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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겟세마네로 가십시오 (눅 2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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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로 가십시오 (눅 22:39-46)

우리가 왜 기도 해야 하느냐? 기도의 당위성을 정의 내리라고 한다면 
한마디로 예수님이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족함이 없는 데도 기도하시고, 능력이 그렇게 많으신 데도 기도하셨습니다. 창조주이신데,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신 데도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늘 만나시고, 대화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아뢰고 묻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항상 순간순간을 기도로 사시면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무엇을 갖고 있더라도, 어떤 능력이 있을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고, 우리의 목적지까지 항해하면서 영적인 문제나 육적인 문제나 모든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실까요?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면서 우리 인간을 도우시고, 사랑하시며, 함께 하시고,축복해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할 일이 뭘까요? 여러분, 부모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우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도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잘되길 원하시고, 우리가 건강하고, 복 받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인데, 우리가 아버지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어디든지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물론 믿습니다.우리 안에 계시지만, 계신 분을 경험하려면 기도해야 됩니다. 들판에서 기도하면 들판에서 주님을 만나고, 사업장에서 기도하면 사업하는 자신이 만나고, 농사짓는 분이 기도하면 농사짓는 데서 만나고, 다윗은 전쟁터에서 기도해서 전쟁터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환난 중에 기도하면 환난 가운데 만나고, 질병을 만나 기도하면 질병 중에서 주의 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분명 계시는 구나.’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도록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 한번 기도 해 보라는 것입니다. 되나 안 되나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2천년 동안 교회가 갖고 있는 힘은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를 제해 놓고 교회가 다른 힘을 가지려고 하면 그것은 위험한 유혹입니다. 세상의 권력들이 다 그런 힘들인데, 교회가 때에 따라 그런 힘을 갖고자하는 유혹을 받은 모습을 기독교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임금에게도 명령하고, 왕을 임명하며, 대단한 힘을 가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힘 때문에 오히려 교회는 망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가능하면 힘 있는 자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힘 있는 자는 늘 거리를 두고, 힘없는 자는 가까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위의 힘으로 사는 것이지, 땅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시간 순으로 나누면 탄생이 있고, 그다음 공생애가 있고, 십자가 있고, 부활이 있고, 승천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 1회입니다. 탄생도 1회, 십자가도 1회, 죽음도 1회, 부활도 1회입니다. 한번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기도는 전체적으로 반복하여 하십니다. 계속 기도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떠나 어떤 일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에 앞서서도 기도, 마지막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기도, 죽음 앞에 두고 해야만 했던 일도 기도이셨습니다. 밤일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동산을 찾아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아예 우리의 기독교 전부의 아주 불문율 같은 원칙이 됩니다. 우리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것입니다. 뭐로 시작한다고요? 기도! 뭐로 마치고요? 기도!

제가 많은 대학에서 이사로, 이사장으로 일해 보았습니다. 회의할 때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칩니다. “폐회 재청합니다.” 한다고 해도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총회를 운영하던 제가 많은 연합 사업에 있어서도 어디서든지 우리는 기도가 끝나야 끝인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도 우리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녁 일이 끝나면 침대에 올라가기 전에 기도로 하루를 마감합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고, 하루를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또 밤에 기도를 드리면서 이 밤을 편안하게 해 주실 주님을 우리는 만나며 또 그분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루를 잘 매듭을 짓습니다. 우리인간이하나님의 피조물인데, 조물주, 창조주, 왕의 왕이신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성가대가,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떠나서 제멋대로 연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휘를 따라이 세상을 연주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가 참으로 귀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39절에 예수님은 기도를 아예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습관이 되셨습니다. 항상 기도입니다. 먼저 기도하십니다. 기도를 우선하셨습니다. 제자를 부르실 때도 당연히 기도하시고, 예수님이 말씀 가운데 기도하라는 것 같이강조를 많이 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교회가 이 모든 일을 담당하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누가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명성교회 건축을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저의 목회사역은 누가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이 습관입니다. 머리에, 마음에, 생각에, 항상 몸과 마음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그렇게 습관이 배어 있습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이 습관입니다. 항상 떠나지 않습니다. 낚시하는 사람은 여기 앉아 있어도 바다에 가 있습니다.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나쁜 것도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술도 습관이고, 담배도 습관입니다. 죄짓는 것도 습관입니다. 소매치기 습관입니다. 

