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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치, 식치, 심치 (창 2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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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치(藥治), 식치(食治), 심치(心治) (창 22:1-13)


한방의학에서 주창하는 치병 즉 병을 치유하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약치입니다.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이것은 병이 들었을 때입니다. 평소에는 약치가 없고 병이 들었을 때이므로 특별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식치입니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흔히 음식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치료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또 한방에서는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이라고 말합니다. 약이 음식에서부터 나왔으므로 근원이 같다는 것인데, 약의 뿌리가 음식이므로 음식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그 음식에서 뽑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이 될 수 있겠습니다. 식치를 약치의 한 수 위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 번째 단계, 이 식치 위에 최고 치병의 단계가 있는데 그것을 심치라고 말합니다. 마음으로 병을 다스린다는 것인데, 마음을 잘 지키면, 마음을 잘 쓰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방을 하고 건강을 지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더해 더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많이 생각해보십시오. 이것만 많이 생각해도 아마 여러분이 병원에 가셔서 내는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을 시사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일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이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제 약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약은 아주 특별한 때만 씁니다. 여러분들이 병이 났을 때 약을 쓰지 평소에는 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약이라고 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보충제입니다. 실제 병이 났을 때 약으로 치료하는 시간은 아주 짧고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 다음 음식입니다. 음식은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세 끼를 일평생 먹습니다. 이것을 시간으로 따져보면 좀 빨리 먹는 사람, 천천히 먹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하루 약 5-10%를 음식 먹는데 소요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 합니다. 심지어는 잘 때에도 마음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꿈이 그렇지 않습니까? 꿈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가장 많이 신경 쓰고 많이 서원하고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대강 꿈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건강을 잘 지키고 더 건강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많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하는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잘 쓰는가,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건강을 위해서 돈을 많이 쓸 것 없습니다. 돈 한 푼 들지 않는 마음만 잘 관리하면 됩니다. 

그런데 너무도 희한한 사실은 이것은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영적인 건강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하늘과의 관계, 하늘에서 내가 복을 받고 혹은 하늘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가, 받지 못하는가가 아주 똑같이 여기에 관계 있습니다. 

첫 번째인 약치와 비견되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아주 어렵고 절박한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하나님, 이것 좀 해결해주십시오.’ 라고 간절하게 매달리는데 이것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시다가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으시다가도 아주 절박하고 다급한 일이 있을 때는 자주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약으로 치료하는 약치와 마찬가지로 이런 경우에는 아주 절박한 그 순간만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도 짧습니다. 이것은 아주 급하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은 되지 못합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두 번째 식치와 비견되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루 세끼 규칙적으로 식사하듯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 규칙적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예배시간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공식적인 예배 혹은 공예배라고 하는데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이 시간을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이때에 나와서 하나님을 뵙고, 함께 하는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지킬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건강, 자식, 재산 등의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이것을 잘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건강을 지킬 수 있듯이 잘 지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심치와 비견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너희들을 만나야겠다고 말씀하시고 정하신 때를 뛰어넘어 모든 시간, 어떤 장소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지금까지 받았던 은혜를 지켜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다 더 큰 은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다윗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날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너무 큰 복을 받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정말로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주셔도 됩니다.’ 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알았다고 하시면서 그만 주셨습니까? 계속해서 주셨습니다. 

