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 있는 사람 (시 1:1-2)

첨부 1


복 있는 사람 (시 1:1-2)

혹시 남자는 평생 여자 때문에 세 번 정도는 크게 아프다고 하는 말 아십니까? 그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첫 번째는 정말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프고, 또 정말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지지리 궁상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정말 사랑한 여인과 결혼해서 살다보면 머리가 아프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혼자 오해도 하고, 원망도 불평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지나쳐서 판단력이 흔들리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가 행복한가, 불행한가에 대한 판단마저도 흐려져서 나에게 주어진 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여러분, 새해가 되면 가장 많이 하는 인사말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복이란 과연 어떤 복일까요? 도대체 어떤 복을 많이 받으란 말일까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복을 이야기할 때 오복을 이야기했습니다. 즉 살아가는데 중요한 복을 다섯 가지로 꼽았다는 말입니다. 

먼저는 수(壽)를 말합니다. 한자로 천수(天壽)라고 하여 하늘이 정해준 수명을 누리며 오래 오래 사는 것이 복이다 그 말입니다. 둘째는 부(富)입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재물을 소유하는 것을 복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강령(康寧)입니다. 여기서 강(康)은 육체적 건강을 말하고 령(寧)은 마음의 건강을 말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복이라 했습니다. 넷째는 유호덕(攸好德)입니다. 즉, 덕을 좋아하여 남을 도우려 애쓰며 건전한 마음과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하여 마지막 죽음에 임해 고통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복중의 복이라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이것을 복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도 한 번 복에 대한 자기철학이나 개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교양과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이라는 것은 그가 생각하고 누리는 복의 개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무엇을 복으로 생각하며, 어디까지를 복이라고 판단하느냐가 그 사람의 전부를 볼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복에 대한 이해는 각기 다릅니다만 세 가지로 나누어 복을 이해해 봅니다. 먼저는 환경적인 복입니다. 주변 환경, 경제, 정치, 문화 등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복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나는 나대로 가만있으면서도 환경이 좋은 여건으로 전개 될 때 무작정 복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내가 복된 사람이 되지 못 할 때 사실 그것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고 흔히 말하는 복이 오히려 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상태적인 복입니다. 이것은 나의 삶의 자세를 말하기도 하고, 나의 건강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남에게 해코지 하지 않고, 나쁜 소리 안 듣고 이렇게만 살면 된다는 안주의 복입니다. 어떻게 보면 귀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마저도 참된 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뭐니 뭐니 해도 참된 복은 존재적인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의 영과 육, 존재의 그 권세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세상의 모든 일을 초연하게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그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에게 천국이 저의 것이 되는 복이 있다고 했듯이 모든 복의 근거는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여기 살고 있지만 높은 세계의 영광을 느끼고 살아가는 그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돈은 있는데 인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식은 있는데, 덕이 없습니다. 그것도 복이 아닙니다. 뭘 좀해서 재산은 모았는데 덕이 없어서 모든 인간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불행합니다. 또 권세는 있는데, 지혜가 없습니다. 이것도 복이 못됩니다. 그런가 하면 존경을 받지 못하고, 명예도 없습니다. 정말 굴욕적이고 부끄러운 생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장수가 복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오래만 살면 그게 복이더냐 말입니다. 그 복의 근거가 어디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복의 근거는 천국에 있다고... 

[하이럼 W. 스미스]라고 하는 사람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복되고 가장 소중한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주제파악입니다. 남들이 알고 있는 자기보다 더 자신을 모르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자신을 정직하게 똑바로 알아야 되는데, 그것을 몰라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 생각과 내 영혼이 얼마나 자유 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혹,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나,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괜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정직하게 볼 줄 아는 그것이 최우선적인 것이며, 두 번째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 말씀은 네 손에 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인식하란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중한 것이 정말 많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때에는 소중한 것인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참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만 주신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이 소중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또 하나는 그 소중한 것을 삶에 구체적으로 반영하면서 신념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만족하고, 이것만 있으면 행복하고, 다른 것을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명처럼 여기고 살 때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소중한 것에 대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이 소중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큰일을 하시려고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가치를 점점 더 넓혀가는 그런 생을 사는 것이 복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복 받으려고 사는 것보다 받은 복으로 복이 되게 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살아야 복 받는다. 혹은 이렇게 믿어야 복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복 받을 사람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복 받은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인가를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복된 삶이 되겠는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복 받으려면 이렇게 살라가 아니라 복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살아가야할 자세가 이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왜 악인인 줄 알면서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까? 욕심이 많아서입니다. 그래서 속이는 자도 잘못이지만, 속는 자도 잘못이 있습니다. 속는 일의 내막에도 욕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은 일을 생각해 보세요. 거기에도 내 욕심이 있었습니다. 왜 사기를 당했습니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은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 갈 수밖에 없고, 끌릴 수밖에 없도록 유혹하는 사람, 둘 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런 삶을 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복 있는 사람의 또 하나의 모습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다.” 는 말은 “망설인다.” 는 뜻입니다. 잘못된 길인 줄 알았으면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야지 무엇을 망설이고 있단 말입니까! 바로 이 미온적인 자세가 불행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미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세 번째 모습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선하려고 했고,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았던 것만 가지고도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간혹 보면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욕하고 모함을 하는 자리에 같이 있다가 발각되면 “나는 한 마디도 거들지 않았고 듣기만 했노라” 고 발뺌합니다만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만을 떨지 못하도록 한마디 하고 그 자리를 떠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있었으면 똑 같은 것입니다. 

자, 그러니 가장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기준으로삼고, 그 말씀을 표준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복 있는 사람이란 신앙이 체질화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한 가닥 하던 어떤 사람이 죽었더니 베드로가 “너 지옥 갈래? 천국 갈래?” 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자비를 베풀어서 두 군데 다 한 번씩 구경하게 해 달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갔더니 천사들이 노래를 부르고,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찬송을 부르는데 한참 앉아있었는데 따분해서 못 있겠더랍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보았더니 카지노도 있고, 술집도 있고, 아가씨도 많고 괜찮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저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인 것 같아서 지옥에 가겠습니다.” 고 했더니 지옥에 보내 주더랍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옥에 가보니 깊은 굴속 뜨거운 곳에서 일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왔던 곳과 다르다.” 고 했더니 천사가 말하기를 “그때는 관광비자로 왔고, 이번엔 영주권으로 왔기 때문에 다르다” 고 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지옥체질입니까? 천국체질입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천국체질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그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곧 신앙체질의 사람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