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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브낫바네아의 믿음 (창 41: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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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낫바네아의 믿음’. com.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4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창41:37∼45)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창41;37-45절 말씀으로 ‘사브낫바네아의 믿음’ 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45절)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사브낫바네아’ 라는 이름은 바로가 요셉에게 준 새 이름입니다.  이름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도 이름은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이름이 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버가모교회 에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했습니다.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사데교회 에게 하시는 말씀에서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아니하고, 여러분의 이름이 아버지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되어지는 이름이 되기를 원합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에게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이 기록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요셉처럼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이름도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인 요셉은 애급의 바로로부터 ‘사브낫바네아’ 라는 새 이름을 받습니다. 이 이름 뒤에 숨어있는 뜻이 뭘까요?  '사브낫바네아' 는 ‘세상의 구원자, 비밀의 계시자’ 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실제로 요셉은 7년 풍년과 이어지는 7년 흉년이라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고, 죽어갈 운명의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사브낫바네아’ 라는 이름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말로는 세상의 소금되고 빛이 되는 삶 아니겠습니까? 소금과 빛이 없는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이요, 망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요셉처럼  ‘사브낫바네아’ 라는 이름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도 요셉처럼 세상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름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제2, 제3의 요셉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도여러분, 이름 안에는 그 사람의 삶이 있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 그 이름대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습니다. 그러면 ‘사브낫바네아’ 라는 새 이름을 받은 요셉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열매를 보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이란 사람은 어떤 열매를 맺었나요?  요셉은 죽을 사람을 살린 사람입니다. 7년 풍년과 7년 흉년동안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죽을 것인데 요셉덕분에 다 살았습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는 것, 이것이 바른 정치요, 바른 지도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2011년 12월 17일 북한의 김정일이 죽었습니다. 그는 북한이라는 나라의 유일무이한 독재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권력을 위해서 수백만 명을 죽인 지도자였고, 수천만 명을 굶기는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사람들의 운명을 죽음에서 삶으로 바꾼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자기 가족을 살립니다. 요셉이 아니면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의 모든 가족들은 죽었을 것입니다. 구원의 물줄기가 끊어졌을 것입니다. 요셉은 살리는 사람이요, 구원의 물줄기를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 우리가 요셉에게서 먼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요셉의 나이입니다.
  
요셉은 30세에 애급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나이 30세에 애급이란 거대한 나라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요? 지금 대한민국에서라면 30에 국무총리가 되어서 국정을 총괄하게 된다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20후반이면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30세하면 사회 초년생, 햇병아리라고도 하지요. 하지만 요셉은 그 나이에 애급의 총리가 됩니다. 그때의 사회가 지금 하고는 다르다고 하지만... 놀라운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나이 30에 애급이란 거대한 나라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 무엇을 뜻하는가요? 성경은 젊음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젊다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보면 젊어서 쓰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10대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의 일대기에 대한 대부분은 10대, 20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삼하5;4)

*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어려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20대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왕의 선택을 받아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이 10대였고,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이 10대 후반이라고 봅니다. 천사가 전한 처녀잉태의 말에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8) 하는 마리아의 신앙고백은 10대의 신앙입니다.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리우는 ‘찰스 스펄젼’ 은 20세에 런던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했고, 30세 이전에 런던 교회가 꽉 차게 되었고, 

*강해설교의 아버지인 ‘캠벨 모간’ 도 13세에 설교를 시작했고, 23세의 나이에 영국 최고의 성경교사로 불리웁니다.  *종교개혁의 영원한 선구자인 존 칼빈은 성경다음으로 유명한 책인 ‘기독교강요’ 를 27세에 씁니다. 
 
성도여러분, 젊음은 미숙한 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젊음은 하나님이 얼마든지 쓰실 수 있는 나이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여러분의 자녀들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나이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젊다고 아무나 다 쓰임 받는 것은 아니지요. 쓰임 받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젊어서부터 요셉처럼 쓰임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쓰임받고 싶다’ 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사용해 주세요’ 하고 바라야 합니다. 10대에 비전과 사명을 품고,  20대에 그 비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며,  30대에 자기 분야에 최고의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10대에 비전과 사명을 품고 20대에 그 비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며 30대에 자기 분야에 최고의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요셉처럼 될 것입니다.  ‘사브낫바네아’ 의 이름을 받은 요셉을 보면서 저는 3가지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첫째, 나쁜 기억을 오래 품지 마십시오.
 
실패하는 사람들, 너무 늦은 사람들,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나쁜 것들을 오래 담고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들을 빨리 청산하십시오. 눈물도 여러 가지입니다. 통회 자복하는 눈물은 좋지만, 한탄하고 원망하는 눈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분노, 억울함, 상처.. 사단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품도록 만듭니다.  특히 분노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 너무 늦은 사람들,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분노(忿怒)가 있습니다.  주위 환경이나, 가족, 자기 자신에 대해서 버리지 못하고... 풀지 못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분노’가 잘못된 감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분노할 수 있지요.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다만 분노를 오래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는 밤새도록 분을 품고 잠도 자지 말라고 합니다. 분노하면 아무 행동이나 해도 된다고 합니다. 사실 분노함으로 실수하거나, 돌이키지 못할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홧김에, 할 말 안할 말 가리지 않아서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우리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도 얼마나 많은 분노가 있었겠습니까?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해 죽을 뻔 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노예로 팔려왔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주인을 위하여 또 신앙으로 순결을 지켰지만 그 댓가는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내 인생이 왜 이렇습니까.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왜 이런 일들이 자꾸 나에게 일어납니까!!’ 하면서 분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훌훌 털어버립니다.  

