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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로 사는 사람 (살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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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경험하는 성도가 되라 (요 2:1-11)

여러분, 여자는 무엇으로 삽니까? 남자는 무엇으로 삽니까?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밥심... 공기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사 미하일은 신의 명령에 따라 어느 부인의 생명을 취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에게는 가엾은 신생아 쌍둥이 둘이 있었습니다. 부인은 미하일에게 자기가 없으면 그 아이들은 살 수가 없다고 부디 살려 달라 간청을 합니다. 미하일은 그녀를 동정하여 신의 명령을 어깁니다. 신은 그런 미하일에게 벌을 내립니다. 
이 세 가지를 깨닫기 전까지는 인간으로써 지상에서 지내거라. 
첫번째 것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며, 
두번째 것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것이고, 
세번째 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것입니다. 
헐벗은 미하일은 지상에 내려와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거의 죽을 뻔하다 가난한 구두장이 세묜과 그의 아내 마뜨료나의 동정심 때문에 목숨을 구합니다. 이 때 미하일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지요. 

일년 후 덩치 큰 부자가 찾아옵니다. 그는 일년 동안 변하지 않을 장화를 주문했지만 미하일은 그의 등 뒤에 죽음의 천사를 보고 그가 오늘 하루를 못 넘길 거라 생각해 대신 장례식에 쓰일 슬리퍼를 만듭니다. 여기서 미하일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앞으로 필요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육년 후, 쌍둥이 아이를 만납니다. 육년 전 미하일이 가여워 생명을 걷어들이지 않았던 그 부인은 다른 천사에 의해 죽었습니다. 하지만 쌍둥이 아이들은 옆집 부인에 의해 사랑받으며 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미하일은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미하일의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걱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덩치 큰 부자는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산 사람이 신을 장화인지,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슬리퍼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사람이 됐을 때 살아남게 된 것은 나의 걱정 때문이 아니라 길을 가던 사람과 그 아내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 나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두 고아가 살아 남게 된 것도 그들의 걱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자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 그들을 불쌍히 생각하고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걱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산다고요?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받습니까? 기도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로 살아야 할까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1. 기도는 하나님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스위치와 같습니다. 

어두운 방안에 들어갈 때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고 추운 방안에 스위치를 켜면 방이 따스하듯이 우리의 인생에 어두운 방에서 우리 인생의 추운 방안에서 우리가 기도의 스위치를 켜는 순간 우리의 인생에 방에 환한 불이 들어오고 인생의 추운 방안은 하나님의 은혜로 따뜻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이 되며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 하나님의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기도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도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집에 어려운 일이 많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등 각종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찹석하였습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유난히 춥던 날, 새벽기도회에 나갔는데 웬걸 빈자리가 많은 겁니다.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날씨가 궃으면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팔자좋은 교인들이 부러워지면서 도대체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뭔 팔자가 이런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형편이 안 좋은 사람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형편이 안 좋은 사람도 기도로 살아야 하고 형편이 좋은 사람도 기도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집사님처럼 형편이 좋아지면 우리의 말로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때부터 기도 안 하는 습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도로 산다는 것은 소위 배부르고 등 따셔도 기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크게 문제되거나 어려운 부분이 없어도 기도해야 할까요? 
여러분, 기도는 문제 해결 능력과 아울러 문제 예방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 아십니까? 


2. 따라해봅시다. 기도는 예방주사다. 

기도로 사는 사람은 문제를 만났을 때 해답을 얻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만나기전 이미 해답을 알고 있게 됩니다. 
예방주사 아시죠? 독감 예방 주사 다 맞으셨나요? 왜 비교적 큰 돈을 들여가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예방주사를 맞아야 합니까? 
그 예방 주사가 감기 바이러스를 예방해 주기 때문이죠.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시험과 염려 걱정과 불안 낙심과 좌절 이런 바이스러의 공격으로부터 우리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미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기도는 무기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연결 통로일 뿐만 아니라 사단의 영적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사단은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고 영적으로 무장하게 되면 자신의 설 위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늘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6장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영적 전투를 위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소개합니다. 그 모든 무기를 다 설명하고 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 기도의 무기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성령안에서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이 사단의 모든 세력을 대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황, 기도를 하고 싶지 않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더욱 기도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 그런 기분으로 누가 몰고 가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몰고가실까요? 아니면 누규?
바로 사탄입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 기도하는 일을 멈추게 합니다.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게 합니다. 기도하는 일을 쉬게 합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을 때 더욱 힘써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지 않을 때 더욱 힘써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 다니엘서 6장10절에 보니 늘 습관을 따라 기도하던 다니엘에게 기도할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신하들은 다니엘을 모함하고 왕을 유혹하여 조서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왕외에 어떤 신에게든지 절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겠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혔고 다니엘은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즉 그가 계속하여 그가 하던대로 기도를 하게 되었을때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다니엘이, 아니 계속 기도하다간 죽을 수 밖에 없던 다니엘을 죽었습니까? 사자에게 무참히 찢기고 먹혀버리고 말았습니까? 아닙니다. 

