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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16강,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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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실패'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는가


2002 한·일 월드컵을 치르며 필자가 눈여겨본 부분 중 하나는 차범근 MBC 해설위원과 신문선 SBS 해설위원의 입심 대결이다.

언제나 눈에 띄는 차이이긴 하지만, 차 위원은 경기의 디테일한 부분들을 시청자가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데 반해 신 위원은 표면적인 '뒷북'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울러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선수들의 실수를 대하는 자세이다.

신문선은 해설하는 내내 설기현이나 최용수 등을 말로 공격하기 여념이 없었다. 반대로 차 위원은 실수한 선수에게도 오히려 기운을 북돋우는 멘트를 했고, 어이없이 빗나가는 슛이 나왔을 때도 '저런 플레이가 상대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필자는 그 차이를 '현장 경험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신문선도 선수 시절이 있었지만, 큰 '물'에서 뛴 경험에 감독직까지 맡았던 차범근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문선이 자신의 패배나 실수에 대해 축구인으로서 책임질 기회를 가진 적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차범근은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국민 앞에 '실패'를 드러내야 했고 그것이 어떤 고통과 좌절을 가져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 위원은 선수들과 감독 편에 서서 그들을 엄호한다. 실패를 책임질 기회가 있었던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인 것이다.

서두에서 차 위원 이야기를 길게 꺼낸 이유는 단순히 해설 수준의 차이를 논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절망을 기억한다. 마치 16강 진출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모든 언론과 축구팬이 들떠 있었다. 그 와중에 '진출 못하면 어쩌지?'라는 재수없는 소리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16강'이라는 단어는 선수단을 강하게 압박했고, 월드컵 때만 강렬하게 표출되는 특이한 종류의 민족주의는 선수들이 펼치는 플레이를 축구가 아닌, 스포츠 전쟁으로 승화시켰다. 멕시코전 3-1 패배. 다음 상대는 일류팀 네덜란드. 냉정하게 말해 '이기는 게 기적'일 상황에서도 한국의 언론과 팬들은 '이길 수 있다'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 축구의 당시 실력이나, 열악한 축구의 기반, 언론의 문제점, 조직적 지원의 부족함 등은 생각치도 않은 채, 이길 수도 있다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결과는 당연한 5-0 패배. 이후 벌어진 대량의 살육전에 대해서는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감독의 대회 도중 경질, 언론의 차범근 살육, 벨기에전에서의 엽기적인 사투, 그리고 대회가 끝난 뒤 시작된 '한국 축구 이것이 문제다' 시리즈... 4년마다 한번씩 되풀이되는 악몽같은 디스토피아. 저주스런 민족과 국가와 언론과 집단의 스포츠 정신 살육.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왜 실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일은 없다'라고 굳게 믿다가 겪는 실패가 얼마나 처참하고 증오스런 것인지 그렇게 겪고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축구도 어차피 스포츠이며, 스포츠에는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패자가 되었을 때 짓밟는 것보다는 다시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다. 그런데 4년에 한번씩 걸리는 집단 최면에는 그런 기본적 상식도 아무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이번 월드컵이 몹시 소중한 기회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일본이 단독 개최할 것을 부랴부랴 공동 개최로 만들어냈고, 여러 개의 수준급 경기장도 완성했다. 세계 수준의 감독을 영입해서 정말로 축구다운 축구를 펼치는 대표팀이 조성되었다. '붉은 악마'라는 유례없는 서포터즈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장되어, 누구도 부럽지 않은 응원 열기도 조성되었다.

정말로 아까운 기회임에 틀림없다. 개최국이 16강에 탈락한다는 것은 '망신'이기에. 정말로 이번엔 한국팀이 축구를 '잘'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번에 못하면 또 다시 4년간 힘들게 기다려야 하기에.

그런데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승리를 따낸 뒤 돌아가는 판세는 시계를 4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미국전을 앞둔 상황을 반추해보자. 모든 언론은 미국전 승리가 기정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고, 모든 방송은 승리를 확신하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을 화면에 내보냈다. 반미 감정까지 어우러져 미국전 승리는 당연한 것, 혹은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각인되었다. 어디에서도 '무승부나 패배가 있을 수 있다'는 견해는 보이지 않았다.

미국전이 믿기지 않는 무승부로 끝나자 상황은 어떻게 돌변했던가? 우선 16강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한국이 포르투갈에 비기거나 이기면 자동 진출. 폴란드가 미국 이겨도 진출. 한국이 져도 폴란드가 몇 골차 이상으로 이기면 진출. 그 가운데서도 온 국민과 언론이 가장 입맛을 다시는 것은 '포르투갈전 승리'로 자력 진출하는 시나리오다.

한국은 금방이라도 포르투갈을 이길 것처럼 보인다. 물론 4년 전과 상황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이제야 비로소 축구다운 축구를 펼치고 있으며, 전술을 이해한 가운데 경기에 임하고 있다. 선수들이 각자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인터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미국에 졌다고 해서 그렇게 '이긴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상대는 아니지 않은가.

한국이 2-0으로 이긴 폴란드에 포르투갈은 4-0으로 이겼다. 한국이 포르투갈에 이기지 말라는 법이 없듯이, 마찬가지로 강호 포르투갈에 무릎을 꿇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이것이 재수없는 소리로 들린다면, 우리는 4년 뒤에 또 똑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끔찍한 상상을 해본다. 모든 16강 시나리오가 빗나가서 한국은 포르투갈에 지고 미국은 폴란드를 이긴다. 붉은 악마들은 눈물을 흘리고 선수들은 주저앉아 슬픔을 억누른다. 언론은 '역시 역부족'이란 기사로 도배질을 하고 히딩크는 냉대 속에 한국을 떠나며 잔여 월드컵 경기 역시 찬바람이 불어닥친다. 아무도 남은 월드컵 경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폐막 후 시작된 프로축구 경기장은 썰렁함 그 자체이다.

다시 새로운 대표팀 감독이 선임되고 평가전에서의 승패 하나하나에 일희일비를 거듭하다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조 편성은 여전히 불운하고, 그래도 이기지 못할 팀은 없는 것처럼 언론의 분석은 계속된다. 월드컵이 시작되자 다시 온 국민이 축구팬이 되고, 정치인들이 경기장을 찾아 선거에 이용하고...

정말로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적 있는가? 만일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발전된 축구팀의 기량에 만족하고 그들을 독려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인가. 혹은 실수한 선수들을 비난하며 한국 축구를 냉소할 것인가.

광화문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이, 즐겁게 골 세리모니를 하던 선수들의 표정이, 두 주먹을 불끈 쥐던 히딩크의 모습이. 또 다시 4년 전으로 되돌려진 시계추에 의해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도록 힘과 생각을 모아야 할 때이다.

신문선은 최용수가 홈런볼을 찼을 때 "말도 안 되는 실수"라고 비난했다. 차범근은 같은 상황에서 "저런 플레이가 상대에게 위협을 준다"고 독려했다. 어쩌면 해답은 거기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작성자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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