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니엘 신앙 (단 6:10)

첨부 1


다니엘 신앙 (단 6:10)

“침묵”이라는 책을 쓴 수전 케인은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지만 정작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Introvert)”이라고 주장합니다. 내성적인 것이 곧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여럿이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합니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은 저녁 초대를 거절하고 혼자 걷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고독이 창의성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루즈벨트나 인도의 간디 같이 세상을 바꾼 지도자들은 내성적인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내성적인 사람에게 외향적이 될 것을 강요하면 오히려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다니엘은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떠들어대기보다는 침묵하는 형입니다. 음식도 아무거나 먹는 것이 아니라 골라서 먹었습니다. 하지만 비전과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겉만 보면 사회성이 없는 편협한 사람 같지만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다니엘 신앙은 “전에 하던 대로”라는 말로 정리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하여 자신을 존귀하게 만들었습니다. 

  
󰊱 전에 하던 대로 식사하다

전에 하던 대로란 하루 하루를 변함없이 일관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유다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붙잡혀와 노년이 되기까지 높은 관직을 거치면서도 변함 없이 지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와 왕을 섬길 자로 뽑혀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그에게는 왕이 주는 특별 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이 주는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1:8-9) 
  
채소와 물만 먹어도 왕이 내린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의 얼굴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살득합니다. 
감독관은 다니엘에게 지정된 음식과 포도주를 주지 않고 채소를 먹게 했습니다(단1:12,16).
  
아무리 확고한 의지가 있다해도 고위관리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기 위한 다니엘의 결단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의외로 환관장은 다니엘의 요청에 호의적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기 식습관을 고집했습니다. 
  
그는 영적 습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의 결단은 신앙적 저항입니다. 그것이 신앙 인격을 만들었습니다. 결단이 최고의 영웅이 되게 합니다. 최고의 학자, 최고의 예술가가 되게 합니다. “전에 하던 대로” 이것이 위인을 만든 것입니다. 
  
다니엘의 어떤 음식에 대한 절제가 위대함에 도달하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의 결단을 지키면 또 다른 결단도 지킬 수 있습니다. 단호한 결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게 합니다. 다니엘은 절제와 결단이 위인을 만들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하루가 쌓여서 태산같은 거물이 된 것입니다. 
  “
로마는 하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인생이 어떻게 되느냐를 결정합니다. 
  
다니엘의 결단은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결단입니다. 어떤 것에 “아니요” 어떤 일에 “예”를 분명히 했습니다. 유혹이 밀려올 때 저항했습니다. 왜 좋은 음식이 먹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절제했습니다. 절제가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탕자가 먼 나라에 가서 모든 것을 잃고 죽게된 자리에서,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고 했던”(눅15:8) 그 결단이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첩경이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영적인 결단으로 믿음을 지키기 바랍니다. 

  
󰊲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다니엘이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기도했다는 말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임금님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집어넣기로 한다.”
  
그 문서에 왕의 도장을 찍었다는 것을 알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다가 들키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함께 있으려는 열망에서 태동합니다. 그분의 지혜, 그분의 능력, 그분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분의 절대적인 도움을 갈망하는 데서 기도가 나옵니다. 
  
천주교회 신자를 성인(聖人)으로 품(品)을 올리는 일을 시성품(諡聖品)이라 합니다. 
시성 절차에서 가장 먼저 조사하는 일은 후보자가 기도하며 살았는지를 확인합니다.  모범적인 기도생활이 없었다면 그는 자격 미달로 성인의 품을 받지 못합니다. 기도를 성인이 되는 조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두려움에서 건져냅니다. 자기 혐오에 빠진 자를 건져냅니다. 혐오는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어라고 규정지을 수 없으나 불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타국에서 여러 경쟁자들 사이에서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나, 온갖 모함과 방해를 받으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어느 날 콘스탄틴 황제가 유명한 사람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나의 동상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하겠다. 무릎을 꿇은 자세는 훌륭하게 일어나는 기본자세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 훌륭하게 일어서려면 기도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은 내 죄와 가난과 무력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바벨론 포로기간 70년이 끝나는 것을 깨닫고 또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합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단9:3-4) 
  
암흑과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서지만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경건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전에 하던 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사십시다.

  
󰊳 전에 하던 대로 감사하라

“전에 하던대로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던 대로는 습관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에 하던 대로 불평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에 하던 대로 감사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은 고쳐도 버릇은 못 고친다는 말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떤 의미에서 길들이기입니다. 세상 사람을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 길들이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한 행동의 반복처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불평이나 원망을 전에 하던대로 반복하면 그처럼 참담한 사람은 없습니다. 
  
새로운 습관을 시작하는 일은 최고 인생의 출발입니다. 잘못된 습관에서 빠져 나오려면 새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본래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습관의 차이가 사람의 차이를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평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시37:1)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잘하는 사람을 보고 무작정 따라 하는 것도 탁월한 전략입니다. 잘하는 사람 따라서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로마는 그것이 좋다 싶으면 그것이 적의 것이라 해도 거부하기보다는 모방하는 쪽을 택했다”(시오노 나나미)고 합니다. 모방이 로마를 만들었습니다. 이왕 따라서 할바에는 모조리 해야합니다. 제대로 된 모방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새로운 것이 나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곧 익숙한 것과의 결별입니다. 베드로가 배와 그물을 어장에 버리고 주를 따라 나선 것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다니엘을 본 받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감사는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천후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하박국3:17-19) 
  
감사는 위대한 교양의 결실이요 위대한 신앙의 열매입니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압니다. 불평의 열매는 불평의 나무에 열립니다. 감사의 열매는 감사의 사람에게 열립니다. 
  
말세의 현상은 감사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맺고 살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기쁨이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벽에 공을 던지면 던진 사람에게 돌아옵니다. 감사의 공을 던지면 기쁨이 돌아올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한 신앙인 입니다. 뜻이 사람을 사람답게 합니다. 뜻을 세워야 뜻이 사람을 세워줍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모였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세 번씩 기도합니다. 기도는 심는 것입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기도는 물대기입니다. 마른 땅에서는 곡식이 자라지 못합니다. 기도가 있는 곳에 열매가 열립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합니다. 기도는 비밀한 미래를 보게 합니다.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감사했습니다. 감사를 잃으면 인생은 피곤해집니다. 감사가 없으면 행복도 없고 풍요도 없습니다. 지난 일을 감사하면 미래를 살찌게 합니다. 다니엘 신앙 내 신앙, 내 신앙 다니엘 신앙!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