감옥에서는 “나는 나가면 절대로 그런 죄 다시 안 저지르겠다.” 결심하지만 이미 습관이 뱄습니다. 사기도 습관입니다. 어떤 분은 배우자 때리는 것이 습관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 있지 않습니까? 요사이 나이 70이 넘어서 이혼하는 할머니가 하시는 말이 “더 이상 나 못 맞겠다.”고 하며이혼하는 겁니다. 습관으로 때리는 겁니다. 욕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남 헐뜯는 것도 습관입니다. 나쁜 습관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습관을 길러야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합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이것은 아예 몸에 배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에게 기도의 좋은 습관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이끌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러시아격언에 전쟁터에 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몇 번 기도하라고 그러죠? 세 번 기도하라고 그럽니다.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처음에 그 격언을들었을때 생각하기를, 결혼할 때 한번만 기도하고 전쟁터 나기 전에는 세 번 기도 해야지 전쟁에 나가면서 무슨 기도는 한 번하는가? 말도 아니다 싶었는데 가만히 살아보니까 그 말이 맞습니다. 왜? 부부간 함께 사는 게 전쟁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전쟁 나가 싸우는 것은 총칼로, 힘으로 되지만 부부간에는 힘으로도 안 됩니다. 총칼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거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는 배로 운항하면서 좀 참고 나가면 이겨낼 수 있는데 가정은 참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를 세 번 해야 전쟁보다 더 귀히 여기고, 군에 가는 것보다도 귀히 여기고, 바다의 풍랑, 태풍보다 더 무섭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가정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평생을 살면서 잘 가야 되고 안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격언을 공연히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냥 격언이 만들어질 수 없지 않습니까? 러시아 사람은 오랜 기독교인입니다. 러시아는 기독교국입니다. 천년 동안을 하나님을 믿은 나라입니다. 기도를 그만큼 귀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가정 말입니까? 기도해야 됩니다. 가정에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힘으로도 안 됩니다. 인내심 가지고도 안 됩니다. 누가 참으면 된다고 그러는데 참는 것 가지고도 안 됩니다. 돈만으로 안 됩니다. 오히려 돈 많고 좋은 조건을 갖추면 더 안 됩니다. 그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우리 부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만이 가정에
축복과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가 늙기까지, 우리 갈 길을 다 달려가도록 이 세상의 많고 많은 모든 위기와 어려움을 다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안겨서 젖을 먹고, 품안에 안겨 자라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인간의 평생이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재워주셔야 자고, 품어줘야 평안하며, 행복하고, 안전하고, 건강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하고, 그분의 품안에 있어야 하며, 그분의 손이 같이 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손이 우리를 지키시고, 그의 큰 능력이 우리를 도와 주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적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니 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자기만 하니까 얼마나 불안합니까? 본문 45절에 보면 제자들이 슬픔을 인하여 불안에 떨고, 당황한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사람 보자 제자들은 칼을 갖고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폭력으로 해결하면 안 됩니다. 힘으로 해결하면 안 됩니다. 싸움으로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남을 해쳐서, 귀 자르고, 남의 팔다리를 잘라서 내가 성공하고, 내가 출세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기독교는 사람과 싸워서 얻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참되지 않습니다. 물질이든 권력이든 무엇이든지 남을 넘어뜨리고 짓밟아서 빼앗아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아멘. 

예수님은 일절 안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러 오는 사람들은 특수부대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먼저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러 가셨다는 정보를 입수해 가지고 막 찾으러 온 것입니다. “너희 누구 찾냐?”는 질문에 “우린 예수님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자 “나다. 그게 나다. 내가 예수다.” 하니 모두 겁을 냅니다. 그렇게 찾으면, 그 때 토껴서 달아나야 하는데 “나다.”라고 하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하며 당황해 하지 않습니까? “나 데려가라고, 나다.”라고 그런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탁 잘라 예수님을방어합니다. 그 칼을 어떻게 쳤는지 귀만 이렇게 싹 오려냅니다. 이것도 어렵지 않습니까? 

