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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성품이 중요한가? (롬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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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품이 중요한가?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품이란?

얼마 전 미국에 있는 한 한인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쪽 편과 저쪽 편이 갈려서 싸움을 하다 보니 험한 말들이 오고 가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입니다. 감정이 상하면 목사라는 직분도 장로라는 지위도 소용이 없는 모양입니다. 중요한 것은 보통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근본적인 성품이 극한 상황에서는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의 문제들이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통계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 폭력 범죄의 55%가 가정 폭력이며, 피살자의 90% 이상이 아는 사람에게 죽으며, 그중 45%는 친척에게 살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성품의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갈등이 불거질 기회도 많으며, 삶의 위기는 아무도 없이 동떨어진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합니까? 어떤 사람은 술을 먹기도 합니다. 담배를 피우기도 하며, 약을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통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후유증이 남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을 격리하며 가두는 방법이 잠시의 문제 해결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의 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배우자를 버리는 순간 스트레스는 그대로 자식들의 몫이 됩니다. 직원이 불만에 차서 사표를 던지는 순간 후속조치를 위해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법적인 제재도 아니며, 인간의 제도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외모와 재산, 학력과 배경으로 결혼이 성사되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런데 그 결혼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성품이 필요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녀를 낳고 기릅니다. 그런데 그 자녀와의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것은 성품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고 결정하고 등록하여 교인이 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관계는 성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결국,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어떤 성품의 사람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품은 마치 윤활유와 같습니다. 좋은 성품의 사람이 있으면 윤활유로 기계가 마찰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문제는 성품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도 동일한 경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가보면 모든 것이 변해 있는 것을 봅니다. 나무들이 자라고, 흙이 패고, 물줄기에 따라 지형이 바뀝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오랜만에 접하는 사람들에게 보입니다. 매일 그곳에 살며 보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 변화입니다. 중요한 것은 쉽게 보이지 않는 그 변화가 매일매일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성품이 변화되고 있으며, 그 변화된 성품이 바로 “여러분이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성품"에는 다음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1. 성품은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진정성을 드러냅니다. 

빌 하이벨스는 그의 책,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에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인격이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이다. 인격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바, 곧 평판과는 다르다. 인격은 성공이나 성취와도 다르다. 인격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제가 예전에 분당 CBMC 성경공부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모임의 회장은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십니다. 화요일 새벽에 공부를 하는데 저를 돕는 전도사님에게 성경공부 스케줄을 잡기 위해 그 모임의 회장인 장로님과 의논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정 전도사 문길주 회장하고 이야기를 했어?"라고 말하는데, 그 회장님이 고개를 들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나이도 있고 장로님인데, 물론 그렇게 큰 실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회장님하고, 장로님하고"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날 오후 괜히 민망한 마음에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없는 곳에서 저의 모습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민망스럽지 않습니까? 
누구에 대한 당신의 성품은 그 누구도 없는 곳에서 드러나는 당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당신의 성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이 성품의 문제는 구원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다 해도 절대로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성품을 가진다면, 구원받은 자로서의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품은 구원받은 자들의 열망이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알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성품의 문제는 아주 중요한 삶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는 오늘 이 말씀이 ‘성품’이 왜 중요한지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받은 백성을 삼으신 이유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이 우리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는 곳에서 드러나기보다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당신을 알아보는 이가 없는 곳에서 그 특징이 가장 명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끔 부자지간에 혹은 가족 간에 아주 닮은 사람을 발견합니다. 혹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 사람은 처음 봐도 누구 아들인지 알겠어!"
게다가 오늘 말씀을 통해 받는 도전은 아버지의 기업을 이을 "맏아들"이 되도록 우리의 성품이 변화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맏아들"이란 성경에서 육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제가 구약 성경공부 교재를 쓸 때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차자(次子)의 원리"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전통과 그 당시의 문화에 의하면 맏아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믿음의 조상을 이룬 사람들의 족보를 보면 결코 그 원리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 하갈이라는 몸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하나님이 그런 육신의 순서를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이 사랑하는 아들 에서에게 축복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기업은 축복을 사모하는 차남 야곱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야곱의 아들 12명 중에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다 목사님이고 대를 이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4명 중의 3명이 장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족보를 이어가는 또 다른 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말입니다.


