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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존귀하게 하실 사람 (에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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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존귀하게 하실 사람 (에 10:1-3)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페르시아의 왕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다 섬들”이라 한 것은 지중해와 그 연안도서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하수에로 왕 때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가 지중해 연안도서에까지 미쳤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중해 북부 연안 쪽으로는 마게도니아와 오늘날의 터키, 남부 연안 쪽으로는 리비아와 이집트까지가 다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의 영토는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 영토보다도 넓었습니다. 아마도 징키스칸의 몽골 제국을 제외하고는 페르시아보다 더 넓은 영토를 정복한 제국은 역사상 없을 것입니다. 페르시아는 영토만 넓었을 뿐 아니라 그 부와 영화와 위엄도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에스더>서의 첫머리 부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에1:1-4의 기록입니다: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그런데 이렇게 페르시아의 강대한 국권을 언급한 것은 페르시아 제국과 그 왕을 예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대신이 된 유대인 모르드개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드개라는 인물을 그저 <에스더>서를 읽을 때만 잠시 접했다가 평소에는 거의 잊고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르드개라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로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 다음의 제2인자가 되어 다스린 페르시아의 영토는 광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의 하나였던 페르시아의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보통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한국에서 이민 가거나 귀화한 교포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거나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다거나 중국의 국가주석이 되는 것보다도 더 대단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총리대신도 보통 총리대신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했고 왕의 다음이 되게 했다고 간략하게 기술되었지만 우리는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서 왕을 생명을 보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실과 훗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하수에로가 총리대신에게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자기의 왕복을 입히고 자기의 왕관을 씌우고 자기의 말에 태워서 왕도의 거리를 다니게 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 아하수에로는 모르드개를 아예 페르시아 제국에서 자기 다음 가는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모르드개 이전에도 강대국의 총리대신이 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자손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요셉과 다니엘입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형들에 의해 팔려 이집트로 내려갔다가(창37:25-28) 우여곡절 끝에 삼십 세의 나이에(창41:46) 바로에 의해 강대국 이집트의 온 땅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창41:37-43). 요셉 또한 바로의 절대적 신뢰와 총애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바로는 그의 신하들에게 요셉을 가리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창41:38) 하고, 요셉에게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창41:39-40) 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이집트 전국의 총리가 되게 하고는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며 말하기를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했습니다(창41:41-44). 요셉이 이집트에서 누린 권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 아버지 야곱이 죽었을 때와 그 자신이 죽었을 때 거의 바로의 장례에 준하는 장례를 치룬 사실(창50:7-11, 26)만으로도 짐작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집안 식구들뿐 아니라 이집트 온 백성과 주변 모든 지방의 민족들까지 다 기근에서 살려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요셉 덕분에 이집트 땅에서 살면서 얼마나 풍요를 누리고 번영에 번영을 거듭했는지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백성보다 더 많아졌고 강해졌다고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출1:6-9). 

유다 자손으로서 이방 강대국의 총리의 지위에 오른 또 하나의 인물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 때 그의 왕궁으로 불려간 유다 자손의 젊은이 중 하나였습니다. 바벨론은 이집트보다 훨씬 넓게 영토를 확장한 강대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도 생명을 잃을 뻔했던 위기를 여러 번 맞았지만 바벨론 왕들의 신임을 유지하며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며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으로 높임을 받았습니다(단2:48).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벨사살 왕에 의해서도 나라의 셋째 통치자가 되었고(단5:29), 그 뒤에 정권을 잡은 메대 사람 다리오에 의해서도 전국을 통치하는 백이십 명의 고관들 위에 있는 세 명의 총리 중 하나가 되었다가 전국을 다스리게 되었으며(단6:1-3) 그 다리오 왕의 시대뿐 아니라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시대에도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단6:28). 이렇게 다니엘은 나라가 바뀌고 왕들이 몇이나 바뀌어도 정권의 정상에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받은 대우도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자기의 꿈을 다니엘이 잘 해석해주자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까지 하며 많은 귀한 선물을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기까지 하고 다니엘의 왕궁 자기 곁에 있게 했습니다(단2:49). 그 후에 다리오 왕 또한 다니엘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단6:26-27). 

