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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찬송하는가? (벧전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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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찬송하는가? (벧전 1:3-7)  

하나님을 믿는 자는 고아가 아니다. 가족이 없고 부모가 없어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없어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 롬8:14~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이 아버지 되셨음을 믿기를 바란다. 이는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성도들이 고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시대적으로 네로 황제의 박해가 닥쳐올 즈음에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 나그네처럼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이 되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찬송하자고 한다. 찬송이란 기쁨에서 나오는 노래인데 시련을 겪은 자에게 예배자가 되자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사43:7, 21을 보면 찬송하는 것인데 사도 베드로가 솔선하여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왜, 찬송해야 하는가? 고난이 영광인가? 나그네로 사는 것이 영광인가? 
왜 찬송해야 하는가?  

1. 산 소망이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벧전1:3)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 이 땅에 우리들이 붙잡고 있는 소망은 죽은 소망이었다. 거듭나기 이전 육적인 삶을 살던 우리는 소망이 아닌 것을 소망이라고 붙잡고 사는 신기루 소망에 속아 살았다. 죄와 허물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에 성공했다고 한들 어찌 진짜 소망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육으로 태어나 육으로 살던 인생이 거듭나게 되었다.

거듭남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다. 영으로 말미암아 태어났기에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듭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하나님이 부활하게 하시므로 우리는 그대로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벧전1:3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부활이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제 소망은 진짜 소망이다. 산 소망이다. Living Hope, 가짜 소망이 아니다. 

이제 소망이 있게 된 삶이 되었으니 찬송해도 우리의 영광 돌림이 모자란다. 지옥은 실재하지만 지옥을 경험하는 것은 소망이 없을 때이다. 소망의 빛이 없는 삶은 지옥이다. 천국 같은 곳도 소망이 없다면 지옥이 되고 지옥 같은 곳도 소망이 있으면 천국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산 소망은 견디게 한다. 소망은 어떤 환난도 견디게 한다. 소망은 환경을 딛고 일어서게 한다. 소망이 확실하다는 것은 삶을 낭비하거나 삶을 경솔하게 만들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지친 병사들에게 병사를 사열하던 장군이 물었다. “자네에게 무엇을 해주랴?” 병사는 대답했다. “나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전쟁의 포화가 주는 절망 속에서 오직 내일을 기약하는 소망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소망이 있는 자는 지치지 않는다. 소망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 소망이 있는 한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가 부활하시므로 산 소망의 근거가 되고 지금도 동일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산 소망의 사람들이 되었으니 우리는 지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특별한 인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 찬송할 뿐이다.
  

2. 유업을 잇게 하셨기 때문이다. (벧전1:4)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유업이 있다. 그런데 그 유업은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다. 이 유업은 상속 또는 하나님의 기업이란 뜻이다. 이 유업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또한 뺏기지도 않는다. 땅의 유업은 굉장한 것 같아도 분쟁하고 다투고 상실된다. 땅의 유업은 도적이 들어오고 좀이 나고 녹이 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유업은 나를 위하여 하늘에 보관된 것이니 유업이 찬란한 것이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라고 하였다. 아버지에게 받을 유업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유업과 다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유업으로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소망으로 광야를 견뎌냈다. 그리고 그 유업을 누리게 되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을 썩게 만들었다. 강대국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파괴되었다. 이사야는 사24:3~4에서 땅이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고 예언하였는데 땅이 파괴되고 말았다. 게다가 렘2:7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기업을 자기 백성들이 더럽히고 역겨운 기업을 만들었다고 예언한다. 그렇다. 우상 숭배와 성적 범죄로 땅을 더럽혔다. 또 그 땅은 쇠하여졌다. 바벨론, 앗수르에 의해 아니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진 약속의 땅은 풀처럼 시들어졌다. 그런데 우리의 유업은 이 지상의 유업인 땅처럼 썩지 않는 유업이다. 더럽혀질 수 없는 유업이다. 쇠하지 않는 유업이다. 이 유업은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도성이다. 그러나 그 도성 안에 성전이 없다. 왜냐하면 계21:22에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가 성전이기 때문이다. 도성 안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이 유업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의 도성으로 이끄신다. 그 유업의 집으로 우리는 나아간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주신 분이기에 주실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정말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기업으로 주시는 분이기에 의심할 것이 없다. 민18:20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해와 달의 비침이 필요 없는 도성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 예수가 등불이 되는 그 영광의 나라에서 누리는 기업이 간직되어 있으니, 바로 나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으니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는가? 

♬ 너무나도 아름다워라. 주님 계신 영광의 나라
귀하고도 귀하도다. 주님 계신 영광의 나라
아아 저 영광의 나라 내가 사모하오니
할렐루야 찬송 부르는 주님 계신 영광의 나라
  

3. 보호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벧전1:5)

우리는 보호를 받고 있다.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지켜주신다는 뜻이다. 무엇이 우리를 지켜주는가? 벧전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였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 거듭난 이후 깜짝 놀라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지킨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때 드러낼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까지 계속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면 결코 소망과 유업을 잃어버릴 리 없다. 나타낼 구원도 잃어버릴 리 없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다.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시련을 기뻐한다.(벧전1:6) 믿음으로 나갈 때 불연단을 이긴다. 믿음은 금보다 귀하다.(벧전1:7) 칭찬과 영광, 존귀를 얻게 한다. 예수를 보지 않고도 사랑하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은(벧전1:8) 믿음의 확실성 때문이다. 

믿음이란 나의 신념이 아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일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내실 구원을 믿고 계획과 뜻, 업적을 믿는 것이다. 그러기에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능력의 도구다. 그 분이 나를 확실하게 지키시는 보호의 방법이 믿음이다. 얼마나 분명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분명한 거듭남을 통해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 보호하심을 마지막 때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은 허구가 아니다. 실제적이다. 그러니 환란과 핍박의 바람이 불어와도 두려움이 없다. 믿음이 있기에 소망이 더 분명하고 유업이 더 분명하고 구원이 더 분명하다. 지켜주심이 분명하다. 도리어 기뻐하고 찬송하리로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산 소망까지 끊어지는 속에서도 건져주신다. 고후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사형 선고에서도 건지시는 그 분이 나의 아버지 되심에 입을 열어 찬송하자. 올 때 저는 다리로 울며 왔어도 어깨를 들썩이며 찬송하자. 다 깨어지고 다 부서지고 다 빼앗겼어도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송하자. 

♬ 두 손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생명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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