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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송해야 하는 이유 2 (엡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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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해야 하는 이유 2 (엡 1:7-14)


고대사회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가축처럼 노예시장에서 사고 팔렸습니다. 그러다가 악한 주인을 만나면 평생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일만하다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악한 주인은 그 종의 장례도 치러주지 않고 광야에 내다버림으로 짐승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되면 종의 삶은 그 집에 거하는 동안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인이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배우자도 찾아 주어서 평생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종의 존재 이유는 바로 주인이었습니다. 주인의 뜻이 그의 뜻이고, 주인의 명령이 자기의 의무였습니다. 무엇이든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절망과 고통 속에 살게 된 이유는 사단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짓는 순간부터 죄의 권세를 쥐고 있는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단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단의 속성은 인간을 멸망의 구덩이로 던져 넣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단의 종이 되어 영생의 기쁨과 행복, 건강을 다 빼앗기고 가난과 저주, 미움과 분노, 질병과 사망의 사슬에 매여 살았습니다. 

종이 악한 주인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면 누군가가 자신의 몸값을 대신 지불해 주어야 합니다. 악한 주인이 원하는 만큼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신을 풀어 주어야 그 악한 주인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악한 사단의 종의 신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은 누군가가 사단이 원하는 우리의 몸값을 지불해야 가능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종으로 삼는 무기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단이 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간을 죄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이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행복해지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세상에 끊임없는 전쟁과 기근과 재앙이 오는 원인입니다. 누군가가 인간의 죄의 삯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사단의 종의 신분에서 구원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찬송하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의 삯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쥐고 흔드는 죄의 삯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죄 값인 죽임을 대신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의 값인 죽음을 아들 예수님의 죽음으로 대신 값을 치르셔서 인간을 사단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셔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신령한 복이라고 말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특이한 구조가 나옵니다. 3절에 ‘찬송하리로다’라고 선포한 후에 세 번에 걸쳐 찬송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6절, 12절, 14절 하반절에 보면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6절은 성부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12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즉 성자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14절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을 사단의 종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 때 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또한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찬양의 이유입니다. 본문 7절에서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의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흘리신 피 입니다. 다음으로는 ‘말미암아’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또는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면서 흘리신 피를 통해서, 피 때문에 라는 말입니다. 그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주신 결과 ‘속량’입니다. 즉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을 통해서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비로소 속량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인해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기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부모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업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죄 사함을 받아 사단의 종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그 어떤 다른 이유가 아닌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찬양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주님 자신만을 원합니다.’ 복음의 진수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위해 죽어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주가 몇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11차원입니다. 우리들이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4차원입니다. 1차원을 선입니다. 2차원은 면입니다. 3차원은 입체적인 공간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은 공간속에 사는 3차원의 세계입니다. 4차원은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시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면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백 투 더 퓨처와 같은 영화에서 만든 세계입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11차원으로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관련된 내용을 읽어보아도 너무 전문적인 용어들이라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3,4차원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물질의 세계의 원리가 11차원으로 되어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의 알고 있는 지식의 세계가 얼마나 작고 좁습니까? 사실은 지금의 과학의 힘으로 규명한 세계가 11차원이지 과학적 이론으로 알지 못하는 세계를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믿음도 그와 같은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믿음은 대체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보고 경험한 것, 내가 느낀 것을 중심으로 말합니다. 그 믿음의 세계가 전부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믿음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것은 11차원의 넓은 세계를 3차원적인 기준을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믿음의 세계는 물질의 원리를 가지고는 알 수 없는 영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영을 통하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2-25절을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짧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를 말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어리석은 짓이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비웃으며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놀라운 구원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게 되었는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구원의 십자가의 도리를 비웃고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의 섭리를 제대로 알게 되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13,14절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은혜의 세계를 아주 짧게 말하고 있습니다. 13,14절의 말씀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 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네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듣고, 믿어, 인치심, 보증’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듣고 믿어 인치심을 받고 보증을 받았다’라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들은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어지는 것은 성령께서 도우실 때만이 가능합니다. 내가 성령의 약속의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음을 보증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라는 말입니다. 

사단의 종이었던 우리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구원해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종으로 삼고 싶어서 의심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시며 보증해 주십니다. 사단의 유혹과 불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에게 영의 세계를 바르게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님을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찬양 대상은 물질이나 건강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우리의 온전한 찬양의 대상은 우리를 사단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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