잘못하다 머리 자르면 어떻게 합니까? 귀만 탁 잘라냈는데, 예수님은 그 귀를 다시 가져다 붙여준 겁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귀를 다시 붙였습니다. 나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제자리에 붙였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말이죠. 저도 장난을 잘해서 친구하고 낙동강에서 여름 달 밝은 보름달에 둘이서 강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둘이 딱 부딪혔습니다.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탁 소리가 납니다. ‘이상하다, 몸이 아니고 머리 부딪혔나?’ 어디에 부딪혔기에 탁 소리 났는가 이상하다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보면 이상이 있는 것 같은데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조금 후에 보니까 내 이가 없어졌습니다. 이가 없는 겁니다. 이상하다. 보니까 잇몸밖에 없습니다. 이상하다. 보니 이가 혀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 꺼내서 잇몸 구멍에 붙였지 않습니까? 우선 급하니까 이것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아무한테도 이 이야기를 30년 동안 못했습니다. 모두 나를 안 믿어줄 테니까요. 어떻게 이를 갖다 넣으면 바로 붙어버리는 게 이상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치과병원 하는 집사님들한테 물어보니까 몇 분 내로 바로 붙이면 붙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이거 이 사실을 말해도 되겠구나.’ 했습니다. 귀를 탁 자른 곳에다가 예수님이 바로 붙이니까 딱 붙은 겁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 앞에 갔습니다. 빌라도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예수님께 “네가 나에게 잘하면 내가 너를 놓아 줄 수도 있다. 너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권세가 내 손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뭐라고 합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재판이나 빨리 하라. 하나님이 보내서 내가 여기에 온 거지, 네가 나 불러온 게 아니야.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되도록 되어 있어.” 권력 타령 하지 말고 빨리 진행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고 나면 모든 상황 앞에 담대해 집니다. 평안이 옵니다.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또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내 앞날을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참 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절망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내 앞날을 인도하십니다. 지난주일 제가 ‘제레미 린’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까? 린의 이야기를 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하고 나니 그 다음 모든 신문, 인터넷이 그냥 ‘제레미 린’에 대한 기사로 도배를 하더랍니다. 여기서도 퇴출당하고, 저기서도 퇴출당하고, 아무도 안 알아주던 린이 그렇게 믿음을 갖고 기도하니 NBA 뉴욕을 6연승 시켰습니다. 어제 처음 한번 졌습니다. 어제 질 때도 계속 린만 의지하고 린만 선수로 내보내니까 린이 다 감당을 못합니다. 린은 동양사람, 하버드 출신, 키도 작습니다. 그러나 전 NBA 역사에 이런 인물이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고,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어느 누가 아무도 안 도와줄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손을 굳게 잡고 나가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 근자에 미국의 대통령을 보세요. 100%입니다. 클린턴, 시골에서 자란 소년, 어머니가 여러 번 결혼하고 아무도 할 일이 없는 마을에서 하나님 의지하고 기도하고, 성가대만 17년 앉았다고 하잖아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카터, 기도의 대통령입니다. 24번씩 기도하는 카터. 부시를 보세요. 다 폐인 같은 인간도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 길을 인도하셔서 인간 되라고 도우십니다. 자신은 그냥 술만, 마약만 복용 안 해도 좋겠다고 해서 교회 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는 교회를 통해 새 출발하고, 놀라운 일을 일으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람을 바꿀 곳이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킬 곳이 없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분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오바마도 보세요. 그 어떻게 그런 상처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부모에게 다 버림받고 자랐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 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

할렐루야! 제가 한번 방송을 보니 제주도 산 중턱에 들개가 몇 백 마리가 몰려다니면서 돼지도 잡고, 사슴도 잡고, 노루도 잡으며 닥치는 대로 잡는다는 보도를 합니다. 이 들개는 산짐승만 잡는 게 아니라 집개도, 그냥 집에 있는 개도 바로 잡아서 죽여 버립니다. 이 동네 개들, 들개들을 요사이 인간으로 말하자면 폭력배와 같습니다. 다들 이들에게 꼼짝을 못하는 겁니다. 큰 개들도 이 들개를 못 당하는 겁니다.

