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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장애물입니까? 디딤돌입니까?① (수 3: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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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입니까? 디딤돌입니까?① (수 3:14-4:7)


우리의 삶의 자리를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번만 벗기고 들어가 보면 남모를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자녀의 일로, 직장의 일로, 사업의 일로, 인간관계의 일 등 크레파스처럼 다양한 모양의 역경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이 없는 평안한 삶을 하나님께 구하지만 우리 인생은 끊임없는 고통과 역경의 쓰나미가 밀려옵니다. 험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모두 다 힘겹게 살아갑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생은 장애물 경기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애물 경기를 허들 경주라고 부르는데, 그냥 달리는 게 아니리 중간 중간 허들을 여러 개 세워 놓고 넘어가야 합니다. 종목에 따라서는 허들 외에 물웅덩이를 여러 개 만들어 놓고 경기를 치르게 합니다. 그냥 달리기도 힘든데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달리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관중들이야 흥미도 있고 스릴도 있어 구경할 만하지만 선수들로서는 정말 어려운 경기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가리켜 장애물경기와 같다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은 장애물 경기보다 훨씬 더 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애물 경기는 장애물을 미리 예상하고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장애물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돌출할지 전혀 모릅니다. 미리 연습할 수도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장애물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그 장애물을 잘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처한 상황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제 2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모세는 실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지자요, 심지어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권을 소유한 지도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장정만 200만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탈출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이 모세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받은 심적인 부담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모세가 지난날에 행한 업적도 위대했지만 앞으로 여호수아가 수행해야 할 사명도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향하여 “너는 이제 내 백성을 이끌고 네가 전에 지나가보지 못했던 길을 지나가라!”명령하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 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처럼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200만이 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과거에 지나가보지 못하였던 곳을 지나가라고 하는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길갈에서 떠나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 그들 앞에 버티고 있었던 것은 바로 범람하는 요단강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대하는 본문의 말씀은 온갖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시련의 장애물이었던 요단강 앞에 서게 된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요단강을 방문해 보면 아주 폭이 좁은 샛강처럼 보이지만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는 달랐습니다. 특히 우기나 곡식을 거두는 수확의 계절이면 강의 수심은 매우 깊었다고 합니다. 3:15의 기록을 보십시오.“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메마른 땅 광야에서만 생활했습니다. 물만 봐도 겁이 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강물이 넘실댑니다. 그들의 수는 2백만 명이 넘습니다. 부녀자들, 노인들과 아이들도 있죠. 가축들과 짐도 있죠. 그렇다고 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그래서 ‘불가능의 강’이라는 겁니다. 그 앞에서 과연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두려움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도망치고 싶고, 죽고 싶고, ... 눈앞에 축복의 땅 가나안이 있지만 마치 그림의 떡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합니까? 이스라엘이 그 불가능의 강을 넉넉히 건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대체 이 불가능의 강을 어떻게 건널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는 장애물, 이 때문에 이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고통하고 포기하고 사는 분들이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얼마 전, 저는 한 사람의 자살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독일의 억만 장자이며 세계 백대 부자 중의 한 사람인 아돌프 메르클레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자금 난에 시달리다 달리는 열차에 스스로 목숨을 던졌습니다. 그의 가족이 전한 이야기는 같은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기에 폐부를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금융위기로 초래된 회사의 경제난과 앞으로의 불확실성, 그로 인해 ‘더는 아무 것도 할 수없다는 절망감’이 열정적인 기업가를 궁지에 몰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했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것이 생을 앗아갔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더는 어찌 할 수 없다는 절망의 절규는 여러분과 저의 문제가 아니던가요? 오늘 우리의 문제는 경제 침체로 사회에 더 이상 희망이 남아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철철 흘러넘쳐야 할 꿈과 노래와 감격이 내 인생의 희망 철로를 탈선해 더 깊은 절망의 구덩이로 빠져 버린 탓입니다. 지금도 자고나면 하루에 34명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심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모두 다 힘겹게 살아갑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일에 매달려 있는 장애물들을 보십니까?, 아니면 그 일의 진정한 가치성을 보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일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약속의 땅을 정찰하게 합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 중 열 명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보고를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보고합니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사건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장애물이 아니라 목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목표를 세우셨습니까? 그렇다면 장애물 때문에 포기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십시오. 그는 지금 자신과 백성들을 좌절하게 만든 이 엄청난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 이 강을 건넙니다. 이 이유는 첫째로, 절대 소망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은 넘실거리는 요단강입니다. 눈앞의 현실만 보면 당연히 낙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자! 여기 넘실대는 절망의 강을 앞에 둔 여호수아를이 약속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수1: 8절을 보시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한 군사로 키우기 위한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스스로를 준비하기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한 일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다 지켜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늘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행하여지는 모든 일 가운데에 항상 승리를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도 매우 많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준수하는 삶을 살아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어떠한 위 기라도 넉넉히 이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시기에 어떤 자리, 어떤 환경 앞에서도 소망이 생깁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거기에서 밥이 나옵니까? 돈이 나옵니까? 옷이 나옵니까?”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네, 맞습니다. 아무리 성경책을 손에 들고 흔들어도 그 속에서는 밥알 한 톨, 동전 한닢, 천 조각 하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늘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인생의 여정이 힘들지가 않습니다 무엇인가 늘 기대감이 일어납니다. 기뻐요. 감사가 일어납니다. 

