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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대로 사십시오 (막 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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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사십시오 (막 3:31-35)  

<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   

저의 어머님은 35살에 8번째로 저를 낳았습니다. 23세부터 12년 동안 8명을 낳으셨으니 참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7살 때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하고 폐병 3기로 사경을 헤맬 때 어머님은 아버님을 지성으로 간호하며 남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수줍음이 많은 분이 보따리 이불 장사를 하며 8자녀를 먹여 살렸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제가 눈치가 없어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야단맞는 것을 알고 사람들 보는데서 선생님께 촌지를 드렸다가 선생님한테 크게 무안을 당했습니다. 그만큼 어머님은 세상물정이 어두웠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이 남한산성에 놀러가서 난생 처음 어머님이 가족들 앞에서 세상 노래를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셨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그때 어머님이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간 싸움에 휘말려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님은 속 썩이는 아들 때문에 가난한 마음이 되어 난생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 때문에 어머님이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1979년 12월 28일 예비고사 발표 날, 저는 시험 점수에 실망해 혼자 살아보겠다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친구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때 어머님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내 손을 꼭 붙잡았는데 그 손을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얼핏 뒤를 돌아보는데 어머님이 울고 계셨습니다. 그때의 죄송한 기억 때문에 그 뒤로는 32년 동안 한 번도 어머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금 속 썩이는 자녀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돌아오면 그 일로 인해 더 효도하게 됩니다.  

1987년 2월 7일, 그날따라 아버님이 새벽 2시가 넘도록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새벽 2시 반에 불길한 전화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아버님 가게에 불이 났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신기할 정도로 침착했고 새벽 3시 넘어 귀가한 아버님은 화재소식을 듣고 바로 가게로 가셨는데 가시는 그 모습이 많이 측은해보였습니다.  

그 불로 인해서 아버님의 자동차 부품 대리점은 곧 부도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당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아버님은 88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몇 번이나 한강으로 뛰어들고 싶었다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불이 나니까 자연스럽게 사업을 깨끗이 포기할 수 있었고 미국에 가서 아버님도 어머님을 따라 교회를 처음 다니게 되었고 영어도 재밌게 공부하면서 미국 교회에서 장로까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게에 불이 나면서 부모님은 보름 만에 자녀들이 마련해 드린 약간의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때 다른 7명의 자녀는 모두 결혼했는데 싱글인 저만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이 걸리신지 공항에서 어머님은 저를 몇 번이나 뒤돌아보셨습니다. 그때부터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어머니의 기도를 항상 느끼며 살았고 그 어머니의 기도가 고비 때마다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부모님이 떠난 지 얼마 후, 유학을 가기 위해 회사를 퇴직했습니다. 퇴직 후 불규칙한 식사를 하면서 불편하게 지내다가 그해 8월 3일 급성 위경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심한 고통으로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전화할 힘도 없었고 병원에 갈 힘도 없어서 3일 동안 배를 쥐어짜고 혼자 집에서 뒹굴며 신음했습니다   

위경련으로 신음하던 4일째 되는 날, 미국으로 떠나신 어머님이 반 년 만에 처음으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지금 돈 가치로 전화통화료가 1분당 만 원이 넘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전화할 수 없는데 전화가 온 것입니다. “얘야! 아무 일 없냐?” 정신을 차리고 어머님이 걱정하지 않게 태연히 말했습니다. “네. 아무 일 없어요. 어떻게 전화하셨어요?” 그때 어머님이 말했습니다. “지난 며칠간 연속해서 꿈을 꾸는데 네가 너무 아파하더구나! 그래서 나도 몸이 아프고 답답해서 전화했다! 정말 아무 일 없냐?”

정말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지만 그때 저는 어머니가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신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강했으면 저의 고통이 그대로 어머니의 몸에 느껴지겠습니까? 그때부터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에 더욱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 중의 하나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입니다. 그런 부모의 사랑과 기도를 생각하면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   

부모님께 어떻게 효도해야 할까요?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표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가장 좋아하시고 불순종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전 인류가 망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불순종을 싫어하십니다. 반면에 한 사람 예수님의 순종으로 전 인류가 구원 받았습니다(롬5:19). 그처럼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왕의 명령하면 신하는 즉시 순종하듯이 부모님의 말에 즉시 순종하고 토를 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왜?”라는 물음을 싫어하십니다. 군대에서 “왜요?”라고 하면 바로 주먹이 날라 옵니다. 물론 이성을 가진 존재는 “왜요?”라고 말할 권리가 있지만 신기한 일은 그런 말을 잘하면 복과 은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밤낮 불평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합니까? 왜 생수와 고기를 주지 않습니까?” 그렇게 “왜요? 왜요?” 하다가 다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해서 결국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처럼 부모님이 말씀하면 토를 달지 말고 재빨리 순종하십시오.  

