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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교회답게 3 (행 1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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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교회답게 3 (행 12:20-25) 
 
 
❚새해 인사

세월이 참 빨라서 벌써 1월 한 달이 다 지나고 오늘이 1월 마지막 주일이지만, 그래도 아직 새해 첫 달이니까 새해 인사를 하겠습니다. 제가 새해 인사를 하나 배웠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앞에 말을 하나 더 붙여서 “원더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할 것입니다. 여기서 ‘원더풀’이란 “원하는 것보다 더 잘 풀리기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인사 참 좋지요? 그럼 다 함께 “원더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원하는 것보다 더 잘 풀리기 바랍니다” 하고 인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사도행전 12장 말씀을 살펴보며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알아보았습니다. ①복음 전하는 일, 선교와 전도에 힘쓰는 교회 ②그러다가 박해도 받고 고난도 당하는 교회 ③기도를 통해 날마다 기적을 일으키고 체험하는 교회, 초대교회처럼 이 세 가지 특징을 가진 교회가 진정 교회다운 교회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행전 12장의 결론 부분으로서 여기에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이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모습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교회

첫째, 교회다운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진정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 대신 다른 무엇을 더 귀히 여기거나 중요하게 여기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지 않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그런 교회가 진짜 있는가? 예,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22절을 함께 읽습니다.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지난 시간 말씀 나눈 것처럼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고 뒤늦게 이를 발견한 헤롯 아그립바는 크게 노해서 베드로를 지키던 파수꾼들을 사형에 처합니다. 그런데 헤롯 아그립바가 이성을 잃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본디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위쪽에 위치한 해변 도시국가인 두로와 시돈과 일종의 무역전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은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외교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라들 사이에 치열한 경제전쟁,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치열한 무역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가끔 힘이 센 나라들, 경제적인 대국들이 작은 나라에 횡포를 부리기도 하고 겁박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억울한 일 안 당하려면 우리도 빨리 힘이 생겨야지요. 벌써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더 성장하고 힘이 세져야 합니다.

당시 헤롯 아그립바가 다스리던 유대 나라는 두로와 시돈에 곡물을 수출하고 있었는데 헤롯이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두로와 시돈에게 분노해서 이 수출을 봉쇄했던 것입니다. 살인죄, 강도죄보다 더 무서운 게 괘씸죄라는데 이 괘씸죄에 걸린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거의 전적으로 유대에서 수입하는 곡식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막으라고 했으니 두로와 시돈은 굶어죽게 생긴 것이지요. 성경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정치라는 게 참 비슷한 것 같아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초비상이 걸려서 일종의 로비를 하게 됩니다.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해서 화목하기를 청한 것이지요. 왕의 최측근 실세 신하인 블라스도에게 뇌물도 꽤 주지 않았겠습니까? 이 국가적인 로비가 성공했는지 양국 간의 평화조약 체결을 축하하는 공개적인 축하연이 가이사랴에서 크게 벌어집니다.

그런데 바로 이 축하연 자리에서 그만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21절에 보면 헤롯이 왕의 옷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들에게 연설합니다. 거기 모인 두로와 시돈 대표사절뿐 아니라 그 지역 가이사랴 백성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에 헤롯 왕의 연설을 들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아부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들은 헤롯 아그립바를 신격화 하면서 “저 분은 사람이 아니라 이 땅에 나타난 신이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사람을 신격화 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또 아부하는데 무슨 소리를 못 하겠습니까? 그런데 헤롯은 이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이방인들이야 몰라서 그런다고 치고 유대인의 왕인 헤롯은 적어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데 감히 그런 말을 듣고 기분 좋다고 가만있으면 안 되지요.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던 바울과 바나바가 나면서 걷지 못하는 병자를 걷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자 루스드라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11~12절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기적을 일으킨 바나바와 바울이 헬라의 신인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하면서 신으로 경배하려고 할 때 바울과 바나바는 펄쩍 뛰면서 옷을 찢으며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따로 계신다. 그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칩니다. 당연히 이래야지요. 하나님 믿는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이게 바로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오직 하나님께 영광” 신앙입니다. 당연합니다. 내가 어찌 감히 신이 될 수 있고, 내가 어찌 하나님만 받으실 영광을 대신 받을 수 있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오직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말을 듣고 스스로 흡족해서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교만하고 참람한 일입니다. 그래서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그렇습니다. 지금 헤롯은 참으로 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은 죄입니다. 그게 무슨 죄냐고요? 여러분, 살인죄, 간음죄보다 더 큰 죄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죄입니다. 두로 시돈과 가이사랴 백성들이 한 말인데 무슨 죄가 되냐고요? 남들이 나를 신격화할 때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만 받으실 영광을 대신 차지한 죄입니다. 성경은 이 죄야말로 가장 큰 죄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본문 23절을 읽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쳐서 죽입니다. 이 ‘주의 사자’는 앞서 베드로를 구해낸 사자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하기 위해 보내신 사자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헤롯을 치기 위해 사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본문은 헤롯이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을 기생충에 의한 죽음이라고 하지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이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5일 후에 죽게 됐는데 몸이 썩어 벌레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헤롯이 죽은 병명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교회를 박해한 헤롯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만 받으셔야 할 영광을 대신 차지하려는 큰 죄를 지어 이렇게 갑자기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깨닫게 됩니다. 우선 교회를 박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원수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잠시 힘을 얻고 기세등등하게 날뛸 수는 있을지 몰라도 반드시 그들의 말로는 비참한 최후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차지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려고 든다면 반드시 비참하게 패망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인 것입니다. 

