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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모신 영혼의 성전 (요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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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모신 영혼의 성전 (요 2:13-22)
   
저는 요즈음 영성훈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고 또 해석하면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또한 앞서 믿은 성도들은 무엇을 믿었고, 어떻게 믿었는지 알고 싶어서 영성에 대한 책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기”란 책을 보는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가지 단계”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중세의 영성가인 프랑스 시토수도회의 클레르보의 성 버나드라는 분이 말한 것이었습니다. 버나드는 아주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구약의 족장인 야곱의 영성이 어떻게 자라고 성숙하게 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가지 단계”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1) 자기를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성형성은 이 단계로부터 출발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자신만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며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단계로부터 출발하지만,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2)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찾게 됩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자기를 찾고 자기가 누구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거짓된 나에서 참된 나, 참된 나-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자기를 위해서 자신을 사랑하던 옛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하나님과 신비한 연합으로 나아갑니다.

4)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갈망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에 오래 머무르며 깊이 사귀게 됩니다.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입니다.

사도바울이 그의 살아 있는 영성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행17:28에서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새번역)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이 말씀대로 되어야 합니다. 참된 영성, 참된 신앙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움직이고 존재합니다. 

저는 요한복음을 자세히 강해한 적이 있고, 요한복음을 가지고 소그룹에서 몇 년 동안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가장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저자의 의도하는 바에 따라 편집되었고,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하는 목적을 말씀하였습니다. 

요20:30-31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요한의 저술의 목적과 의도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 단어를 보아야 합니다. 표적(Signs)과 믿음(believe) 그리고 생명(Life)입니다. 

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표적이라고 할 때에는 언제나 그 사건이 그리스도를 변증하는 기독론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은 예수님은 과연 누구시냐 하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고 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겼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 하나님 안에 있었던 생명인데, 이제는 아들 안에 들어온 생명이요,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생명, 아들의 생명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표적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 의도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이 다가오는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고 있습니다. 

성전은 본당건물이 있고, 제사장이 들어가서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의 뜰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남자들이 들어가는 남자의 뜰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여자들이 들어가는 여자의 뜰, 그리고 담장 밖으로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성전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들어가신 곳은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에 성전 안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환전상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짐승들 소와 양과 비둘기 같은 것들은 성전 안에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돈 바꾸는 것도 성전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소나 양이나 비둘기 같은 제물은 각자가 자기 집에서 끌고 와야 하지만, 오는 중에 병들거나 다칠 수도 있고, 멀리 북쪽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짐승을 끌고 온다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비둘기를 새장에 넣어가지고 오다가 모이를 주어야 하는데, 그만 비둘기가 날아가 버리면 다시 집에서 가서 다른 비둘기를 가져와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 양시장, 우시장에 가서 제물을 사가지고 오는 것이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야 소를 키우는 사람도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고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제사장들이 목축업자로부터 사들여 합격 판정을 마쳐놓은 짐승을 성전 근처에서 살 수만 있다면 편리한 것도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우시장에서 가서 사왔는데, 제사장이 자세히 보더니 병든 것 같다고 하면 거절하고 비토하면 다시 우시장에서 그 짐승은 무르고, 다른 짐승을 사가지고 와야 합니다. 이렇게 한두 번 비토를 놓으면 번거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신경질이 나고 아예 제사를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편의를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제사장도 돈을 벌고, 이익을 챙기고 목축하는 업자들도 좋고, 교인들은 편리해서 좋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맞아 떨어지면서 이방인의 뜰은 가축시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전세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20세 이상이 되면 반 세겔이 되는 돈을 속전으로 바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 통용되는 로마의 데나리온과 드라크마는 부정한 돈이라고 하여 받을 수가 없었고, 유대나라에 만든 세겔이라는 돈만 성전에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래서 환전상이 성전에 들어왔습니다. 상납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장삿속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보시고 분노하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어주는 사람들이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외치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있던 제자들은 성경 말씀을 하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69:9의 말씀은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편69:9입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본 뜻은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위하는 열성이 가득하였습니다. 

12살 때에도 성전에서 성생님들과 함께 앉아 그 분들에게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는데, 예수님을 찾는 어머니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눅2:49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성전에 마음이 있었고, 성전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성전은 곧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신성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접한 유대 교권자들이 물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말합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그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고,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곧 성전이십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성전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 모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게 됩니다. 

