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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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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45:1-8)

약 6년쯤 전에 들으신 <사실과 진실>이란 제목의 설교가 생각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블>에 보면 <쟝발장>이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몇 일째 굶고 있는 조카들을 위해 빵 몇 개를 훔치다 감옥에 갔습니다. 그 후 계속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기가 길어져 무려 19년을 감옥에서 지낸 후 석방됩니다. 석방은 되었지만 오갈 데 없이 거리를 헤매고 있던 그는 미리엘 신부를 만나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됩니다. 

하룻밤을 잘 자고 난 그는 신부가 자고 있는 틈을 타 은촛대를 훔쳐 나오다 경찰에 붙들렸습니다. 경찰은 그를 데리고 신부에게 갔습니다. <이거 신부님 것이 맞지요?> 신부는 한눈에 촛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신부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예. 제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그가 훔친 게 아니라, 제가 준 겁니다. 은그릇까지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건 안 가져갔더군요.> 

여러분, 분명히 쟝발장은 은촛대를 훔쳤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자신이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부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신부가 사실보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진실>은 다릅니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 것인 반면에, 진실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인 반면, 진실은 미래에 있을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부는 사실을 말하는 대신에 가슴속에 품고 있는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난 정말 저 불쌍한 사람에게 은촛대를 주고 싶다. 아니 은촛대뿐만 아니라, 은그릇도 주고 싶다. 난 저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 살길 바란다. 난 그가 다시 감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이것이 신부의 마음에 있는 진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이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눈에 드러난 대로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마치 쟝발장이 은촛대를 훔친 것이 사실이듯이, 우리도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인이라고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 속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난 그 사실에 입각하여 너희를 대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는 나는 내 마음의 진실을 따라 너희를 대하려 한다. 난 너희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로 복되고 존귀하게 살길 원한다. 누구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로 나오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고 살게 되는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진실 때문입니다. 
성도는 사실보다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만약 사실을 말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정죄하고 손가락질할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보다는 마음의 진실을 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가 어제 묵상한 말씀으로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과 그 형님들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은 십 칠세 때였습니다. 그 후 이십 이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들이 재회했을 때는 극심한 흉년이 두 번 들었을 때였습니다. 온 나라에 먹을 것이 떨어졌고, 백성들은 요셉에게 와서 곡식을 샀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가나안으로부터 곡식을 사기 위해 애굽에 왔습니다. 그들은 곡식 파는 일을 지휘하고 있는 높은 사람이 동생 요셉일 것이라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다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형들은 자지러질 듯 놀랐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형들이 놀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사람들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고 우쭐대는 모습도 보기 싫었고, 혼자만 채색옷을 입고 뽐내는 것도 보기 싫었습니다. 게다가 늘 자신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는 것도 괘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꿈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보니 가관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인즉슨 형님들의 곡식단이 자기 단을 향해 절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 별을 향해 절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꿈대로라면 부모와 형들이 동생에게 절을 한다는 황당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꿈을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녀석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형들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양털 깎는 자신들을 만나러 찾아온 요셉을 은 스무 개를 받고 지나가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동생을 인신매매하는 형들, 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요셉을 다시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찢어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보이며 말했습니다. <짐승에게 잡아먹힌 것 같습니다. 여기 그 옷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려 스물 두 해나 지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팔아버린 동생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들의 눈앞에서 곡식 파는 일을 지휘하고 있다니, 그들은 놀랐고, 두려워했습니다. 동생이 과거를 잊었을 리가 없고, 총리인 그가 복수하려든다면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요셉이 하는 말을 잘 보십시오. 먼저 요셉은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4절을 보실까요?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나는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무슨 말입니까? <형님들이 이십 이 년 전에 나를 팔지 않았습니까? 내가 바로 그 요셉입니다. 난 그 때 일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실대로 한다면 형들은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공포가 급격히 고조됩니다. 이것이 영화라면 음산한 음악이 점점 커질 대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본문은 기가 막힌 반전을 보여줍니다. 그 반전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분명히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을 판 사람들은 분명히 그의 형인데,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보낸 이는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형님들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까? 

