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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원하는 일군, 예물 (출 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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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하는 일군, 예물 (출애굽기 36:2-7)

홍해를 건너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이 시내산 기슭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불러내셨습니다.  산에 오른 모세는 40일을 지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지켜야 할 율법을 자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용될 특별한 천막을 지으라 하셨습니다.  이 천막은 거룩한 제사를 위해 구별된 것이라 하여 성막이라 불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전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성막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후 제 2년 1월 초하루에 세워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본문은 이 성막을 짓기 위해 필요한 예물을 드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은 성막을 짓기 위한 물품들을 모세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누가 이 드림에 동참하였습니까?   출애굽기 25장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사람, 마음에 원하는 사람, 마음이 감동된 사람, 자원하는 사람(출35:5, 21 22, 26, 29)이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물품을 가져왔습니다.  모세는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대표으로 세우고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을 임명하여 성막 짓는 일에 필요한 물품을 모아 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6장에서 본 것처럼 백성들이 예물을 계속하여 너무 많이 가져오는 바람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신이 나고 즐거워 너도나도 자원하는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물품들이 드려졌으면 관리하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세에게 달려가 ‘이제 쓰고도 남을 물건이 준비되었으니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광고해주세요’ 요청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사용할 물질을 드리는데 이런 감동과 즐거움이 있어야 진정한 드림이 됩니다.   역대상 29장을 보면, 다윗이 아들 솔로몬이 건축할 성전을 위해 백성들과 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여 예물을 드린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은 ‘오늘날 누가 즐거이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며 백성들을 독려합니다.  그리고 왕과 백성이 즐거이 드림으로 백성들도 기뻐하였고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이 감격하여 하나님께 드린 찬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조상들과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역대상 29:13-16)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백성들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성막을 세웠고, 왕국을 든든히 세운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이렇게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뵙는 성막과 성전은 이처럼 자원하는 마음과 감동된 사람들의 섬김으로 세워졌으며, 하나님은 백성들의 물질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을 먼저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막이나 성전이라는 건물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이루고 주의 이름으로 일하는 곳에는 물질이 필요하고 그 필요를 위해 우리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눕니다.  

헌금 때문에 혹은 섬김 때문에 마음이 상하거나 믿음을 잃었다는 말을 듣을 때 마음이 아픕니다.  돈 내라는 말 듣는 것이 불편하여 교회 가기 싫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금이 마지못해 짐지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예물, 자원하는 예물이 되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질을 드리라고 명하신 것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음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하게 하심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동기와 목적이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자원하는 드림이 됩니다.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드리거나 다른 사람만큼 드리지 못하면 자존심 상할 것 같아 억지로 드림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고백할 때 말로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말로만 아니라 내 것을 나눔으로 증명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고 정성껏 선물을 준비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라 합니다.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나의 소중한 것을 나눕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정신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은 나에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을 주셨고 사랑하기 때문에 죄로부터 구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먼저 받은 쪽입니다.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내가 가진 것 중에 일부를 떼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이런 예물이 진정한 드림입니다.    

그런데 자발적인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어떤 기대감으로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내가 아끼는 것을 떼어 하나님께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이 예물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부풀려 돌려주시리라 기대하며 드렸다면 그것은 순수한 드림이 아니라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헌금은 뇌물과 같고 투자 이익금 배당이나 투자금 상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가 드린 헌금보다 더 크게 복을 주시든 아무 것도 주시지 않든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림은 이 다음을 바라보고 바치는 투자가 아닙니다. 

내가 드린 것보다 몇 갑절로 돌려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헌금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고 굳게 믿는다면 금방 부자되기 위해 십의 일이 아니라 소유의 절반과 그 이상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드린 만큼 돌려받지 못해 손해가 나면 하나님께 항의하며 손해배상 청구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여 헌금하는 분들은 하나님께 드림이 무엇인가 그 동기와 목적을 다시 정리하기 바랍니다.

지난 수요일 성경공부반에서 고린도후서 8장, 9장을 공부하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부탁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8:12),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6,7)   사도 바울은 어려움을 만난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돕기 위해 모금하는 연보가 억지가 아니라 참 연보가 되려면 이렇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며 미리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 옳다고 가르칩니다. 