(창41: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요셉으로 하여금 능력 있게 나아가는 첫걸음이 ‘잊어버리는 것’ 이었습니다. 그는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 곧 ‘잊어버림’ 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므낫세’ 이것이 요셉으로 하여금 능력 있게 나아가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분노의 짐, 억울함의 짐, 상처의 무거운 짐을 ‘므낫세’ 해야 합니다.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하나님이 잊어버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52절)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에브라임은 ‘번성...두배로 풍성함’이다. 잊어버리는 사람에게 풍성함이 옵니다. ‘므낫세’ 한 뒤에 ‘에브라임’이 오는 것입니다. 요셉의 두 아들의 이름은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나쁜 것들을 오래 기억하지 마시고 빨리 청산하십시오. 그리고 풍성을 누리십시오. 

 ** 둘째로, 현실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요셉이 30세에 쓰임 받은 이유 중의 분명한 한 가지는... 그가 언제든지 주어진 현실에 충실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사랑받는 아들에서 배신당하고 버려진 형제가 되었고, 보디발의 집에서 팔려온 노예였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죄수가 되었지만, 또 호의를 베푼 사람들에게서조차 잊혀진 사람으로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주어진 현실에 충실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비참한 현실에서도 그는 게으른 적이 없었고, 원망의 말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밑바닥에서도 그는 항상 하나님신앙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30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이미 준비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훈련의 시기가 끝났기에 30세의 나이에 애급의 총리가 되었고, 또한 아무 어려움 없이 국정을 수행하고, 죽을 운명의 많은 사람들을 살립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선민의 계보를 살리고 보존합니다.   

(마25;21,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보다 큰일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에 아버지의 양을 지키기 위해서 곰과 사자와 싸운 경험이 있었기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고,  그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도 사방의 적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그는 이론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는 수많은 직접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지요. ‘필요 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다.  지금 나에게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가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그 훈련을 통해서 젊은 나이에도 쓰임 받게 하실 것입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있는 현실속에서 성실하게 뛰는 자를 하나님께선 나이에 상관없이 사용하십니다.  나이보다 휠씬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지혜롭게 쓰임 받느냐 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인이라면 다 사장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사장의 자리에 앉혀주면... 거의 100%의 확률로 회사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자리에 앉는 것만큼 나쁜 일이 없습니다. 자기도 직원들도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십시오. 훈련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반드시 실전에 배치될 것입니다. 현실에 충실함으로 충분히 준비되시는 지금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끝으로, 절제를 통해 저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석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바로의 꿈에는 문제만 있었지 그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꿈을 풀이하고, 또 흉년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합니다.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명철하고 지혜 있는 한 사람을 세워서 애급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그 밑에 관리들을 많이 두어서 일곱 해 풍년에 애급 땅의 곡물 오분의 일을 거두고 보관하는 일을 각 성에서 하게 하라’ 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존 기구 외에 특별대책기구를 세워서 7년 풍년동안에  7년 흉년을 준비하는 기관을 만들어라. 곡물을 잘 거두고 잘 보관을 해야 한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른 해결책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나는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불경기입니다. 다 어렵다고 합니다. 이럴 때 나는 형제나 이웃 그리고 이 나라와 사회의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책을 제시 할 수 있는 안목과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아야 합니다.  왜냐면 내가,  우리가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습니다.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갑니다. 문제는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세계는 이미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능력을 갖췄습니다. 70억의 인구이지만 식량은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생산됩니다. 그러나 2010년 현재 지구촌 인구 가운데 약 20%에 달하는 15억 명은 비만으로 고민하고 있는 반면 15% 정도인 9억2500만 명은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챤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창41: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당시의 기근은 전 세계적인 기근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기근이란 굶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때에 애급은 요셉의 리더쉽으로 인해서 풍년 때 준비한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먹을 것을 준비되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굳이 찾아갈 필요 없지요.   

이런 믿음을 저장(貯藏)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요셉의 믿음입니다. 7년 풍년동안 요셉은 저장(貯쌓을 저, 간직할 장藏)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7년 풍년에 먹고 마시자 해버렸습니다. 남아도 저장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7년 흉년이 드니 모든 사람들이 요셉을 찾아옵니다. 

(창47;18-19)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돈을 내고, 가축을 바치고, 이제는 몸을 바치고, 토지도 바칩니다. 스스로 종이 됩니다. 있을 때 저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요셉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퍼내고 퍼내어 오는 사람마다 모두 나누어 주었지만 끄떡없습니다. 바닥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7년 풍년에 먹고 남는 것을 충분히 저장해두었기 때문입니다.  항아리 믿음입니다. 사발 믿음이 홀짝 거리다가 물이 떨어지면 하늘만 쳐다보는 믿음이라고 한다면, 항아리 믿음은 한번 가득 담아 놓으면 비워도 비워도 끄떡없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닥나지 않는 풍성한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항아리처럼 저장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나중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주위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저장해야 ‘사브낫바네아’ 라는 새 이름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10대에 비전과 사명을 품고 20대에 그 비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30대에는 자기 분야에 최고의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 너무 늦은 사람들,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나쁜 것들을 오래 담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들을 빨리 청산하십시오.  특히 분노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십시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훈련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큰일에 반드시 사용하실 것입니다.   

*저장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나중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주위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브낫바네아’ 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세상으로부터 ‘사브낫바네아’라는 새 이름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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