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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준이 다르면 수준이 달라집니다 (레 2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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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 다르면 수준이 달라집니다.(레 26:3-13)

“엄마의 기준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님의 아내인 장애영 사모가 아들 최승호군을 말씀으로 양육하여 만 15세에 최연소로 연세대학교에 합격하고, 만 21세에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합격시킨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양육할까 관심을 가지고 육아 교육법에 대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서로 상이하여 기준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 양육의 절대 기준을 잡았다고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자녀양육의 단 하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기준이 나의 수준을 만든다! 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아이를 양육했더니 오늘날과 같은 수준 있는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아이를 양육한 방법을 “주교양양육법”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성경을 기준으로 자녀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첫 번째가 “부모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자녀양육은 순종연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먼저 다루시는데 부모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자녀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체질로 키우라고 권면합니다. “자녀양육은 하나님의 기준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보면 욕구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욕구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발전하면 상대도 생각합니다. 이성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양심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더 나가야 합니다. 믿음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육안이 기준이 아니라 심안이 기준이 아니라 영안의 기준까지 기중이 올라가야 합니다. 기준이 올라가면 우리 인생 수준도 높아집니다.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의 기준을 정해놓고 살아야 합니다. 목사가 되면 목사의 기준을 정해 놓고 살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목사가 땅 투기나 하고 사기나 치면 얼마나 수준 이하의 삶으로 조롱을 받습니까? 

성도는 성도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욕에 충실했던 장희빈에 대한 유머가 있습니다. 인현왕후를 시해하려다 발각되어 숙종에게 사약을 받게 되었답니다. 장희빈은 억울하다고 발악을 하였답니다. 사약이 내려지자 사약 그릇을 들고 숙종에게 달려가서 외쳤답니다. 사약을 보이며 "이것이 진정 마마의 마음이시옵니까~??" 이 말을 들은 숙종은 두 눈을 지긋이 감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마음은 그 사약그릇 밑에 적어 놓았느니라~!“ 

한가닥의 희망을 잡은 장희빈은 얼른 그릇 밑을 보았답니다. 그 글자를 본 장희빈은 사약을 마시기도 전에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버렸답니다. 사약 그릇 밑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답니다. "원샷~!!!".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높은 기준을 가지고 산 신앙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블란디나라는 노예 출신의 여성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천대받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으니까 기준이 달라지고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순교의 현장에서 잔인한 고문을 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물 속에 있는 사자에게 던져져 사자밥이 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처녀 포타미아이나는 잔인한 짐승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고문을 해조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국 끓는 가마솥에서 어머니와 함께 서서히 죽였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사형집행을 한 바실리데스가 모녀의 순교 장면을 보며 감동을 받고 변화되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도 참수형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얼마나 수준이 다릅니까? 

서머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재판관이 황제를 두고 맹세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석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86년 동안 나의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섬겼으나 그분은 나를 한 번도 저버리신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나의 왕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기쁜 마음으로 화형 기둥에 올랐고 화형당하면서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012년 첫 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1. 우리는 새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을 정하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모세는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삶의 기준을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지켜야 할 법입니다. 레위기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의 현장에서 신앙 및 생활원리로 지켜야 할 율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장을 통하여 결론적인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결론적인 기준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 가지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이끌어가는 중심사고의 문제입니다. 자신을 지배하고 끌고 가는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입니다. 그 중심사고를 기준으로 인생은 살아가고 그 중심사고가 무엇이냐에 따라 인생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우상숭배는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됩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하나님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드라빔 숭배(삿 18:14), 송아지 형상 숭배(출 32:4) 놋뱀 숭배(왕하 18:4), 일월성신 숭배(왕하 17:16), 천사숭배(골 2:18) 금수와 버러지 형상 숭배(롬 1:23) 바알신, 아세라신, 몰렉신. 이런 것들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를 주고 건강을 주고 행복을 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북이 대치된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사람을 이끌어 가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중심사고가 무엇입니까? 북한을 이끌어가는 중심사고가 무엇입니까? 김일성이, 김정일이, 김정은이 성은을 베풀어 먹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성이라는 유일의 태양신을 중심으로 김정일, 김정은 삼위일체 우상을 섬깁니다. 집집마다 사진을 걸어 놓고 각 가정에서는 설날마다 당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을 때, 초상 사진 앞에 경례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회적 행사에서는 반드시 당 최고의 구호를 외치며 초상 사진 앞에 경배를 함으로서 행사를 시작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시키는 구호는 무려 1,200가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사상 연구실'에서 주 1회씩 연구모임을 갖습니다. 일종의 정기예배와 같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된 말씀을 읽고 그들의 업적, 사상, 전통 등을 다시 교육받는다고 합니다. 이 모임에 올 때는 복장을 단정히 해야 하고 연구실에 입장할 때는 깨끗한 버선을 신고 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성소(聖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우상입니다. 

