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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예배인가? (창 3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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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배인가? (창 35:1-12)

한 번의 예배가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배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한 2년 전에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성도님을 심방해서 대화를 나눠보니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세요. 자기는 교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데요. 그런데 초청잔치 라고 초청을 해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그 뒤에 따라오는 한마디 말에 솔깃했데요. 교회가면 너무 좋은데 범낭냄비도 함께 준다고 자기 집에 냄비가 많은데 그날따라 범낭냄비에 신경이 쓰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한번 선물을 준다니까 따라 왔다는 거예요. 냄비 받으려고 왔는데 자기 인생 처음으로 예배에 참여했는데 그분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이 성령의 감동이죠. 예배를 드리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 통해서 말씀을 주시는데 꼭 자기한테 하는 이야기처럼 다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첫 시간에 은혜를 많이 받으셨죠. 그리고 교회 나오기로 결심하고 지금가지 열심히 나오고 있어요. 아니, 그분이 자기 혼자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많이 전도했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잘 나오고 있어요. 

그분에게 전도 받은 또 다른 한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니, 저 앞집 아줌마가 교회나간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나가면 얼마나 나갈까.’ 자기는 좀 비꼬는 투로 생각을 했데요. 그런데 어느 날 가더니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는 거예요. “아니, 사람이 좀 달라졌네. 저 몇 번 저러다가 그만 두겠지.” 그 다음에 또 갔더니 식당을 운영하시던 분인데 손님이 없을 때 성경책을 열심히 읽고 있더라는 거예요. 아. 뭔가 있긴 있구나. 자기도 그분의 초청을 받고 자기도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처음 예배에 참석 했을 때,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또 성령의 감동을 체험했다고 믿습니다. 예배는 그렇기 귀한 거예요. 예배란 어떤 인간적인 모임이나 회중의 모임과는 다른 거예요. 왜. 거기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토요일이지만 설교자에게는 가장 바쁜 날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기장 교단에서 논산 훈련소 진중 세례식을 하는 날이 어제였습니다. 그래서 각 노회 대표들이 모이는데 저도 저희 노회 부 노회장이기 때문에 정말 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갔어요. 그냥. 왜 토요일 날 이런 걸해서 힘들게 만드나 생각하면서 가는데 왕복 시간만 해도 6시간 걸리니까 여러분 짐작이 되겠죠. 아침에 갔다가 늦게 도착을 했는데, 그러나 가보고 나니까 잘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논산훈련소 군인교회 2천명의 훈련병들이 모여 있는데 세례 받으려고 작정하고 소원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진지할 수 없어요. 찬양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제일 좋아하던 찬양이 실로암이더라구요.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그 찬양을 그렇게 열심히 불러요. 말씀도 잘 듣고.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세례식을 하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임했어요. 몰론 세례를 받고 들어 온 사람들은 축복기도를 대신 받는데 하여튼 2천명이 진지하게 세례를 다 받았습니다. 1년에 12만 명이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나가는데 그 중 약 7만명 정도가 세례를 받는다고 그래요. 참 놀라운 일이죠. 그 아름다운 헌신과 결단이 자대에서도, 제대해서도 이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만은 물론 그 많은 분들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더욱 그 2천명이 모여드는 예배 속에 ‘아! 여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구나.’ 저는 진지하게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배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에 귀한 것이다. 

보스턴에 AJ 골든이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아주 유명한 설교자인데 이분이 토요일 날 서제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주간이 매우 바빴어요. 그래서 몹시 피곤한 상태에서 말씀을 준비하다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잠시 졸게 되었습니다. 그는 잠깐 졸면서 꿈을 꿨어요. 자기가 꿈에 이 예배당에서 회중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꿈을 꿨어요. 

그런데 보니까 저 뒤에 한 30대의 젊은 남성이 예배를 드리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아니, 저 사람이 누구인가.’ 예배가 끝나고 인사를 하려고 뛰어갔는데 이미 가버렸어요. 그래서 안내하는 집사님을 붙들고 아니 뒤에 앉았던 분을 처음 보는데 누구냐고 했더니 ‘아니, 그분을 모르세요.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그러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깼다는 거예요. 그 꿈에 목사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그 꿈을 교인들에게 간증을 했어요. 많은 교인들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아. 우리가 드리는 에배 가운데 예수님께서 와계시는구나. 우리만 모여서 예배드리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면 예배를 함부로 드리면 안 되겠어. 들락날락거리고 잡지책이나 뒤적이고 메모나 하고 이래서안 되겠어. 

