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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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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겔 15:1-8)


성경에는 많은 비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시는 이유는 일상생활에 늘 같이 하는 대상이나 상황들을 통하여 진리를 보다 생동감있게 전하고 이해를 용이케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비유들 중에 하나는 사사기 9장 8-15절에 나타나는 나무들의 우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는 자의 어리석음을 잘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그 외에도 나단 선지자의 부자와 가난한 자의 비유(삼하 12:1-4),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말한 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왕하 14:9), 이사야 선지자의 포도원 비유(사 5:1-6), 에스겔 선지자의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겔 17:1-24), 아모스 선지자의 다림줄 비유(암 7:7-8)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비유들의 참된 의도는 대부분이 신앙적인 교훈과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편의성과 능동적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자체를 놓고 볼 때 여타 나무에 비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Ⅰ. 이스라엘(그리스도인)의 과거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문 15장 1-2절에 『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고 했습니다. 
포도나무가 나무로서는 다른 나무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1) 성도는 육적으로는 남들만 못하게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2) 영적으로 볼 때 과거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타락했고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지 아니하셨다면 타민족에 비해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비천한 민족이었습니다.
성경은 이같은 이스라엘의 상태를 지렁이(사 41:14)로, 고아와 과부(시 68:5)로, 갓 태어난 아이를 물로 씻지 않고 소금도 뿌리지 아니한(겔 16:4) 것에 비유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3) 이 비유의 참 의미는 모든 인류가 에덴동산의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15장 5절에 『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치 않았거든 』이라는 말씀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래가 전적 무능력한 상태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롬 3:10-18).

포도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이 영적 열매를 맺지 못하면 나무로서는 사용가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삼림 중에 자생하는 들포도에 비유되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이 자생 포도(들포도)는 재배 포도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가치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장 4절에 『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라고 했습니다.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재목으로서는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 15장 3절에 『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라는 말은 나무로서 필요한 작은 것까지에도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야생 포도라도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성도가 되지 못하고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렘 2:20-28).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사야 5장 7절에 『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임했습니다(겔 15:6-7). 
하나님께서 쓸모없는 것을 뽑아서 두 끝을 태우시겠다고 했습니다(겔 15:4).
화목으로 사용되면서 티끌만 날리는 존재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결국은 패망입니다. 소멸입니다. 죽음입니다. 부끄럽고 창피한 것입니다. 

Ⅱ. 이스라엘(그리스도인)의 현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식(移植)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생들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엡 2:1-3). 이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에덴동산의 아담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롬 13:14; 갈 3:27).

영원한 사망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이 일을 도모할 자가 없습니다(행 4:12).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썩지 아니할 영생을 드러내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 『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고 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성령이 친히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결코 인생과 같지 아니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지존하시고 온 땅의 왕이십니다.
시편 47편 2절에 『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향하신 절대 인자와 절대 진실이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시편 117편 2절에 『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소부재 하셔서 인생들이 그의 눈 앞에 피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시 139:7-12).
그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32장 17절에 『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랑이십니다(요일 4:8, 16).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죄와 율법에 매인 자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갈 4:4-5).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종이 아닌 아들로서 친근한 관계가 성립된 것입니다(갈 4:6-7).
이 모두는 내 뜻과 나의 의지로, 나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아이가 원해서 부모를 얻지 못함과 같이 부모에 의해서 아이가 자녀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後嗣)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후사(後嗣)라는 말은 아비의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영의 사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된 것을 공포했습니다. 참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임)할 사건이요, 상전벽해(桑田碧海-뽕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됨)의 사건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진 신분의 외적 증거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Ⅲ. 우리에게 주는 현대적 의미입니다.

기독신자들이 표면적으로는 남들만 못한 데가 많습니다(고전 1:26). 
나무의 재질로는 쓸모가 없을지라도 열매는 맺어야 합니다. 들포도나무라 할찌라도 열매는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을 포도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은 미천한 자리에 두고 자랑할 것이 없도록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풍채도 없고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사 53:2). 
이사야 53장 2절에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3절에 『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갈 6:14).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 했습니다. 

① 바울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고전 15:9).
②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엡 3:8).
③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딤전 1:15).
바울은 갈수록 낮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징계하셨습니다. 만일 징계 받지 않으면 그는 참 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히 12:8).
자신에게 고난이 있다면 그것을 징계로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징계를 받으면서도 자기가 남보다 의인인 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욥 5:17-18). 유다 백성들의 범죄는 다른 민족들의 범죄와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대단히 민감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6-7절에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가서 5장 9-10절에 『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희고도 붉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희고도 붉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기독교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희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무죄성결을 의미합니다. 붉다는 표현은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말합니다. 

희고도 붉다는 말은 타종교와의 차별화를 말합니다. 
희고도 붉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행실과 경건입니다(딤후 3:10; 벧전 1:15; 벧후 3:11). 구속의 확신과 믿음입니다(눅 18:8; 요 1:7, 12).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엡 5:1) 그리스도와(살전 1:6) 하나님의 교회(살전 2:14)를 본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희고도 붉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5-16절에 『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희고도 붉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행 20:28; 엡 1:23; 골 1:18, 24).

오늘의 교회가 너나 할 것 없이 성경을 강조하지만 결코 개혁주의는 아닙니다. 성경해석 원리와 신앙의 전통이 개혁주의와 비개혁주의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정통성, 규범, 가치, 복음의 진리가 붕괴되어 아노미 현상(anomie, 행위를 규제하는 공동의 가치나 도덕기준의 판단력을 잃은 혼동상태)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교회가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시행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나라와 민족에게 시행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인간적인 자신의 요구를 철저히 거부하는 자기 부인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철저히 자신의 것을 챙기고 쟁취하는 것만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있어도 진리 증거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작 진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객관적 성결이 주관적인 거룩으로 성도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커다란 이반현상(離反現象, 사이가 벌어져서 떠나거나 돌아서는 상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에 보지 못한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앙과 살인적인 이기주의로 인해 교회에 영적인 빈곤이 심각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축복이 아니고 회개입니다. 이런 회개가 성도들에게서 사라지고 오직 세상적인 축복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지만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 열매는 십자가 희생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주일성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교회운동의 수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나를 통해 주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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