남한은 어떻습니까? 돈이 행복을 주고 돈이 평안을 주고 돈이 기쁨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부패된 인간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우상을 섬깁니다. 

존 칼빈은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같아서 계속해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을 만들어 냅니다. 자기를 우상화합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마음의 첫 자리에 놓은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내 마음의 첫 자리, 최우선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인생을 끌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면 그것이 다 우상입니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수도, 권력일수도, 지식일수도,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나로 하여금 편안한 자세로 앉게 하시고 가벼운 오락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육신을 기름지게 하시며 그의 이름을 위하여 아무 할 일이 없게 하시는도다. 내가 비록 여가의 시간을 보낼지라도 일어나 애쓸 필요가 없음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잊게 하여 주시고, 모든 재밋거리를 안겨 주시는도다. 세상의 잡다한 것을 무수히 알게 하며 모든 자극으로부터 무디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게 하시며 기도의 시간을 빼앗아 가시니 내 잔이 텅텅 비어가나이다. 그런 대로 재미있고 흥미 있는 일들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텔레비전 옆에 영원토록 거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거하게 되는도다.” “돈은 나의 목자” “권력은 나의 목자” “명예는 나의 목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1-6)”

내 마음의 첫 자리, 최우선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으면 인생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둘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시간적 측면에서 구별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시간의 우선순위의 기준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6일간에 걸쳐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쉬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근거는 천지 창조의 완성에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종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자유민이 된 것을 기억하고 그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주이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지키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주님이시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주일은 다른 날과 구별되게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6일 동안 힘써 우리의 모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기준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 손해가 아닙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경제적 손실이 아닙니다.

18세기 말 경 프랑스 혁명 후 무신론자들에 의해 프랑스에서는 10일 휴일제가 실시된 적 이 있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이 제도가 국가 산업발전을 위한다고 하였으나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산업재해가 급증하고 생산량도 40%나 감소되어 프랑스는 다시 7일 휴일제로 환원하였습니다. 소련에서 공산혁명을 일으킨 무신론자 레닌은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하루 분의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8일 휴일제를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생산성은 그 전보다 30% 감소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는 등 규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사망위험이 약 20%가량 낮다고 합니다. 미국 뉴욕 예시바대학 연구팀은 9만 2,395명의 50∼79세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가족이나 친구 등의 사회적 지지가 강하고 담배를 덜 피우고 술을 마시지 않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어 사망위험이 낮을 수 있지만 이런 요인 말고도 신앙생활 자체가 사망 위험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The Times'의 보도에 의하면 최소 한 매주 한 차례라도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7년이나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시간은 주일을 우선순위하고 주일의 기준을 높이면 인생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셋째는 성소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일의 우선순위의 기준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앙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그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때 하나님은 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다고 말씀했습니까? 출애굽기 5장 1절 이하를 보십시오.

예배의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절기 지키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3장 12절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인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희생을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지시를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10장 9절도 보십시오. "모세가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출 10:9)"라고 바로에게 말합니다. 정치적 자유나 경제적 자유보다 본질적으로 예배의 자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목적은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유를 주니까 그 자유를 욕망을 발산하는 도구로 사용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배하는 자를 찾습니다. 일의 우선순위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기준으로 놓고 일해야 합니다. 

영국의 명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은 "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자리가 어떤 자리보다 더 존귀한 자리입니다. 

미국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 장군은 헌법에 의거,1849년 3월4일 대통령에 취임해야 되는데 그날이 주일이라 취임을 거부하여 에치슨 상원의장이 24시간 대통령 임무를 대신했습니다. 주일 예배가 대통령 취임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토저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일의 가장 우선순위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일에 있어서 예배를 기준으로 배치하고 예배의 기준을 높이면 인생의 수준은 달라집니다.


2. 우리는 새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기준이 높으면 수준도 높아집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수준을 높여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첫째 말씀으로 기준을 높이면 경제적인 수준이 높아집니다.

