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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은 축복을 위한 섭리다 (출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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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축복을 위한 섭리다 (출 1:8-14)

지난 월요일에는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씻고, 인천공항으로 나갔습니다. 저희 둘째 아이 상우가 필리핀 단기선교에 갔다가 새벽 4시 30분 도착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목회자 모임인 ‘현장목회연구원’에서 1년 전, 목사 자녀들을 필리핀 빈민 선교의 현장인 깜덴교회에 단기선교를 보내자고 결의하고, 그것을 실행한 것입니다. 

16명의 목사 자녀들과 인솔자로 두 분의 목사님을 보냈습니다. 비행기 착륙 후, 수속을 마치고 새벽 5시쯤 아이들이 나오는데 얼굴이 환하였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얼굴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둘러서서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해 주고 각자 집으로 보낸 뒤, 돌아왔습니다. 

사실, 아이 이름을 ‘상우(商愚)’라고 지은 것은 ‘장사 商’(돌림 자), ‘어리석을 愚’자를 써서 세상에서 ‘어리석은 장사꾼’(자기 이익을 좇지 않는)이 되라고 한 것임. 세상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떠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말하기를 너무너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도 잘 살고 있었다는 거죠. 무더운 나라에서 조그맣고 비좁은 단칸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사는 그들, 더러운 개천가에 썩어가는 하수구 냄새나는 곳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이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도 너무나 예쁜데, 그 환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필리핀의 한 아이에게 물었대요. “너는 행복하냐?(Are you happy?)”, 그러니까 바로 “그래(Yes)”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간증문을 읽어 보니,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아이들도 행복하게 사는데, 사고 싶은 것 사고,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는 나는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고 철없이 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리고 앞으로는 부모님께도, 하나님께도 불평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대요. 평생 절대 잊지 못할 거래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참 다양합니다. 환경도 다르고, 인생의 경험도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환경이 어렵고, 힘들고, 고난 속에 살아도 그것이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출1:1~7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놀라우시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축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며 택한 민족으로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려고 분주히 움직이셨습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하시고, 그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하시고, 온 지경에 7년 대 풍년과 흉년을 들게 하시고, ... 그로 인해 야곱의 족속 70명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셨습니다. 왜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셨습니까? 택함받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종살이를 경험케 하시려고, 또한 급격한 인구 증가를 시켜서 이스라엘 민족을 풍성케 하시려고 애굽으로 이주시키셨습니다. 애굽의 풍요로운 땅, 고센에 살게 하심으로, 고대의 열악한 환경가운데서 경험하기 쉽지않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7절)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애굽의 고센땅은 이스라엘의 인큐베이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놀라우십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의 내용을 봅니다. 

70명으로 이민 온 가족이 350여년이 지나서 200만이 넘는 인구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고센땅은 아름답고 기름진 땅입니다. 목축이나 농사도 잘 되는 곳입니다. 이제 300년 이상이나 살아온 이곳에서 완전히 정착하여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냥 안주할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운명이 달라졌습니다.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8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왕조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힉소스 왕조’였습니다. 힉소스 왕조는 요셉과 같은 혈통인 셈족이었습니다. 이 애굽의 힉소스 왕조는 팔레스타인 북쪽인 수리아에서 애굽 나일강 지역으로 이주해서 북 애굽을 정복한 후, 애굽의 제15~17왕조를 형성한 애굽에서는 일종의 이방 왕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국무총리가 된 것도 같은 셈족계열이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힉소스 왕조가 붕괴되고 애굽의 제18왕조가 기원전 1580년 경에 세워지는데, 이 왕조는 애굽의 혈통을 가진 왕조였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족속과는 전혀 다른 종족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새 왕’은 이 18왕조의 세 번째 왕인 ‘투트모세 1세’로 여겨집니다. 

애굽의 순수혈통인 18왕조의 새 왕은 당연히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정치를 합니다. 자기 민족 우선정치를 합니다. 이런 왕이 다스리게 되니 당연히 이스라엘 자손을 곱게 볼 리 없습니다. (9~10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이스라엘을 노예로 여기다 보니, 어느 순간에 적으로 변할지 모릅니다. 또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이곳을 떠나면 노동력이 사라지니까 손해가 크게 될 것이고... 결국 이러한 염려는 이스라엘이 숫자가 많고 강하게 되니까 생긴 염려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인구감소를 위해 강력한 억압정책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니까 감독들을 세우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고, 또 전쟁에 대비해서 따로 또 성읍을 세웁니다. 바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 이스라엘이 피곤에 찌들게 하고, 노예의식을 심어주어 정신력을 쇠퇴시키고, 또 체력을 소진시켜서 자연히 인구 감소로 이어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12절)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여기서 ‘학대’는 고난과 고통인데, ‘번성’은 축복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애굽인들이 이스라엘을 공사현장으로 몰아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공사현장에서 일하다보니 근육이 단련되고, 체력이 더 강해졌습니다. 가정이 더욱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심한 애굽사람들이 더욱더 혹독하게 억압합니다. 

(13~14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누가 그들에게 고난을 주었습니까? 애굽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까? 왜 이스라엘이 고통당하게 하셨습니까? 그곳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애굽의 풍요속에서 안정적 기반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위해서 애굽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놔두면 떠나겠습니까?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풍요의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서도록 하기 위해서 고난과 학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때로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묻겠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 재미있으면 천국 빨리 가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천국 빨리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이 들어서 병이 들고 고통스러우면, ‘아이고 하나님, 빨리 천국가고 싶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에도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이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반드시 선을 이루심을 믿어야 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대결절로 평상시보다 쉼의 시간을 조금 더 가지려고 하다보니, 간간이 TV의 지난 프로그램들 중에 보고 싶은 것을 재방송으로 보는 기회도 갖게 됩니다. 