2. 두 번째 특징은 성품이란 삶의 위기 가운데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훈련은 우리 몸에 아주 익숙하도록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다급한 순간에 그 성품이 나타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성품의 첫 번째 특징을 이야기하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우리가 누구인지가 드러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것은 나의 가장 익숙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막 근대화되던 때에는 서울에 상경한 사람들이 성공을 하면 서울 말투로 바꾸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가 돼서 고향에 가면 서울 말씨를 쓰면서 뽐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위기의 순간에는 사투리가 튀어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어떤 경상도 아가씨가 서울에 올라가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딸이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우짜면 좋노 아이를 가졌습니더"
그랬더니 아버지가 딸의 뺨을 때리며 말을 합니다. 
"아니 공부하라고 서울에 보내 놨더니 아직도 사투리야?"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유도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 선수는 실제로 운동을 하는 시간도 있지만, image training을 많이 했답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경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익숙해져서 진짜 시합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그의 생각 속에 입력된 상황이 그대로 나오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성품이 나올 수 있을까요? 훈련 이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교인들에게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가 복권에 당첨되듯이 어느 날 우리의 신앙이, 믿음의 성품이 생기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계속된 영적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한번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가장 무서운 일을 당하는 순간 여러분의 삶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쯤은 들어 봤음 직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학교 유년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겁도 없이 야심한 밤에 귀신이 자주 출몰한다는 공동묘지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아이였기에 담대하게 그리고 호기심에 차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지나갑니다. 
"귀신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진짜 귀신이 눈앞에 나타나는 게 아닙니까? 아마도 이 어린이가 주일학교에 잘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번뜩 떠오른 것이 선생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들, 귀신이 나타나면 찬양을 크게 부르세요. 그러면 귀신이 도망가요"
그런데 찬양을 부르려고 하는데 무엇을 불러야 할지 고민하던 중 생각난 것이 매 주일 새로운 친구들이 올 때마다 불렀던 찬양이었습니다. 
귀신을 향해 두 손을 쭉 뻗고는 찬양을 부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그다음은 이렇습니다. 
찬양을 듣고 당황한 귀신이 계속해서 듣다가 감동을 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성품이, 여러분의 모습이 과연 어디를 향해 가는가? 어떤 성품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그런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현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미래는 늘 우리의 기대에서 존재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 미래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으며 과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바로 우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장례식을 참 많이 집례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장례식은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슬픔의 차원을 떠나 ‘의미 있는’ 장례식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의미 없는’ 장례식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장례식에서는 늘 그 사람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살아왔던 것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 관속에 돈을 넣기도 하고, 골프채를 넣기도 합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가장 사랑했던,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장례식에서 3분 동안 당신의 삶을 요약해서 이야기할 때 당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그 시간에 드러나는 것이 당신의 ‘성품’입니다. 당신의 성품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품이 나무와 같아서 하룻밤 사이에 자라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품은 평생 자라나는 것입니다. 성품은 벼락치기 공부로 맞추는 진위형의 문제, 고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성품은 평생을 써 내려가야 하는 서술형의 문제입니다. 

이런 질문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성품에 관한 한 당신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실패자이십니까?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승자와 패자"

승자는 문제 속으로 뛰어들고,
패자는 문제의 주변을 맴돈다.
승자는 눈 쌓인 벌판을 밟아 길을 만들고,
패자는 쌓인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
승자는 등수나 포상과는 상관없이 달리나,
패자는 포상만 바라보고 달린다.
승자는 달리는 도중에 이미 행복감에 젖어 있으나,
패자는 경주가 끝나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규용의 ["아들아,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라] 중에서

이 정도 이야기를 했으면 성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셨겠지요? 지금 여러분은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되어 인생을 서술하고 계십니까? 아니 우리에게 문제는 이런 성품을 가지고 싶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요? 혹시 여러분은 경험을 통해 좋은 성품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또한, 그런 경험들로 절망감을 느껴보시지 않았습니까?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묵상해보려는 이 성품의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주체가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본문을 읽으며 생각해 보십시오. 이 문장의 주어가 누구로 되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으며 아들의 형상을 닮아 맏아들에게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성품’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품에는 기준이 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말세를 사는 성도들의 삶을 권면하며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지침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공급하심’ 이것이 오늘 우리가 다루려는 성품의 주제입니다. 
엔디 스탠리는 그의 책 [성품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에서 이런 정의를 내립니다. 

“성품이란 일신상에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의 옳은 길을 가려는 의지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임을 주목하십시오. 즉 좋은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좋은 성품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사랑하고 권면하고 봉사하는 일 가운데서도 우리의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우리가 봉사하는 것에도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입니다. 
우리는 성품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어야 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기분이나 경험이나 소원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기준 말입니다.

얼마 전 심방을 갔습니다. 
그분의 고민이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라고 하는 말이 너무 추상적인 것 같아, 목회자의 눈으로 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해도 되고 용납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열심히 봉사하는 교인들에게 상처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열심을 잘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오해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봉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받고 일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분 중에 한 분이 파구스(카페)를 담당했던 장로님입니다. 그리고 파구스에서 일하는 분들이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왜 돈도 안 받는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일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말이 더 대단합니다. 
“돈 받는 일이면 이렇게 열심히 하겠습니까? 봉사니까 하지요.”
우리가 이번 여름에 단기선교를 많이 갔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런 오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왜 교회의 예산을 낭비하느냐고, 하지만 그곳에 가는 사람들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그 땅을 밟으며 가슴에 품기 위해 자기 돈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눈에서,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하지 않는다면 정말 힘든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준으로 우리의 성품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을 주는 일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존 울 핑거라는 선교사는 보르네오에서 약 100명의 개종자 그룹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군이 섬을 점령하자 선교사를 체포하여 처형하려 했습니다. 그 교회의 개종자들은 울 핑거 선교사를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산속에 숨겨둘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울 핑거는 체포를 면하려고 도망가면 개종자들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거절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개종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아 있다 붙잡혀 처형당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 앞에 서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성품의 기준이 없다면, 다른 것으로 이것을 채우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은 나쁘게 살려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신념으로 무장된 성품의 사람들 때문에 문제입니다. 

히틀러의 신념이 무엇입니까? 그는 우월하거나 열등한 민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신념에 의하면 모든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제가 방문했던 르완다의 비극 역시 후투족이 투치족을 말살하려는 신념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기준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나요? 얼마 전 신문에 보니까, 17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던 여인 때문에 결국은 징역을 살게 된 사람의 기사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결혼한 여인에게 계속해서 접근을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다른 남자가 있었다고, 불륜을 저지른다고 전화와 메일을 보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얼마 전에 저를 힘들게 하는 한 여인이 기도실에 있는 제 아내를 우산으로 내려쳤습니다. 저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자신이 사모가 돼야 한다는 확신이 있기에 제 아내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제 아내를 발로 차고 가기도 합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잘못된 확신으로 형성되는 잘못된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 그 어떤 것도 대용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품이란 일신상에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의 옳은 길을 가려는 의지다.”라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모든 성품에 대한 씨름의 핵심에 주재권의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꺼이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아들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이런 성품을 닮아갈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오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감동에서 출발하지만, 신앙생활은 ‘의지’입니다. (김병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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