중세 영성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hhart)는 영적 성장은 성경 읽기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본문의 표면적인 의미에만 머무르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을 깊이 묵상하는 중에 영적인 진리를 캐내라고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신앙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성전’이라는 말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거하시는 거룩한 공간이요, 곧 우리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우리 영적 상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성령의 전입니다. 고전3:16-17에서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하나님이 나의 영혼에 임재하시고 거하시기 원한다면 하나님만이 거하실 수 있도록 다른 잡다한 것은 다 비우고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쫓으신 이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이며 종교적인 선행을 하나님께 파는 신앙의 장사꾼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의미에서 신앙의 장사꾼들과 같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 금식, 헌금, 봉사가 때로는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장삿속으로 행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드리면 하나님은 내게 더 많이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장삿속의 신앙입니다. 이러한 상업적인 신앙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잡다한 우상들, 내 속에는 내가 너무 많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은 바로 나입니다. 소유욕과 명예욕과 세상 정욕으로 가득 차 있는 나를 버리고 싶습니다. 더 이상 끌어안지 말고,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마음, 그의 인격, 사랑과 삶을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백석대학의 하덕규교수가 부른 ‘가시나무’라는 성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 내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 내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동일화하느냐 따라 그의 삶의 질이 달라지고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평생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야 하는 유일한 분은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유명한 작가 ‘오 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였습니다. 그가 은행의 직원으로 일하다가 공금횡령죄로 감옥에 수감되어 5년간 복역하던 중에 신실한 신앙을 가진 ‘오 헨리’라는 교도관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의 감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 헨리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한 청년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어주었습니다. 

시드니 포터는 자기의 옛 사람인 윌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이름을 버리기로 하고 대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준 ‘오 헨리’라는 이름으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교도관의 양해를 얻고 출소하여 많은 작품을 쓰면서 오 헨리로 책을 내었습니다. 시드니 포터가 출소하던 날 교도관 오 헨리는 “우리들의 이름을 잘 지키고 아름답게 사세요”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 후 시드니 포터는 오 헨리의 이름으로 수많은 걸작을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담아내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임재하시는 성전이 될 때에 그의 인생은 예수님의 생애와 같이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한국선교신문에 실린 실화가 있습니다. 

미얀마(버마)에 한 독실한 불교 승려가 황열병과 말라리아 병에 걸려 죽었다가 삼일 만에 화장하기 직전에 살아난 일이 있습니다. 승려는 삼일 동안 죽었을 때 천국과 지옥을 보았는데,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사실을 간증하면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울루(Ather Pyan Shinthaw Paulu)입니다. 파울루는 1958년에 델타 (Irrawaddy Delta)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모의 권면으로 17살 때 불교 수도원에 들어가서 19살 때 정식 승려가 되었는데, 그 때 받은 이름이 아쉰트라야(U. Nata Pannita Ashinthraya)입니다. 그 때에 미얀마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었던 승려가 사얀다우(U. Zadila Kyar Ni Kansayandaw) 승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파울루 승려가 수도원에 들어간 지 6년째 되던 해에 황열병과 말라리아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었다가 화장하기 직전에 살아나서 관에서 벌떡 일어나니까 모든 승려들이 놀라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3일 동안 죽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몸이 부패해서 냄새가 났습니다. 관에는 송장 물이 흥건히 흘렀는데 불에 집어넣기 직전에 깨어 일어났습니다. 그가 죽어서 관에 있는 동안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강한 폭풍이 불어오더니 모든 나무가 다 쓰러진 뒤에 강 건너편을 바라보니까 무시무시한 지옥 불이 보이더랍니다. 그 지옥에 가까이 가서 보니까 지옥의 사자가 있는데 얼굴이 사자 같고 발은 뱀 같고 머리에는 뿔이 있더랍니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나는 지옥의 왕. 파괴자다(destroyer)" 하더니 지옥을 보라고 해서 들여다보니까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던 사얀다우 승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지옥에 와 있더랍니다. 아니, 그 훌륭한 분이 왜 이 끔찍한 지옥 불에 들어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좋은 선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왔다."고 하더랍니다. 

 또한 곳에 보니까 긴 머리칼이 덮인 자가 머리를 왼손으로 감싸 쥐고 번민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네가 숭배하던 가우타마(부처 Buddha)다." 하더랍니다. "부처님은 훌륭한 윤리와 도덕적인 사람인데 왜 지옥에서 고통을 받습니까?"라고 했더니, "얼마나 착한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온 것이다."라고 하더랍니다. 

또 한 곳을 보니까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며 혁명가인 아웅산이 있더랍니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아웅산 지도자가 여기에 왜 있습니까?" "그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외에 많은 사람을 보면서 가는데 좁고 험한 길이 보이는데 빛이 환하게 비취더랍니다. 그 쪽으로 가는데 베드로라는 분을 만났는데 더 이상 못 간다 하더니,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지상의 명령을 다 행한 후에 들어오라고 하면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지금까지 본 것을 세상에 나가 전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죽었다 3일 만에 살아나 자신이 본 일들을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는데 그 간증한 내용을 비디오와 오디오 테이프에 담아 버마 지도자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는 죽어있는 동안에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사실을 승려들에게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살려두면 엄청난 배교가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고 붙잡아 감옥에 보냈는데, 생사를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 우리 몸과 영혼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성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더럽고 추한 탐욕과 명예를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을 믿어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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