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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이름으로 (행 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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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으로 (행 4:10-19)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0-19)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가 하루에 세번 씩 성전에 올라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경건해지고 권세있게 딱 말 한 마디했는데 이 사람이 다 낫아서 벌떡 일어납디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우리를 보지 마세요.  이 사람이 그 이름을 믿으므로 치료받았습니다. 그 이름이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름을 믿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하고 외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관원들, 장로들, 서기관과 대제사장의 문중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심문을 하면서 위협을 합니다.  "절대로 앞으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저들이 병을 고치지 말라고 신유를 금하였습니까?  성경을 가르치지 말라고 성경교육을 금하였습니까?  설교를 금하였습니까?  기도하면 안된다고 기도를 금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모임을 금하지도 않고 기도를 금한 것도, 사역을 금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예수의 이름으로만 하지 말라.  그러면 상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입니다.
  
사단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이 찬양받고, 예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마귀를 꼼짝 못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에 담긴 신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단은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만은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슬그머니 예수의 이름을 생략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예수의 이름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이름을 자랑하라고 충동입니다.  사단은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살지 않고 자기의 능력과 재주를 의지하여 살도록 부추깁니다. 사단은 지금도 어떻게든지 예수의 이름만은 감추게 하고 바라보지 못하게 하며 말하지도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합니까?

  
1. 예수의 이름을 시인해야 합니다.(16)
  
누가 예수를 막을 수 있습니까?   소련은 70년 동안 총칼로 예수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총과 칼은 무너졌고 예수는 증거 되고 있습니다.  회교권도  예수를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예수는 더 널리 증거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너희를 부인할 것이요, 너희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너희를 시인하리라"고.
  
이 말씀은 감격스럽기도 하고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날마다 하루하루 삶 속에서  예수를 부인한다면 주님도 나를  부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콘스탄틴노플의 교회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로마시대 박해자들에게 붓잡혀 심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그를 심문했습니다.   
"네가 만일 예수를  배반하지 않으면 멀리 귀향을  보내겠다."  
"이 세상은 어디나 어버지의 집이니 어디간들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너를 죽여 버리겠다."  
"나의 생명은 예수안에 있으니 폐하가 능히 죽이지 못할 것이요."  
"그러면 네 재산을 다 빼앗아 버리겠다."  
"내 재산은 하늘에 있으니  빼앗아가기 힘들 것이요."  
"너의 친구들로부터 너를 떼어 놓겠다."  
"내 친구는  폐하가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분 뿐이요. 그분에게서 나를 떼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요." 

하는 수없이 황제는 그를 내보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의 이름만을 의지하고 예수의 이름만을 자랑하며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교회를 얼마동안 다녔고,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았고,  봉사를 얼마나 했고, 라는  것들이 그리스도인이 내세울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예수는 나의 구주시다. 나는 예수를 힘입어 일한다.  나는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너도 예수를  믿어야 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시인이 무엇입니까? 인정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에서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시인합시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주님이라고 담대하게 입으로 고백합시다. 그분께 절대 순종함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삶을 통해서 고백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4장 12절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름에 관심이 많으신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인격, 능력, 지위, 권세, 명예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이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교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밖의 사람들도 대부분 하늘을 두려워하며 살아요. 그들도 하나님이 있는 것을 인정해요. 그렇다면 우리와 다를바가 없지 않나요? 하나님은 그들도 구원하시지 않을까요?' 
  
여러분, 예수님을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인간은 다 죄인이기에 자신의 지헤로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길을 열어 주셨어요. 그 길은 유일한 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생을 선물로 얻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여 영생의 선물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10) 
  
