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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4차원의 기도 (눅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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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기도 (눅 18:3-8)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3∼8절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늘 심장과 폐를 통해 호흡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영혼도 늘 기도해야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은 곧 메말라 버립니다. 기도는 항상 하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감사와 찬양을 입술로 고백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하나님께 조석으로 제사 드렸듯이 우리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쉬지 않고 드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삶의 중대한 일에 부딪쳐 하나님의 도우심이 현실적으로 필요할 때 믿음의 기도를 할 줄 아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삶의 위기와 고통에 부딪쳐서 생사를 걸어놓은 기도를 해야 될 때 믿음의 기도를 할 줄 모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성경에는 믿음의 기도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 해답이 바로 4차원의 기도입니다. 정말로 절박하면 목숨을 걸고 기도하게 됩니다. 평상시의 기도는 “주여,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찬송합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의 문제에 부딪히면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됩니다. 바로 그때야 말로 4차원의 기도, 즉 진정한 믿음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습관적으로 입술에 발린 기도가 아닙니다. 진실하고도 절박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때야말로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도 좋고 스무 하루 또한 계속해서 기도해도 좋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모든 일을 다 동원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시간과 분량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입니다. 그렇게 절박하고 확신있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4차원의 기도입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지 마음속으로 그냥 믿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엄청난 창조적인 믿음이 들어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엄청난 믿음이 솟아납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께서 마음에 오셔서 성령께 사로잡힌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1. 믿음의 기도

먼저 믿음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믿음의 기도란 바라는 것 즉 마음의 소원과 꿈을 실상으로 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기도하고 믿을 때 그 믿음은 실상이 됩니다. 실상이란 없던 것이 확실히 나타난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땅을 샀을 때 땅 문서를 손에 쥐면 그 땅에는 가보지 않았어도 그 땅은 우리 자신의 땅인 것을 확신하고 믿지 않습니까? 그처럼 눈에 안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으로 안 잡아 봐도 마음속에 ‘내 것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는 것이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는 막연한 기도가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 내가 소원하는 것의 실상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실상이 이루어지면 믿음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아직 안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살아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마음속에 확증 되어 확실한 믿음이 마음속에 생겨난 것처럼 그 믿음과 증거가 일체가 되었을 때 믿음의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깨달아야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마가복음 16장이 없었으면 그런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자꾸 마귀가 의심을 가져오는데 그 의심을 어떻게 이깁니까? 그런데 성경 말씀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하나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아야 됩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라고 기록합니다. 

그 말씀 가운데 우리의 죄사함에 대한 약속도 있고 거룩함에 대한 약속도 있고 병 고침에 대한 약속도 있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약속도 있고 부활, 영생, 천국에 대한 약속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입각해서 내 목적이 응답된 것을 마음속에 분명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면 그러한 믿음을 붙잡고서 입술로 고백하고 명령해야 됩니다. 

기도에는 믿음의 기도와 소망의 기도가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망의 기도를 믿음의 기도라고 착각합니다. 다시 말해, 소망의 기도는 “받게 될거야” 혹은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미래형으로 말하고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란 바라는 것, 즉 마음의 소원과 꿈을 미리 그려보고 그것을 실상으로 가지고 먼저 선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마음속에 확실히 갖고서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손에는 아직 잡히지 않았어도 마음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서 기도해야 그것이 믿음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것이요 이뤄졌음을 고백하고 믿어야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소망의 기도와는 다르게 “응답 받았다” “문제는 해결 되었다” “병은 이미 나았다” “기적은 일어났다”처럼 이렇게 완료형으로 믿음의 든든한 토대위에 서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기도

4차원의 기도의 모범이 바로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와서 75세 때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지금 자손이 없는데 별 보고서 별처럼 자손이 많다는 것입니다. 

천막에서 나와 뭇별들을 세어보게 하시고 “네 자손이 저처럼 많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은 꼭 있어야 됩니다. 마음에 확실히 이루어진 것을 바라봐야 됩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게 자꾸 바라보면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꿈이 있으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라보지도 않고 꿈도 없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로 7절에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야훼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꿈을 보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야훼께서 자손을 줄 것을 아브람은 믿었습니다. 우리도 바라보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분명히 마음속에 있어야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의 기도에도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85세가 될 때까지 실제로 아들이 태어나지 않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음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고 또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을 별들을 통해서 늘 바라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10년만에 흔들려서 85세가 되었을 때 마음속에 하나님이 자손 줄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 사래에게 불평을 말했습니다. 그러니 아내인 사래가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보고 자신의 여종 하갈이 있으니까 종에게 들어가서 첩을 삼고 자식을 낳으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불평하고 힘들어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 말에 아브람은 좋다고 하갈을 취해서 첩으로 삼았습니다. 그 후에 곧장 하갈이 잉태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하갈의 마음에 자기 주인 사래가 아주 우스워 보였습니다. 그러니 건방지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래가 아주 화가 나서 남편인 아브람에게 아주 못 견디게 굽니다. “당신이 받아야 될 모욕을 왜 내가 받아야 되나? 당신이 하갈을 취해서 자식을 잉태하게 만드니까 저가 나를 저렇게 무시하지 않느냐?” 그래서 가정이 아주 풍비박산이 되고 굉장히 큰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고 바라봄의 법칙으로 그렇게 많은 자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바라보고 믿었지만 그 믿음을 말씀으로 붙잡아 줘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이 우리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의 두뇌의 95%가 말에 의해서 움직인답니다. 두뇌에는 보는 신경도 있고 듣는 신경도 있고 생각하는 신경도 있고 온갖 신경이 다 있지만 말에 의해서 95%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알고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 기도해서 응답 받은 바라봄의 법칙을 마음속에 가지고 믿었으면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해 말을 해야 됩니다. 말을 해야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말을 해야 생각이 굳건해지고 말을 해야 꿈이 분명해지고 말을 해야 믿음이 뚜렷해지고 말을 해야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입술로 시인하라. 