모르드개는 요셉이나 다니엘보다는 우리에게 덜 유명해도 이스라엘의 역사에 기리 남을 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동족 유다인들로부터 크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자기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고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본문 3절). 모르드개 덕분에 한때 몰살과 멸족의 위기에 처했던 유다 백성은 안전하게 생명을 보전하며 살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에8:16)을 누리게 되었고 페르시아 본토 백성조차도 유다인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많은 페르시아 본토인이 유다인이 되기도 했습니다(에8:17). 모르드개는 동족 사이에서만 존경과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에9:4에서는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나온 세 위인 요셉과 다니엘과 모르드개 사이에는 모두가 노예나 포로의 신분에서 다른 이방 강대국의 총리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어려운 시련을 당하고 극복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거나 사형을 당할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지하며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요셉의 경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이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사서 어린 나이에 이집트로 팔려 갔고 성실하게 일해서 주인의 신임을 얻었지만 여주인의 유혹을 물리친 탓으로 오히려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금지명령을 어기고 계속해서 매일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다가(단6:10) 고발당하여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단6:16). 모르드개는 왕명에 따라 하만이라는 총리에게 온 백성이 다 무릎 꿇고 절할 때 그렇게 하기를 혼자 거부하다가 이십오 미터나 되는 나무에 매달려 죽을 위기에 처해졌었습니다(에5:14, 6:4). 이러한 신앙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극적으로 살리실 뿐 아니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 무엇보다도 택하신 백성과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삭과 야곱에게 대를 이어 반복하시고 재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비록 택하신 백성이 하나님께 충성되고 신실하지 못하여 고난을 당할 때도 그 속에서도 놀라운 방법으로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지키실 때 사람들을 택하여 세우시고 그들을 사용하여 뜻을 이루십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데 크게 쓰임받은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도구들에 불과했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깨끗한 믿음의 지조를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모르드개는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생각하기에 앞서 민족 전체를 생각하며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르드개와 함께 유다 백성을 구한 영웅은 에스더입니다. 

그녀는 몰살의 위기에 처한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를 부르지도 않은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에4:16).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가기 전에 모르드개에게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어쩌면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마음에 심어준 말일 것 같습니다.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아가서 자기 백성을 위해 간절히 구하라고 하는 모르드개에게 답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는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다시 그녀를 압박하며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지 않았다면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왕께 나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르드개에게는 사촌여동생이지만 그가 친 딸같이 기른 에스더였습니다. 그런 딸을 모르드개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은 왕후를 페하고 새로 왕비를 택하려 할 때 모르드개가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과는 혼인하지 않는 율례를 깨면서까지 친딸 같은 에스더를 이방인 왕의 궁전으로 들여보낸 것 자체가 큰 모험이고 헌신이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왕궁에 불려간 여인은 단 하룻밤만 왕과 지내고는 첩들의 처소로 옮겨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왕이 다시 부르지 않으면 그 여인은 평생을 거기서 생과부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과의 하룻밤에 자기의 일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에스더뿐 아니라 모르드개로서도 큰 자기희생을 감행한 일이었습니다. 오직 민족을 위한 불타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선 우리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멸망의 위기에 처한 백성을 놀랍게 구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정치, 사법, 경제, 사회, 교육 등 각 분야에서 개탄스러운 일들이 쉬지 않고 터지고 있어 국민들의 불쾌지수와 불안감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모릅니다. 이 나라가 정말 어떻게 되려 하는지 심히 염려가 됩니다. 

그러기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우리의 믿음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 뿐 아니라 모르드개와 에스더같은 자기 희생과 헌신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남의 희생과 헌신은 높이 평가하고 바라면서도 자기는 희생하며 헌신하려 않는 이 때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의 사명이고 특성입니다. 그것이 가장 고귀한 신분을 부여받은 우리 하나님나라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쥬”입니다. 깨끗하게 믿음 지키며 오늘날 한국의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되기를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페르시아 제국보다도 더 큰 하나님나라의 큰 일꾼들로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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