단6:22절-23절입니다.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상치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24절에 보니 다니엘을 참소하였던 사람들이 던져졌고 그들은 바닥에 닿기도전에 그들을 움켜서 부수게 되었습니다. 
이것 뿐만 아닙니다. 이후로 왕은 조서를 내려 다음과 같이 공포하게 되었습니다.
26절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공포하면서 결국 28절에 보면 다리오왕의 시대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면 죽을 것 같지만 살고 망할 것 같지만 흥하고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 기도하면 처음에는 억지로 기도를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그 어떤때보다 더 많이 은혜를 받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그때가 반드시 기도해야 할 때임을 알수 있길 바랍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은 순간 그때야말로 정말로 기도해야 할 때임을 알 수 있길, 그래서 때로 할 수 없을 때 하고 싶지 않을때 역시 기도함으로 오히려 더 큰 기도의 능력, 승리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 것인지 우리는 왜 기도를 여러 신앙의요소중에 한 요소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오직 기도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기도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스위치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기도가 문제와 시험을 미리 감당할 힘과 면역력을 키워주는 예방주사이기 때문이고 셋째로 기도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무기이기 때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기도로 살아야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이기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현재 당하는 어려운 문제들도 해결해 나가고 다가올 시험과 문제들도 미리 대비하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기쁨도 누리게 되지만 사실 기도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가 가져오는 유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대면하며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결혼하셨습니까? 남편이 벌어주는 월급때문입니까? 아니면 남편이 좋아서입니까? 남성들 같으면 왜 결혼하셨습니까? 아내가 차려주는 맛있는 음식이나 아내가 깨끗하게 치워주는 집안 살림이 좋아서입니까?
물론 아내와 함께 살면 맛있는 저녁 식사도 대접받고 남편과 함께 살면 남편 통장에 있는 돈을 꺼내쓰는 행복을 누리지만 그것 때문에 남편과 결혼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것 때문에 결혼하신 분이 있다면 그 결혼은 그렇게 썩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먼저 응답을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 그 자체보다 내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고 내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고 나의 삶에 역사를 일으켜주어야 하는 그 무엇인가를 먼저 앞세워 기도할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 차원이상의 것입니다. 가끔 집에 무엇인가 사들고 들어갈 때 아이들이 아빠 하면서 막 뛰어나옵니다. 아빠 손에 들려 있는 그것 때문에 뛰어 나올까요? 아니면 아빠 자체 때문에 뛰어나올까요? 만약 무엇인가가 들려 있는 것 때문에 아빠하고 나온다면 사실 그것이 과일이 되었든 인형이 되었든 과자가 되었든 그것보다 나는 못한 존재로 취급받는 느낌이 들어 서글프지 않을까요? 

아빠가 좋으니까 아빠가 가지고 온 것도 좋고 아빠가 좋으니까 아무것도 가지고 오시지 않아도 좋은 것 아닙니까? 그래야 아빠가 기분 좋아 더 좋은 것 더 많이 사가지고 오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손만 보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아도 그저 하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그 분의 얼굴을 뵈옵는 것으로 만족하는 기도입니다. 

로렌 커닝엄 목사님이란 분이 선교선을 구입하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모금 캠페인을 열심히 하였고 많은 헌금이 걷혀 이제 잔금만 치루면 꿈에 그리던 선교선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데 회의장 구석에 누가 서 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선교선을 구입하여 사역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느라고 정작 예수님은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기도할 때 주님의 손만 보지 말고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앞으로 기도할 때 여러분이 원하는 것만 달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기 바랍니다. 
앞으로 기도할 때 여러분의 소원만 아뢰지 말고 주님의 소원을 민감하게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단순히 어린아이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를 넘어서서 느즈막한 나이에 부모님 손을 꼭 붙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성숙한 자녀의 기도가 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이렇게 좋은 것, 이렇게 필요한 것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많은 신앙의 요소 가운데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도로 살아야 함을 깨달았을진대 그렇다면 기도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울 사도는 살전5:17절을 통해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심으로 이 의미를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구약 시대 사무엘 역시 삼상12장에 보면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라고 고백하면서 당신은 이 죄를 범치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기도로 산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공기로 사는 것처럼 기도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육신의 생명이 공기로 사는 것이라면 영혼의 생명은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가듯이 우리가 기도를 쉬는 순간 우리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냥 하고 싶을 때 혹은 기도거리가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해 달리는 부르짖음이상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냥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듯이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기도로 주님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어디서 어떻게 기도하느냐보다 누구를 의식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로 연결됨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바이어와 만나고 있고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어도 우리는 그 곳에서 주님과 기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많은 곳에서 방언으로 쌔려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운전하다가 눈감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지금 내 앞에 계시며 나는 그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기도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분명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마음의 평강과 담대함, 그리고 용기, 그리고 시시때때로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자로서 함께 하는 자로서의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놀라운 행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권사님이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서 밤이면 자명종을 맞춰놓고 자는데 너무 피곤한날에는 자명종을 끄고는 하나님 죄송해요 하면서 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권사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내게 죄송할 것 없다. 네가 큰 일이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신앙의 요소 가운데 중요한 요소 하나 기도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삶에 힘들고 어려운 순간 우리의 인생의 돌파구로서의 기도 정도로도 말씀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는 말씀드린대로 우리의 인생의 빛을 가져오는 스위치이며 모든 고난을 예방하는 주사요, 강력한 영적 무기로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늘 승리를 가져오는 열쇠가 됩니다. 그러나 기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도는 어떤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중요한 것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 가치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세배하면 세뱃돈이 주어지지만 세뱃돈이 목적이 아니라 어른께 세배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기도하면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 승리의 역사가 보장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자로 멈추지 말고 기도로 사는 자까지 나아갈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로 사는 자는 공기로 사는 것처럼 영혼의 호흠인 기도를 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앞에 하나님이 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십시오. 
무시로 성령안에서 깨어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수 없을 때 특별히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 더욱 힘써 기도하십시오. 

그럼, 그때 우리는 기도로 사는 자가 그렇지 않은 자와 어떻게 다른 차이를 보일 수 있는 지 분명하게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 저와 여러분 모두가 진정, 기도로 사는 자가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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