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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른 마을들로 가자! (막 1: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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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마을들로 가자! (막 1:35-39)


생명이 없는 기계도 무리하게 쓰면 고장이 나게 마련 아닙니까? 때문에 바쁘게 돌아가던 기계도 잠시 멈추고 정비하는 시간을 갖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마치 뭔가에 쫓기는 사람들처럼 눈코뜰새없이 바쁜 교회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 가서 미국 목회자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들은 바쁜 목회로 인해서 목회자가 탈진하면 아니 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목회를 하다 보니 끝까지 충성스럽게 목회하려면 적당한 휴식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휴식은 단순히 일을 중단하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많은 일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충전의 기회가 바로 휴식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른 새벽 주님이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지난 밤 주님이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신 것도 원래는 휴식을 취하시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날은 안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전혀 쉬지 못하셨습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도 사람들은 물러가지 않고 오히려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데려왔습니다. 성경은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고 그 때의 상황을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여간 이튿날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주님은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왜 그 많은 장소 중에 하필이면 한적한 곳을 택하셨습니까? 여기서 한적한 곳이라고 번역한 말은 때때로 광야라고도 번역되는 말입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모세를 비롯한 하나님의 사람들, 특히 선지자들과 관련이 깊은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세례 요한이 활동한 장소도 광야입니다. 또 주님도 성령이 광야로 몰아내셨기 때문에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다시 또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주님은 왜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까? 

주님이 한적한 곳을 찾으신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광야와 같이 한적한 곳에서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안락한 환경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맛있고 풍성한 먹을거리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일 것입니다. 한적한 곳은 쓸쓸한 곳이고 황량한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다른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의지할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일 것입니다. 

본문 말씀 35절 하반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주님이 한적한 곳을 찾은 이유가 바로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도가 과연 무엇입니까?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와의 만남과 사귐을 뜻하는 것 아닙니까? 주님이 기도하기 위해서 한적한 곳을 찾으셨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셨던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야만큼 하나님을 만나기 쉽고 또 사귀기 좋은 곳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한적한 곳을 찾으신 이유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좀 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든지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주님이 세상적인 방법을 쓰시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본문 말씀 37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사람들이 왜 주님을 찾았습니까? 사람들은 이미 주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주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와 같은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요 6:14) 다만 그렇게 말했을 뿐 아니라 억지로 붙들어 주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주님은 사람들의 요구를 뿌리치시고 혼자서 다시 한적한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의 생각, 즉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을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한적한 곳은 결코 아라비아 사막과 같은 특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한적한 곳을 강조하는 것은 광야의 정신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래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로 떠돌아다니면서 그 척박한 환경에서 가축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바알과 아세라 같은 우상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과 세상에 속한 많은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한적한 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거기서 잃어버렸던 광야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광야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스스로 한적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의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생각할 것 같으면 그 곳이 바로 한적한 곳이 되지 않겠습니까? 꼭 황량한 사막이나 깊은 산속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한적한 곳을 만들고 하나님만을 바라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는 중에 위로부터 새 힘과 능력을 공급받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한적한 곳에 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 같으면 오늘 우리도 한적한 곳을 찾아 거기서 머물기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외딴 곳에서 주님과 함께 정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한적한 곳에 그대로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 한적한 곳을 떠나셨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4장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눅 4:42) 그러나 주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 1:38) 그렇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서 전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효과적인 복음 전도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적한 곳,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 힘과 능력을 얻은 것도 바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온 갈릴리에 다니며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한 후에 이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며 다녔습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고백했습니다. “...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하반절) 그 결과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 귀한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값없이 구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그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묵묵히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심으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한적한 곳으로 떠나야 합니다.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기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더 지체하지 말고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이 주시는 새 힘과 능력을 가지고 다른 마을들로 떠나야 합니다. 

왜냐 하면 온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은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그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오늘 우리 모두의 사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온갖 유혹을 다 뿌리치고 오직 주님과의 만남과 사귐을 위해서 한적한 곳을 찾음으로써 그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받아 가지고 그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널리 전하는 충성스러운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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