재빠른 순종은 천사들의 특징입니다. 왜 법궤 위의 그룹 천사가 날개를 펴고 있습니까? 말씀이 떨어지면 재빨리 순종하겠다는 상징적인 표시입니다. 왜 베드로가 특별한 복을 받았습니까? 그는 주님의 제자 중에 순종이 가장 빠른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까? 그도 누구보다 순종이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부모님의 말에 재빨리 순종하면 누구보다 복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  

더 나아가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두 돌비에 새겨졌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첫째 돌비에는 하나님 관계에서 지켜야 할 5계명이 새겨져 있었고 둘째 돌비에는 사람 관계에서 지켜야 할 5계명이 새겨져 있었다고 여깁니다. 그처럼 유대 랍비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을 하나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으로 여겼습니다. 그 말은 ‘부모 공경’을 ‘하나님 공경’과 같이 여겼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기고 무조건 높여드리십시오.

부모는 자신의 생명을 있게 한 존재의 근원이자 양육자입니다. 짐승은 낳자마자 곧 일어나 걷지만 인간은 몇 년 넘게 부모가 먹이고 입혀주어야 삽니다. 그처럼 자녀는 부모에게 생존에 대한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건한 부모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가르치고 끊임없이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축복하는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부모의 축복의 말과 기도는 자녀에게 그대로 실현되기 때문에 부모를 통하지 않고 자녀에게 축복이 내려지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진정한 축복을 받습니다.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까요? 부모님을 늘 명예롭게 해드리고 적절한 생활보장을 통해 부모님이 자존감을 갖게 해드리십시오. 부모님이 품위를 유지하려면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용돈도 최대한 정성껏 정기적으로 드리십시오.   

또한 부모님께 자기 신상을 잘 보고해드리십시오. 사령관에게 부하들이 잘 보고해야 사령관의 자존감이 유지되듯이 부모의 자존감은 자식들이 자신의 신상을 잘 얘기해줄 때 높아집니다. 자식들은 “다 큰 사람이 알아서 사는데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은가?”라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은 자식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항상 궁금하게 생각합니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이 안심하도록 자신의 형편을 잘 보고해드리는 것도 큰 효도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 구절을 보면 순종은 “옳은 것‘이라고 했고 공경은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순종은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내적인 양심법이고 공경은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따르는 의무적인 법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 공경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렇게 부모님을 공경할 때 에베소서 6장 3절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님을 공경하면 축복 받고 장수합니다. 그러므로 축복 받기를 원하면 부모님에 대한 순종과 공경을 체질화시키십시오.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할 때 그런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도 순종과 공경의 틀로 사회생활을 해서 좋은 인맥을 얻게 되고 결국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 하나님의 뜻대로 사십시오 >  

어떤 사람들은 제사 문제만 보고 기독교가 효를 외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제사는 죽은 부모의 혼령을 달래서 화를 막으려는 심리와 동시에 자녀들에게 자기 효심을 보여주려는 자기중심적인 효심이지 실제적인 혜택을 부모님께 드리는 부모님 중심적인 효심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형식적이고 기복적인 효심이 아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 한다는 실제적인 효심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연로하신 분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와 노인복지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는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국가입니다.  

십계명에서 인간관계의 계명 중에 첫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세운 것을 보면 기독교가 효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5장 8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도 악한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기독교는 가정과 효도를 중시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가정을 등한시해도 안 되고 가정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과 예배를 등한시해도 안 됩니다. 명절이나 어버이날에 가족들이 모여도 꼭 예배를 드린 후에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그처럼 성도는 교회도 잘 돌보고 가정도 잘 돌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가정과 교회를 다 중시합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고, 가정을 작은 교회로 만들어가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본문도 겉으로 보기에는 효도보다 믿음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사역할 때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본문 33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겉으로 보면 효도를 무시하는 얘기 같지만 사실상 이 말씀은 큰 가족의 개념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큰 가족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계속해서 본문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큰 가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주님을 찾아왔습니까? 요새 여론이 안 좋으니 복음 사역을 절제하라는 인간적인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들의 큰 가족의 개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줍니다.  