경제적 수준을 높이려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님이 다스려 경제적 유요를 누릴 수밖에 없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철따라 비를 주십니다. 가장 적당한 때 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적제 적시에 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건조지역이기 때문에 비가 중요합니다. 12-2월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고 5-10월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관계수로가 발달되지 않은 당시에는 적시에 내리는 비가 풍작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축복과 은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월에 보리타작을 시작하고 밀타작은 4월말 5월 초에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대 풍작으로 말미암아 포도를 딸 7월까지 타작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이 그토록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과장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포도 역시 대풍으로 보리 파종기인 10월까지 계속될 것을 말씀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물질적 풍요을 주십니다(9) 전에 거둔 수확을 먹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금 새 수확을 거두게 될 정도로 풍요를 누립니다(10)

12월 13일 신문을 보니까 180억원 유산 상속 받은 고양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주인 없이 로마를 떠돌아다니던 고양인데 지난 11월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백만장자 마리아 아순타가 입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면서 180억 원을 고양이에게 상속해 주었답니다. 떠돌이 고양이도 인간 주인 하나 잘 만나니까 갑부가 됩니다. 우리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우리 인생 어떤 환경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으며 부한 사람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적인 부가 아닙니다. 꼭 돈이 많아야만 부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말씀으로 기준을 높이면 우리가 거하는 삶의 기반 환경 수준이 높아집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정치 환경입니다. 북한이 오판을 하여 전쟁을 일으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는 명분으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 패권을 이어가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안전하게 거주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희 땅에서 안전히 거할 것을 말씀합니다. 평화롭게 살 것을 말씀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성한 가운데 누리는 정신적인 평화(살롬)을 의미합니다.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평화가 보장된다는 말씀입니다. 누울 때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민족 내에 사회 기강을 어지럽게 하는 폭력이 없을 것을 말씀합니다. 사나운 짐승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이나 전쟁으로 참상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을 약속합니다. 비록 적군이 쳐들어 온다 해도 이스라엘이 대승할 것을 말씀합니다(7) 다섯이 백을 쫓고, 백이 만을 쫓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번성케 하고 창대하게 할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언약을 이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말씀으로 기준을 높이면 신앙적인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성막을 세우십니다. 누가 세웁니까?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왜 세워 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면 우리 삶은 그것으로 최선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영원히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그들을 보살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애굽 땅에서 인도해 주신 하나님입니다. 종되었던 것을 면케 해 주신 하나님입니다. 멍에의 빗장을 부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말씀으로 신앙이 수준이 올라가야 합니다. 어느 권사님 골절이 되어 병문안 가서 기도하는데 권사님이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해요. 평소에 자식들 우환질고 있으면 저에게 달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자신이 넘어져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해요. 얼마나 성숙한 신앙입니까? 그냥 남편 은퇴했다고 내팽개쳐 놓고 홀로만 놀러 다니는 권사님들 보다는 얼마나 수준이 높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60대의 후반의 노부부가 자녀들을 모두 분가 시키고 단 둘이서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왕년에 한가락 하던 남편이었지만 은퇴하여 늙은 백수건달이 되어 별로 할 일이 없어서 허구한 날 집에 처 박혀 있거나 근처공원으로 산책이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답니다. 이제까지 위세 당당했던 남편 그늘에서 죽어지내던 권사님이 매일 같이 매일같이 교회 모임이다, 동창 모임이다, 계모임으로 밖으로 다녔답니다. 남편은 완전히 집 지킴이로 전락하고 말았답니다. 외출할 때마다 집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당부하기를 "까불 지 말라"고 했답니다. 까-- 가스 조심하고 (가스 스위치 열어 놓고 깜빡 하기 잘하니) 

불-- 불조심하고 (혼자 집 지키다가 불 내면 큰 일이니까) 
지-- 지퍼 단단히 잠그고(바지 지퍼 열고 다니는 백수들이 많으니) 
말-- 말조심하고 (친구들과 말 한 마디 때문에 다투는 일이 잦으니) 
라-- 라면 끓여서 점심 드시라 (혼자 놔 두면, 곧 잘 점심을 거르니)

육십이 넘으면 남자와 여자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남자는 건강, 아내, 재산, 취미, 친구 순이지만 여자는 재산, 친구, 건강, 애견, 남편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애견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웃자고 누가 지어낸 이야기겠지요. 

우리 신앙인들은 부부의 관계도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순종하는 관계를 죽을 때까지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 삶의 수준이 올라갑니다. 

이 하나님이 2012년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모든 인생의 무거운 멍에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며 똑바로 걷게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2012년 기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상을 만들지 말고 인생을 이끌어가는 중심사고의 기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 붙들고 시간의 기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주일의 기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성소를 공경하라는 말씀 붙들고 예배의 기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새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 높은 삶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첫째 말씀으로 기준을 높여 경제적인 수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으로 기준을 높여 삶의 기반 환경 수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셋째, 말씀으로 기준을 높여 신앙적인 수준이 높아지시기 바랍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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