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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고 은밀한 일 (렘 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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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은밀한 일 (렘 33:1-9)


I. 크고 은밀한 일들

어느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란 책 서문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중국을 여행하던 사람이 성대한 축일을 맞은 어느 이교 사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당 안에 세운 가증스러운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열광적인 신도들의 대부분이 기도문이 적힌 종이쪽지를 가지고 있는 것에 눈길이 끌렸습니다. 그들은 그 기도문이 적힌 종이쪽지를 조그만 진흙덩이로 싸서 우상 앞에 던졌습니다. 

그는 이런 괴이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지요. 

만일 작은 진흙덩이가 신상에 찰싹 달라붙으면 그 기도가 반드시 응답을 받고, 땅에 떨어지면 신에게 기도를 거절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기도 응답 여부를 시험하는 이 특이한 방법을 웃어넘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절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역사하는 기도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보물창고 문을 여는 열쇠인데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용어를 빌리자면 하나님 곁에는 항상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들”이 담긴 창고가 있습니다. 부르짖어 구하기만 하면 언제나 받아 누릴 수 있는 복이 담긴 창고 말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 나오는 창고처럼 신앙인들이 기도하지 않아 그대로 쌓여 있는 약속 보물창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크고 은밀한 계획들」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을 보여주시며 백성들에게 당신의 계획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서를 들여다 본 선지자는 예루살렘 거리를 뛰며 눈물로 예언해서 눈물의 선지자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임금과 귀족들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아니하면 바벨론의 멍에를 메고 패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아무도 이 예언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시드기야 왕은 세간을 어지럽히는 예언을 한다하여 예레미아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 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절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그 다음 2절 말씀에 보면 그 「크고 은밀한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잠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II. 하나님 : 내 인생의 극작가․연출가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내 인생 드라마의 작가로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1. 하나님의 시나리오 

모든 드라마에는 대본이 있습니다. 대본 속에는 극작가의 아이디어, 사상, 놀라운 계획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연출가가 뛰어난 기획을 하고, 연기자들이 노력을 해도 대본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기획하시는 극작가이십니다. 나아가 그분은 내 인생의 연출가이십니다. 그런데 이 땅에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연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보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지요. 자기가 쓴 초라한 극본도 체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연기자가 누구입니까? 극본의 내용을 잘 소화하는 사람이겠지요. 연출가의 의도를 잘 따를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내 인생을 계획하신 그 분,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만드신 그 분, 그분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연출가이신 그분의 의도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멋진 신앙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2. 엑스트러가 아닌 주인공 

그리스도인은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하나님이 제시하신 대본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는 연기자와 같습니다. 여기에 엑스트러(extra)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귀한 배역도 있고, 좀 덜 귀한 배역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무결합니다. 우리 모두는 내 인생의 주인공들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당신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3. 일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

예레미아 선지자는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입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셨습니다. 
예레미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일을 계획하시는 분, 
그리고 계획하신 일을 반드시 성취하는 여호와였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뜻을 세워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빨리 파악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계획과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비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살아가다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도시 마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임금은 두 눈이 빠져서 종처럼 끌려 다녔습니다.

4. 뜻하지 않은 순간의 고난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순간에 바벨론 포로와 같은 비참한 역경에 빠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의 순간마다 내가 하나님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따라 살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은 동일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 당하는 사람의 모습은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 가까이 나아간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고통을 당하느냐? 
어떻게 고난에 직면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똑같은 미풍이 불어오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꽃은 아름다운 향기를 날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시나리오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그 고통이 삶의 마이너스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불리한 상황을 플러스로 만들어 냅니다. 

III.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 은밀한 일」을 알 수 있으며 「야베스의 천국 창고」에 쌓여 있는 그 보물 보따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3절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예레미야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왕국 옥에 갇혔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때가 가장 큰 일을 할 때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살리는 가장 중대한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위기를 벗어나 승리하는 지름길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크고 우선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이었습니다. 