어떤 분은 신령한 분의 기도를 받으면 바로 축복 받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축복을 받습니다. 지옥은 “내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곳에서 펼쳐지고 천국은 “당신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곳에서 펼쳐집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때로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펼쳐져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면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 인도하며 반드시 기적적인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고 최후 승리의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 최종적인 승리의 길 >   

이번 총회에 참석한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처음에 워싱턴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열심히 목회를 해서 교회가 점점 부흥했지만 약 40명이 되었을 때 큰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때 교회에서 1200불의 사례비를 받았는데 월세와 공과금을 제외하고 매달 200불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권사님이 집을 찾아와서 우연히 목사님의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텅텅 빈 냉장고를 보고 마음 아프게 생각한 권사님은 바로 시장을 봐서 냉장고를 먹을 것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한 기둥 집사님도 목사님의 집을 방문했다가 냉장고를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 찬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지며 냉소하듯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의외로 잘 사시네요.”   

그때부터 그 기둥 집사를 중심으로 여러 가정이 은밀하게 모이다가 마침내 교회에 건의했습니다. “목사님의 사례를 200불 깎읍시다.” 그때 목사님은 살아나갈 방법이 없었지만 교인들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정을 맡은 한 여자 집사님이 자신은 결코 목사님의 사례비를 못 깎는다고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그 기둥 집사 그룹은 목사님이 그 재정 집사를 사주했다고 오해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 기둥 집사가 자기 집으로 목사님을 오시라고 했습니다. 가보니까 그 그룹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청문회를 하듯이 여러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어떤 해명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기둥 집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 문제로 저희들의 신뢰관계가 깨졌습니다. 저희가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이미 결론은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들을 위해 마지막 축복기도를 해주고 그 집을 나왔는데 집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이제 몇 명 남은 인원으로 어떻게 목회하고 어떻게 삽니까?” 다음 주부터 교회가 썰렁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례비는 계속 채워졌습니다. 그런 시련 중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신뢰하고 목회를 열심히 해서 얼마 후에 교단의 부름을 받아 뉴저지의 한 교회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부임 후 핵심 멤버들을 모아 금요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도 기도인원이 늘지 않았지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세탁 공장을 운영하는 한 기도회 멤버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에 거래처 두 곳이 떨어졌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목사님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그를 위로했습니다. “집사님!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 더욱 눈물로 간절히 교인들의 축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다음 주 기도회 때 그 집사님이 또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에도 거래처 한 곳이 떨어졌습니다.” 또 그 말을 듣자 그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기도하는 성도에게 왜 그런 일을 당하게 하십니까? 그러면 어떻게 목회합니까?” 그래도 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 주 기도회 때 집사님이 와서 또 말했습니다. “목사님! 매번 아픈 소식만 전해드려서 죄송해요. 이번에도 또 거래처 한 곳이 떨어졌습니다.”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기도할 힘도 생기지 않고 하나님도 너무 무심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최후의 남은 힘을 모아 간절히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교인들을 축복해주세요.”  

그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주중에 갑자기 그 집사님이 전화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저희 가게에 불이 났습니다.” 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세탁공장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집사님을 쳐다보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위로할 수도 없고 너무 낙심되어 자신도 어떻게 기도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기도해주고 교회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핑 돌면서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기도할 때마다 거래처가 떨어지고 이제는 이렇게 불까지 나서 폐허로 만드시면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 다음부터 목사님은 그저 죄인이 된 심정으로 지내며 그 집사님에게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한 마디로 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사님으로부터 새로운 세탁공장을 오픈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화재보험과 주정부의 대출금으로 새 가게를 오픈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크고 좋은 환경에서 세탁 공장을 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거래처를 확보하고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 사건을 돌아보면서 세탁 공장에 불이 난 시련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전에는 세탁 기계가 낡아서 세탁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래처가 하나둘씩 떨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불경기에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껴도 구조조정을 못했는데 불이 나서 저절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불이 난 것 때문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훨씬 더 큰 축복을 받고 더불어 교회도 같이 축복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큰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에 몰입되지 마십시오. 문제를 문제시하면 정말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를 다스리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힘든 현실이 나중에는 오히려 역전인생의 재료가 됩니다.  

사단은 복이 없는 인생을 만들려고 늘 두 가지 생각이 맴돌게 합니다. 그것은 ‘과거가 좋았다는 생각’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멀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의 앞날은 과거의 가장 좋은 때보다 더욱 좋게 될 것입니다. 아직 우리 앞에 최상의 삶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최상의 삶을 믿음으로 준비하십시오.   

똑같은 능력과 조건을 가져도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와 미래는 현저히 달라집니다. 성공은 기술과 실력이 5%를 좌우하고 태도가 95%를 좌우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현실은 부족해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른 태도를 가지고 살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이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의 부족함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큰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좋은 것들로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며 우리가 새롭게 좋은 일을 결단하고 시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 어제의 아픔을 깨끗이 잊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십시오. 우리 앞에는 찬란한 미래가 놓여 있습니다. 그 찬란한 미래로 가는 길에 때로 힘든 일이 있어도 결코 찬란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으로 마침내 축복 받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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