여기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형님들이 나를 애굽으로 팔아버렸다>는 말은 사실에 입각한 말입니다. 그러나 <나를 애굽에 보낸 분은 하나님>이란 말은 요셉의 가슴에 담겨 있는 진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다면 형들이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을 따라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세상을 살 때,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을 생각하고 말하면서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선택에 따라 인생의 질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시 말을 내뱉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대로 말하는 사람>은 한 템포 늦게 말합니다. 그는 말하기 전에 먼저 깊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님들이 나를 팔 때 왜 막지 않으셨을까? 이 일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 끝에 고백하듯 말합니다. <저를 애굽에 보낸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겉으로 보면 형님들이 판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만 말하면서 사는 사람은 인생을 사람의 관계성 안에서만 생각합니다. 거기는 형님들과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팔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을 보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문제에 하나님을 포함해서 생각합니다. 그는 세상을 인간들만의 세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인간들의 세상 한 복판에 그 세상을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이 계심을 압니다. 언제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늘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셨을까?>라고 질문하면서 삽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동할 때도 눈으로 본 사실에 따라 행동합니다. 만약 요셉이 그렇게 했다면 그는 <형님들이 날 팔았고, 그것이 사실이니, 그 사실에 입각하여 형님들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님들에게 복수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형님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데, 이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에서는 가장 귀하고 사랑받는 아들이었지만, 그건 자기 집에서나 그럴 뿐이지, 밖에서는 평범한 목축업자의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세월이 더 지나면 그도 아버지처럼 평생 목축을 할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애굽 사람도 아니었고, 그의 신분은 노예였습니다. 더구나 그가 바로 왕 앞에 설 당시 그는 죄수였습니다. 그것도 안주인을 강간하려다 실패한 강간미수범이란 죄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간악한 그 여자가 자신이 유혹하려다 실패한 후에 요셉에게 덮어씌운 억울한 것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요셉의 억울함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애초부터 가난안에 살던 그가 애굽에 올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일부러 애굽의 총리가 되고자 했다면, 성공할 확률은 제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엄연히 애굽의 총리로서 바로 왕 다음 가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건 그가 애굽에 갔기 때문입니다. 형들은 그를 미워했고, 애굽에 팔았고, 그는 보디발의 집 노예가 되었고,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고, 그에게 억울한 죄를 씌웠고, 그는 감옥에 갔고, 거기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났고, 그가 바로 왕에게 그를 소개하게 되었기에 그는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일어난 일련의 과정은 마치 누가 미리 잘 짜놓은 각본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겉으로 보이는 대로 한다면 형님들이 나를 애굽에 보낸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로구나! 이게 진실이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데, 누가 막겠는가? 그러니 어찌 형님들에게 보복할 수 있겠는가?> 이게 요셉의 생각이었습니다. 

요셉의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하나님께서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애굽에 보내셨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알았습니다. 칠 년 동안 무서운 흉년이 들 텐데, 그 무시무시한 재앙으로부터 수백만의 백성들의 생명을 건지게 하시려고 자신을 보내셨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실에 따라 형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깊고도 오묘한 뜻을 파고들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6-7절에서 계속 보십시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 가족과 백성을 구원하려고 자신을 구원의 선발대처럼 보내셨음을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시겠습니까? 눈으로 보이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에 있는 진실, 그 하나님의 뜻을 읽으면서 살아야 할까요? 
저는 땅끝교회 성도 모두가 사람들의 차원에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사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삶을 사람들의 손에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사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날 팔지 않았소? 난 당신들에게 복수할 거요!>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사람의 차원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당신들이 날 팔았지만 난 하나님께서 날 귀하게 구원자로 쓰시기 위해 보내셨음을 압니다. 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차원에서 사는 사람,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사람은 사람들의 공격이나 이 세상의 고통 앞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비판과 공격 앞에서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 이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위대한 일을 하실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삽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있음을 믿습니다. 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실 것을 믿고 삽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람들의 공격이나 시련이나 고통들이 변하여 축복이 될 것을 알고 삽니다. 그래서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란을 면케 하시니 그가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물론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던 처음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을 때, 그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형님들을 증오하고 세상과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갔을 때, 어느 정도 치유되었던 그의 영혼의 상처가 다시 헤집어졌고,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랜 수수께끼가 풀리는 날이 왔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는 날이 왔습니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되었을 때, 바로 왕이 그를 총리로 세우던 그 날,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야. 수많은 사람들, 우리 가족들을 흉년에서 구원해내도록 하시기 위해 날 보내셨구나. 그리고 미성숙하고, 나밖에 모르던 부끄러운 내 모습을 개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연단을 시키셨구나. 아, 부끄럽다. 그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다니....> 그리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원망하던 그 때도 하나님께서 저를 형통하게 하시고,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늘 함께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저의 모든 인생을 맡기고 살겠습니다.> 

여러분, 수수께끼는 금방 풀리지 않습니다. 좀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은 십 칠년을 기다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질 때까지, 수수께끼가 풀릴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며 묵묵히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게 성도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형편이 어떠하든지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요셉과 같은 고백으로 살게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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