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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예배가 있다 (시 22:26-28,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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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예배가 있다 (시 22:26-28, 롬 9:1-5)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 진리교회가 있습니다. 임자도 선교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문준경전도사가 1932년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이 와서 교회출입금지를 선포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4일 수요예배 시간에 48명의 교인이 몰래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공산당이 들어와 모두를 끌어내어 마당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예수 안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봐, 살려줄테니” 소리 질렀지만 그 중 한 명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48명 모두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중 13명은 초대장로인 이판일장로와 그의 동생 이판성집사, 이판성집사에게 업혀 나온 노모와 8살 난 손녀 등 이판일장로의 가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3년 그곳에 순교기념교회를 세우는데 당대의 유명한 건축설계가인 김수근선생이 직접 설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당은 1993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 후에 공간건축의 정종영선생이 설계를 해 주었습니다. 그는 임자도가 어딘지도 알지 못하였고, 교인도 아니지만 48명이 순교한 교회란 말을 듣고 기꺼이 설계해 주어 완공하였습니다. 이판일장로의 아들은 현재 목사가 되었고 순교자 덕에 현재 임자도 주민 대부분이 교인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지키고, 예배를 사랑하는 이런 성도들이 한국교회를 굳건하게 세웠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런 교회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오늘의 교회로 굳건하게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가 있는 백성은 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예배할 줄 아는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사야 46:3에는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 때문에 이스라엘을 복주십니다. 선민으로 모든 권리와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선민으로서의 권리와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간혹 산소를 잘못 찾아 엉뚱한 묘에 성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산소의 주인이나 자녀가 와서 보고 깜짝 놀랍니다. 산소의 주인은 “당신이 누군데 우리 아버지 산소에 와서 절하고 울고 있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절하고 울 권리를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 산소에서 어떤 사람이 성묘하고 울고 있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예배의 권리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섬기는 것은 놀라운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로마서 8:15에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녀의 의무이며 동시에 특권입니다. 출애굽기 12:27에는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고 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고 경배하는 것은 의무이며 동시에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특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예배하지 못하는, 예배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 예배가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배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나의 백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로마서 9:3에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려고 구속하신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안타까움을 바울은 아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한 것이 바울의 고뇌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는 곳마다 먼저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이지만 동족의 사도이기도 했습니다. 
  
예배는 제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열하는 예배드리지 못하는 이유들이 있지만 이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발견한 예배의 이유입니다. 이런 예배에 대한 엇갈린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현대사회는 기능적 대행물의 발달로 말미암아 예배를 대신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대량으로 출현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까지도 예배보다 더 즐거운 놀이를 찾아 갑니다. 바울 곁에서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섬기던 데마, 그레스게, 디도는 세상으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세상에 더 재미있는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돌아가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고 애를 쓰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예배하게 하려고 하십니다. 잠언  26:11에는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고 합니다. 사람은 똑같은 죄에 다시 빠지지만 돌아오게 하여 예배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목적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찰스 피니 목사님은 “한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도 중요하나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본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예배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사명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할 줄 아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떤 수도사가 자기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녁이 되자 다음날 아침 마을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후 헤어졌습니다. 아침에 다시 만나 다시 수도원으로 향하여 걸어갑니다. 그런데 제자는 이상하게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냐?” 수도사는 제자에게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눈길을 피해 홀로 걸으려 하였습니다. “말해 보라, 무엇이 너의 심령 괴롭히느냐?” 수도사가 다시 물었을 때 제자는 스승의 눈의 따뜻함을 느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자는 흐느끼며 “어젯밤 낯선 여자와 잠을 잤습니다. 서약을 어겼습니다. 저는 스승님과 함께 수도원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스승은 제자를 감싸 안으며, “나와 함께 수도원에 들어가자.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네 죄를 함께 고백하자꾸나. 하나님 외엔 어느 누구도 우리 둘 중 누가 죄인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수도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미 알고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돌아와서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돌아와서 기도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이 되어 성전에 들어갈 때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사도들에게 무엇을 구걸할까 하여 기대했지만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합니다. 이 사람은 일어나 찬미하며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은 좀 편리하게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빌레몬서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자기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갔다가 다시 자기 주인 빌레몬에게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네시모는 스스로 자신의 안락함을 뒤로 하였고, 바울을 만나 예수를 믿게 되고 은혜를 받고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면 다시 종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세상의 종 됨이나 구류가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죽을 각오로 자기 주인에게 돌아옵니다. 돌아온 자를 주인은 받으십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는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탕자는 품꾼이라도 괜찮다는 각오로 돌아올 때에 아버지는 아들로 받아준 것입니다. 돌아오는 자의 자세를 주님은 보시고 돌아오는 자를 기쁘게 맞으십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이며 돌아오는 자의 자세입니다. 
  
