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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월드 파이터(The Fighter of this World ) (엡 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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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파이터(The Fighter of this World ) (엡 6:10-13) 
 

1. 우리는 전투 중입니다.

지난 주간 저는 제 아내에게서 한 집사님이 들려주신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교회 가까운 어느 商街에서 자신을 우리 교회 권사님이라고 소개하면서 다른 교회 교인 사업체를 방문하여 신천지 전도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천지인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신천지 모임에 신광교회 교인들을 비롯하여 여러 교회 교인들이 오는데, 각 교회 교인들마다 어떤 특정한 표시를 한다는 겁니다. 

신광교회 교인은 어떤 색깔의 표시를 하고, 다른 교회 교인들은 또 다른 색깔의 표시를 하고 …. 그들이 우리 교회를 흔들기 위하여 일부러 그런 말을 흘리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사악한 무리들이 작년에는 신광교회 안에 신천지 고정간첩을 확실하게 심어두었다고 해서 고민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우리 교인인 것처럼 詐稱하고 다니면서 교회를 욕먹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주 목회자 포럼 신년하례회 때 문창교회 목사님 말씀이, 최근 신천지 중간간부가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왔는데, 그의 말이 “ㄷ 교회는 이미 접수했고 올해는 ㅁ 교회를 접수할 차례다”라고 했다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거룩한 교회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이 사악한 무리들을 어떻게 쳐부술 수 있을까요? 이 생각 때문에 한동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우리의 적이 이 신천지뿐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이비 집단으로서 안식교의 亞流인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집단은 주요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냈습니다. ‘하나님 어머니’를 섬기는 자신들이 마치 기성 교회와 똑 같은 것처럼 말이죠! 그런가 하면 한국 기독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은 이단성이 다소 의심스러운 몇 교단과 교회를 정 회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정에는 그들이 가진 돈이 있습니다. 맘몬주의, 즉 재물 때문에 신앙과 신학의 기준마저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 보다 더 심각한 적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몰려오고 있습니다. 한기총이 제작하여 배포한 <이슬람이 몰려온다>라는 영상물을 보면, 얼마 전 SBS가 제작 방송하여 기독교를 폄하하고 훼손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은 예수님을 신화적 존재로 결론지은 반면, 이슬람에 대해서는 호의적 시각을 드러내었습니다. 이것은 이슬람이 한국 포교를 위하여 SBS를 이용한 것으로, 기독교를 卑下하고 상대적으로 이슬람을 우월한 종교로 포장한, 이른바 이슬람 홍보용 방송물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무슬림은 15만 명의 내국인을 포함하여 외국인 근로자까지 전체 40만 명이라고 하는데요, 2020년까지 1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목표로 그들의 포교 전략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거세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을 겉으로 드러나게 공격해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이슬비에 옷 젖듯이 은밀하게 성도들과 교회를 흔들어 왔으며, 교회 안에, 성도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것들입니다. 미국 듀크 대학교에서 신학윤리학을 가르치는 Stanley Hauerwas와, 미국 연합감리교회 감독인 William H. Willimon은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Resident Aliens>이라는 책에서 역사적으로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만든 세 가지 사상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관련되는 것으로 ‘교회와 국가의 기형적인 통합을 성취한 콘스탄틴 주의’라는 것입니다. 이 사상은 교회가 세속권력을 지배하게도 했고, 세속권력의 종노릇하게도 만든 이론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철저히 세속적이게 만든 사상인데요. 그 이유는 이 사상이 기독교를 자기 시대 자기 사람들에게 당시의 표현에 따라 해석하여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즉 철학의 시대에는 철학의 논리로 복음을 설명하고, 과학의 시대에는 과학의 논리로 복음을 설명하고, 물질 자본주의 시대는 경제논리로 복음과 교회의 역할을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맞추다보니 그들은 복음을 일반적인 진리로,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상은 현대에 와서 교회를 국가의 충실한 협조자로 만들어 국가가 하는 일을 지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것이나 베트남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교회가 적극 지원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죠. 또한 이 사상은 목회자들을 시대의 助言者가 되고 協力者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복음을 변질시키고, 교회를 세속화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변질시킨 두 번째 사상은 ‘이성과 신앙의 통전성을 해체한 계몽주의’입니다. 통전성이란 ‘완전한 일치’, 뭐 그런 뜻인데요. 계몽주의가 이성과 신앙의 통전성을 해체했다는 말은 신앙과 이성, 합리, 지성, 과학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과 학문, 혹 신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영역 혹 다른 분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원래 신앙이라는 것이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고,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거야. 