그것만 죽이는 게 아닙니다. 양계장에도 들어가서 몇 백 마리 닭을 해칩니다. 그렇다고 먹지도 않습니다. 자연계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자신이 꼭 필요한 양만 배가 고플 때 사냥하는데 이 개는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취미삼아 막 돌아다니면서 닭을 수백 마리 죽여 놓습니다. 먹지도 않으면서 죽입니다. 떼를 지어 다니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 개가 어떤 개인가 조사를 해 버니까 보니까 요사이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자꾸 버리지 않습니까? 그 버림받은 개가 모여가지고 이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순한 개들이, 주인에게 사랑받고 잘 먹고 편하게 지내던 개들이 주인의 보호를 떠나니까 이렇게 난폭해졌습니다. 품종은 똑같은 집개인데 한순간에 이렇게 난폭해 지고 잔인해져서 떼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엉뚱한 일을 해대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겸손하고 온유하게 사랑하며 살고, 서로 도우며 좋은 성품으로 살다가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 마음은 공허해 집니다. 허전하고, 불안하게 되고, 나쁜 짓하고 싶고, 남을 꼭 해치고 싶어집니다. 남을 헐뜯고 싶고, 짓밟고 싶고, 폭력적인 들개로 변합니다. 가정도 폭력적이 됩니다. 오늘날에는 초등학교조차도 폭력적으로 변하고, 순진한 여학생들도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지난주에도 인터넷을 보니 아이들 친구들이 그대로 죽으라고 그냥 바다에 던졌다는 겁니다. 무섭습니다. 땅을 파서 아이를 거기 흙에다가 파묻기도 했답니다. 여학생들도 그런 답니다. 자신들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다 웃고 즐긴답니다. 전부 아이들이 몸부림치며 살려달라고 그래도 다 웃고 즐기고 한답니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잔인한 일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불안합니다. 잠을 못 잡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온갖 도박에 빠지고, 마약에 빠지고, 조그마한 일에도 과격해집니다. 충동적이 됩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만 좋아지려고 하며, 이기적으로 나 혼자만 생각하려 합니다. 결혼해도 애기도 안 낳고, 아예 결혼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주 폭력적이고, 조그마한 것 가지고도 남의 티를 잡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오늘 우리 인간이 앞으로 이 세상이 어디로 가겠느냐는 말입니다. 사랑을 받아야 되는데, 보호를 받아야 되는데 보호자를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요새는 이름 바꾸는 사람도 그렇게 많답니다. 지난해에만 16만 명이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전에 조상들이 모르고 지었던 이름들은 좀 그렇긴 합니다. ‘말년’이라든지 ‘말자’라든지 그런 이름 있지 않습니까? ‘피자’라든지 그런 거는 어쩔 수 없이 바꾸는 게 좋지요. 이름이 참, 좀 혐오스럽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요. 그런데 지금은 좋은 이름도 다 바꿔 버린답니다. 이름도 맘에 안든다고 바꾸는 겁니다.

얼굴도 다 바꿉니다. 못 생긴 분이 바꾸는 게 아니라 예쁘고 더 잘 생길수록 바꾸는 겁니다. 요사이 뉴스 나오는 거 들으셨죠? 전 세계에 3대 미녀라고 하는 데미 무어는 최고의 미인으로 불린답니다. 헐리우드의 최고의 배우로 이만한 미인이면 뭐를 더 바꿀게 있습니까? 그런데도 온몸을 다 뜯어고쳤다는데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성형수술 하는데 4억을 투자했습니다. 공사비가 얼마냐? 4억. 그런데 그 운영비가 1년에 4억5천입니다. 고쳐서 뜯어놓으니까 뜯은 거를 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4억5천이 해마다 들어가는 겁니다. 이분 나이가 지금 49살입니다. 그러고 몇 년 전에 자기보다 14살인가 16살 젊은 남자하고 살았답니다. 그러니 자기가 20대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탄탄해 지니까 또 젊은 총각하고 사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해 바로 얼마 전에 기자회견 했는데 몸에 부작용이 생긴 겁니다. 이 얼굴이 갑자기 90세로 변하는 겁니다. 손도 완전히 90세, 손가락까지 늙어버린 겁니다. 완전히 피부에 부작용이 생긴 겁니다. 너무너무 절망해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이것입니다.

