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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가라! (욘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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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가라! (욘 3:1-10)


1.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강릉 경포대에 가면, <참소리 축음기ㆍ에디슨 박물관>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발명가인 에디슨은 미국 사람이지만, 이곳 한국에 에디슨에 관한 최고의 박물관이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 박물관은 에디슨의 발명품 진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에디슨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세 가지는 오늘날 오디오의 원조인 축음기, 집집마다 빛을 밝혀준 전구, 영화산업의 시작을 알린 영사기입니다. 그 외에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세탁기, 냉장고, 히터 등 각종 가전제품과 전기 오븐, 와플기, 다리미, 퍼머기, 재봉틀, 등사기, 복사기, 전기 자동차 등 일상생활용품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에디슨입니다. 

그것도 지금부터 100년 전에 말입니다. 이곳을 둘러보고 나오면,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한 말이 실감납니다. “토마스 에디슨의 덕을 보지 않거나 그에게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을 찾으려면 정글로 가야 한다.”
에디슨은 아주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전구를 발명한 후, 후일담을 이렇게 전했답니다.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나는 9,999번의 실험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는 실패를 1만 번째 되풀이할 셈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게 아니다, 다만 전구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치를 9,999가지 발견했을 뿐이다.” 그래서, 에디슨이 한 유명한 말이 오늘까지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2. 제2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요나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보냈습니다. 그 좁은 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기도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요나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요나에게 제2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요나는 지난 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니느웨로 갑니다. 

성경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서 성공한 이야기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을 통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이 실패로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야곱은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다윗도 남의 아내와 간음하고 그 남편을 청부살해하였던 사람입니다. 이들 모두 한 때 실패하였지만, 참회의 눈물로 기도하면서 다시 일어나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한 인물들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 회사 사장은 우리가 큰 실수를 하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을른지 모릅니다. 
우리 아내는 우리가 실수를 반복하면, 우리에게 실망할른지 모릅니다. 
우리 친구들은 우리가 자주 실패하면, 우리를 외면할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2, 제3, 계속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3.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죄악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은 악한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제2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가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요나를 고기 뱃속에 넣어서라도 다시 니느웨로 보내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백성에게 외친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나님은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40일이란 시간을 주시고 기다리셨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40일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니느웨를 돌이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제2의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요나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왕부터 어린아이 아니 짐승에게까지 금식하고 기도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니느웨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조폭도, 골수 불교신자도, 박수 무당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집 나간 둘째 아들의 이야기, 소위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을 달라고 요구하여, 그 돈을 갖고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며 다 써버린 탕자, 거지가 되어 아버지의 집이 그리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너무 기뻐서 송아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한 탕자, 그 자식이 돌아왔을 때 무조건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주실 뿐 아니라, 크게 기뻐하여 잔치를 여시는 아버지, 이것이 성경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죄악, 그 죄악을 용서하시고도 남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잘 난 사람, 유능한 사람,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딴 사람만 환영받고 대접받는다면, 예수님이 필요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예수님 당시의 잘난 사람들-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등-은 스스로 잘 났다고 뻐기며 다녔습니다. 세리와 창녀같은 못난 사람들을 무시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잘난 사람들을 따끔하게 질책하셨습니다. 대신, 못난 그들을 더욱 사랑해주셨습니다. 비록 못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그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가슴을 치며 눈물로 회개하는 그들을 받아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낙오자, 실패자, 구제불능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 이들은 세상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딱 한 분, 위에 계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는 탕자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까? 
집을 나가보지 않은 사람은 집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탕자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잘 모릅니다. 
집을 떠나지 않은 첫째 아들, 그는 진짜 효자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돌아온 방탕한 동생을 환대해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때, 아버지의 집을 나갔던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누구보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
누가 은혜를 넘치도록 받습니까? 자신의 부끄러움과 연약함, 허물과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모든 죄악보다 더 크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4. 우리의 죄악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니느웨가 회개하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요나의 말 한 마디에 악독이 가득한 그 도시가 그렇게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습니까? 5-6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더 나아가 왕과 대신들이 전국민에게 조서를 내립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 양 떼까지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고, 먹지도, 마시지도 말로,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굵은 베옷을 입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

이런 회개는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짐승까지 회개하게 하다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커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그보다 훨씬 큽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잡히신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말입니다. 스승 예수님은 지금 안에서 심문을 당하고 온갖 모욕을 다 당하고 있는데, 수제자라는 사람은 그 스승을 모른다고, 그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배신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그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했을 때, 한꺼번에 3,000명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나면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지체장애인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걷게 하였습니다. 

행5:15-16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베드로는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당했습니다. 
배신자가 순교자로 뀌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청산의 가족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을 덮어주시고도 남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5. 일어나 가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도망쳤던 요나, 오늘 우리가 요나는 아닙니까? 
요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제2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에게도 제2의 기회를 주십니다. 
“일어나 가라.”

다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악과 연약함을 덮고도 남을만큼 큽니다. 
우리의 지난 날의 실수와 실패를 충분히 덮어주시는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부족하여도
하나님은 우리가 요나처럼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 니느웨로 가야 합니다.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불모지와 같은 우리 대구, 우리의 가족, 우리의 이웃에게로 갑시다. 언젠가 이 척박한 대구도 니느웨처럼 회개하고 새롭게 될 날이 올 줄 믿으면서 말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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