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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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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충분히 영양분도 섭취해야하지만 무엇보다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진단을 받으러 가면 의사선생님이 꼭 하루에 만보씩 걸으라고 거듭 당부 합니다. 그런데 걷지 않아도 걸은 것만큼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플러스인생』 2월호에 실린 “웃음의 효과”입니다. 우리 몸에는 650여 개의 근육이 있는데, 얼굴에만 약 80여개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웃을 때는 몸 근육 231개, 얼굴 근육 15개 이상이 움직입니다. 15초만 웃어도 12칼로리가 소모되고, 수명은 2일 연장되며, 윗몸 일으키기를 25번 한 것과 똑같은 운동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2008년 5월 24일에 발표된 원광대 김종인 교수의 장수비결 논문에 100세 이상 장수하는 노인들은 80대 노인보다 10배 가량, 60대 환갑인 보다 12배 정도 더 많이 웃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00세인들의 근심걱정은 팔순인과 비교해서 6분의 1, 환갑 인에 비해 12분의 1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100세 장수하는 노인은 그만큼 근심 걱정이 적고 스트레스도 적다는 것입니다. 성경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대로 항상 기뻐해야만 심신에 건강과 생활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기쁨의 근본이시다

첫째로, 하나님은 기쁨의 근본이 되시는 것입니다. 기쁨이 다른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쁨의 근본, 샘인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가도 기쁨이 충만하고 주님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는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함으로 삶에 기쁨이 충만하여 외삼촌 라반을 7년 동안 머슴으로 섬기고 살아도 그것이 하루같이 보내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기쁨의 원천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어디를 가든지 늘 기쁨의 강물이 마음속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의 속성은 슬픔입니다. 미움은 굉장히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데 남을 미워하면 그 상대방이 손상을 입을 뿐 아니라 미워하는 자기속에 굉장히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원한을 갖고 용서하지 않으면 슬픔과 우울과 절망과 불행의 어두움 속에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이 슬퍼지고 우울해지고 절망적이 되면 모든 것이 싫어지게 됩니다. 또한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허물을 덮어 버리더라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은 나도 좋고 이웃도 좋게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 11절로 13절에 “야훼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야훼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중에 큰 축복이 기쁨인 것입니다. 미움과 원한은 슬픔과 좌절과 절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 인생을 신바람나게 살며 생명이 충만한 꿈과 희망의 날개를 펴고 살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도 가장의 큰 의미는 아내와 자식들이 마음에 감격을 갖고 감동을 갖고 기쁨을 갖고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편의 책임이요, 의무인 것입니다. 또 아내도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즐거움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 큰 의무와 책임인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이끌어가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격을 줘야 되고 가슴 뿌듯하게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정치가도 올바른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고 회사의 사장도 사원들에게 기쁨을 주고, 교회 목사도 성도들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감격과 감동을 주는 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가져오면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신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사랑하면 기쁨이 솟아납니다. 빌립보서 4장 1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기록된 것처럼 사도 바울은 교회 성도들을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2장 20절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저도 요즘 성도들을 보면 기쁘고 행복하고 성도들과 같이 있으면 기쁘고 즐겁습니다. 사랑은 이와 같이 신비한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위대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 때문에 엄청나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못되게 구는 인생들을 그렇게 오래참고 견디고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희생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엄청나게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박국 3장 17절로 18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그래도 우리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신앙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어떤 조건이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평안하고 건강합니다” 예수님이 같이 계시면 기쁨의 샘물을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판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가운데 있으니 기쁨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너무 기뻐서 감당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런 감격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슬픔을 주는 모든 부정적인 세력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그 기쁨을 위하여 우리와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온갖 십자가의 모욕을 참고 견뎌서 다 이루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겨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은 기쁨의 영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마음이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령받은 사람은 성령이 말씀하는 다른 방언으로 말하잖아요. 방언은 기쁨의 펌프인 것입니다. 물이 필요할 때 옛날에는 펌프를 해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것처럼 성령이 충만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기쁨을 펌프질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1절로 12절에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성령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다. 마음이 평안하지 않을 때 방언기도 하라. 슬픔 있을 때 방언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안식이 오고 상쾌함이 온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시기 위한 펌프로써 방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평안해지고 기쁨의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교훈을 듣지 않고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답답하기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기쁘고 즐거움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0절로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슬퍼하고 탄식하고 금식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도때도 없이 금식하라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는 금욕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즐거움의 종교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뻐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3. 기쁨이 충만한 삶을 위하여

셋째로, 기쁨의 근원인 하나님을 찾으면 기쁨이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 15장 16절에 “만군의 하나님 야훼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묵상하면 말씀이 속에 들어가서 마치 발효하여 술이 되는 것처럼 기쁨을 발효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11절에는 “너희 의인들아 야훼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살아야지 슬퍼하고 탄식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기뻐하라”는 명령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명령인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가 기쁨을 늘 강제로라도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복음 전도를 하면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증거하고 남에게 하늘나라를 전하면 마음에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 일하면 큰 기쁨이 오는 것은 사도행전 8장 5절로 8절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은 교회 평범한 평신도요, 집사였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증거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큰 기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 기쁨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란 복음의 향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기쁨의 향기가 나야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할 때 빌립보 간수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6장 34절에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이요 성품입니다. 하나님도 기쁨이시고 예수님도 기쁨이시고 성령도 기쁨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기쁨이신데 만일 기쁨과 즐거움이 없으면 하나님과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사랑과 희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처럼 성령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시며 믿는 자에게 고난과 시련을 기쁨으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고난당해도 기뻐하고 영광이 나타날 때도 기뻐하라.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기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기쁨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성령님이 오시면 그 어떤 환난과 고통에 처해 있을지라도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힘과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귀영화와 공명이 있어도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그것은 쓴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비록 초가삼간에 살지라도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요 기쁘고 행복한 곳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라서 우리의 기쁨과 행복은 바깥에서 찾지 않고 안에서 찾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물이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 모시고 속에 성령님 모시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뻐하면 우리 안에서 즐거움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 사랑과 행복을 나눠주면 기뻐지는 것입니다. 남을 기쁘게 하면 자신도 기뻐집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하면 자기 자신부터 기뻐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몹시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봉사는 그 동등 혹은 그 이상의 기쁨을 스스로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우리가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범사에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었으며, 고린도전서 12장 26절에는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면 내가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우리가 될 수만 있으면 많이 웃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세수하고 난 다음 거울을 쳐다볼 때 찡그리고 그대로 보지 마시고 한번 입 꼬리를 위로 치켜들고 한번 웃어 보십시오. 그것이 자기 마음에 굉장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긴장을 풀어 놓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웃는 것이 좋습니다. 잘 웃는 사람이 환영을 받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 기록된 것처럼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십시다. 또한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으며 요한복음 15장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요 명령인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기쁨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기뻐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때문에 기뻐하시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곁에 있으니까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들어와 타락시킴으로 미움을 가져와서 슬픔이 꽉 들어차게 되고 만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고 마귀의 종이 되자 기쁨은 사라지고 슬픔과 우울과 절망과 암흑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삶의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 8장 10절에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야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훼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기뻐 소리치고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데 우리는 기뻐하지 않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나가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힘을 얻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면 기뻐할 일이 많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기쁨의 원천이 되신 하나님, 우리의 입술로 날마다 “야훼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는 고백하고 소망하며 항상 기뻐하며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늘 예수님을 바라보고 성령과 항상 동행하며 무슨 일에든지 항상 기뻐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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