“행복은 잠깐이었고, 모든 것, 내가 얻은 것들은 없어졌다. 내가 받은 것은 허무함 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모두 요만한 것도 고치려고 합니다. 정말 콧등이 없이 태어난 것은 코를 좀세울 수 있습니다. 전혀 콧등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약간 그것은 올릴 수 있습니다. 정말 눈이 작어서 정말 잘안 보인다면 그것은 약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지간한 것은 그대로 있어야 될 것 아니냐 말입니다, 어지간하면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은 하나님 밖에서 뭔가 완전한 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밖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니 온갖 죄악에 범벅이 되고 결국 병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허무함에 빠집니다. 설령 그 아름다움이 오래 간다고 한들 그 겉의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냐 말입니다.

정신과의사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께서 만 명을 조사를 했습니다. 신경과민과 불안증에 떨고 있는 분들을 조사를 했는데 그들의 공통점이 뭐냐? 이분들 공통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자신에게 안 좋은 것 딱한 가지에만 집착하는 것입니다. 몸이 다른 곳은 다 좋은데 조금 안 좋은 곳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불안해합니다. 속상해 합니다. 안 좋은 것만 갖고 불평을 말합니다. 밥이 다 좋은데 반찬 하나가 안 좋다. 집이 다 좋은데 어디 하나 그 나쁜 것 찾아냅니다. 그래서 잠을 못 잡니다. 모든 것이 다 좋은데 한소리 안 좋은 것을 들으면 그것 때문에 그만 계속 속상하게 생각하고 잠을 못잡니다. 받은 많은 은혜를 생각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 세상이 어떻게 다 좋을 수 있습니까? 

교인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이점이 다른 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반대입니다. 백가지가 나빠도 한 가지만이라도 감사하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아멘.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면 영원히 기뻐할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다 좋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만 싫어도 싫어지는데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은 설교 잘 듣다가도 마음에 안든 것 하나 가지고 건의합니다. “목사님, 아까 말씀하신 중에 ‘제레미 린’ 나이가 맞지 않습니다.” 전화 다시 옵니다. 제가 답합니다.“그래 그래. 맞다 맞다.” 맞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 딱 하나 그것 꼬집어 냅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 한 45년 목회를 하면서 제 목회철학이 딱 하나입니다. 한 가지만 좋아도 감사입니다. 아니 다안 좋아도 저는 감사합니다. 나 같은 촌사람이, 부모도 가난한 농부 만나, 빽도 없고, 돈도 없는 내게 좋은 길이 열릴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좋은 길이 주어지겠습니까? 그래서 기회만 주어지면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신학대학에 들어간 것만으로 감사하는 겁니다. 나는 이 학교에 들어온 것 참 감사하다.

나는 학교에서 대접을 받고 대단하게 인정 받지 않아도 그냥 감사합니다. 결혼할 기회가 내게 왔다는 그것 자체가 제겐 기적입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내게 시집 왔냐?” 그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아멘.