예수님 여기 와서 우리와 함께 앉아계시는데...’ 목사님도 달라졌어요. 예수님이 저기에 앉으셔서 내 설교를 듣고 계신다니 내가 이렇게 설교해서는 안 되지 자세가 달라지고 그 교회에 큰 은혜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배란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세상의 일반 다른 모임과 다른 점이 성령의 감동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것이 구별된다는 점입니다. 예배가 왜 소중합니까? 그 예배는 바로 신앙의 기본이기 때문에 신앙의 삶은 예배를 통해서 유지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입고 감동을 받고 새로운 활력을 얻고 그리고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신앙에 가장 기본이고 우선순위에요.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12살 때 부모님이신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유월절 예식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유월절 예식을 다지키고 내려오는데 일가족이 내려오니까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일일이 챙기지 못했던 거 같아요. 요셉과 마리아가 보니까 예수가 없는 거예요. 12살짜리 예수가, 안계세요. 예수님이. 막 예수님을 찾았어요. 요즘 말로 하면 골목으로도 가고 pc방도 가보고 오락실도 가보고 골목가게도 가보고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거슬러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갔더니 성전에 예수님이 점잖게 앉아서 랍비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가 약간 책망하는 투로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말씀합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아다니지 않았느냐.’ 하고 이야기 했어요.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이 이렇게 반문하시는 거예요. 

이걸 성격학자들은 아주 의미 있는 대답으로 주목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 했다는 것이 특이한 거예요.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은 몇 군데 안됩니다. 특이한 경우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어요. 

또 한 가지는 그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이건 아주 특별한 표현입니다. 이것을 현대적인 말로 다시 번역을 해보면 이런 말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기본임을 모르셨습니까?’ 예수님이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요, 기본임을 모르셨습니까?‘ 그런 말로 바꿔서 우리가 해석할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계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우선순위였고 기본 된 일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에 나와서 우리 공동체로 모여서 가장 우선순위의 일이고 가장 기본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꼭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다면서요. 무소부재란 말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에 편재해 계시다는 거죠. 그러니까 주일날 꼭 교회에 가서 예배드려야 합니까? 산에 등산 가서 언덕에서 예배드리니까 하나님 가까워서 더 좋더만... 바닷가에 가서 그 맑은 바닷물을 보고 예배드리니 좋더만...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 구약을 보시면 하나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에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곳에서 예배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어요. 오늘 날로 이야기하면 교회에서 믿는 자들이 모인 공동체 이 예배당에서 우리 무리가 모여서 예배할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된 것을 우선순위로 기본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우선순위가 뭐냐? 하나님을 예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어요. 

지미 카터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할때, 주일만 되면 조지아 주 자신의 고향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주일학교 교사의 직분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TV에 종종 나와요. 상대방 후보는 주일날이 되면 막 온 시장을 다니면서 선거유세를 하고 운동장에서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데 지미 카터는 매일 보여주는 모습이 예배드리는 모습, 아이들 가르치는 모습만 보여주는 거예요. 

지미 카터를 지지하던 분들도 실망했어요. ‘아니, 아무리 주일을 지켜도 그렇지 내일이 선거 날인데 저러고 있으면 되겠나? 저래가지고 떨어지지.’ 대단히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까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어요. 지미 카터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어요. 그 이유가 뭐냐 원인을 분석해봤더니 두 사람의 행태가 TV에 나오는데 한 사람은 시장을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고,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 진지한 모습을 TV에서 비춰주는데 미국국민은 그걸 생각했어요. ‘아. 저 사람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줄 아는 사람이구나. 저런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안정될 수 있지.’ 신뢰감이 가서 지미 카터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주일 날 이런저런 일로 빠질 수도 있죠. 가정에 장례식이 있을 수도 있고,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여러분께 있습니까? 여러분, 예배는 우선순위이고 우리 인생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되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지 않는 그리스도인 상상할 수 없어요. 어떤 경우 우리가 한 주를 빠지면 두 주 동안 하나님 말씀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2주 후에 오면 낯설어요. 어떤 분은 한달 동안 예배당 안 나왔다가 와서 예배드리면 꼭 다른 곳에 온 것 같아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매주일 말씀을 규칙적으로 공급 받아야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을 보니까 예수님이 그런 말씀 하셨어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다. 우리가 모여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그곳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재해 계신다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회당예배가 성립되려면 적어도 열 명의 유대인들이 모여야지 공적인 예배로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해도 난 그들 중에 거하신 다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우리는 오늘 이렇게 생각해요. ‘아이고, 구역 예배 드릴 사람도 없는데, 뭐 두 명이고 세 명이고 예배드리면 뭐해? 그거. 각자 집에서 기도드리자고 하지 뭐.’ 아닙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 두 명이 모이든 세 명이 모이든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것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바로 그곳에도 하나님은 임재하시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돼요.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니까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리하자.’ 그날 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 인류의 종말의 날이 다가오기 전에 우리가 더욱 열심히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자. 깨어있자는 그런 이야기죠. 

