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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여 도우소서 (시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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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도우소서 (시 12:1-8)


벤처기업 ‘문헌정보’ 대표 손태영(孫泰榮) 교수의 인생은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행복을 건져내는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합니다. 손교수는 3세 때 걸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의 놀림으로 초등학교를 그만 두고 23세 때까지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없었습니다. 세상을 탓하고 부모를 원망하며 수많은 날들을 눈물로 베개를 적셨습니다. 그러던 청년시절 어느 날, 하나님을 원망하던 중 갑자기 생각 하나가 밀물처럼 머릿속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사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투정 비슷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일간지에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실시한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978년 서울로 올라와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이어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1982년 충북대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학 졸업장을 받았지만 주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정보 제공 인터넷 업체 ‘문헌정보’를 설립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중에 지방 대학 정보통신과 겸임교수 초빙 공고를 보고 우여곡절 끝에 채용되었습니다. 손교수는 학교와 학생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열게 되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강사로 초대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강연에 임했고 강연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대상은 교도소 죄수들부터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까지 광범위합니다. 그가 한 말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드라마 같다고 여기지 않을 이가 있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절름발이지만 인생까지 절름발이로 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손교수는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은 있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자칫 운명론에 붙들려 평생을 정신적 노예로 살아갈 뻔 했지만 극복하였습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게 운명이라면 그것에 끌려가기보다 그것과 맞서 싸우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손교수는 인생관을 말하면서 하나의 토를 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자신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손교수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인생이라는 무대에 올리셔서 그분 자신의 능력과 살아계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리셔서 영광을 드러내시고 승리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드라마의 배우입니다.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아직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무대에서 수고했다며 내려오라고 할 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멋지게 살려고 합니다.” 그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살아왔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시고 도우셨다고 간증합니다. 

시편 12편은 부조리한 현실의 위기에 직면하여 하나님께 탄원하는 비탄시적 요소와 악에 동참하지 말고 여호와의 심판을 기억하며 근신할 것을 촉구하는 지혜시적 요소가 함께 혼재되어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여기의 “도우소서”라는 말은 “구원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첫째로 경건에 힘쓰리니

세계적 첼리스트였던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는 90세 이후에도 하루 6시간 이상을 연습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카잘스가 95세가 되었을 때 영국 BBC가 특집을 만들기 위하여 인터뷰하였습니다. 기자가 궁금하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건넸습니다. “선생께서는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이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십니까?” 카잘스는 유명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95세 나이에도,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6시간 이상을 연습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하 하! 나도 그만두고 싶네. 그런데 말이야, 지금도 연습을 하면 할수록 내 실력이 조금씩 나아진단 말이야. 허,허.” 사람들은 예수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의 ‘쟁이’ 라는 말은 ‘전문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기독교인에게 예수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쟁이’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 도소이다.” 다윗은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많아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둡고 타락하였다 할지라도 경건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에 힘쓰게 될 때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여전히 의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혀 무의식적이지 않습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일이 발생하면 전혀 기독교적이지 못합니다. 말은 기독교인라고 하지만 실제 삶과 행동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못합니다.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습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경건에 힘써야 합니다. 경건을 지켜야 합니다. 경건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얼굴과 언어와 표정과 삶 속에서 경건이 나타나야 합니다. 경건에 힘쓸 때 하나님이 도우시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거짓을 버리노니

한 아주머니가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정육점에 들렀습니다. 마침 정육점 주인은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만 닭고기가 조금 필요해서 그런데 살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로 다가가 문을 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다 팔고 한 마리의 닭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은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닭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3kg이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는 그것보다도 조금 더 큰 닭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알겠다는 듯이 그 닭을 들고 다시 냉장고로 돌아갔습니다. 

주인은 냉장고 문을 열고서 그 닭을 집어넣고 다른 닭을 끄집어내는 척 하면서 같은 닭을 끄집어내었습니다.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똑같은 닭을 다시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닭인데 4kg이 나왔습니다.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서 무게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아주머니는 그것이 좋겠다면서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주머니가 돈을 지불하고 가게 문을 나서다가 갑자기 뒤돌아서면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무래도 이것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달았던 그 닭마저 싸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정육점 주인은 자신의 거짓에 얼마나 당황하였겠습니까? 

본문 2절입니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기서 '거짓'은 공허와 허무를 의미하며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위선을 의미합니다. ‘아첨하는 입술’은 남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달콤한 말로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며, 두 마음은 속과 겉이 다른 두 기준을 가지고 말하는 표리부동한 생활 곧 거짓된 처세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악인의 말은 미워하고 원망하는 말이며,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말이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포학한 말이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남을 속이는 거짓된 말이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대적하는 망령된 말이며,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더러운 말들입니다. 

다윗은 충실한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극도로 부패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속과 겉이 다릅니다. 기분과 이익에 따라서 말이 다릅니다. 거짓과 아첨과 이중적인 말로 목적을 이루려고 합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거짓 없는 정직, 아첨 없는 정직,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인 정직으로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정직하게 사는 것이 힘들고 손해도 난다 할지라도 거짓을 버리고 정직으로 가야 합니다. 거짓을 버릴 때 비로소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셋째로 말씀을 좇으리니

1985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 학위수여식에서 한 동양인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50세 시각장애인이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전재경 박사였습니다. 그는 7살 되던 해 안질을 앓다가 그만 실명을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고통과 불행의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맹아학교에 입학한 그는 고통을 견디며 공부하여 건국대 역사지리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20년 세월에 뉴욕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면서도 맹인전용 도서관을 찾아가 노력한 결과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장애물이 많아 불가능할 것만 같았지만 그가 박사학위를 받게 된 배후에는 신앙으로 격려했던 아내의 도움도 컸으나 무엇보다 성경 말씀이 그를 그 자리에 서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에서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전박사는 자신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었기에 어떤 난관에도 좌절하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좇아가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도움이 되셨습니다. 말씀은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을 비추는 등불이기에 어려움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말씀을 좇아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의인들이 쫓기고 고난당하는 중에도 말씀을 좇아갈 때 하나님께서 안전지대에 두시며 도우신다는 약속입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그 안에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고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악하고 비루한 자들이 설치게 됩니다. 두렵다고 불의의 세력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와 함께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며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안전지대가 되시어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조개류가운데 삿갓 조개가 있습니다. 이 조개는 바위에 붙어 있으면 얼마나 단단하게 붙어 있는 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조개를 떼려고 하면 바위가 부스러질 정도입니다. 그 조개가 배 밑에 붙어 있어 떼려고 하면 배에 구멍이 난답니다. 차라리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속 500km로 불어오는 파도에도 견딘다고 합니다. 삿갓 조개는 붙어 있는 것에 집착합니다. 우리도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지 말고 붙어 있어야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시편기자처럼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경건에 힘쓰며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거짓을 버리며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좇으며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때마다 일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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