다윗이 죽고 난 뒤에는 안 주셨습니까? 죽고 난 뒤에는 다윗이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말마다 다윗을 말씀하셨습니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다윗의 길을 갔다. 그런데 다윗보다는 조금 못하다.’ 라고 말씀하셨고, 아주 잘못한 사람을 두고는 ‘저 사람은 다윗의 길을 가지 않았다. 다윗의 길을 갔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부 다 다윗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그리워하셨는지 모릅니다. 살아있을 때에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복을 주셨고, 죽고 난 후에도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이 바로 심치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시편은 전부 150편인데, 그 중에서 다윗이 쓴 시가 보통 100편이라고 말합니다. 시편에는 여러 사람들의 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한편, 두편 혹은 세편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도 수많은 시를 썼지만 그 중에서 그것만 수록되었을 뿐입니다. 다윗의 시는 100편정도 됩니다. 다윗도 100편만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수없이 많은 시를 썼는데 그 중에서 100편이 시편에 수록된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이 어떤 것입니까? 그냥 시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들입니다. 이만큼 다윗이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그렇게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아들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성전 건축 준비를 끝내고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외곽 건물을 다 하고 난 후, 더 많은 부분이 남아있을 때인데 건축할 때에 절대로 성전 안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방망이 소리도 내지 말고, 도끼 소리도 내지 말고, 철 연장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그랬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왜 성전 안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을까요? 솔로몬이 성전이란 어떤 곳인지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이란 곧 오늘날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성전이란 어떤 곳인지 솔로몬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방망이가 무슨 역할을 합니까? 방망이는 치고 때리는 것이고, 도끼란 쪼개고 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연장은 옆의 돌과 맞추기 위해서 다듬는 일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성전에 일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소리도 나지 못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성전은,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쪼개고 치고 때리고 나누고 깨뜨리는 것은 세상에나 있을 것이지 교회는 그런 것이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예배당에 들어오지 못한다,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솔로몬을 통해 지시하시는 내용입니다. 예배당에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전은 그 반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맞아서 터지고 깨지고 부서진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눈물 흘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주고 치료해주는 곳이 바로 교회이고 기독교인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기독교인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라는 것입니다. 월가 시위를 보면 상처가 많은 것이 보입니다. 물론 도가 지나친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짚어가야 합니다. 나라가 해결하지 못합니다. 잘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병난 사람들을 누가 치료합니까? 나라가 한다고 하지만 너무 작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합니다. 세상에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 도대체 치료란 것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는 교회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특별히 위로를 받고 치료를 받겠다고 나온 교우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갈라지고 분열되고 흩어진 사람들을 모아주고, 마음을 합하게 해주고, 화해시켜 주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야당 쪽, 여당 쪽, 진보 쪽, 보수 쪽으로 나누어 분열이 심합니다. 집안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아버님을 여행 보내드리자고 한다는데 그냥 웃고만 넘길 일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생겼습니까? 물론 정치인들이 이런 것들을 이용하는 면도 있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기독교회에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달라야합니다. 혹시 주변에서 젊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이 있으면 젊은 사람들을 이해해주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우리도 옛날에 그렇지 않았습니까? 젊은 사람들도 연세 드신 분들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저자신만 보아도 10대 후반, 20대 때 많이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쓴 글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기록이 많은데, 지금 보면 꼭 이렇게 했어야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젊었을 때는 다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균형이 되고 조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기독교인들은 젊은이들을 이해시켜주고, 연세 드신 분들도 이해시켜주면서 서로 화합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고 기독교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으면 야당하지 마십시오. 여당도 하지 마십시오. 진보도 하지 마시고 보수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화합시켜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세상적으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집안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노릇입니다. 

병든 자가 있으면 고쳐주는 것이 바로 교회이고 기독교인들입니다. 좌절, 절망,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챙겨주십시오.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 아주 특별하게 많이 버는 사람을 제외하고 돈을 제대로 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부가 얼마나 편중되었는지 모릅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대체로 골고루 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연세 드신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생각해야합니다. 내 재산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바로 교회이고 기독교인이라고 솔로몬의 이 지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의 이 명령에는 실제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건축하다 보면 돌을 깨뜨려야하고 쪼개는 일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 소리가 나올 수 있고 부딪힐 수도 있는데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것까지도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하기는 하되, 예배당 안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이런 저런 회의가 많은데,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 될 수 있으면 짧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학교도 학생들 가르치고 맞이해야할 시간에 선생님들이 모여서 회의한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하고 다른 곳에서 미리 준비해야합니다. 시끄럽게 하고 떠들고 소리 내고 다투는 일들은 세상에서나 하는 것이지, 국회에서나, 시의회에서나 하는 것이지 성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솔로몬이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아주 엄격하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솔로몬은 참 잘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처음에는 참으로 잘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성전 건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전이란 어떤 곳인지 잘 알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평생 살았지만 내 남편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한 번 돌아보아야합니다. 정말로 남편을 사랑하고서도 남편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지 아니면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는 그 시간만으로 내 남편을 알지 못했다고 말하는지 잘 생각해야합니다. 정말로 사랑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사랑하면 알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고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잘 알았습니다. 솔로몬은 참 잘했습니다. 이처럼 처음 출발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처음도 잘해야 하지만 계속해서 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빨리 생각해야합니다. 우리 가운데 처음에 잘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또 어느 기간 동안 잘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습니다. 어느 기간 동안에는 정말로 진실하고, 정말로 순수하고 열심히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치 않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안타까워하시고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입니다. 