또 소망이 넘치는 사람들은 부정적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최악의 자리에서도 최상으로 끌어가는 힘이 생깁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분별력과 판단력이 생깁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동행하시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이 쏟아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는 밥도 생기고, 물질도 생기고, 좋고 귀한 옷도 생겨나게 됩니다. 심지어 장수와 부귀영화와 권세와 권력도 얼마든지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중에서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분들은 세상의 다른 것들을 붙잡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부지런히 읽으시고 묵상하시고 실천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넉넉히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과 능력을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사람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바로 고속도로의 표지판에다가 “Back To The Bible”이라는 문구를 붙이는 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라는 뜻입니다. 즉 미국 사람들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큰 위기가 닥쳐오면 제일 먼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그 나라를 축복하시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도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의 해결을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책임져 주실 것을 의심없이 믿은 겁니다. 오늘 본문 3절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의 두 돌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세월 동안 먹었던 만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지난 광야의 여행길 동안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름기둥도 사라지고 불기둥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언약궤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뿐이었습니다. 이 언약궤를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명령을 하십니다. 다시 한번 4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와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기를 원하셨습니다. 

언약궤에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말고 이천 규빗이라는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천 규빗은 오늘날의 수치로 환산하면 900m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천 규빗(900m)이라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를 원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약궤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볼 수가 있지만 저 뒤에서 걸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천 규빗(900m)이라는 거리를 두어서 앞에 있는 사람이나 뒤에 오는 사람이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잘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까? 요단강 도하와 가나안 땅 정복이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유지 신앙이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신앙의 여정은 신념으로만 갈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신념과 신앙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신념의 근거는 자기의 의지, 자기의 결단이지만, 신앙의 근거와 대상은 내가 아닌 하나님인 것입니다. 자기 신념으로 사는 사람은 신념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신념으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그분, 전지하신 그분, 그분이 함께 하신다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지금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길을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들이 이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 순종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소망과 신뢰의 신앙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순종은 가장 요단강 도하 사건의 완결편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했습니다. 15절입니다.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아직도 물은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언덕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러 범람하는 강을 향하여 그들의 발을 물에 집어넣습니다. 상상이 갑니까? 여러분, 요단의 뜻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빨리 흐르는 시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시사하듯이 요단강은 낙차가 커서 물살이 굉장히 급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무서운 강을 건너야지만 그토록 숙망했던 가나안 땅에 진입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모맥을 거두는 봄철입니다. 따뜻한 봄기운이 이스라엘의 북쪽 레바논 산과 이스라엘의 최북단 헐몬 산의 눈이 녹아내리며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해서 여리고 성 근처까지 흘러내려오는 동안 엄청난 강수량을 동반하기 때문에 배라도 있어야 건너지 그냥은 건널 수 없는 그 물에 발을 담근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물가에 닫자마자 물이 두 토막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여기 ‘마른 땅’을 주목해 보세요. 이는 요단강이 사막처럼 바짝 말라버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물이 갈라진 다음에 제사장들이 발을 들여다 놓은 것이 아닙니다. 순종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조금 전만해도 그들 앞에 삼킬 듯이 소용돌이치는 범람하는 물 앞에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신앙이 무엇입니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이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그 권리를 주님 앞에 이양하는 것입니다. 순종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이 땅이 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이 내 삶에 밀물처럼 넘쳐흘러 오기 시작을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 순종이 내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참된 신앙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올 한해도 정말 만만치 않은 한해를 우리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패자로, 또는 낙오자로 살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다윗은 시91:2절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고 자신이 살아갈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승리의 비결은 바로 전능자가 만들어 주신 피난처에 있으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말하는 전능자가 마련해 주신 피난처 아래 있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이거나 교회 생활을 무척이나 열심히 하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홀로 기도하기를 힘쓰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이 한해 주의 주시는 축복으로 하는 일마다 형통한 삶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권위에 정말 순종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자기 진단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주저주저하십니까? 제가 지난주에도 독수리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도 독수리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정채봉씨가 쓴 '모래알 한 가운데서'란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젊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짝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독수리/윗 독수리로부터 할큄 당한 독수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죽느니보다 못하다는 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이때 망두에서 파수를 보던 독수리 중에 영웅이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습니다. "왜 자살하려고 하느냐?" "괴로와서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가? 상처하나 없을 것 같지? 그러나 이 몸을 봐라."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윗 독수리한테 당한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상처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 독수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이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그렇지 않습니까? 날기를 포기하기에는 아직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주저주저하십니까? 지금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 다시 일어설 용의는 없나요? 여기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 소마을 두고, 주님만을 더욱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이 될 때 오히려 장애물로 여겨졌던 숱한 문제들이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될 줄 믿습니다. 이제 동성 교회는 26-29일까지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라는 주제로 부흥회를 열게 됩니다. 이제 준비합시다. 한번 박윤선 목사님 말씀처럼 죽기내기로 은혜의 자리에 서 봅시다. 

하나님 안에서 목표를 세우셨습니까? 그렇다면 장애물 때문에 포기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 저희로 하나님 안에서 견고한 뜻을 세우게 하옵시고, 장애물에 겁을 내어 쉬이 포기해 버리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시옵소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이며, 당신 앞에 가로놓인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배운 대로 절대 소망, 절대 신뢰, 절대 순종의 원리를 적용하셔서 계속 승리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승리와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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