지난 주중에 ‘힐링캠프’라는 방송 프로에 몇 주 전에 방영되었던 축구선수 ‘이동국 선수’에 대한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3때 전국 고등부 축구대회 결승에서 두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루게 되었을 때, 상대팀에 있는 차두리 선수를 보려고 온,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게 되어 1998년에 프랑스 월드컵에 최연소로 나갑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인 네넬란드 전에 후반 얼마 안 남기고 교체멤버로 잠시 나갔다가 중거리슛 한 방을 날린 것이 다였습니다.

그 4년 뒤인 2002년, 히딩크 감독에게 부지런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대표팀에서 탈락하고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르는 동안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절치부심하여 4년 후인, 2006년 독일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아시아 예선전에서 논스톱 발리 슛 두 개를 포함, 연속골을 멋지게 넣으며 전성기를 누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본선 2달 전, 평가전에서 발목이 뒤틀어지며 부상당하고 수술을 하게 되어 결국 본선에 나가지도 못합니다. 다시 4년을 별러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010년, 마지막 게임 막판에 투입이 되어 종료 직전, 자신 앞에 떨어진 빗물 묻은 공을 차서 슛을 하는데, 빗맞아서 약한 볼이 골키퍼 가운데로 빠져서 골대 안으로 힘없이 굴러들어가는데, 수비수가 걷어내서 그 한 번으로 16강 탈락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씁니다. 

그 이후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을 만나서 열심히 운동해서 30이 넘은 나이에도 K리그 득점왕과 MVP를 거머쥡니다. 중동나라에서 거액의 몸값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지만 자신을 인정해주는 감독님을 위해서 남겠다고 하며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듧니다. 

현재 그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되었으니 자신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30대 중반에 마지막 월드컵 도전을 통해 화려한 마지막을 꿈꾸는 선수... 보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 끝부분에 자막에 이렇게 나옵니다. ‘역경은 경력이다’... 너무 멋있는 말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이동국 선수가 겪은 그동안의 모든 고난이 화려한 마무리를 위한 경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더라구요. - 우리 인생길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가중될 때 그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케 하시는 섭리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때로 고난은 목적지를 향한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겪게 하시고 그 고난을 통해서 더욱 성숙시키시고, 복된 삶을 더욱 앞당기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박달재 터널, 다릿재 터널을 통과 하실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그 터널이 있어서 더 빨리 갑니다. 

제가 1985년에 덕동에서 목회하던 친구 목사 교회에 갔다가, 겨울에 그 친구의 작은 오토바이 뒤에 타고 눈과 얼음이 녹지 않은 박달재를 넘어오는데, 날씨 추운 것보다 미끄러질까봐 더 추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터널이 뜷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터널이 있어서 더 빨리 갑니다. 터널을 지나면 목적지에 더 가까이 갑니다. - 여러분, 우리가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 목적지에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12절에 보니까,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학대합니다.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합니다. 그것은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합니다. 바로의 정책은 성공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속에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서 밤을 보냅니다. 하루 종일 힘들게 중노동을 하고, 집에 들어가 아내를 보니, 아내가 ‘이뻐~ ’, ‘손만 잡아도 애가 생겨~ ’, ‘눈만 마주쳐도 임신해~ ’, ‘애를 막 낳아~ ’, ... 

심각한 얼굴 하지 마세요. 목사가 천박한 말 한다고 생각지 마세요. 이 구절을 묵상하다가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때로 고난은 목적지를 향한 지름길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고난은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국민일보에 성공한 신앙인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연재하는 ‘역경의 열매’라는 란이 있습니다. 요즘 연재되고 있는 내용이 ‘주님을 찬양하는 영원한 디바 윤복희 권사’입니다. 오빠 윤항기 목사님과 함께 유명한 가수였죠? 윤복희 권사의 진솔한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아버지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윤복희 권사,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너무나 처참한 고통과 고난을 당하면서 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정식 부인도 아니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에 다 크도록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였고, 그 어머니도 윤 권사가 어렸을 때 비참하게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뛰어난 재능은 있었어도 아편중독으로 수용소를 들락거리다가 일찍 죽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예술적 재능이 있어서 어려서부터 무대에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처참하리만치 비참한 생활을 어려서부터 합니다. 혼자서 추운 거리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며칠씩 굶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그 내용 중 한 대목을 읽겠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눈을 떠도 배가 고프고 눈을 감아도 배가 고팠습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면서 오늘 밤은 어느 집 처마 밑에서 이슬을 피하나, 어떻게 허기를 면하나만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식당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운좋게 부엌에서 잘 수 있게 됐습니다.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부뚜막에서 잠이 들었다가 밤중에 깨었습니다. 엄마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슬픔과 무서움이 밀려왔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엄마는 왜 갑자기 돌아가셨을까? 아버지는 왜 아편을 해서 수용소에 들어가셨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난 수요일에 실린 내용의 제목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배고픔과 무대였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윤 권사는 글을 쓰면서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섭리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저는 매일 읽으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얼굴이 어두운 사람은 매일 고난을 묵상해서 그러합니다.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지나면서 마음속에 분노, 억울함, 상처, 이런 것들을 움켜쥐고 마음에 품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해야 합니다. 

눅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를 생각해 봅니다. 남이 먹다 버린 빵 부스러기를 뜯으며 고통스러운 눈으로 자기 상처를 응시한 거지였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국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시 지금 고통 중에 있는 분 계십니까? 아프고 괴로우십니까? 힘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은, 오히려 축복을 주시기 위한 섭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고난은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시고 인내하며 꿋꿋하게 이겨내셔서 참된 인생의 승리자,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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