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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주는 나의 물 (요 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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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나의 물 (요 4:1-26)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유대를 떠나 사마리아로 길을 잡았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은 본래 북왕국 이스라엘 땅입니다. B.C. 722년 앗수르의 왕 사르곤 2세가 이곳을 점령한 후에 역사적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대신 바벨론에서 이방인을 데려다가 대신 사마리아에 거주하게 했습니다(왕하 17:24). 따라서 더 이상 혈통적, 종교적으로 선민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서서히 이방화 되어갔습니다. 
이러한 한 맺힌 역사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대하지 아니했고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본문 4장 9절에 『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본문 4장 10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고 했습니다. 

이 여자와 예수님과의 대화는 영적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그녀는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준 것인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자랑하는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본문 4장 14절에 『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없다고 했습니다(요 4:16). 이때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라고 했습니다(요 4:17).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본문 4장 18절에 『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남편은 인생을 만족케 하는 궁극적인 실존이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공간과 시간세계는 인간을 만족케 할 수 없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문 4장 25-26절에 『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가 자기 앞에 와 있는 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수 근원입니다. 
"내가 주는 나의 물"은 

Ⅰ. 야곱의 우물물은 다시 목마르는 물입니다. 

본문 4장 13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물을 사서 먹을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물을 사먹는 일이 없었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물을 사먹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은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요즘 질 좋다고 하는 수입품 생수나 바다 깊숙이에서 뽑아 올렸다는 이른바 심해 심층수는 음료수 값보다 훨씬 비쌉니다. 
여기 이 『 물 』은 야곱의 우물에서 솟아나는 자연수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땅에서 솟아나는 아무리 질 좋은 생수를 마신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갈증이 날 것입니다. 

『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다 』는 말의 상징적 의미는 사마리아인들이 보배처럼 간직하는 거룩한 문서들을 말합니다. 즉 모세오경을 의미하기도 하고 금세에서 인간들의 헛된 욕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좋은 생수를 마셔도 시간이 지나면 갈증은 계속됩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유전이나 조상들의 교훈과 율법은 인간들의 영혼의 갈증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여기에 『 먹는다 』는 말 "피논"( )은 현재능동태분사로 계속적 행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모스 8장 11절에 『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고 했습니다. 
"내가 주는 나의 물"은 

Ⅱ. 예수께서 주시는 그의 물은 영원히 목마 르지 아니하는 물입니다. 

본문 4장 14절에 『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영혼의 갈증으로 이해했습니다. 
시편 42편 1절에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5장 1절에 『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갈증을 해소하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여기 물질적 생수와 영적 생수를 구분하셨습니다. 
『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 』란 말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을 다함께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구원의 보편성을 가리킵니다. 
『 목마르지 아니한다 』는 말은 영적으로 기갈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 『 먹는다 』는 말은 13절에 나오는 "피논"( )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피에"( )를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부정과거능동태 가정법으로 단 한 번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고 했습니다(유 1:3).

전자는 계속적 의미가 있고 후자는 단회적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주시는 그의 물을 먹는 자는 단 한번으로 모든 갈증을 해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먹는다는 단어가 분사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계속적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지라도 여기에 쓰여진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관련해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결코 견강부회(牽强附會,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도록 함)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25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물과 피로 임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6절에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 물과 피 』는 요한복음 19장 34절에 『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고 기록한 성경을 말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해석은 물은 예수께서 요한에게 물로 세례 받을 때를 말하고 피는 십자가의 대속의 피라고 주장합니다. 
케린투스 이단(Cerinthian heresy)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분리시켜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문에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기록한 것은 이러한 이단들의 괴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 본문을 직역하면 "예수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물 안에서 그리고 피 안에서 임하신 자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을 통하여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시며 또한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내가 주는 나의 물"은

Ⅲ.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을 말합니다. 

본문 4장 14절에 『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성령님을 생수로 비유했습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 『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 솟아난다 』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여기가 유일합니다. 물이 솟는 목적은 영생을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약속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 영생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 확정된 영생을 성령께서 끝까지 보증해 주셔야만 합니다. 
성령께서 영생을 확보해 주시지 않으신다고 할 때 모든 것이 와해되고 말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과 성령께서 보증해 주시는 것을 이원화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9장 2절에 『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3:5). 이 말씀은 중생은 성령세례를 통해서 되는데 물세례는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상징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분리된 채 주님이 우리 밖에 계시는 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칼빈은 이 신비로운 연합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구원이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므로 구원이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다는 가능성을 일체 허용하지 않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우선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령을 아들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8절에 『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주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때에 자신이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8-20절에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오심은 어떤 의미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전우주적으로 확장시키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종말론적인 목표를 실현시키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in christ)와 성령 안에(in spirit),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christ in us), 성령이 우리 안에(spirit in us)라는 표현을 병행시키고 일체화 시켰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참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존 머레이(John Murry)는 이 연합을 "단순히 구원이 적용되는 과정의 한 국면이 아니라 모든 국면의 기초"라고 했습니다. 
에밀 부룬너(Emil Brunner)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개혁주의 구원론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이란 의미의 단어를 164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할 때 함께(with)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바울 서신에서는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를 사용했습니다. 

성령은 바로 연합의 영입니다. 성령은 땅과 하늘을 연결시키는 영입니다. 반대로 성령은 이질적인 두 존재를 분리시키시는 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격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인 특성입니다. 
제 1아담(원시 아담)과 제 2아담(예수 그리스도)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인격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① 거듭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②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③ 주의 나라를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④ 은혜 받은 은사의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에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 『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네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 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활용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영안실(靈安室)교회가 되지 않도록 합니다. 

⑤ 천국을 보장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4-5절에 『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고 했습니다. 

⑥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 했습니다. 

⑦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받는 사람입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10절에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라고 했습니다. 
벵겔은 "성령을 받고도 성령을 받지 못한 자처럼 하는 것은 인간 편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성령 받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주는 나의 물"은 생명이 되시는 예수 자신을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17:3).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셨습니다(롬 8:32; 요 3:16).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엡 5:25).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시 목마르는 것들뿐입니다. 물은 먹는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입니다. 성찬을 먹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살과 피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그의 모든 행사가 형통합니다(시 1:3).
그리스도가 주는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믿는)것은 복의 원천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먹지 않는(믿지 않는)것은 저주입니다. 

예레미야 17장 5-8절에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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