지금 예레미야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국운동을 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어려운 난국을 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앞장서서 뛰어야 하는데 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밀한 일은 아픈 나라의 사연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방황하는 민족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를 받았던 엘리야도 한때는 착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왕상19:14) “하나님, 나 혼자 뛰다가 이제는 지칠 때로 지쳤습니다.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두어 가 주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 일을 하는게 아니야.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나 여호와이니라. 
너 혼자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지금도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칠천의 용사를 네 곁에 남겨 두었느니라.”(왕상19:18)

여러분 지쳐있습니까? 누군가 당신을 위하여 지금 이 시간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감옥은 가장 안전한 기도의 골방입니다. 꿈의 사람 요셉이 감옥에 갇혔습니다.(창39:20)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은 요셉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곳이 아니라 요셉의 인생을 멋지게 세워주는 곳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을 산산히 부셔뜨리는 곳이 아니라 요셉의 꿈을 이루는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나는 망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이곳에서 당신의 꿈을 이루고 계셨구나. 
후일에 이 놀라운 계획을 발견한 요셉이 형님들을 만났을 때에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8)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흔히들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을 얻는 기도전법을 333전법이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의 전법이란 뜻이지요.

해변가에서 인명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여기 보니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재잘거리는 소리, 웃음소리, 고함소리가 어우러져 저토록 시끄러운데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절규와 비명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사람들이 기뻐서 재잘대는 소리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비명소리는 분명히 다르지요.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다.”

1.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하나님 내 민족을 살려주시옵소서. 한국교회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촛대를 옮기지 마시옵소서. 성령을 거두지 마시옵소서. 잠자는 내 민족을 깨워주시옵소서. 거인이 깨어나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는 이 땅의 교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공동체를 살려주시옵소서. 내 자식을 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똑똑히 들으십니다. 

“하나님 외롭습니다. 도울 사람 없어 외로웠습니다. 지쳤습니다. 하나님 세상에 도움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 내 손을 붙들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날 살려주십시오.” 
허우적 거릴 때에 하나님은 내 손을 똑똑히 보십니다. 

2. 오직 기도로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2-13)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모든 희망이 끊어진 것처럼 보일 때, 아무도 희망을 선포해 주지 않을 때, 세상 모든 사람이 죽게 생겼다고 말할 때, 그래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희망을 붙들고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선포하는 사람들 - 그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부르짖어 하는 기도, 그것은 결단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나이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모든 주권을 그분에게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시편 86편 7절에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Jone Wanamaker)는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도란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과 한 팀이 되어서 내 인생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는 것이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주님 앞에 두 손 뻗었을 때 하나님이 내 손을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과 한 팀이 되어서 아무리 큰 문제도 아무리 얽히고 설킨 문제도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하는 능력 그것이 기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자녀문제로, 가정의 문제로, 직장의 문제로, 나라의 문제로, 사업의 문제로 아파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서 쩔쩔매시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이야말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문제는 내 앞에 있는 풍랑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경험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지식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썩은 새끼줄 같은 세상 줄을 붙들고 살아가시겠습니까? 그것들을 놓을 때에 우리는 생명줄을 붙들 수 있습니다. 기도의 줄을 붙들 수 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의 손을 붙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도 크고 은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꿈도 꾸지 못했던,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놀라운 계획들 - 크고 은밀한 일들을 여러분 앞에 준비하고 계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합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333의 비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은밀한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민족의 위기는 바로 하나님을 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가 줄어드는 것 - 이것이 최대의 위기입니다. 