네 나이가 99세인데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 말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뜻인 아브라함이라고 해라. 그리고 네 아내 이름을 사래라고 하지 말고 ‘많은 자식의 어머니’라는 뜻인 사라라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날부터 그들은 서로 자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남편을 아브라함 즉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사라 즉 ‘많은 자식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이처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믿음이 확고해졌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서 바라보고 꿈꾸고 그것을 믿고 말로써 시인하니까 믿음이 확고해져서 100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삭이 그 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의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통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첫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뜻을 알아야 되고 둘째, 하나님 뜻을 통하여 내 꿈을 분명히 보아야 되고 셋째, 꿈을 보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겨나는데 믿었으면 입술로 고백해야 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시므로 그 후손들인 우리가 이를 깨닫게 해주시려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3. 4차원의 기도

그렇다면 우리는 4차원의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생각과 생각에 바라는 꿈과 꿈을 믿는 믿음과 입술의 고백 속에 실상과 증거 즉, 응답받은 실상의 확신을 가지고 시인하면 그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로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말하고 이루어질 줄 마음에 의심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믿음을 가졌으면 그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산이 옮겨서 바다로 갈 것을 마음속에 믿었으면 그것을 입술로 말을 하라. 이 산들에 명하여 바다에 던져지라고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말은 언제나 같이 가야 됩니다. 항상 마음에 믿은 것을 입술로 시인하면 그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감기라도 걸려서 몸살이 나면 그냥 마음속에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입술로 고백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한 두번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한번만 해도 되겠지만 우리는 사람이니까 백번이라도 천번이라도 고백해야 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그렇게 믿은 것을 입술로 고백하면 치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이미 저는 마음으로 고침을 받았사오니 이제 그대로 몸에 이뤄지게 해주옵소서”라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에 기록된 것처럼 믿음의 기도를 하는 것이 4차원의 기도인 것입니다. 느낌을 하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꿈꾸고 믿고 말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꿈도 안 꾸고 믿지도 아니하고 말도 안하고 사주팔자만 바라보고 맥없이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록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빈손 들었을지라도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기도 하지 않으면 믿음이 안 생깁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믿음을 주시니까 믿고 그 다음 믿은 대로 고백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단순하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3절로 8절에 보면 한 도시에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재판관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라고 청원하며 그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재판장이여 공정한 재판장이여 도덕이 확실하고 하식이 많은 재판관이여!” 그렇게 말 안했습니다. 가서 그냥 계속해서 반복하여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갚아 주소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니까 나중에 재판관이 뭐라고 했습니까? “아이구 이 과부 때문에 내가 못살겠다. 자꾸 쫓아와서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니까 내 마음에 고민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저 과부 때문에가 아니라 나 때문에 갚아 주어야 되겠다”하면서 그 원한을 갚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예수님이 인정하시면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한 자의 원한입니다. 밤낮 부르짖는다는 것은 웅변으로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밤낮으로 반복해서 끊임없이 부르짖는다는 뜻입니다. 이러므로 꿈과 믿음을 가지고 밤낮으로 부르짖고 믿음과 입술의 고백으로 밤낮 부르짖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서 부르짖고 믿음을 가지고서 부르짖고 입술로 고백하면서도 부르짖고 기도는 그 세가지 사건을 함께 섞어 부르짖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꿈을 꾸면서 늘 부르짖어 기도하고 믿으면서 늘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리고 입술로 고백하면서도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해 주셔서 응답이 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실제적으로 응답이 올 때까지 낙심치 말고 구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윌리엄 케리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꿈과 소망이 없이 살아가던 그는 예수님을 믿고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구두 수선만 하고 있으니 희망이 없어 좌절하고 있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그의 마음속에 꿈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어야 되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일하던 구두 가게에서 자기 자리 앞에 세계 지도와 세 가지 표어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고, 아침마다 그것을 바라보며 하루를 새롭게 시작한 것입니다. 그 종이에는 “큰 꿈을 가지라, 큰 기도를 하라, 큰 기대를 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구두 수선하는 앞벽에 붙여 놓고는 구두 수선하면서 늘 그것을 쳐다보고 고백한 것입니다. “큰 꿈을 가지라. 큰 기도를 가지라. 큰 믿음을 가지라” 그렇게 끊임없이 꿈꾸고 믿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선교사가 될 꿈을 갖고 기도를 하고 기대를 한 결과 그는 훗날에 인도로 건너가서 인도 역사상 가장 큰 획을 긋는 위대한 선교사역을 일으킨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마음에 생각과 꿈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4차원의 기도는 응답 받은 실상과 확신의 증거를 가지고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4차원의 기도인 것입니다.

4차원의 기도는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며 그대로 성사될 것을 계속해서 고백하며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더라도 이제 세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바라보고 믿고 말하라” 이것만은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 가운데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와 고백이 섞여 들어가면 하나님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에게 늘 꿈과 믿음과 소망을 주심을 믿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갈 때 4차원적인 믿음의 기도를 하기 원합니다. 바라보고 믿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불퇴진의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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