홀로된 할머니가 밤이면 잠을 자지  못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 증세가 겹쳐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날 전문의를 찾아 갔습니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할머니에게 자주 산에 올라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크게 소리를 지르면 훨씬 상태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에 올라간 할머니는 "야호"하고 소리치는 것이 쑥스럽고 어색해서 궁리 끝에 큰소리로 손자 이름을 불렀습니다. 철수야∼, 철수야∼, 잠시 후 사방에서 등산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아이를 잃어버리셨어요?"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부르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체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손자이름이나 부르고 있으면 구원도, 영생도 얻지 못합니다.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는 예수의 이름을 믿었고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 그를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베드로는 증거하고 잇습니다.  우리도 앉은뱅이처럼 예수의 이름을 믿으며 베드로처럼 예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며 능력을 체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발행되는 자기앞 수표에는 발행 은행의 지점장 직인이 찍혀 있습니다. 금액이 일백억원이라고 쓰여져 있어도 지점장 직인이 없으면 그것은 종잇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도 이처럼 별 의미도 없고  응답도 없습니다. 
   
지난 주간 하나님의 대사 3을 읽으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언론인 중에 진실된 분이 하나님의 대사를 읽고 은혜를 받았어요. 그래서 '김하중 대사님이 이렇게 알려졌으니 사단의 공격이 더 많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을 모아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에 교사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돈으로  일본 선교여행을 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간절히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안타깝고 답답하여 더 기도하는데도 시간만 흘러갈 뿐 여행경비를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는 장로님이 어느 집사님이 식사초대를 하였는데 같이 가자고 하는데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차문을 열고 타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이분이 여행경비를 주신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식당에 도착 자리에 앉자마자 "집사님, 일본 선교여행 지원금 주세요." 하였습니다. "지금 수중에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퇴직금을 통장에 이체한다고 했는데 찾아서 드릴께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 사업이 너무 어려워 부도 직전이라는 것입니다. 장로님께 기도요청을 하려고 식사초대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본 선교여행을 하며 교사들과 간절히 집사님의 사업을 위해 기도하였는데 얼마 후 집사님을 만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주문이 여기저기서 쇄도하여 사업이 탄탄한 반석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한 것을 주시고 기쁨이 충만케 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그 이름을 사용할 권세를 주신 것은 큰 특권입니다.  여러분, 그 좋은 특권을 부지런히 사용해서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의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18)
  
설교자의 유혹은 설교를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을 주고 즐거움을 주어 능력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설교할 때마다 그 유혹을 이기기가 무척 힘듭니다.  물론 못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설교를 너무 잘 하려고 하다가 예수님이 뭐라고 말슴하셨는지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잇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가리워져도 청중이 예수님이 말슴하신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항상 '성경이 말슴하기를'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랬더니 굉장한 능력이 나타나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교사라면 여러분이 가르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예수님이 말슴하시는 것을 전달하려고 하십시오. 여러분이 전도자라면 여러분이 말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담대하게 전하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려면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선포하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도들의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그 나사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치료받고 건강해 졌습니다.  이 예수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다른 이를 믿어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하나님이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구제를 할 때도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을 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섬김에 있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하고 싶은 유혹이 많습니다만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열심히 구제하고 힘을 다해 선교하고 자신을 불사르는 열정으로 봉사하고서 시험에 드는 이유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내서,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신 것처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받는 쪽에서도 기도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한 큰 사건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손에 붙잡혀 순종하였기에  큰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내 이름으로 하는 사람은 하고나서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합니다.  상대방에게서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섭섭한 마음에 사로잡힙니다. 왜 다른 사람은 나처럼 안하냐?고 원망이 생기고 쓴 뿌리가 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열심히 섬기다가 선한일에 열심내다가 시험이 오고 원망과 섭섭함이 고개를 들면 내가 지금 예수의 이름으로 하였는가? 내 이름으로 하였는가?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름 속에 담긴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것입니다.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그는 황금에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그가 신대륙을 찾아나선 것도 황금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그의 이름은 황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크리스토퍼'란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그러나 사실 그의 마음 속은 온통`황금'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어느날 자신이 이름처럼 살지 못함을 발견하고 갈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아니면 황금을 쫓는 인생을 살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콜럼버스는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그리고 명쾌한 결론을 내렸습니다.`이제부터 부모가 지어준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자'.그때부터 콜럼버스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나는 14년 동안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그기간이 내 일생중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세월이었다"  여러분도 이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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