언젠가 「영성목회를 돕는 모임」이란 단체에서 “성도들의 기도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우 1인당 하루 평균 기도시간은 24분 25초였고 이는 매년 약 1분 20초 정도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3년이면 4분, 10년이면 13분 정도가 줄어들어 

평균 기도시간이 11분 남짓밖에 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한국교회 성도들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IV. 위대한 반전

 6절은 “그러나” 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는 역접 - 즉 반전 접속사입니다. 4절과 5절은 하나님의 소중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들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6절부터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치료가 선포되어집니다. 용서가 선포되어집니다. 회복과 영광이 선포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심판과 멸망의 예언은 부르짖는 기도를 통하여 위대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6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괴되고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성을 회복하고 다시 찾게 되고 새로워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오시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고쳐 낫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다가 병들어 돌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를 버리고 도망갔다 실패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성공으로 도와주게 될 것이다. 나의 풍요로운 세계를 떠나서 너희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에게 가락지를 끼우며 좋은 옷을 입히며 송아지를 잡으며 내 아들로 인정하여 줄 것이다. 

6절의 하나님은 고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이어지는 7절입니다.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다 할지라도, 다 잃어버리고 빼앗겼다 할지라도 그들을 다시 세우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실패와 절망의 걸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사업이 어려워서 나오셨습니까? 자녀들의 방황 때문에 울며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인간관계가 깨어지셨습니까? 사랑에 실패한 분이 계십니까? 가정에 커다란 어려움 때문에 울며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고통 때문에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까? 영적으로 유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가슴치며 달려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주님 앞에 나오면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7절의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어지는 8절입니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8절의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옥엔 용서가 없습니다. 내 가슴에 용서가 없으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용서할 줄 모르며 아내는 남편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상처받은 것을 가슴에 끌어안고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리하여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상처받은 마음이 묶여져서 혼의 묶임이 되어 또 다른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8절은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세상사람 그 누구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시간 돌아오면 내가 너희를 용서하리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회복의 클라이 막스는 9절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이미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던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던 백성들에게도 여전히 돌아오면 세계 열방 중에 너희들이 기쁜 이름이 될 것이다. 

‘꼴 좋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 망하게 생겼구나. 거지처럼 되었구나. 망하게 생겼구나. 아무도 저를 돕는 사람이 없구나.’ 세상에 조롱거리가 된 줄 알았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말미암아 회복되어졌습니다. 넘어진 줄 알았더니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축복받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저들을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나님이 저들을 쓰시는 구나.’ 이 모습을 바라보며 너희들이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칭송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이방의 백성이 너희들을 바라보며 두려워 떨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시나리오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내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내게 있음을 깨닫고 주님 앞에 돌아오기만 하면 그 목적을 이루도록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 나를 통해 교회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한국교회가 살아나고, 우리교회를 통해 민족이 살아나는 꿈을 꾸고 싶습니다.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운명의 노예가 되지 않겠습니다. 환경에 짓눌려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V. 다시 100일 새벽 부흥회로

1898년부터 1910년 약 12년 어간 우리 민족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계가 한민족을 버리고 한국 땅을 떠나 갔습니다. 힘없는 이 나라는 독사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마리 개구리처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일제 강점기로 빨려들고 있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끊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이 땅을 찾아 오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땅을 찾아 오셔서 이 백성을 깨워주셨습니다. 바로 이때 시작된 운동이 새벽기도 운동입니다. 새벽기도는 선교사들이 가르쳐 주고 선교사들이 시작한 기도 운동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친히 이 백성에게 가르쳐 주시고 이 백성이 응답하며 시작된 기도운동입니다. 

1989년 황해도 수안 사경회에서 처음 새벽에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1904년 평양 장대면교회 사경회에서도 새벽기도회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1907년 평양대부흥때 길선주 장로가 새벽기도회를 전국교회의 기도운동으로 주창합니다. 참으로 민족이 암울하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터널로 빠져들 때 기도만이 이 백성의 희망이었습니다. 새벽기도가 일제강점기 이 민족을 지켰습니다. 새벽기도운동은 애국운동이 되어 삼일만세 사건, 8.15해방으로 이어졌습니다. 기도 운동은 민족 백만구령운동으로 이어져 가장 고통스러울때 가장 힘찬 전도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함께 새벽에 일어나 함께 기도해야 할 때라고 느끼시지 않습니까?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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