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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나야 하리라 (요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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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야 하리라 (요 3:1-15)


설날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든 가정 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라고 23일 설날을 맞아 그동안 뵙지 못한 고향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고운 님과 벗들……. 다함께 웃으시는 즐겁고 맛있는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랑밭 새벽 편지에 수록된 한편의 영상과 글을 소개합니다.
제목은 “아버지란 누구인가?”입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이름입니다.
감동의 영상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4살 때... 아빠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7살 때... 아빠는 모르는 것이 없다.

8살 때... 아빠랑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살 때... 아빠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네.
14살 때... 아빠하고는 말이 너무 안 통한다.
25살 때...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30살 때... 이제 아버지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40살 때... 음. 이 문제를 아버지한테 물어봐야지.
50살 때... 아버지는 참 대단한 분이셨지.
60살 때... 계시기만 해도 든든했는데... 
결론은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 후회 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십시다.” 
아버지는 뒷동산에 바위 같은 존재입니다. 아니 아버지뿐 아니라 부모님 모두가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넌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쁘니? 구구단도 못 외우다니... 도대체 언제 구구단을 외울래?”
선생님의 꾸중을 교실에서 도맡아 듣는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계산하는 것도 오래 걸렸습니다.
“이렇게 쉬운 문제를 언제까지 풀고 있을 거니? 게다가 답까지 틀리다니!”
뿐만 아니라 한 반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이 학생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도대체 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거야? 한 번만 말해도 알 텐데…….”
결국 친구들과도 떨어져 악몽과 같은 시간을 보낸 이 아이는 커서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입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요 믿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모든 답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가 논어에서 제일 먼저 사용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유래는 이렇습니다.
옛 중국에 가난했던 농부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너무 가난하여 공부는 꿈도 못 꾸고 공부할 필기구조차도 살 수가 없었죠. 하지만 이 농부는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서 숯을 연필로, 또 나뭇잎을 종이로 하여 열심히 끝없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결과 그 농부는 크게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바로 중국문학사엔 빠지지 않는 ‘도종의’란 사람이죠. 

쓴 것이 다하면 단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의미가 바로 고진감래입니다. 
살아가기 힘드십니까? 슬픕니까? 아프십니까? 하지만 인생살이 새옹지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무엇 때문에 그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살고 계십니까?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행복하십니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주를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밤이 깊어갑니다. 그런데 그 깊은 밤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지도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백성의 정복자” “백성을 다스리는 자”라는 뜻을 지닌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대표로 구성돼 있는 산헤드린 공회원은 단 70명뿐입니다. 그만큼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아마도 나이도 상당히 많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일 정도로 그는 학식이 높은 사람입니다. 

철저히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바리새인으로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그는 성경에도 정통한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데 그가 밤중에 남들 몰래 예수를 찾아온 것은 그의 신분과 학식과 신앙심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타오르는 목마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니고데모 그는 결코 한 자리에 머물러 편히 살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하는 인생들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를 다하며 간구하며 어서 속히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 주소서 간구하던 니고데모는 어느 날 문득 들려온 가나 혼인 잔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닐까?”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며 하셨던 말씀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 분이야말로 메시야가 틀림없다”고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그래서 그 어떤 편견도 갖지 말고 예수를 만나 사실 여부를 알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어 쫓으셨던 사건으로 인해 이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사이에 예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떳떳하게 낮에 예수를 찾지 못하고 남들 다 잠든 깊은 밤에 조용히 예수를 찾았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비겁한 것처럼도 보이지만 그의 신분을 생각하면 결코 비난만 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용기를 칭찬해야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가 예수를 만나 첫 번째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선생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메시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니고데모 한 사람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예수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심을 알게 된 이유가 예수가 행하는 표적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도 설명합니다. 이는 니고데모가 얼마나 정당한 사람인가를 잘 나타내줍니다. 그는 아무런 편견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타나는 결과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의문은 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듣기에도 예수는 갈릴리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나라는 니고데모처럼 먼저 예수님을 만남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정도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단지 귀로 듣고 머리로 아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가슴으로 뜨겁게 만나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불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밤에라도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가슴으로 만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니고데모가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한평생 믿어 왔습니다. 저는 산헤드린 회원이 될 정도로 바리새인들 가운데서도 믿음이 뛰어난 사람, 삶을 통해 그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예수를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듣는 것으로는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 니고데모처럼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아니 예수님을 만나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만나되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되 단지 처음 니고데모의 고백처럼 선생으로만, 좋은 성현 중의 한 사람으로만 믿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되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되 삶의 좋은 교훈을 주는 선생 정도로만 알고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지 말고 또 주일날 강단에서 소개되는 예수에 대해서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찾아 만나는 귀한 경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해결과 하늘나라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예수님을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타오르는 목마름이 있습니까? 오래도록 예수를 믿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분의 삶에 곤고함이 있습니까?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기도하십니까? 몸과 영혼에 아픔이 있습니까? 그런데 해결할 길이 없어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시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답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년 초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내 운명은 어떤지 알아보려고 하지 마시고 문제 해결의 열쇠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흔들리지 마시고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주님을 찾아 만나십시오. 그러면 내 운명도 바뀌고 내 삶도 바뀌고 모든 문제도 다 해결이 되어 오히려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머리로만 예수님을 알아왔다면 이제는 뜨겁게 가슴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귀한 역사가 이 시간 우리 모두 위에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참된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를 거듭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니고데모가 어떤 점에서 부족한지, 무엇 때문에 답답해하고 있는지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여기 “거듭난다 또는 다시 태어난다”고 할 때 “거듭”이라는 말은 “다시”라는 뜻도 되지만 동시에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태초부터, 처음부터” 그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 하늘로부터 태어난다, 위로부터 태어난다. 태초에 처음부터 태어난다” 그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하늘로부터 태어나지 아니하면, 위로부터 즉 하나님께서 우리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처음부터 택하여 우리로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실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고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이 말이 단지 다시 태어난다는 뜻으로만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하는 말이 “사람이 이미 나이가 많아 어른이 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태 안에 다시 들어가 두 번씩이나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니 선생님, 어린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이야 잘 알겠지만 저는 이미 나이 많아 늙은 사람인데 어떻게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이 나이에 이 큰 몸집을 가지고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이 육체적으로는 그의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으로부터 태어난다. 내가 너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한 것에 너무 놀라지 마라. 바람은 제 맘대로 부는 법이다. 너는 바람 부는 소리는 듣지만, 그 바람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든 사람도 이와 같다.” 