명성교회 개척하기 전에 제 친구들은 강남에서 개척하고 잠실에서 개척하
고 둔촌아파트에서 다 개척했습니다. 나는 거기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왔습니다. 왜? 아무 것도 없으니까. 버스종점이 있던 곳입니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동네, 아무도 없는 데라고 해도, 버스 안내양 전도하려고 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게 이렇게 좋은 종점이라는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제게는 종점이라도... 아무도 오르지 못하는 동네이지만 저는 종점이라도 있으면 감사하는 것입니다. 원주수양관은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거기에 조그만 하게 양계장 하던 것 가지고 시작한 겁니다. 제게 무슨 좋은 땅이 주어질 일이 있겠습니까? 양계장만 얻어도 나는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성소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영하던 분들이 하도 안 되니까, 다 포기하고 쓰레기 같이 이미 끝난 병원이 백 번 문 닫아야 되는 것을 제게 부탁했습니다. 안동 양반들이 가만히 보니까 김삼환 목사가 좀 어수룩하잖아요. “모자라는 저기에 좀 맡겨야 되겠다.” 저도 그 병원을 맡기신다고 하기에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아십니까? ‘내게 무슨 좋을리 있냐.’ 했습니다. 가보니 진짜 병원 안이 전부 거미줄로 쳐져있고, 천장에 전깃줄이 다 늘어져 있었습니다. 운영하던 분은 다 사기 쳐서 해먹어서 자기들은 부자 다 되고 병원만 죽여 놓은 겁니다. ‘그렇지. 내가 이런 것 해야지.’ 했습니다. 내게 무슨 좋은 병원이 올 리가 있겠습니까? 감사한 겁니다. 그러나 제게는 다른 사람이 못 보는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부족하니까 제 배후에 계신 주님이 하시는 겁니다. 주님이 도와주시는 겁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좋은 것을 가져도 마음대로 해낼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요사이 우리 한국 교인들을 조사를 해 보니까 우리한국의 크리스천들이 매일 10분 이하로 기도하는 사람이 남자는 60%, 여자는 50%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안 합니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 우리는 예수님처럼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한국교회는 모두 많이 울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여름을 보내고 겨울을 보냈습니다. 요사이는 너무 축복을 받아 기도하는 것과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고 있고, 교회가 전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제주도 들개같이 모두 이 집, 저 집 들어가서 닭이나 잡아 해칩니다. 모두 정욕에 날뛰고, 혈기에 날뛰고, 욕심을 갖고 삽니다. 

교회가 기도해야 됩니다. 가정에도 겟세마네 동산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겟세마네 동산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눈물로 기도할 때 밖에 가서 눈물 흘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사람에게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땀을 흘리며 기도할 때 이 세상에서 피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새 성전을 지으면서 전면 강단 배경을 이렇게 제 나름대로 따로 디자인한 겁니다. 이게 무엇인 줄 아십니까? 겟세마네동산입니다. 여기는 무엇이냐? 구멍 뚫어진 거 웬 구멍이냐?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여기 예수님 기도 하시는 손을 봐야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앞으로 제가 예루살렘에서 돌, 잡석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동산같이 만들려고 그럽니다. 강단 위에 좋은 의자 치우려고 합니다. 그거 가지고 오면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강단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능력이 떠납니다.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신 그 다음 골고다 올라가서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십자가로 이기는 겁니다. 마귀와 싸워 이기는 겁니다. 온 인류의 짐을 다 질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짐을 지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밖에 길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우리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 너무 바쁜 척 하지 마세요. 잘난 척 하지 말아요. 사람 만나는 것에서 누구를 만난다고 해도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기도 할 때만이 여러분은 끝까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고, 주의 축복 가운데 삽니다. 은혜 가운데 살고, 하나님 사랑의 품안에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도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님 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 지리다
일용할 양식 주시고 우리들의 큰 죄 다 용서하옵시며
또 시험에들게 마시고 악에서 구원하소서 ♫

오늘 성가대가 얼마나 잘했는지 제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설교를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너무 눈물이 나고 감동스러워서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대개 모든 주의 나라, 권세, 영광 영원 영원히 아멘.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한 날 우리가 어떻게 별로 바쁜 것도 아닌데 바쁘게 살아갑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을 앞세우면서 우리가 기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주여, 한순간에 어려운 일 당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경험합니다. 주여, 저희들 기도하는 성도들 만들어 주시옵소서. 오늘 예배 중에 임재하시고, 여러 가지 슬픔을 가지고 나온 성도, 질병을 가지고 나온 성도, 자녀의 문제, 가족의 문제, 남편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있는 성도들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곁에서 들어 주심을 믿습니다. 늘 기도에 응답하시는 참 좋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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