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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 (창 2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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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 (창 22:15-19) 

오늘은 구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이면 이제 구력으로 새해를 맞는 설날 아침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한 때 신정이라고 해서 1월1일을 설날로 보내기도 하였지만 구정이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매년마다 새해를 두 번 맞이하는 기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시 한번 축복의 인사를 드리면서 옆에 계신분들과 “새해에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라고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시험이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누구나 피해가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은 부담을 넘어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어려운 시험일수록 그 고통과 수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험일수록 잘 통과하게 될 때에 상급은 그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낭비하시는 법이 없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험이 크면 고통도 크겠지만 그 시험을 이기면 그만큼 우리에게 유익도 크다는 뜻일 것입니다.

시험에는 다시는 볼 수 없는 한번밖에 없는 정말 중요한 시험이 있는가 하면, 다음에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간단한 시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중요한 시험일수록 잘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아브라함은 정말 중요한 시험을 참 잘 통과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 최고의 시험, 가장 중요한 시험에서 만점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상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당연히 상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정말 중요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고 난 이후에 그가 하나님으로 받게 된 복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하기는 이 시간을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도 이와 같은 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복이 있습니다.

가깝게는 부모로부터 혹은 자신의 일터에서나 자신의 주변에서 ‘그 사람은 정말 믿을만해, 그 사람은 정말 성실해, 그 사람은 책임감이 있어’ 이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조금 서운하게 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쉽게 잊어버리거나 그 마음이 바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때는 ‘잘한다 잘한다’ 인정하는 듯 하더라도 한순간에 돌변하거나 잊어버리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아무리 인정받으려고 하더라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필요 없거나 무시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가 먼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나이 40에 자신의 힘으로 애굽에서 노예의 신분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좋아했습니다. 
그런 모세의 행동을 환영하고 지지했기에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을 비밀에 부쳤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중재하려고 하자 그들의 마음은 돌변했습니다.
자기들이 궁지에 몰리자 전에 그를 지지해서 비밀에 부쳤던 것을 누설하며 모세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끌어 이스라엘을 해방하려고 했던 모세는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서 그곳에서 40년간 사람과의 교제를 단절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자기 자신의 내면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모세는 스스로 자신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순종했을 때 사람의 인기, 사람의 인정을 받아 해보려했다가 실패했던 그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사람에게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우선해야 합니다.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큰 복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치룬 시험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의 시험은 사실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내인 사라도 아브라함이 무슨 시험을 치루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모리아 산 밑에까지 번제에 쓸 나무와 불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따라 갔던 종들도 아브라함이 무슨 시험을 받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셋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시험을 잘 쳤는지, 못 쳤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험을 잘 쳤다고 떡 해주는 사람도 없고, 축하해 주는 이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엄청난, 정말 견디기 어려운 시험을 치루고 당당하게 합격의 영예를 안고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어마어마한 큰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에 비해 여러분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도 이를 격려해 주거나 축하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도 내가 이런 시험을 통과했다고 자랑하거나 떠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승리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할렐루야!

누구보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인정하셨습니다.

12절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흐믓해 하십니까?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러분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을 확실히 인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15-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하나님이 맹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하거나, 다짐을 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또는 ‘하나님께 맹세한다’ 고 말합니다. 

인간의 약속은 쉽게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보다 더 큰, 더 위대한 분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얼마나 인정하셨으면 이런 표현을 사용했겠습니까? 
쉽게 말해 ‘너에게 주는 약속, 너에게 주는 복은 내가 보증한다, 내가 책임진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시는 것만큼 확실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시험을 이김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 보증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은 지위가 높아집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뜻은 대적의 성을 정복한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성문은 사회적 지위, 명예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성문을 차지하는 사람은 장로들입니다. 

장로들이 재판할 때, 성문에 나아가 앉았습니다. 이것은 다시말해 그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됩니다. 
다윗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다윗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이 되니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영원한 지도자이며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을 하시며 세가지 시험을 받으셨는데 모든 시험에서 능히 이기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마귀는 떠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음에 합당하게만 여기신다면 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 잠시의 인기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고 못 보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승리하는 인생이 될 것이며 우리의 지위는 저절로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험을 잘 통과함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다면 보람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시험을 잘 보고나면 외적인 복이 있습니다. 

입시생들이 시험을 잘 보면 좋은 대학이 보장될 것이며, 입사시험을 잘 보면 취업이 보장 될 것이며, 승진시험을 잘 보면 승진이 보장 되겠지만 이러한 것은 모두 외적인 복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적인 복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말해 보이지 않는 복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날마다 성장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성숙하고, 성장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이 얼마나 많은 시험을 받았습니까? 그러한 시험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하면서 그는 성장했습니다. 믿음이 자랐습니다.

마침내 가장 큰 시험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완전하게 승리했습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이 시험에서 승리한 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정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대장부이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시험을 이겼더니 ‘여호와 이레’ 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고 고백하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에서 체험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물론 체험이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칫 체험 중심의 신앙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 신유의 체험, 방언의 체험, 불세례의 체험,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이 인도하신 체험 등등, 이런 체험이 없다면 어떻게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 주를 위해 살며 순교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못 박히실 때에 모두 두려움으로 도망하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났을 때,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 그들은 담대 

해졌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도 체험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합니다. 

나를 치료하시고, 나를 건져주시고,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경험해야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나며 견고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시험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통이 있습니까? 아픔이 있습니까? 이것을 기회로 보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이 성장하는 기회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이며 자신의 또 다른 재능과 능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시험이 있든지 간에 이 시험을 통과하심으로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으므로 다른 사람을 복 받게 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 많은 복 가운데 이 복은 최고의 복이며 우리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이며 이렇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복을 받아야 합니까? 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왜 성장해야 합니까? 
내가 잘살기 위해서입니까?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쉽게, 고생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편하게, 다른 사람을 잘살게, 다른 사람을 고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17-18절을 보시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훈련하시고 시험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씨로 말미암아 만민을 살리게 하려고, 만민을 세우려고, 만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 그런 시험을 통과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있을 일을 예언하신 것으로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그 복이 성취되었습니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듯이 아브라함의 씨로 만민을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최고의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에서 이겼기에 우리가 구원받았으며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7절 마지막 부분에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신 말씀으로 ‘네 씨’ 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대적인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시험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은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계속 같은 시험이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단순히 나를 위해서만도 아닙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시험에 이김으로 내 가족이, 혈육이 행복해 지며, 내가 훈련받고 연단 받고 믿음이 자람으로 교회가 복을 받습니다.

이 사회가 행복해집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아브라함이 지금 몇 살입니까? 백살이 훨씬 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에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이제 무슨 더 큰 부귀영화를 누려 봤자 얼마나 누리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복은 단순히 일신의 안일함이나 평안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받은 복은 만민에게 복을 주기 위안 복이었습니다. 

그가 그 불같은 시험을 이겨야 했던 것은 그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거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직설적으로 왜 사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실 천국 갈 희망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유일한 소망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고통입니다. 육신의 질고로 매일 매일 싸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환경과 물질로 인해 고통 받는 현실 앞에 빨리 하나님께서 데려 갔으면 좋겠다고 원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내가 당해야 할 시험이 있다면, 자녀들을 위해서 이겨야합니다. 내가 아직 당해야 하는 시련과 고통이 있다면, 교회를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민에게 복을 받게 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복중의 복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시험을 만날 때, 그 시험을 이기면 이런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고,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복 주는 사람이 됩니다.

‘얼마나 좋은 집에 살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부자가 되었다, 얼마나 큰 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런 것보다 더 큰 복은 오늘 아브라함이 받은 복입니다.
그러므로 원하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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