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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와 구원 (요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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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구원 (요 3:16-18) 


제가 좋아하여 가끔 설교 중에 인용하는 시중에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1977년 10월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들었던 시였는데 35년이 지났는데도 그날 그 시를 들으며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맡기고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 사람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오”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제가 함석헌 선생님의 이 시만큼이나 좋아하는 시가 몇 더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이해인 수녀의 ‘겨울 길을 간다’는 시입니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 녘에 
가을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두 분의 시보다 조금 늦게 알게 되었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가 또 있는데 김남조 시인의 ‘밤기도’입니다.

하루의 분주한 일들
차례로 악수해 보내고
밤 이슥히 먼 곳에서 오는 듯만 싶은
주님과 나만의 기도시간

주님.
단지 이 한 마디에
천지도 아득한 눈물

날마다 끝 순서에 
이 눈물 예비하옵느니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이다.

깊은 밤에 눈물 한 주름을
주께 바치며 살아지이다.

세 분의 시에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 이해인 수녀의 ‘고운 별’ 그리고 김남조 시인의 ‘주님, 단지 그 한마디’가 바로 그것입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하나 있으니 ‘너 뿐이야’ 하며 빙긋이 웃고 죽을 수 있는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 별 없는 겨울 숲을 걸어도 늘 행복한 이해인 수녀의 ‘고운 별’ 분주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세상의 어떤 일도 시인에게 줄 수 없었던 천지도 아득한 눈물의 원인 ‘주님’

이것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세상 아무리 좋아도, 성공한 것 같아 보여도, 부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참 만만치 않습니다. 불교적인 용어이지만 세상은 정말 고해(苦海)입니다. 고난과 고생이 바다처럼 펼쳐진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세상의 환경이 갑자기 다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이 여전히 고해임에도 불구하고 그 바다 같은 고난과 고생을 다 잠재울 ‘그 사람’, ‘고운 별’, 즉 ‘주님’ 한 분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저도 참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 몸이 감당 못할 만큼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때가 목회하면서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려움에 침몰하지 않고 버텨내고 드디어는 거기서 벗어나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 아니 절망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보았을 때 제 마음 속에 이런 마음과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죽고 망할 존재라면 우리 예수님 나 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도 않으셨다.”

그때 비로소 제가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9회 말 야구 시합에서 승리하였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회 말에서 승리한 것이라면 게임 도중 좀 어렵고 힘든 것은 아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 메이저 리그의 투수가 되었을 때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상상도 못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찬호 선수가 그 메이저 리그 게임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승리한 게임을 녹화 테잎으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이긴 게임인데 게임은 원사이드하게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1회전에 볼을 19개나 던졌습니다. 볼 컨트럴이 잘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해설자가 걱정하였습니다. 3회 전인가에는 만루 핀치에 몰렸고 5회인가에서는 홈런도 맞았습니다.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해설자는 거의 게임을 포기하는 듯한 맨트를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천하 태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박찬호 선수가 이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제가 박찬호 선수가 홈런을 맞았을 때 절망하며 텔레비전을 껐다면 저는 정말 미친 사람입니다. 저는 구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4회 말에 정말 감당 못할 홈런을 맞았었습니다. 그때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이런 일 때문에 죽고 망할 사람이라면 우리 예수님 나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도 않으셨다’라는 기막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9회 말에 승리한 사람이, 구원 얻은 사람이 4회 말에 홈런 좀 맞았다고 주저 않고 절망한다면 그것은 미 친짓이다’라는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62편의 말씀이 마음에 묵상되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시 62:1-2)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극치는 사람이 되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시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까닭은 단 하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사실을 성경을 통해 읽으며 그와 같은 행동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비장하고 강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난 너 죽고 망하는 꼴 못 봐’ ‘너를 구원하고 살리는 일이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여러분 이게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난 너 죽고 망하는 꼴 못 봐’, ‘너를 구원하고 살리는 일이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하셔도 예수님이 우리 같이 무능한 존재라면 고맙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희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작심하셨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믿고 받아만 들인다면 우리는 구원 받은 겁니다. 승리한 것입니다.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있습니다. 역경도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상황도 있습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그게 게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과 역경과 좌절과 절망스러워 보이는 상황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까닭은 그것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둘째 아이가 저희 집에서는 처음으로 군대에 입대하였었습니다. 군대 입대할 때 육사 8기생이신 저희 교회 집사님이 우리 아이에게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참 기가 막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훈련을 받다보면 꼭 죽을 것만 같이 힘들고 어렵고 무서운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네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훈련 받다가 죽은 훈련병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 만, 수 십 만, 수 백 만 명의 훈련병들이 다 그 훈련을 무사히 받고 강한 군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잊지 말고 가슴에 품어야 할 ‘고운 별’입니다. 그러면 겨울 숲길도 외롭지 않습니다. 가난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 가난까지도 행복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 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있습니다.

예수님이 풍랑이는 바다에서 절망하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 바다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자기도 걷겠다며 바다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베드로도 걸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되어 바다를 보는 순간 빠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삼켜 버릴 것만 같은 풍랑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 누구나 다 그 세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루 홈런을 맞은 것만 같았던 제 인생의 4회 말 그 때 제가 그 순간만 생각했다면 침몰했을 겁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제 인생의 9회말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구원 얻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였습니다. 바다 위를 저도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있으십니까?
이해인 수녀의 ‘고운 별’이 여러분의 가슴에도 있으십니까?
김남조 시인의 ‘주님’이 여러분에게도 언제나 있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저에게는 ‘그 사람’이고, ‘고운 별’일이고 ‘천지도 아득한 눈물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음에 걸고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리는 절망 속에서도, 겨울 숲길을 홀로 그나마도 가난하게 가는 상황 속에서도, 정말 분주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기쁠 수 있고, 감격할 수 있는 그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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