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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약의 증거, 무지개 (창 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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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증거, 무지개 (창 9:8-17)


작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진도 8.8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는지 모릅니다. 또 엄청나게 많은 재산 피해도 발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어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는 지금까지도 일본 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자연 재해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 준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이 그토록 뽐내는 21세기 첨단 과학 문명이란 것도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치 지구 종말의 전주곡처럼 느끼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재해의 위력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성경에도 참으로 끔찍한 자연 재해에 관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바로 노아 홍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5절 이하의 말씀을 볼 것 같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7)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기 때문이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창 6:5 참조)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창 6:11 참조) 홍수 심판의 원인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재는 인재라는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땅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창 3:17 참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홍수 심판과 같은 자연 재해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가뭄이 심할 경우 흔히 기우제라도 올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제단과 같은 것을 쌓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무서운 홍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노아가 그 어떤 제단도 쌓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홍수 후에 노아가 제단을 쌓은 것은 다만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홍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제단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런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자연 재해는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노아의 때와 같이 오늘 우리도 방주를 준비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무지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케셰트’인데 구약 성서에서 약 80회 가량 사용되었는데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서 세 번, 그리고 에스겔 1장 28절 말씀에서 한 번, 모두 네 번 무지개로 사용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는 모두 무기인 활, 즉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의 증거로 제시한 ‘케셰트’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은총을 상징하는 무지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인 활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에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진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활로 화살을 마구 쏘신 것으로 이해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홍수 심판의 결과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와 같은 심판을 행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겠습니까? “...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하반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창 9:11 상반절) “...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창 9:15 하반절)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심판의 활을 거두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영롱한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다는 사실에 매여서 활의 심판적인 의미를 간과하기 쉽습니다. 무지개가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하나님의 은총에만 과도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히브리어 ‘케셰트’라는 단어는 활과 무지개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지개 언약으로부터 심판이라는 요소를 제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지개 언약의 의미를 단순하게 하나님의 은총으로 축소 해석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지개 언약은 평화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심판의 상징인 활의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는 그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시겠다는 매우 역설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후에 구름 속에 나타난 무지개를 통해서 심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아니하시겠다는 은총의 언약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기억하시겠다고 다짐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4~16) 하나님께서 스스로 기억하시겠다고 다짐하셨으면 우리도 또한 그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도 기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무서운 심판과 더불어 놀라운 은총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심판의 매를 통해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심판의 도구인 활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의 은총인 무지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부활의 소망도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지 않았습니까? 무지개는 죄에 대한 심판은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값싼 은총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아니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홍수 심판을 통해서 오는 값비싼 구원의 은총을 잊지 말라는 강력한 요청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과연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구원의 은총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참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토록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생명을 왜 그렇게 함부로 다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어떤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방주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노아의 자손들이 언약을 저버리고 또 다시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 소돔에서 롯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창 19:13) 무슨 말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커서 심판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과연 물로 심판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불로 심판하시지 않았습니까?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모두 다 주님의 몸인 교회, 즉 구원의 방주를 통해서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죄와 허물로 죽었던 존재들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닙니까?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옛날 노아와 그 가족들이 무지개를 통해서 심판의 도구인 활을 보았던 것처럼 주님이 못 박히신 그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불로 심판을 받아야 할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달아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가운데 받은 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주님의 뜻을 따라 생명의 복음을 더 널리 전하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부활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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