그래도 믿으라면 믿어!’라는 말, 아마 여러분도 들었거나 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잘못된 말이 마치 기독교의 바른 입장인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온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 세상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하자, 예수님은 그 온 세상을 위한 구주로 오셨고, 온 세상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과 구속에 있어서 예외인 분야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충분히 이성적이고, 충분히 과학적이고, 충분히 합리적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만든 세 번째의 적은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개인들의 沙上樓閣으로 변질시킨 개인주의’입니다. 교회는 철저히 共同體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개인보다는 교회공동체를 부르셨고, 그 공동체를 통하여 일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개인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나만 잘 믿으면 되지’, ‘나 혼자 만 하나님 잘 믿고 나 혼자만이 그 믿음대로 살면 되지’하는 개인주의적 신앙을 갖게 했고, 그 결과 교회를 개인주의 집단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주 안에 개인은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와 그 지체들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드리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교회가 싸워야 할 것, 성도가 싸워야 할 대상 중에는 교회를 세상과 구별되지 않게 만들어버린 사상(콘스탄틴주의), 신앙을 무식하고 질이 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이론(계몽주의), 그리고 교회를 개인주의자들의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개인주의’라는 대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교회가 맞서 싸워야 할 적들, 성도가 싸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와 많은 성도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敵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갈등하고, 교인들끼리, 지도자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 싸울 거리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어 문제입니다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교회의 對敵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싸움의 대상, 적이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우리의 主敵이 누군지, 즉 성도와 교회가 싸워야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그 싸움을 잘 대비하여, 싸워 이길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主敵은 사탄입니다.

1) 주적을 확실히 아십시오!

오늘 본문은 성도의 싸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합니까? 먼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12). “마귀의 간계”, 즉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이라는 것이죠(11,12). 그러니까, 성도와 교회가 당하고 있는 이 모든 싸움은 공중권세 잡은 자, 즉 이 세상과 각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통치자들,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등으로 術數를 벌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탄이 걸어오는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적은 누구입니까? “마귀”입니다. 11절에 나오는 이 “마귀”라는 이름은 ‘방해자, 반대자, 대적자’란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사탄’이고, 헬라어 이름이 한자를 빌어 ‘마귀’가 되었지요. 이 사탄은 유일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요, 인간을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마4:1-, 13:39, 눅4:1-, 8:12,요13:2, 행10:38, 엡4:27,6:11, 딤전3:6-7, 딤후2:26, 약4:7, 벧전5:8). 그리고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를 이간질하는 자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범죄케 만드는 자입니다. 

사탄은 이러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신비한 현상을 이용하기도 하고(욥1:2, 살후2:9), 사람의 마음에 나쁜 생각을 주입하기도 하며(마4:3), 질병을 유발하기도 하며(눅13:16), 때로는 죽음으로 사람을 위협하기도 하고(히2:14), 심지어 때로는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은 신인 것처럼 속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이 친해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예배를 방해하고, 헌신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갈등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불신자들이 교회 나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탄이 가장 효과적으로 써 먹는 전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신자로 하여금 ‘주적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존재를 잊게 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은 신자로 하여금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전을 가장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함으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여러분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요, 우리 삶과 신앙의 최대의 방해꾼인 사탄을 인정하고 의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사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탄의 가장 큰 목표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를 방해하고 유혹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C. S. 루이스는 “마귀가 가장 잘 조종하는 사람, 마귀가 마음대로 이용하는 사람은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 누가 높고 낮은지를 따지게 하고, 상대방의 약점과 허물만을 보게 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남편과 아내가 갈등하고 싸우게 하며, 부모와 자녀가 싸우게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서로 싸우는 그 이면에 누가 있을까요? 사회의 갈등과 분열, 그 뒤에 누가 있을까요? 이렇게 마귀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를 깨뜨리고 우리의 가정에 갈등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나 지역을 붙들고 주님의 복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먼저 신앙생활은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고, 그 상대가 마귀 사탄이라는 것을 또한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마귀와 싸워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 싸움의 방법도 확실히 아십시오!