시편 51:19에는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고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고 합니다. 주의 제단에 돌아오는 자를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주님께 예배하러 돌아오는 자를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와서 예배하는 것을 기대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예배가 있습니다. 

로마서 9:4에는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된 사람에게 허락하시고 주신 은혜와 축복의 내용을 보세요. 양자됨, 언약, 율법, 예배, 약속,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축복이며 동시에 우리의 최대의 의무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려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목적인 예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괜히 구원했네” 할지 모릅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사”라고 했는데 지금도 하나님은 “괜히 건졌네”라고 할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예배할 줄 모르는 것을 그만큼 큰 잘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 예배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반드시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민임을 확인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임을 드러냅니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다 예배가 있습니다. 불교, 이슬람, 힌두, 신비종교, 대종교, 천도교는 다 다른 양식의 예배가 있습니다. 모양과 방법은 다르지만 다 정성을 드려 예배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의 예배를 보면 기독교 보다 훨씬 요란하고 장엄하게 보이는 예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엄하게 보인다고 하여 좋은 예배는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예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래의 마땅한 자세로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그 분을 그분으로, 우리를 우리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영광이란 말은 인정하다는 뜻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왕은 기독교를 공인한 왕이지만 당시의 관행으로 사망 직전인 337년에야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양한 신들을 가지고 있던 로마에 유일신 사상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수호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게 한 공헌이 있습니다. 로마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있게 한 황제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예배가 있게 한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사건은 제헌국회입니다. 1948년 5월 31일 오후 2시 제헌국회가 개회될 때 임시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박사는 감리교 목사 출신인 이윤형의원에게 기도하게 하여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제헌국회는 기도로 시작한 국회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국회에 예배가 있었습니다. 
  
시편 22:27에는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라고 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며 땅 끝에 있는 모든 족속과 나라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있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 것이고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3세기 중엽 밀라노에는 암브로시우스라는 걸출한 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배에 찬송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강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예배당에 들어와서 성직자 자리에 앉았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의 행동을 책망하며 내려가서 평신도의 자리에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민란이 일어나 테오도시우스황제는 400명의 민간인을 학살하였습니다. 

이 때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 앞에서 막아섰습니다. 당시에 황제에게 맞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 후 황제는 회개한 다음 겨우 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황제는 암브로시우스를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내 일평생에 내게 진리를 말해 준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그 사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훌륭한 기독교인으로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이다. 나는 그로 인해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교회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황제나 거지나, 어른이나 아이나 누구나 예배가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하러 오는 곳입니다. 
  
오래 전 ‘셰난도’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네 아들의 아버지가 세 아들을 다 전쟁에서 잃고 막내아들마저 강제로 전쟁에 끌려갑니다. 막내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아버지의 시름이 깊어지는데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는 도중 막내가 다리를 절면서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교회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고 아들을 맞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함께 드립니다. 막내아들은 예배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곧장 교회로 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예배에서 만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예배가 있습니다. 
  
미국의 허드슨 연구소에서는 ‘유럽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지금도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엄청날 정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 숫자는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의 숫자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15만 9천명의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순교하고 있습니다. 2억에서 2억 5천만 명 가량의 그리스도인들이 육체적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4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가 된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가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함께 예배하는 것은 소중한 체험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아버지 와 나란히 앉아 예배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와 함께 앉아 예배 드려 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 기회가 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온 식구가 포항 인근의 구룡포로 여름휴가를 갔습니다. 마치 수요일이 되어 식구들이 같이 예배드리러 구룡포읍교회에 갔습니다. 저는 “이 때다!” 하면서 아버지 옆에 얼른 앉았습니다.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수요일 예배이기 때문에 와이셔츠에 넥타이만 맨 채 양복을 입지 않으시고 앉아계셨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될 무렵 그 교회의 목사님께서 저의 아버지를 보시더니 얼른 다가오셔서 “목사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제가 설교하겠습니까? 목사님이 오셨으니 설교해주십시오” 하면서 아버지께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조마조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께서 저의 형님에게 빨리 여관에 가서 양복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더니 또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이런 기회가 제게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점이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부모와 함께 앉아 예배하는 경험은 우리아이들에게 잊어버리지 않을 기억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예배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예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예배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예배가 있습니다. 우리 심령에 예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예배의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자녀가 내 옆에서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문에는 예배가 있다고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주님께로 돌아와서 예배하는 자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가정이 예배가 있는 곳이 되어 예배의 기쁨이 늘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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