오늘 우리 시대가 더 힘써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한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모여서 예배만 열심히 드리니까 세상 삶이 온전치 못하지 않느냐. 예배드리고 모이는 것보다는 흩어져서 좀 사랑하고 구제하고 이걸 좀 더 열심히 해야 되지 않느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오늘 날 판명되고 있습니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 열심히 모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요. 대충 일주일에 한번 교회 나오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주일 뒤에 보면 세상의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해서 한 주간을 더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소홀히 하면 우리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생기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저분이 그리스도인인지 불신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생각마저도 마귀에게 점령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란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예배 받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걸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세요. 이사야 43장 21절을 보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지으신 분이 바로 주님이세요. 하나님이세요.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배 받기를 너무너무 기뻐하세요. 우리 옆에 분들에게 인사하십시오. ‘하나님은 예배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우리를 통해서 예배 받는 거예요. 찬양 받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의 요소 속에는 말씀도 있지만 찬양도 있고 기도도 있고 또 헌물의 순서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다 기뻐하시는 순서다. 

또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축복은 예배를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 7일째 날에 그분이 안식하셨고 그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고 쉬신 그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영과 육이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 안식일 전통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는 주일로 바뀌어 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부활한 주님이라는 것은 승리의 주님이고, 생명의 주님이고, 능력의 주님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거친 세상을 살다가 주님 앞에 나와서 부활한 주님을 만나고 경험을 얻고 새 힘을 얻고 돌아가서 한주 간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축복은 예배를 통해서 임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바로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수가성을 지나가시다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이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여인은 그분이 바로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그 여인의 행위가 뭐냐 하면 그게 곧 예배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거든요.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찬양 속에서, 말씀 속에서, 우리의 대표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오늘 이 여인이 예수님 만나서 대화한 것은 하나의 예배 행위에요. 

그런데 이 예배를 통해서 여인이 변화 되요. 여인의 남편이 7명이나 있던 여인인데 그 삶을 던져버리잖아요. 양동이를 버려두고 동리로 뛰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다고 하는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습니까? 이게 예배를 통해서 그 여인의 변화된 모습이요. 그 여인이 받은 축복인 것입니다. 

또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마리아라는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발에 그 귀한 향유 옥합을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씻어드립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영적으로 보면 최고의 예배인 것입니다. 왜 주님께 가장 귀한 것을 내어드리는 거예요. 우리가 예배시간에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듯이 그 여인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렸어요. 그게 바로 예배에요. 그 결과 주위 사람들이 그 여인을 비난하죠. ‘왜 이렇게 비산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되는 것을 낭비하느냐? 허비하느냐?’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가만 두거라. 이 여인 내게 가장 선한 일 좋은 일을 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오랫동안 기억죄고 기념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축복해 주셨어요. 예배의 결과는 늘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에 기름부음을 입고 영혼에 감격이 넘치고 그리고 육신과 모든 삶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이 바로 예배다. 하는 것입니다. 

또 왜 우리가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하느냐?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난주도 열왕기상 18장을 통해서 엘리야가 갈멜산 정상에 제단을 수축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거기에 불이 임해서 번제물을 다 태워버렸던 사건을 우리가 묵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신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전역에 비가 오지 않았는데 드디어 하늘이 문을 열고 은혜의 단비, 축복의 단비를 내리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비가, 생명의 비가 임한 거예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오면 농사도 못 짓고 사람이 못살죠. 기근으로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들에게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미스바에 사무엘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합니까. 블레셋의 공격을 앞에 놓고 그들은 번제를 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푸셔서 블레셋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로 승리하게 합니다. 예배 후에 오는 결과는 늘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야곱이 가장 절망적인 시점에 가장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드림으로 벧엘에서 예배의 제단을 쌓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리고 축복 받는 그런 사건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삶은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 아니었습니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형 에서의 장자권이 늘 탐이 나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기만하고 이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어요. 그러나 형 에서가 분노하니까 그는 무서워서 도망가는데 밧단아람 하란이라고 하는 자기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가게 되죠. 그래서 20년 동안 갖은 고생을 다합니다. 결혼도 하고 가족도 이루고 그리고 꽤 많은 재산도 얻게 되죠. 

그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가 처음 아버지 집을 떠났을 때, 그는 가다가 밤이 되어서 하늘의 별을 보면서 돌을 베고 눕습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왜? 부모 집을 처음 떠나보거든요. 밧단아람 가본 적이 없어요. 내가 거기를 갈는지, 도적에게 죽음을 당할는지 내 인생은 불안으로 꽉 차 있는 거예요. 그가 몸부림치다가 잠을 이뤘는데 한밤중에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십니다. 돌 베게를 베고 누운 야곱을 찾아오셔서 ‘야곱아!’ 라고 부르시는데 환상을 보여주세요. 천사들이 자상과 하늘을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그런 환상을 보여주세요. 깜짝 놀라서 하나님을 주목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이제 내가 너를 축복할거야. 네가 무사히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내가 너를 지키고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내가 너와 함께 할거야.’ 이 말씀을 주셨어요. 