신자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도 연애할 때는 한없이 좋아서 없으면 죽을 것 같다가도 결혼하고 난 뒤 얼마 안 되어서 왜 그렇게 마음이 바뀌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어가는 이 모습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끝까지 충성하고 진실하고 아주 순수해야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조금 있으면 바뀌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참 안타까워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가는 것입니다. 처음도 잘하고 나중도 잘하고 계속해서 잘하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잘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잠깐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잘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너무 쉽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 이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자주 자주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틈만 나면 뵙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와서도 너무 오래 있지 말고 “하나님, 왔습니다. 이제 바빠서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인사하고 가지만 또 오는 것입니다. 자주 자주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잔칫상을 마련해두시면 그때마다 와서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또 틈만 나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늘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늘 하나님과 이야기하면 다 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고, 건강이 시원찮아도 할 수 있고, 상황이 안 좋아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이 물건 팔면서 “하나님, 또 콩나물을 사러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처음에 이렇게 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걱정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걱정 때문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12-13절).. 네가 지금 건축하고 있는데 내 법도와 율례와 계명을 잘 지켜라, 그러면 내가 이런 이런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 말씀을 하신 때입니다. 통상 이런 말씀은 성전 건축을 다 하고 난 후에 하십니다. 다 건축하고 난 후 수고했다, 앞으로 내 법을 잘 지키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건축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참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잠깐만 보자고 말씀하시면서 지금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아주 심각하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꼭 솔로몬에게 당부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시작은 참으로 잘했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아, 고맙다. 네가 참으로 시작을 잘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이다.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잘 알고 성전을 이렇게 건축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참 잘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건축 중간에 부르신 것은 건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마음이다. 건축을 아무리 잘해도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건축도 못하고 헌금도 못하고 봉사도 못해도 그런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로 좋아하시는 것은 건축이나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진실한 마음,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마음이 없으면 건축이나 봉사 다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좀 심하게 말씀드리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단해도 좋다, 그만 지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간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멋있고 아름답고 정말로 멋있게 지어진 성전이라도 한 조각도 남김없이 다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46년간 지었으므로 그 당시에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은 부서지고 그 흔적밖에 없지만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얼마나 멋집니까?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24: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멋진 예배당 안에서 저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병든 사람,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만 더 이권을 챙기려고 하고 자기만 잘살려고 했습니다. 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명예를 가지는지 여기에만 관심을 가졌고 하나님께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대로 가다간 이 성전이 다 무너진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한 40년 쯤 후에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로 잘 아십시오. 이것은 예배당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귀하게 여기는 것, 이것만큼은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잃어버릴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만큼은 내가 이렇게 지켰기 때문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음만 있으면 전부 다 이룰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상황 때문에,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헌금도 못하고 봉사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도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너무너무 좋아하십니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윗이 성전건축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건축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다윗아, 네가 지금 그렇게 나를 사랑하기에 성전 짓는 것은 안 해도 되겠다. 그 마음만 있으면 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샘플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쳤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밤낮없이 나를 생각하고 나를 의식하고 살아가는 다윗을 보라, 저것만 있으면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없는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생각하여 다윗이 멋진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신 것 같다고 잘못 알까 하여 성전을 바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병이 나면 약을 먹고 치료해야합니다. 그러나 병이 날 때마다 약을 먹고 치료하는 단계에 머무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빨리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을 잘 지켜 나가야합니다. 언제까지나 병원에 들락날락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빨리 그 단계를 넘어가야합니다. 약치에서 식치로 넘어가야합니다. 그러나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늘 내 마음을 바르고 곱고 아름답게 써서 지금보다 날로 날로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개인 건강뿐만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가정에 탈이 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우리 가정에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늘 그러고 있을 겁니까? 뛰어넘어가야 합니다. 온 가족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 날로 행복한 가정, 많은 사람이 보고 정말로 대단한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약치로 살겠습니까? 심치가 되어야합니다. 날로 날로 더 좋은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좋았던 가정이었다가 허물어가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별 것 없던 가정이 참 좋아지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런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옛날에는 약했지만 점점 건강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건강하고 참 멋졌던 사람이 점점 더 추하고 못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결단을 하십시오. 한해가 저물어가고 새해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고 어떤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금식해도 좋습니다. 철야를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 해결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친히 하신 말씀이든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 이제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약치를 넘어서 식치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마십시오. 심치로 가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더 사랑하십시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순수하고 더 진실하고 더 충성스럽게 하나님 앞에 더 아름다운 삶을 사십시오. 내일 그 다음 내일은 더 그렇게 사십시오. 이것이 식치를 뛰어넘는 심치입니다. 이것이 인생 최고의 길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돈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그렇게 드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십시오. 오늘 보다는 내일 더욱 더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한 번 해보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약치를 뛰어넘어서, 식치를 뛰어넘어서 심치입니다. 마음으로 내 모든 것을 치유하고,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서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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