오늘 본문은 사탄과의 싸움을 이기기 위하여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하나님의 全身甲冑를 취하라”고 권합니다. ➀ 이 말씀이 일러주는 첫 번째 싸움의 방법은 성도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선 자리, 성도가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너희가 주 안에서!” 즉 성도가 있는 곳은 ‘예수님 안’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주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십니까? 주 안에 있을 때 주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능력은 어떤 능력입니까?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1장 19절부터 22절에서“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지극히 크시다는 것, 그 능력은 죽음을 이기신 능력이요, 부활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신 능력이요, 온 세상과 모든 피조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만드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 안에 있을 때 바로 이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6절에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강함은 주 안에 있을 때입니다. 우리의 강함은 우리의 힘이나 세상의 富와 貴, 勸力과 組織 등 그 어떤 것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강해집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강함이시오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시려거든 주 안에 머무십시오. 말씀과 더불어 가는 것이 주 안에 머무는 방법입니다.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주 안에 머무는 방법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예배를 중심으로, 성도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주 안에 머무는 길입니다. 항상 주 안에 머물러 그 힘과 능력으로 강건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➁ 두 번째로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성도는 “하나님의 全身甲冑”를 취해야 합니다.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어떤 면에서 이것은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의 부연설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 전신갑주의 첫 번째 요소인 “진리의 허리띠”를 보십시오. 허리띠는 옷을 입고 그 마지막으로 옷을 마무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사탄과의 싸움에 임하는 성도는 말씀으로 옷 입고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둘째는 “의의 흉배”입니다. 흉배는 심장, 가슴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양심을 공격하고 定罪하고 헐뜯습니다. 우리가 실수하거나 죄를 지으면 그것을 가지고 꼼짝 못하도록 얽어매지요. 그때 여러분의 속사람과 양심을 보호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義입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의 의를 힘입어 주님 앞에 설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고 있으면, 그 어떤 강력한 무기가 공격해 와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 

세 번째는 “복음의 신발”입니다. 복음을 신고 있는 사람은 곧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사람이요 세상을 향해서도 담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단이나 귀신들에 대해서도 담대합니다.  

네 번째는 “믿음의 방패”입니다(16). 살아계신 주님,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 그리고 사탄의 모든 권세를 파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 그는 그 믿음 때문에 어떤 종류의 공격이 와도 그것을 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

다섯 번째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확신, 천국에 갈 확신,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 

여섯 번째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모든 공격을 이기게 만드는 결정적인 무기입니다.  그리고 전신갑주를 구성하는 마지막의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싸움의 현장으로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사탄이 걸어오는 싸움, 그것은 이단 종파가 걸어오는 싸움의 모습일 수 있고, 이슬람과 같은 거대한 자본과 힘을 가진 종파와의 싸움일 수도 있으며, 이념적이고 사상적인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종류의 싸움에서 여러분이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 주님의 힘과 능력을 덧입는 것이며, 항상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삶이며, 믿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담대한 삶이요,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이며, 구원의 확신, 천국에 갈 확신,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확신을 가진 삶이요, 기도하는 삶입니다. 

이 방법들은 아주 오래 된 것이고, 일부 사람들은 단순무식하다고 하는 것들이며, 인간 이성이나 과학과 전혀 다른 분야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탄이 그 어떤 궤계로 공격해 올지라도 이것들만 무장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40일 금식하신 후 굉장히 배고프고 몸도 마음도 정상적이지 못한 최악의 상황에서 사탄이 시험을 걸어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기도하신 이후였고, 그리고 말씀으로 그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이 싸움의 방법, 이 싸움의 기술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 어떤 형태의 싸움이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천국의 ‘파이터’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라는 것을 아십니까? 아마 40대 초반 이하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이것은 제법 오래 된 컴퓨터 게임 중 하나인데요. 이 <스트리트 파이터>는 실존 인물인 한국계 공수도 유단자인 최영의 선생의 제자인 ‘극진의 호랑이’ 소에노 요시지를 모델로 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이 게임은 자신이 한 캐릭터를 정하여 그 캐릭터로서 다른 캐릭터들과 싸우는 것인데요. 각 캐릭터, 달리 말하자면 게임의 등장인물에게는 각자의 필살기, 즉 그가 가진 고유의 싸움 기술이 있습니다. 누구든 그 캐릭터와 캐릭터의 필살기를 잘 이용하면 최후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을 소개하는지 아십니까? 아이들이나 청소년, 혹 청년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컴퓨터 게임 문화를 이해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말한 성도의 삶 역시 “파이터(Fighter)”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트리트 파이터>의 주인공들처럼 이 세상의 파이터인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필살기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현재 전쟁 중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상대는 사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보이지 않으나 막강한 힘을 여러분의 삶과 세상 전 영역에 미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의 삶을 방해하고, 여러분과 가족들과 자녀들의 영혼을 훔치고 있으며,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아주 교묘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싸움을 걸어오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이 싸움에서 이기는 전략과 무기와 기술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선 사탄의 존재와 그가 하는 일을 바로 아는 것이고, 주 안에서 그 힘과 능력을 덧입는 것이며, 오늘 본문이 말씀한 것들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무기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다양한 무기를 이미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전략과 기술을 익히기 위하여 훈련소에 입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시고 익혀온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확실하게 붙잡을 때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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