야곱이 잠에서 깨고 나서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돌 하나를 놓고 약속을 서원을 했어요. 내가 이제 무사히 돌아오면 이곳에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겠습니다. 그리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는 밧단아람으로 가서 아반의 집으로 가서 20년을 보내고 돌아옵니다. 돌아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약속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어요. 이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이 세겜 성이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죠. 야곱의 딸 디나가 아마 몹시 어여뻤나 봐요. 세겜 성 성주의 아들 세겜이라는 사람이 이 디나를 보고 연모해요. 아무도 없을 때 그 디나를 데려다가 그만 겁탈을 해버리고 말아요. 그러니까 이 디나가 참 안됐어요. 돌아와서 울면서 오빠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시므온과 레위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가 저 사람들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어요. 그래서 지혜를 냅니다. 너희가 우리 동생 디나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거든 우리 예식대로 너희가 할례를 받으라. 할례라는 것은 남성의 성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것 그런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예식 아닙니까? 

요즘이야 뭐 이 포경수술이 수월하지만 옛날에는 생명 걸고 하는 거거든요. 일주일 동안 꼼짝도 못해요. 피가 흐르니까, 그래서 그렇게 하니까 세겜 성 사람들이 순진해가지고 남성들이 다 할례를 받았어요. 꼼짝 못할 때 시므온과 레위가 와서 칼로 그들을 다 죽여 버렸어요. 큰 살인을 행했어요. 그 주위의 부족들이 야곱의 일가를 공격하려 할 때, 그때서 야곱은 이 사실을 알고 두려움에 떱니다. 이제 우리 일가족이 몰살을 당하는구나. 바로 그때, 그 절망적인 순간, 그 위기의 순간에 벧엘의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말씀하세요. ‘야곱아.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 거주하면서 내게 제단을 쌓아라.’ 예배를 드리라. 네가 잊어버렸던 30년 동안 잊어버렸던 그 예배의 제단을 내게 쌓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즉각적으로 순종하게 되죠. 

우리 성경을 다시 보도록 하죠. 35장 1-3절 말씀입니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찾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R p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절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란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아멘.

야곱은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세요. ‘네가 가장 고독할 때, 네가 가장 절망적인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너를 찾아 갔고 네가 나에게 서원하지 않았느냐? 그 벧엘에서 내게 제단을 쌓으라. 예배를 드리라.’ 야곱은 즉시 순종합니다. 온 일가족에게 명령해서 너흐 모든 금붙이들 우상을 숭배하는데 필요한 금가락지들 다 던져버려라. 옷을 바꾸고 의복을 정결하게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그리고 나와 함께 벧엘로 올라가자. 벧엘로 올라가는 도중에 그 주위 부족들이 야곱의 일가를 공격하려 하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두렵게 만드셔서 야곱의 일가를 보호해 주십니다. 

벧엘로 올라갔어요. 제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셨어요. 그리고 오늘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하셨어요. 

오늘 9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9절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아멘. 

바로 외삼촌 라반에 집에서 돌아온 이후에 처음 예배를 드림으로 이제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고 그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복을 주셨느냐? 먼저는 그의 이름을 바꾸어주십니다. 물론 얍복강에서 이름이 바꿔지지만 야곱의 삶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야곱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이 오셔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라. 그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약속한 땅을 다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리고 너는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며 네 몸에서 한 민족이 나올 것이고 많은 왕들이 네 몸에서 나올 것이다. 약속하셨어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삶이 회복되는 것이죠. 인생이 회복되는 거예요. 꼬이고 엉키던 삶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그 서원을 갚음으로서 인생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란 이처럼 소중한 거예요. 우리 인생의 회복은 이처럼 예배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예배, 성령 충만한 예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회개해야 해요. 오늘 야곱이 모든 부정한 것들, 우상들을 다 던져버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먼저 회개의 기도로 예배를 준비해야 해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에 너희가 제물을 드리러 가다가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두고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나서 예배드리라. 그렇습니다. 화해하던지 회개하던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온전하게 신련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전 여러분이 그런 신령한 예배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왜 예배인가? 이렇게 정했습니다. 왜 예배입니까? 예배가 가장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예배가 가장 우선순위고 예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예배에 우리 삶의 모두가 달려 있는 거예요. 이 한해 동안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 잘 드리시고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서 여러분의 인생이 주님의 축복과 승리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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