교회 역시 진정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지 않는 교회도 있다고 했지요? 어떤 교회일까요? 하나님 대신 다른 무엇을 더 귀히 여기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요즘 분란이 일어나는 교회들을 보면 반드시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주인입니다. 목사파, 장로파, 무슨 파로 나누어져 다툰다는 것은 그 사람을 추종하고 그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교회의 주인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차지하는 것입니다. 사람 외에도 물질이나 재산, 전통 그 무엇도 하나님보다 귀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이 중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소중히 여기는 순간 그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모습은 하고 있지만 결코 교회다운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고, 하나님만이 주인 되시고, 하나님만 다스리시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섬김과 나눔이 있는 교회

둘째, 교회다운 교회는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입니다. 다같이 24절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하나님의 교회와 복음을 박해하던 헤롯은 이렇게 비참한 심판을 당하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더 흥왕하고 왕성해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하는 일이 힘써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다보면 원수들이 너무 미워해서 핍박도 하고 박해도 일어납니다. 온갖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반드시 그런 자들은 헤롯처럼 하나님이 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박해를 받을수록, 방해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흥왕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 같은 공산국가만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도 엄청난 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습격해서 파괴하고 불을 지르고, 심지어 목회자와 성도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엄연한 민주국가인데 이런 일이 벌어져도 경찰은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며 나 몰라라 손 놓고 구경만 합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들에게 쫓겨나고 매를 맞고 심지어 ‘명예형’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하나님이 가만 안 계십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반드시 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더 흥왕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먼 나라뿐 아니라 가깝게는 지금도 가정에서,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핍박과 따돌림을 당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막으려 들면 오히려 패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흥왕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이렇게 그 어떤 핍박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복음 전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흥왕하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효자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흥왕하고, 그 말씀을 전파하는 일을 쉬지 않는 교회다운 교회 되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섬김과 나눔이 있는 교회’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이지요? 이미 새해 첫 주와 둘째 주 설교를 통해 이 표어가 교회의 사명 중 섬김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바로 이 섬김과 나눔이 있는 교회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맨 마지막 절 25절을 함께 읽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것은 헤롯이 죽은 사건보다는 꽤 뒤에 일어난 일인데 바나바와 사울(=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해 부조, 즉 구제헌금을 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 요한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교회는 말씀이 흥왕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부흥, 성장했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예루살렘 지역에 큰 기근이 들어 성도들이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안디옥교회가 구제헌금을 모아 바나바와 사울 편에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한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사도행전 7장에 나온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 가서 세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크게 부흥했지만 아직 경제적으로 크게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도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의 딱한 사정을 듣고 구제헌금을 모아 전달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다운 교회는 섬기고 나누는 교회입니다. 비록 우리도 넉넉하지 않지만 더 어렵고 힘든 이웃과 성도들을 향해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성전을 짓고 아직 부채도 많은데 커피밀을 통해 나온 순수익을 지역에 있는 학교에 전액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등 섬김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참 감사한 것은 단 한 분도 “우리 교회도 어려운데 남은 어떻게 돕겠다는 거냐?”고 시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제 우리 교회가 성숙하고 정말 교회다운 교회가 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더욱 이 섬김과 나눔을 실천해 나가려 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바랍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올해 2012년 우리 교회, 우리 효자교회가 꼭 교회다운 교회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아니 그러면 지금까지는 우리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다는 뜻이냐?”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정말 교회다운 교회로서 사명을 잘 감당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올해는 더욱 교회의 사명을 확인하고 우리 교회를 더 교회답게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송구영신예배 때 꼭 부르는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라는 찬양의 가사를 읽겠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가사에 오늘 살펴본 교회다운 교회의 세 가지 특징이 다 들어있습니다.

진정한 예배가 숨 쉬는 교회,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믿음의 기도가 쌓이는 교회,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성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과 헌신이 기쁨이 되어 열매 맷는 아름다운 교회
주님의 마음 닮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빛되신 주님 전하는 교회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 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주께서 사랑하는 효자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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