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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집중하라 (출 15: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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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집중하라 (출 15:22-25)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기적을 맛본지 4일이 지난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본문 22절의 말씀처럼 모세는 홍해를 건넌 후에 똑바로 가나안 땅을 향해 나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르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에 분명히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이 아닌 수르 광야로 그들을 인도하여 거기서 4일 동안 걷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지 4일이면 가나안 땅의 1/3 이상은 오고도 남는 거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때 수르 광야로 내려간다는 것은 아주 잘 못된 방향입니다. 처음 이집트를 떠날 때의 약속과 전혀 다른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광야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더욱이 그들은 지금 3일 동안 물없는 광야의 길을 걷고 또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3일 동안 길을 걷는 동안 그들은 짐승에게 먹일 물도 자신들이 먹을 물도 결코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목은 너무나도 타올랐고, 입술을 바싹 말라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22절 말씀에 보면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23절에는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너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라고 했습니다. 3일 만에 겨우 물 마실 곳을 발견 했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써서 먹지 못하는 ‘마라’라는 물 웅덩이였습니다. 그들이 마라의 물을 맛보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24절 말씀을 보면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시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로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들에게 채워지지 않은 육체적인 삶의 문제로 인해 원망과 불평이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런 경우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더딤으로 인해 낙망하고 원망하고 불평한 적이 없습니까? 언제까지 인생의 물 없는 광야를 걸어야 하는 것인가? 라고 한숨 지며 낙심해 본 적은 없습니까? 또한 ‘이제 살았구나!’ 하는 순간 그것이 생명의 물이 아니라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마라와 같은 쓴물을 만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하고 원망 한 일은 없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들에게 마리의 쓴 물은 얼마든지 단물로 바꿔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얼마든지 감사의 기적으로 바꿔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치료하시는 분이며, 얼마든지 우리를 치료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그의 중심에 두고 사역하는 노먼 빈센트 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후두염에 걸려서 잘 아는 친구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그를 가만히 진찰하더니 “자네,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답변하기를 “목사가 무슨 다른 걱정이 있겠는가. 그저 늘 설교 준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지. 다음 주일이면 내가 무슨 말을 성도들에게 전해야 할까, 또 심방 가서는 무슨 말씀을 전해야 될까, 이런 걱정이 늘 나를 항상 괴롭힌다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 의사는 뜻밖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가 가진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착 하게.그것이 우리의 신앙이 아닌가!” 

오늘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라는 이 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믿음과 집중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오전히 집중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사흘 전에 그들은 분명히 홍해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위로 펼쳐진 홍해의 바닷물을 그들의 이마와 얼굴에 맞으면서 마른 땅을 건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의 노예로 있을 때에도 그들은 물이 변하여 피가 된 것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늘이 흑암으로 변하고, 원수들의 장자들이 죽어 그들이 자유하게 된 것을 모두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그러나, 오늘 그들은 불과 이집트에서 나온 지 불과 사흘 만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신 그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불만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원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삶의 환경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빼앗기고 불행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내 자신의 환경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환경을 지배 하는 인생이 환경에 지배 받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벽지를 바꾸려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벽지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환경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생각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원망하는 사람들과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환경에 붙들려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환경에 붙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최대의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기도라는 엄청난 무기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의 환경과 인생을 바꾸시는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환경에 묶여서 기도의 능력을 상실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기도를 하지 않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원망과 한숨과 불평이 나옵니다. 

성경은 분명히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7절에는 분명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악한 사람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게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문제는 구하지 않고 낙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믿음의 위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환경을 보고 낙심할 것인가?”

예수님은 마태복음 6:27절 말씀을 통해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자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는 우리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염려할 시간이 있으면 모세처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래 전에 중국에 기(杞)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기 나라 사람 중 한 사람이 나무 밑에 앉아서 큰 한 숨을 쉬면서 땅이 꺼져라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친구 하나가 이 사람을 보고 "자네,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나?"하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이라고 대답한 줄 아십니까? 그는 말하기를 "지금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생긴 말이 기인우천(杞人憂天)이라는 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쓸데없는 걱정을 기우라고 하는데 이 말이 바로 이 고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을 붙들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 자꾸 집중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느냐? 하나님을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더 랭크’ 라는 영국의 실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습니다. '자금 사정이 안 좋은데 이러다가 부도가 나면 어떻게 하나?' '매출액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해야 늘릴 수 있을까?' 이렇듯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들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날 그 쪽지들을 꺼내 보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에 그는 상자 속의 메모지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큰 문제인 것 같아도 우리를 인도하슨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환경에 붙들리지 말라고 합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렇게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맡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경에 붙들려 원망하고 모세를 대적하고 불평을 늘어 놓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환경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여 홍해에서 했던 것처럼 손을 높이 쳐들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근심은 인생에 조금도 유익함이 되지 않습니다. 근심하고 염려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의 말씀 중에 씨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가 뿌린 씨 중에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가 있었습니다. 그 씨가 왜 열매를 맺지 못한 줄 아십니까? 마태복음 13:22절에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라고 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음이 기적을 맛보지 못하고 염려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바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강보조 의약품 중에 맨소래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서점을 경영하던 사람이었지만, 1887년에 밀어닥친 미국의 경제공황으로 그의 사업은 부도가 나 10만 달러라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빚더미에 앉아 인생을 한탄하면서 왜 자신이 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읽는 중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잠언 16:3절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사업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자신이 사업의 주인이 되어 경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사업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그 마음에 자신의 창고를 채우기 앞서 하나님의 창고를 채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라기 3:10절에 있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는 말씀을 떠올리면서 먼저 하나님의 창고를 채우는 십일조 생활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 생각을 하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니 그 동안 바른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집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밀렸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습니다. 심지어 빚이 있는 사람이 빚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십일조를 드린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철저하게 수입에서 나오는 이익에 대해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고 그의 십일조는 매달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1/10에서 시작해서 9/10까지 드리는 엄청난 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쓴 물에서 단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 전체를 바꾸실 수 있는 분입니다.

유명한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서 염려는 끝나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서 신앙은 끝난다”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환경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바라보고, 자신이 처란 처지를 바라보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 샘물을 물을 찾아도 그 샘물은 단물이 아닌 쓴물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부르짖는 인생들은 쓴 물이 변하여 반드시 단물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42:5절을 찾아 함께 이 말씀을 큰 소리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11절도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3:5절도 찾아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바꾸시는 그 하나님께 집중하고 환경을 믿음의 기도와 믿음의 부르짖음으로 변화 시켜야 합니다. 오늘 분명히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불평할 시간이 있다면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여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치료하는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진실로 믿음의 기도는 치료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모세가 기도함으로 쓴 물이 단물로 바뀐 것처럼 여러분들의 근심과 걱정과 원망과 불평과 낙심과 절망과 좌절과 마음의 아픔과 고통이라는 마음의 질병과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환경과 육신의 모든 질병이 이 시간 쓴물에서 단물로 변화되고 치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따라합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치료하신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신다” “기도하여 기적을 일으키자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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