제자들과 함께 전도여행 하시던 예수님을 생각해봅시다.  가룟 유다가 돈 주머니를 맡았다고 했으니 회계담당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행도 활동하는데 재정이 필요했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복음 전하실 때 필요한 경비를 어떻게 마련하셨을까요?   날마다 제자들을 이끌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시는데 어디서 경비를 만들어 오셨을까요?  환자들을 고쳐주시고 치료비를 받으셨을까요?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분이시니 필요한 재정을 기적적으로 만들어내셨을까요? 예수님이 그런 분이셨다면 제자들도 예수님 덕에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주변에는 주님의 사역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베다니 마을에 살던 나사로 남매들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 나사로의 집에 머물며 따뜻한 대접을 받으신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예수 선생님의 얼굴을 보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자기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께 온 마음을 빼았겼습니다.  ‘내가 너의 집에 머무르고 싶다’하실 때 마음이 감동된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며 여행 중에 지친 몸을 쉬게 하였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 했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혹시라도 세리장 직위를 남용하여 남의 것을 도적질하거나 거짓으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인생관이 달라지고 물질관이 건강하게 변하면서 그의 남은 인생은 가진 재물로 선한 일을 위해 즐거이 사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물질로 봉사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 사는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여인 마리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임 장소를 제공하였고, 집을 기도처로 제공하여 거기 사람들이 모였으며,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체험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 여행을 위해 가는 곳마다 사랑으로 협력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보낸 편지들 속에 헌신적인 후원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바울은 재정적으로 약한 교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틈틈이 천막 제조업을 하여 경비를 충당했지만 그 일이 풀타임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나 디모데 등 순회 전도인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선한 일을 위해 물질을 드려 후원했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 공동체의 재정은 이렇게 운영이 됩니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헤아려 감사함으로 드릴 때 그 물질이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되어 더 많은 열매를 얻게 합니다. 우리 교회도 주의 선한 사업을 위해 성도들이 드린 물질을 사용합니다. 이전에도 교회 재정의 일부분을 선교와 구제를 위해 사용해왔지만 만25살을 먹은 우리 교회가 보다 성숙한 교회로서 이웃을 섬기기 위해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물질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여러 기관 혹은 개인들의 필요를 위해 나누었습니다.   아직은 미약한 첫 걸음에 불과하지만 금년에도 그 기준을 따라 작년 결산의 십분의 일을 선교와 구제사업을 위해 사용할 예정입니다.   

한국에 있는 어린 소년소녀 가장들을 격려하기 위해 작은 후원금을 보내고, OCMS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 한 분을 추천받아 장학금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마침 이디오피아에서 목회하는 목사님 한 분이 OCMS에서 공부하러 오시는데 어제 옥스포드에 도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2월에 그분을 우리 교회에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인사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분에게 학비의 일부를 후원하는 귀한 일에 동참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물질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이디오피아 영혼들과 함께 하고 기도 가운데 계속 교제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 외에 런던에서 사역하시는 Tim 선교사님 부부와 필리핀에서 사역하시게 될 Paul & Charitas Cho 선교사님 부부 그리고 헝가리에서 집시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최 영 선교사님 등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하며 사랑을 나눌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영국교회 Dick Wolff 목사님이 때늦은 성탄카드를 우리 집에 넣고 가셨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잠비아에 있는 Hope & Faith Christian Community School에서 보내온 카드였습니다.  그 학교의 설립자 Rosemary Mumbi가 보낸 카드였는데 학교 직원 15명이 일일히 서명하여 보낸 감사의 글이 담겼습니다.  

작년 영국교회의 Harvest Lunch 때 우리 교회가 초대받아 따뜻한 영국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던 날 영국교회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날 우리는 아주 작은 금액을 모아 드렸는데 그분들은 우리의 협력이 너무 고맙다며 성탄절을 맞아 이렇게 과분한 감사의 카드를 보내왔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주의 이름으로 나눔이 이처럼 기쁘고 즐겁습니다.    

내 주머니가 넉넉하기 때문에 쓰고 남는 것을 선심쓰며 적선하듯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빠듯하고 모자라는 형편이지만 더 필요한 분들을 위해 기꺼이 나누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눔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수입의 전부를 자신과 가족들만을 위해 소비하는 사람들에 비해 생활비의 일부를 나누어 드리는 헌금생활은 성도들의 살림살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물질을 떼어놓고 헌금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물질을 보다 알뜰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가진 것 전부를 내 필요를 위해 다 써버리면 소비 습관이 방만해질 수 있지만 선한 일을 위해 나누려면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거나 과용하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 지출하는 좋은 습관을 가집니다.  자연히 소비생활이 건강하게 되고 과소비를 멀리하는 지혜를 터득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청지기의 정신은 이처럼 물질관리 방식을 통해 드러납니다.   내가 수고하여 얻었으니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어떻게 사용하든 누구도 상관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청지기의 정신 첫 번째 원리를 망각했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를 세상에 보내신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맡아 사용하다가 주인 앞에서 회계보고를 하는 날이 옵니다. 맡겨준 재물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물으시면 청지기들의 대답은 다양할 것입니다.  먹을 것 못 먹고 옷도 마음껏 못 사입으면서 일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몽땅 남겨주고 왔다는 대답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며, 자식들에게 남겨줘봐야 고마운 줄도 모르고 제대로 관리할 줄 모를 것 같아 사는 날 동안 내 마음껏 즐기는데 사용했다는 말도 칭찬받지 못할 것입니다.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찾으실 하나님의 계산대 앞에 서게 될 날을 대비하여 이땅에서 성실한 청지기로 책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 후 모이는 공동의회는 지난 해 교회 살림을 어떻게 했는지 돌아보고 새해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의논하며 예산을 결정하는 모임입니다.  우리 교우들이 외국 나그네 삶을 살면서 아끼고 절약하여 하나님께 헌금한 교회 재정이 선한 일을 위해 알차게 사용되도록 기도해 주시고 힘껏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살림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가정 살림에 궁핍함이 없도록 때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길 기도합니다.  교우들이 일터에서 땀흘려 일하여 얻은 소득으로 가정 살림이 기름지고  여러분이 드린 고귀한 헌금이 주의 선한 사업을 위해 값지게 쓰여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는데 마음이 감동되고 자원하여 즐거이 드렸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교우 여러분이 즐거이 드리는 물질이 우리 교회 1년 살림에 넉넉하여 쓰고도 남음이 있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른 광야에서도 사랑하는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시며 적들의 공격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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