즉 예수님은 “거듭나야 하겠다는 것이 이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다시 태어나야 된다. 우리 삶이 새로워져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얻어 다시 나야 된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게 되면 그래서 우리가 믿음 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나게 된다.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늘나라를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위로부터 태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우리는 이를 잘 깨닫지 못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태초에 처음부터 우리를 택하셨다. 그리고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보내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이 설명을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거듭난 자들입니까? 아직 거듭난 체험이 없다면 이 시간 거듭남의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시간 예수님을 가슴으로 뜨겁게 만나십시오. 지금까지 머리로만 알고 머리로만 믿어왔다면 그 예수님을 가슴으로 뜨겁게 믿고 가슴으로 뜨겁게 만나십시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처음부터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로 작정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아 믿음 안에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를 잘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맞는가?” 하며 고개를 기웃거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십시다. 성경이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리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즉 위로 부터 주신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있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우리가 믿음 안에 있다는 증거요 거듭난 사람들이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이미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거듭난 자요 동시에 하늘나라를 이 땅에서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만 필요한 분이 아니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그 사람도 행할 것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 큰일들도 행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2~14을 통해 약속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와 이를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미 천국 열쇠는 주셨습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다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 묶은 것은, 하늘에서도 묶여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너희가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 다시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무엇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마음 아프게 만들고 정말 수치스럽게 만든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천국 열쇠를 가지고 묶고 푸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 혼자서가 아니라 믿음 안에 형제자매들과 함께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들에게 있는 어려움들을 드러내십시오. 

단지 드러냄으로 공동체에 상처가 되는 일이라면 조용히 혼자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어찌됐든 주님께서 합심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기도 제목을 서로 알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 묶은 것은, 하늘에서도 묶여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너희가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고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직 그 깨달음이 우리들에게 없을 때입니다. 니고데모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시 묻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인데도 이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증언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해 말했는데도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데,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너희가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미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 안에서 구원을 얻었다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단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영생은 오늘 우리들의 삶의 전체 영역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의 모든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권세를 이미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증거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 구원하시는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아픔이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아픕니다. 삶이 다 고통스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꾸 숨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나를 도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 두세 사람이 내 옆에 있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이 친히 함께 하시고 친히 역사하시도록 합심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시온의 대로가 펼쳐지고 우리들의 모든 삶에 열린 문이 활짝 열려지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눈 깜짝 할 새”
그런데 이보다 더 빠른 새가 있답니다.
“어느새”
그렇습니다. 눈 깜짝 할 새 시간이 흘러갑니다. 이제 시작인거 같으나 어느새 끝날 것입니다. 한데 하늘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까 우리는 하늘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 삶을 피곤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서로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까? 

앞에서 우리가 동영상을 잠깐 보았듯이 우리네 인생이 그렇습니다. 나 아픈 것 나 힘든 것만 생각했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 주님이 혼자 통곡하시도록 나는 만들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이 시간 다시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을 외롭게 두지 마십시오. 그 주님 앞에 내 모든 사정을 아뢰십시오. 그 주님 앞에 합심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도록 하십시오. 이 귀한 은혜가 오늘 우리들의 모든 삶에 넘치게 하십시오. 구원은 우리 모든 영역에서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사랑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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