 부끄러운 모르고 챙피한 줄 모르고 부르짖는 이 모습이 그에게는 진실의 모습이요. 참모습입니다. 이 부르짖음이 예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았고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② 문등병자들이 부르짖었습니다.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눅17:12-13) 하며 부르짖습니다. 이들이 멀리서서 부르짖는 이유는 자신들이 문등병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자신들이지만 소리만큼은 높여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3. 절망보다 소망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본문에 말씀 하셨습니다.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5절) 할렐루야! 참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소망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소망이 없으면 살아야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비록 움막집에 살망정 소망이 있어야 하고 점심먹고 저녁꺼리가 없어도 소망은 있어야 하고 비록 병원에서 "당신은 앞으로 3개월밖에는 더 못삽니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소망은 있어야 합니다. 죽는 사람이 무슨 소망이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도 소망을 가지고 죽어야 합니다. 죽는 사람이라고 해서 소망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소망 때문에 죽어도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그에게 있습니다. 

예화) 한비야씨가 아프리카에 씨앗을 나누어주었는데 모자라서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답니다. 씨앗이기 때문에 먹지 못한 것은 똑같은데 씨앗을 받은 사람들은 희망이 있었고, 받지 못한 사람들은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낳은 최고의 전도자인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첩인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본처의 집에서 말할 수 없는 구박과 천대와 멸시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지고 어두웠습니다. 소년시절 어느 날 양지 바른 담장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꺼워 기침을 했더니 붉은 피가 올라왔습니다. 진단결과 몹쓸 전염병인 폐병 3기로 치료의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오후 햇빛을 받고 앉아 있었는데 북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면서 “예수를 믿으세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고 전도지를 줍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전도자를 붙들고 “나 같이 가난하고 병들고 천한 기생의 자식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럼요!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됩니다”. 도요히꼬는 그때부터 예수믿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기생의 자식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세계의 전도자로 빈민들의 아버지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의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5절)라는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되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서운 얼굴로 책망을 하고 야단을 쳤다고 해서 그 모습이 죽을 때까지 가지는 모습이 아닙니다. 자식이 아버지가 무서워서 밖으로 도망을 갔어도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찾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어디로 갔는지 연락이 없으며 밤잠을 설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언약을 어기고 죄악으로 타락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을 취하여 예수님으로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백성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고 하셨습니다. 나의 허다한 죄를 덮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큰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작은 사랑이 아니라 큰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고 하셨는데 이러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죄를 탓하지 아니하고 덮어주고 가려주려고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허물이 많고 죄가 많아도 가려주시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 오늘 우리는 '우리를 고쳐주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사람이 고쳐져야 되는 것이 무슨 병만이 아닙니다. 습관도 고쳐져야 하고 행실도 고쳐져야 하고 마음도 고쳐져야 합니다. 교만도 고쳐야 할 일이요. 거짓도 고쳐져야 합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이 땅도, 물도 고쳐져야 합니다. 우리 여신도들의 사랑을 통해서 자녀들이 고침받고 가정과 교회와 지역이 고침받기를 바랍니다. 본인이 아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여러분의 모성애와 헌신이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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